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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복제와 김제동의 관계는? 본문

기술과 인간/IT가 바꾸는 세상

불법복제와 김제동의 관계는?

미닉스 김인성 2009. 10. 14. 16:52

그런 선생은 도둑놈이라고 불러라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한 제언

 

(오마이뉴스에 보낸 기사의 원문입니다. 기사로서는 묻히는 분위기라서 블로그에 일찍 올려 봅니다.)


불법 복제된 "DISTRICT 9" 영화 파일이 떴답니다. 아직 미국 극장에 상영 중인데 벌써 유출되었군요. 엄청 빠른 릴(불법 복제 파일이 배포되는 것)입니다. 자 받으러 가 볼까요? 웬만한 웹하드에는 이미 다 올라와 있을 테니까요. 영화 배급사가 다운로드 받지 못하도록 저작권 보호 요청을 했다면 공식적으로는 검색이 안되겠지만 그래도 다 방법이 있지요. 어차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짓입니다. 140원만 내면 초고속 인터넷으로 금방 받을 수 있습니다. 다운 걸어 놓고 화장실 갔다 오는 시간이면 됩니다. 자 이제 느긋하게 즐겨 볼까요? 불법 복제로 충만한 초고속 인터넷의 축복을.

 


District9: 인종 차별과 외계인을 절묘하게 섞은 놀라운 영화, 그러나 빠른 릴을 자랑하는 미국 영화 중에서도 유출 속도에 있어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아직 국내엔 개봉조차 되지 않았음에도 한국 네티즌 중에서 안 본 사람이 드물 정도죠. 배급사는 심각한 관객 감소가 예상되어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저작권: 소니픽쳐스

 


저작권 보호: 배급사는 불법 동영상이 퍼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각 웹하드 업체에 해당 영화를 검색하지 못하도록 요청합니다. 검색할 때 DISTRICT 철자를 전부 치지 않고 DISTR까지만 쓰고 검색할 수도 있으니까 다양한 단어를 제시합니다. 현재 "DISTRICT9"부터 "DIS"까지 모두 검색이 되지 않도록 해 놓았습니다.

 


검색어 제한 피해가기: 웹하드 업체는 정확히 협조 공문에 있는 검색어만 제한을 가합니다. 배급사가 한글로 된 검색어를 빼 먹었기 때문에 버젓이 바로 그 영화가 다운로드 되는 것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일부 악랄한 업체는 웹하드 바깥에 전용 검색 사이트를 만들어 여기서 제한 없이 검색이 가능하도록 한 곳도 있습니다. 140원의 다운료는 파일을 올린 사람과 회사가 나누어 갖습니다. 사람들은 정당하게 영화를 구입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비용은 장물을 파는 자들에게 넘어간 눈먼 돈일 뿐입니다.

 

현재 인터넷에서는 세상에 나온 거의 대부분의 사진, 영화 그리고 동영상 파일, 인간이 부른 모든 노래, 책으로 나온 만화 전부가 디지털화되어 불법으로 공유되고 있습니다. 책들은 전자문서가 빼돌려지거나 직접 타이핑을 한 텍스트 파일 형태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란물이 유통되고 있지요. 사람들이 실수로 공유시킨 이력서와 사진, 동영상 같은 개인 파일들도 굴러다닙니다. 한마디로 인터넷에는 인류가 만들어 낸 모든 콘텐츠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법 복제가 사라지게 만든 것들

 

세계적으로 콘텐츠 불법 복제가 문제가 되지만 한국은 특히 심합니다. 음반 시장은 죽어 버렸고, 비디오 대여점도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DVD 판매가 부진해 외국 직배사들은 모두 철수 했습니다. 만화는 출시되는 날 스캐너에 읽혀서 공유됩니다. 블루레이 영화를 압축한 동영상은 DVD와 IPTV 영화보다 화질이 뛰어나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불법 릴과 거의 동시에 자막이 번역되어 나오기 때문에 국내에 영화가 정식으로 발매 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쓸데없는 검열 때문에 중요 내용이 삭제 당한 정발판보다 원판이 더 좋습니다. 공유되는 자막이 더 뛰어난 경우도 많지요.

