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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아이폰, 애플의 다섯 번째 한국 도전 본문

기술과 인간/IT가 바꾸는 세상

아이폰, 애플의 다섯 번째 한국 도전

미닉스 김인성 2009. 10. 15. 18:43

혁신과 창의성을 추구해온 애플의 역사

  (오마이뉴스 기사로 보낸 글의 원본입니다. 이번 글은 오마이뉴스에서 많이 고치지 않았습니다. 읽으신 분들은 패스해도 됩니다.)

당신이 애플의 사장이라고 가정해볼까요? 자, 여기 한국 시장이 있습니다. 이 시장에 들어오고 싶은 생각이 드시나요? 수요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국산품 애용 정신에 똘똘 뭉쳐 배타성과 폐쇄성이 심각합니다. 자신들만의 특별한 규격을 요구하고 고압적이며 부패한 정부 관료들이 지배하는 나라지요. 들어오기도 전에 온갖 비방과 물타기를 하며 시간을 끌고 있어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바로 옆엔 애플 제품이라면 예술품처럼 떠 받드는 일본과 거대한 매출이 기대되는 중국이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저 같으면 웬만하면 포기하겠습니다. 사실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니까요. 그러나 애플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지긋지긋한 애플과 한국의 기이한 인연을.

 

첫 번째 도전: 애플 II 컴퓨터

 


개인용 컴퓨터의 탄생: 워즈니악과 잡스, 이 둘에 의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 만의 컴퓨터를 갖게 하고자 했던 해커들의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애플컴퓨터(이하 애플)는 천재적인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의 개인 발명품이었던 개인용 컴퓨터를 가지고 스티브 잡스 주도로 시작한 회사였습니다. 그때 당시 컴퓨터 해커들은 모임을 만들어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구현한 자작품을 서로 공개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돋보였던 워즈니악은 개인용 컴퓨터가 되기 위해서는 가격이 싸면서도 구조가 간단하며 개방적인 하드웨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철학을 바탕으로 그때까지 누구도 할 수 없었던 부품 최소화에 성공합니다. 프로그래머들이 가장 짧은 코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듯이 하드웨어 엔지니어였던 워즈니악은 모든 사람들이 경악할 정도로 극단적인 간소화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애플의 초기 하드웨어 내부는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잡스는 제작비를 우려해 슬롯을 줄이려 했으나 사용자들이 추가 부품을 장착해 활용성을 높이기를 원했던 워즈니악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이 확장 슬롯 때문에 빈약한 본체에 수 많은 기능을 추가 할 수 있었고 표준화된 기능의 부품 경쟁이 활발해져서 가격 하락까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확장 슬롯: 워즈니악은 잡스와 싸우면서까지 8개의 확장슬롯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이 뛰어난 발명품에 담긴 철학은 아이비엠 컴퓨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피시의 확장 슬롯이 바로 그 유산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vintage-computer.com/apple_ii.shtml

 

애플컴퓨터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초월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애플 덕분에 실험 가운을 입은 전문가들만 만질 수 있다고 믿었던 컴퓨터를 누구나 책상에 올려 놓고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피시라는 이 놀라운 혁명적 제품은 전 세계인을 흥분시켰습니다. 애플은 단숨에 세계 시장을 점령했으나 수요를 감당 못할 정도가 되자 곧 복제품이 나돌았습니다. 워낙 구조가 간단하고 기기 자체가 오픈 되어 있어 누구라도 쉽고 복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어땠을까요? 한국 시장에 애플컴퓨터가 들어 왔을까요? 그 당시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애플 II를 일부 개인들이 수입을 했지만 유통되는 것들은 대부분 청계천의 복제품이었습니다. 세계적인 판매량을 자랑했던 애플컴퓨터가 탱크도 복제해 낸다는 청계천의 기술력을 극복하지 못해 정식으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좌절을 겪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애플컴퓨터를 가지고 싶어 했으나 국내에서는 복제품 밖에는 구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애플로고가 붙어 있어 정품이라고 믿던 소장품이 청계천제라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비록 판매는 못했지만 대신 많은 사람들에게 애플의 로고는 새로움과 갖고 싶은 어떤 것의 상징으로 기억되었습니다.