 

60억분의 1, 만화도, 영화도, 자막도, 노래도 전세계에서 한 명만 수고하면 됩니다. 그 한 명이 만든 불법 콘텐츠는 인터넷을 타고 지구 전체에서 공유됩니다. 아파트라는 특이한 집단 거주 방식이 과반수를 넘는 한국에서는 각 가정까지 초고속 광 케이블이 쉽게 들어올 수 있어서 특히 이런 인터넷 공유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비디오 플레이어는 사라졌고 DVD는 애초에 본격적인 도입도 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블루레이가 뭔지 모를 정도입니다. CD도 없어졌습니다. 어차피 아파트에서 CD 플레이어에 걸 맞는 근사한 오디오 시스템은 이웃집과 불화를 불러올 뿐입니다. 그냥 mp3에 이어폰 끼고 듣는 것이 편합니다.

 

남은 것은 대형 벽걸이 TV와 컴퓨터입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컴퓨터와 LCD TV의 연결을 시도하거나 디빅스 플레이어등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어려워서 포기했습니다. 대개는 그냥 영화를 작은 컴퓨터 모니터로 보고 맙니다. 그들에게 스케일 큰 블럭버스터의 현장감이 중요하다느니 불법 파일은 원본에 비해 훨씬 화질이 조악하다느니 하는 말은 다 헛소리에 불과하죠. 내용만 좋다면 그런 거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원본에서와 마찬가지로 감동을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어떻게 인코딩 되었는지도 의심스러운 mp3 파일을 mp3 플레이어의 조악한 하드웨어 음원칩으로 소리를 만들어 역시 싸구려 이어폰으로 듣습니다. 손실 압축된 영화 파일을 조그만 LCD 화면과 역시 열악한 PC 음원칩과 구색으로 달아 놓은 LCD 모니터 내장 스피커를 통해 감상합니다. 스캔본 만화는 작가의 정성 어린 펜 터치가 뭉개져 구별이 힘들고 작은 글씨는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날로그에 비해 아직도 불완전한 디지털 시대에 불법 복제는 더욱 더 콘텐츠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만화가는 아무리 인기를 얻어도 만화를 그리는 것만으로 생계를 잇기 힘듭니다. 한 때 만화 대여점과 싸웠으나 이젠 공동 운명이 되었습니다. 대여점으로 나간 한 권의 만화가 스캔 되고 나면 판매와 대여가 뚝 끊기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극장 수입에만 의존해야 하는 영화인들은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가수들은 앵벌이처럼 하루에도 여러 곳의 행사를 뛰어야 겨우 다음 음반을 낼 자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불법 복제는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자들을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영구 저장소 피투피: P2P(네트워크망의 한 방식, 여기서는 파일 공유를 하는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에 올라온 한 개의 파일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복제됩니다. 전세계 컴퓨터 중 한대에만 그 파일이 있어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공유된 파일은 이렇게 피투피에 영원히 존재하게 됩니다. 때문에 개인적인 파일은 실수로라도 공유되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마음 약한 사람들은 생명을 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불법 복제를 근절하는 방법

 

이렇게 한탄만 하지 말고 불법 복제를 막으면 되겠지요.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요? 사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인터넷을 없애 버리면 됩니다. 너무 과격한가요? 그렇다면 현재 핸드폰에서 쓰는 방법을 차용하여 인터넷 종량제를 시행하면 어떨까요? 핸드폰 패킷 사용료처럼 불법 영화 한편 다운 받는데 몇 만원씩 들게 하면 간단한 웹 페이지를 보는 이외에 불법 자료 공유는 생각지도 못하게 될 겁니다.