 


청계천제 애플 II: 삼보는 복제품 제조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애플 한국 대리점이었던 엘렉스도 복제품 판매로 애플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미지출처: http://www.dal.kr/blog/archives/001098.html

 

두 번째 도전: 매킨토시

 

애플 II의 성공에 취해 워즈니악을 배제한 채 애플 III라는 최악의 제품을 만들어 돈과 시간을 낭비하던 애플은 기적적으로 제록스 연구소가 숨겨놓은 우주선을 발견하는 바람에 아이비엠 피시에 맞서 화려한 그래픽 인터페이스의 매킨토시(이하 맥)를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모모의 시간을 훔쳐 가는 인간들과 흡사한 이미지였던 파란색 셔츠 차림의 아이비엠맨들, 이 1984의 빅브라더를 공격하는 자유 투사 광고와 함께 등장한 맥은 출시되자마자 전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되었습니다.

 


애플 맥: 이 위대한 컴퓨터를 잡스가 소개하자 발표장의 모든 사람들이 경악과 환호 속에서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잡스는 마치 창조주인 양 그들을 흐뭇하게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이후 폭스바겐이 자동차의 아이콘이 되었듯 맥은 사람들 뇌리 속에 자리 잡은 컴퓨터의 아이콘이 됩니다.

이미지 출처: 애플

 

텍스트 방식의 불편한 도스와 완벽히 차별화된 직관적인 그래픽 인터페이스, 마우스라는 편리한 입력 장치, 보이는 그대로 출력되는 미려한 글꼴 디자인, 모니터 일체형의 아름다운 본체…… 여태까지의 컴퓨터와 차원이 달랐던 맥은 다시 한 번 피시의 개념을 바꾸어 버립니다. 이 제품은 개인들의 구매도 이어졌지만 전자 출판 시장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고 학습 시장에서도 선전했습니다. 애플은 그 후 수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맥 덕분에 회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맥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맥은 꼭 가지고 싶은 꿈의 컴퓨터로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엘렉스컴퓨터를 통해 정식으로 수입도 되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었습니다. 용산을 중심으로 값싼 조립피시가 성행하던 상황에서 개인이 감당 못할 정도로 비싼 가격은 아무도 맥을 구입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컴퓨터를 사러 나선 사람들은 처음에 맥이 있는 엘렉스 매장에 갔습니다. 깔끔하고 세련된 매장에 전시된 맥을 만져보고 더욱 구매 욕구가 생겼지만 가격에 놀라 매장을 서둘러 떠났습니다. 그리고 피시용으로 나온 수많은 게임과 프로그램들이 동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좌절했습니다. 아무리 비싼 게임과 소프트웨어라도 불법 복제를 통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환경에서 그 많은 공짜 프로그램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컴퓨터의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맥을 비싸고 화려하기만 한 쓸모 없는 장난감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아무런 감흥도 없는 칙칙한 용산 조립 피시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애플 컴퓨터에 대한 갈구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손에 쥘 가능성이 멀어지면 질수록 그 욕망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한국에서 맥은 비싼 가격을 감당할 능력이 있었던 극히 일부의 출판 시장에서만 쓰였습니다. 그들은 엘렉스컴퓨터를 저주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폰트를 포함한 소프트웨어까지 점점 가격이 올랐습니다. 비싸고 폐쇄적이며 고압적인 회사라는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애플의 한국 정복이 또 실패한 것입니다.

 

세 번째 도전: 오에스텐(OS X)

 

맥이 발표된 후 재빨리 이를 베낀 윈도우가 출현하여 맥 수요층을 다 가져 가버립니다. 한편(drzekil님의 의견에 따라 "이후"에서 "한편"으로 수정) 매출 감소와 더불어 방만한 재정관리로 인해 애플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집니다. 그 책임을 물어 스티브 잡스를 좇아 냈지만 마치 핵심 엔지니어가 빠져나가고 영업팀만 남은 기술 벤처처럼 애플은 뇌 없는 상태가 되어 점점 더 황당한 일만 벌여 나갔습니다.

 

스티브 잡스도 따로 회사를 차려 넥스트 컴퓨터를 만들어 냈는데 화려한 회사 건물에 최고의 프로그래머를 고용하여 몇 단계나 앞선 최첨단의 이론을 적용한 넥스트스텝이란 운영체계를 만드느라 엄청난 인건비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비현실적으로 선구적인 하드웨어를 고집함으로써 호환성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찰리의 초콜릿공장보다 더 아름다운 생산라인에서 티끌 하나 없는 제품을 만들어내느라고 엄청난 생산비가 들어 가격이 비싸지는 바람에 잘 팔리지도 않는데다가 만들수록 손해가 나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넥스트큐브: 엔지니어들이 영혼을 팔아서라도 구입하고 싶어했던 워크스테이션. 그러나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 희생이 컸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가격 때문에 캐논 매장의 전시품을 만져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던 비운의 컴퓨터.
이미지 출처: http://www.nationalmediamuseum.org.uk/collections/
Collection_Detail.asp?ItemID=225&SectionID=18&index=2

 

사람들은 이제 잡스를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운영 자금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애플 시절 잡스의 추문도 흘러 나왔습니다. 애플컴퓨터 개발에 아무런 기여도 없으면서 자기가 만든 것처럼 행세 했다는 주장. 맥 개발팀을 중간에 가로채서 자기 공으로 만들었으며 맥은 사실 제록스 연구소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라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때 독선적인 성격에 부하 직원을 종처럼 부리는 독재자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습니다. 성공한 자들은 성공의 비결을 잘 알고 있고 재현할 수도 있다고 믿지만 성공했던 조직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성에 고립된 독재자의 종말이 언제가 될지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묻지마 투자를 감행했던 억만장자 로스패로도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여전히 억만장자였기 때문에 넥스트사의 실패까지는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정작 잡스의 위기를 불러온 것은 딴 데 있었습니다. 그가 스타워즈 감독으로부터 인수한 픽사라는 그래픽 회사가 돈 먹는 하마가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지 루카스도 감당하지 못하고 넘긴 이 회사는 첨단 그래픽으로 사실적인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투입되는 비용은 천문학적인 반면에 버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잡스는 삼차원 그래픽이라는 비전만 보고 제대로 돈벌이를 못했던 픽사를 인수했습니다. 누구나 비전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전 하나만 보고 잡스처럼 구멍 뚫린 픽사에 전 재산을 쏟아 부으며 10년씩이나 기다려 주기는 힘들 것입니다. 더구나 파산 직전에 몰렸으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기는 더욱 힘듭니다. 이런 믿음에 대한 보답이었을까요? 토이 스토리가 믿을 수 없는 성공을 거둠으로써 이 위기를 기적적으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픽사는 마치 초창기 애플처럼 삼차원 에니메이션 영화라는 혁명적 시장을 개척하여 전 세계인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극적인 재기에 성공한 잡스의 삶은 고난 극복의 영웅담이 되었고 잡스는 혁신과 창의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여세를 몰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있던 애플에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그러고 나니까 넥스트스텝 운영체계도 꼭 실패라고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드웨어가 발전함으로써 드디어 이 뛰어난 운영체계가 제대로 쓰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잡스는 애플로 복귀하면서 넥스트스텝을 애플의 차세대 운영체계로 결정합니다. 바로 오에스텐이었습니다.

 

맥북에어: 초경량에 극단적으로 얇은 노트북. 아름다운 하드웨어에 매력적인 운영체계까지, 참을 수 없는 구매 욕구를 자극합니다. 가격이 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젠 능력이 된다면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apple.com

 

오에스텐은 안정적인 유닉스에 기반한 객체 지향의 대화형 운영체계였습니다. 절정에 이른 오에스텐의 그래픽 유저인터페이스는 편리함을 넘어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합니다. 애플은 또한 모토로라 씨피유를 과감하게 인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고성능에 세련미까지 더한 맥은 점유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고가격을 유지할 수 있어 높은 이익률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때가 왔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애플의 한국 도전이 실패하지 않을 듯 했습니다. 애플코리아가 가격도 현실적으로 책정했으니까요. 사용자들의 기대도 상당했습니다. 드디어 맥을 손에 쥘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또 한 번 애플은 높은 한국의 장벽을 실감해야 했습니다. 바로 윈도우 운영체계에서만 사용 가능한 한국의 웹 환경 때문입니다. 비호환성으로 인해 맥으로는 제대로 컴퓨터를 활용 할 수 없었습니다. 윈도우-익스플로러-액티브액스의 조합이 자유로운 기종 선택을 제한하고 웹과 사용자 환경의 획일성을 유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안이 있었습니다. 애플 하드웨어에 윈도우를 깔아 쓰는 것이지요. 이 방법은 그러나 별로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맥은 하드웨어와 조화롭게 동작하는 맥 운영체계에서만 그 가치를 발휘합니다. 아름다운 하드웨어에 걸맞지 않는 누더기 같은 운영체계를 쓴다면 아무런 장점이 없습니다. 껍데기가 멋지다는 것 말고는 초저가형 노트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젠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윈도우로 부팅해서 써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가능하면 오에스텐으로 컴퓨터 작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운영체계가 그게 그거지, 맥이라고 특별할 게 있냐?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그냥 윈도우 써" 이 획일화된 사회에서 특이한 사람 취급 당하고 애플빠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소신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의 다양성이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리하여 또 다시 애플은 한국에서의 성공을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습니다.

 

네 번째 도전: 아이팟

 

MP3(엠피쓰리)는 세계 최초로 한국 기업이 만든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휴대용 라디오, 휴대용 카세트인 워크맨 그리고 휴대용 시디 플레이어를 만들었던 소니가 가망 없는 엠디(MD) 플레이어에 집착하고 있는 사이 디지털 강국으로 부상하던 한국에서 먼저 나온 혁신적인 제품이었습니다. 한 동안은 뛰어난 디자인에 다기능으로 무장한 한국 제품이 세계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냅스터 같은 피투피 방식의 파일 공유가 출현하여 노래는 공짜로 다운받아 듣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에 음반 업계에서는 MP3와 온라인 시장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MP3 시장에 들어왔습니다. 애플은 근본적으로 시장을 다르게 보고 있었는데 노래는 돈 내고 구입해서 들어야 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드웨어와 더불어 손쉽게 음악을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 시장과 그곳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애플의 MP3를 구입하면 뛰어난 디자인이 적용된 하드웨어와 그것을 편하게 다룰 수 있는 아이튠즈 소프트웨어 그리고 원하는 노래를 빠르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유료 시장까지 한 번에 가질 수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불법 공유가 무료이기는 하지만 초보자는 공유 프로그램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고, 검색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을 낭비해야 합니다. 차라리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쓸데 없는 시간 소비 없이 음원을 구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애플은 이 비즈니스 모델로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아이튠즈 스토어를 통해 2009년 7월까지 80억곡의 음원을 팔아 치워 미국 온라인 음원 판매 시장의 69%를 차지했고 MP3는 세계 시장의 75% 이상의 점유율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후발 주자였지만 또 한 번 혁신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음반 시장의 혁명을 이끌고 낸 것입니다.

 

아이팟나노: 애플 II 이후로 다시 애플이 메이저로 등극하게 만들어준 MP3. 삼성이 새로 개발한 저가형 낸드 플래시를 독점함으로써 최초로 애플이 가격으로도 경쟁 업체를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애플은 고가 정책을 버리고 범용 시장의 맹주가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apple.com

 

전세계 75% 점유율이라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역 MP3가 초토화되었다는 뜻입니다. MP3 종주국이라는 한국은 어떨까요? 맞습니다. 역시 한국은 달랐습니다. 한국에서만큼은 아직까지 아이팟이 시장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기 제품인 아이팟터치가 판매 1위를 하기도 하지만 전체 판매를 기준으로 하면 30% 이내의 점유율을 보입니다. 상당히 선전하고 있으나 전세계 점유율에 비해 턱없이 낮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이번엔 어떤 장벽이 있었을까요?

 

애플 제품의 매력은 사실 사용자의 자유를 일정 정도 제한함으로써 얻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일한 사용법만을 준수하게 함으로써 사용법이 단순해지고 안정적이 됩니다. 실력 있는 사용자가 세세하게 설정을 바꾸지 못하는 대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에 반해 한국의 MP3는 다 기능에 사용자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한국 MP3는 노래 듣기, 라디오, 이동형 저장 장치, 녹음기 이 네 가지가 기본인데 점점 더 많은 기능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애플은 노래 듣는 기능 이외에는 부가 기능이 거의 없습니다. 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음악을 넣어야 하는 애플과 달리 한국 제품은 컴퓨터에 꼽기만 하면 바로 외장 하드로 인식해서 자유롭게 노래를 넣고 뺄 수 있습니다. 애플은 아이튠즈로 음악을 구입하는 것을 가정하지만 한국 제품은 불법 복제한 공짜 음원 위주로 사용하기에 편리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동영상 기능이 있는 아이팟터치는 유료로 다운 받아 보는 방식이라서 판매용 동영상이 쓰는 포맷만 지원하지만 한국 제품은 가리지 않고 컴퓨터에서 보는 동영상은 다 지원하려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불법 복제한 동영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또 한 번 포맷을 바꾸는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하는 애플 제품을 선뜻 구매하기는 힘듭니다. 불법 복제가 보호 장벽으로 작용하여 아이팟을 쓰기 불편한 MP3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팟이 보여주는 혁신성은 그 하드웨어에도 있지만 그 보다는 콘텐츠의 판매 방식을 확립했다는데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이동통신 회사가 무시무시한 데이터 통신료를 챙겨갈 목적으로 만든 휴대폰용 음원 판매 사이트가 있을 뿐, MP3 업체들끼리 혹은 음원 판매 업체끼리 협의하여 MP3에서 직접 검색과 결재 그리고 다운로드 되는 판매 모델이 없습니다. 아이튠즈 매장에는 한국 노래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그냥 불법 복제에 최적화된 한국 MP3가 편합니다.

 

저는 아이팟에 대해서만은 한국 도전이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이팟은 너무 성공적이라 오히려 독점적 요소가 있고 우리나라가 발명한 제품을 우리가 주도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플의 극복은 불법 복제나 기능 추가 또는 가격 경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콘텐츠 판매 모델의 확립, 그것이 핵심입니다. MP3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으면 아이팟의 혁신을 배우고 하루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리버: 한 때 세계 MP3 시장을 석권했으나 애플에 밀려 수 많은 MP3 업체 중의 하나로 전락한 업체. 그러나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은 것일까요? 디자인에 관해서는 남다른 감각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기능 많고 예쁜 MP3 컨셉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음원 판매 방식에 대한 고민이 없는 업체들은 결국 애플에게 먹히고 말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iriver.co.kr

 

다섯번째 도전: 아이폰

 

지난 과거를 되돌아봤을 때 어쩌면 애플은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서 태어난 회사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애플컴퓨터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고 맥으로 사용자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디자인 개념을 확립했습니다. 오에스텐으로 사용하기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운영체제를 완성했고 아이팟으로 온라인 콘텐츠 판매 시장을 구축했습니다. 아이폰은 이 모두가 적용된 것이며 거기에 더해 사용자들을 온라인 세상에 로그인 시켜 줄 휴대형 인터넷 단말기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아이폰은 멋진 디자인의 아이팟터치에 전화기능이 추가된 정도의 기기가 아닙니다. 온라인 시장에서 다운 받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미래의 새로운 플랫폼입니다. 이것은 정확히 와이브로를 만들 당시의 입안자들과 개발자들이 꿈꾸었던 세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여 그 꿈을 포기했지만 애플은 끝내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냈습니다.

 


증강현실: 화면에 궁금한 지역을 카메라로 잡으면 인터넷을 통해 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건물에 대한 정보, 그 매장에 대한 방문 후기, 맛집의 추천 음식등이 나오고 가고자 하는 지역을 선택했다면 가야 할 방향도 알려줄 수 있습니다. 아직은 초기단계지만 이동형 무선 인터넷 단말기가 가져올 혁명적인 응용의 한 예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proliferate.tumblr.com/post/122905779/iphone-augmented-reality-open-the-future-fast

 

음성 통화 위주의 통신 환경을 고집하는 이동통신 업체와 큰 화면에 깔끔한 디자인에만 전념하는 휴대폰 업체들은 아이폰에 대항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제품은 한국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의 저항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는데 온갖 비방이 난무하고 경쟁 업체의 언론 플레이로 의심되는 기사들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아이폰 효과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아이폰은 이해관계에 얽힌 조직들과의 힘겨운 싸움을 이겨내고 한 단계씩 우리에게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타협하지 않는 애플로 인해 한국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중입니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애플의 혁신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겪어내야 하는 진통이라고 믿습니다. 오랜 도전을 해온 애플이 마침내 한국에서 아이폰을 성공 시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이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잡스는 또 다시 혁신적인 제품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아이폰으로 상징되는 통신의 미래가 그의 손 안에서 빛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움과 찬사 속에서 귀환한 왕을 위해 끝없는 기립박수를 이어갔습니다.
이미지 출처: AP

 

처음 가졌던 마음을 잃지 않은 애플

 

 

한 기업이 이렇게 여러 번 세상을 바꾸기는 힘든 일입니다. 휴대용 음향기기란 컨셉을 독점했던 소니도 디지털 시대에 방향을 잃고 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플은 3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매력적인 회사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만든 제품 자체가 전세계의 관심이 되고 그들의 디자인이 트랜드가 되어 버립니다. 잡스의 신제품 발표는 세계적인 뉴스거리입니다. 애플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플의 성공 요인에 대한 수 많은 분석이 있지만 저는 그들이 초심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이 쉽게 컴퓨터를 쓸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 정신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용법도 단순해야 합니다. 휴대용 단말기의 입력 방식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손가락 만으로 모든 작업을 처리" 할 수 있는 아이폰의 인터페이스는 이런 철학이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복잡함을 줄여 단순화시키고, 사용하기 어려운 것은 좀 더 쉬운 대안을 찾아 냈습니다. 결과물을 놓고 따져보면 이것이 여태까지 애플이 한 일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다른 업체들은 남들 보다 하나라도 더 많은 기능을 넣기를 원했고, 다양한 사용자의 기호를 동시에 만족시키려 했습니다. 누더기가 된 결과물은 그저 그런 제품이 되고 말지요. 애플도 어리석었던 적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제대로 방향을 잡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에도 원칙이 필요합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 줄 삶의 목표 같은 것 말입니다. 누구나 이런 목표는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 매몰되다 보면 잊고 살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혁신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한 방법으로 여행을 권합니다.

 

멀리 갈수록 생각은 깊어집니다. 길을 가다 보면 살아온 날들이 보이고 순수했었던 시절에 품었던 생각들이 기억납니다. 거기에는 잃어버리고 있었던 내 모습이 있습니다. 여행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지요. 현실의 내 위치는 보잘것없지만 자유로운 나는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큼직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올해 꼭 하기로 했지만 흐지부지되어 버린 일들", "사람들에게 좀 더 잘해줘야지", "이젠 정말 회사를 떠나 내 일을 시작해야겠다", ……

 

세상과 맞서려고 했을 때 품었던 마음들, 그것들이 다시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음을 느낍니다. 다시 시도해볼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떠오릅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했었지만 이젠 달라 질 수 있습니다. 재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아납니다. 세상을 변화 시키고 싶어서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여행을 일찍 끝내고 빨리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서두르지 마세요. 느긋하게 마치고 돌아오세요.

 

불 붙은 열정을 담아 돌아올 수 있다면 그 여행은 성공한 것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못해낼 것이 없습니다. 삶의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참아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니까요. 젊은 시절 인도로 무전 여행을 떠났던 스티브 잡스가 가슴에 품고 온 것도 그 한 종류일 것입니다. 수 많은 혁신을 이루어 낸 잡스의 삶의 방향이 그 때 이미 결정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인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IT관련 글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입니다. 아무런 오류가 없는 글을 쓰려고 하면 도약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 쪽으로 편중되면 칼질을 당하지요. 이 글도 애플빠, 빨갱이, 애플 제품 써보지도 않고 쓰는 글, 한국을 비하하는 글 등등,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전문가부터 일반인까지, 윈도우에서 리눅스까지 욕 안 먹은 곳이 없습니다. 이런 의견을 무시해도 안되지만 걸려 넘어져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제 글을 읽어 오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애플의 창의성, 아이폰이 혁신성, 잡스의 치열한 삶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다만 그들의 삶이 바로 우리들의 삶과 연관되어 의미가 있어야 할 뿐입니다. 사실 저는 이 글을 "여행을 떠나라", "자신을 회복하라"는 메세지를 주기 위해서 쓴 글입니다.

최초에 마지막 장은 앞 부분보다 길었으나 애플의 성공 비결  어쩌고 부분은 모두 다 삭제해 버리고 여행 부분만 남겼습니다. 그 따위 성공담은 우리들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읽으면서 잊어버리기 때문에  실천할 수 없으며 그런 식의 경구는 복잡한 현실에 도움이 되지도 못합니다.

결국 세상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을 뿐이죠. 그 방법은 또한 각자의 삶의 경험에서 깨달은 원칙에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그 원칙을 되살리고 기억하며 적용하는 것, 그 것이 위대해지는 비결이지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계신가요? 그것을 위해 오늘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목표를 위해 어떤 희생을했나요? 아...... 기억이 안나신다구요? 살다보니 다 잊어 먹으셨다구요? 그래요. 그렇다면 이 번 주말, 어디라도 훌쩍 떠나보세요. 거기에 가면  당신의 참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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