 

이것도 어렵나요? 상관없습니다. 방법은 많으니까요. KT와 SK, LG와 같은 인터넷 망 사업자가 지나가는 패킷(데이터)을 감시하게 해도 됩니다. 이미 콘텐츠 지문 기술이란 것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한 개의 노래에는 특별한 음율이 존재하고 그것을 패턴화시켜서 유일한 지문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초고속 네트워크 사업자가 심층 패킷 감시 장치를 인터넷 회선에 연결해 놓고 지나가는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누가 어떤 노래 파일을 주고 받는지 전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아주 강력한 방법이죠. 모든 영화와 음악, 만화 이미지, 그리고 텍스트 문서까지 가능합니다. 국민들이 동의만 한다면 지금 당장 완벽한 불법 복제 방지 솔루션이 될 수 있습니다. 아, 한가지 빼먹었군요. 이 방법은 다른 용도로도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에 비판적인 자들이 주고 받는 문서도 들여다 볼 수 있지요. 이메일 압수 수색 당하지 않겠다고 외국 메일을 쓰더라도 이 방법으로 감시하면 간단히 비번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비번만 안다면 수사관이 직접 로그인해서 메일을 뒤지면 됩니다.

 


보안 연결: 사이버 망명자들은 반드시 브라우저 연결을 "항상 https 사용"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https" 연결은 매우 강력한 암호화 기법을 씁니다. 이렇게 데이터를 암호화해서 주고 받으면 중간에 감시하는 자들이 내용을 알아내기가 힘들어집니다.

 

불법 복제를 막고 불순 분자도 색출할 수 있는 이런 좋은 기능을 왜 정부가 빨리 도입 안 하고 있냐고요? 아닙니다. 하고 있습니다. 벌써 송파구에 설치해서 시험 테스트 중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아마 전국적으로 설치에 들어갈 것입니다. 물론 국민들의 반발을 염려해서 불법 복제 감시용으로는 쓰지 않을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다른 용도로는 아주 제한적으로 쓰겠지요. 저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권 침해와 국민을 감시 한다는 비난의 소지가 없는 좀 더 안전한 방법은 없을까요? 대부분의 불법 자료 공유는 웹하드 업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여기를 집중적으로 단속하면 됩니다. 사실 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웹하드 업체를 단속하면 불법 복제 대부분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공유되는 자료의 규모는 생각보다 엄청납니다. 웬만한 업체의 한 해 매출 규모는 수 백 억대를 넘어갑니다.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네트워크 사용료를 챙기느라고 바쁘고, 수시로 이루어지는 소송을 방어해주는 변호사들도 짭짤한 수입을 챙깁니다. 창작자들이 끼니를 걱정하는 동안 이렇게 하이에나 같은 업체들이 함께 달라 붙어 남의 저작권을 뜯어 먹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대부분이 음란물이란 사실입니다. 방송인 출신 문화부장관님이 국민들에게 실상을 알려 여론을 조성하고 검찰과 경찰에 요청하여 단속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도 별로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웹하드 업체 사장을 저작권 위반 혐의로 구속까지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목적이 촛불 시위 인터넷 현장 방송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소문이 파다했었습니다. 의도야 어찌되었든 하는 김에 진짜 저작권 위반 사항에 대해서도 정밀 조사를 했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개정된 저작권법도 그 주요한 목적이 국민들의 발언권 제약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좋으니까 부수적으로라도 불법 복제를 막아 주기를 바라지만 역시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웹하드 서버: 데이터센터에는 수 많은 파일 공유 서버들이 줄 지어 있습니다. 웹하드 업체 한군데만 해도 수천 대 이상입니다. 불법 동영상만 따져도 수십 만개 이상 들어 있는 것입니다.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하지는 못할 망정 기업의 영업용 자산을 강제로 점유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저작권이 중요하다고 해도 웹하드 업체의 서버들을 압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남은 방법은 그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불법 파일을 구해서 웹하드에 올려 놓으면 다운해 갈 때마다 돈을 받습니다. 이 돈을 벌기 위해 업로드에 전념하는 사람들을 헤비 업로더라고 부르는데 현재는 가끔씩 이런 사람을 단속하는 정도가 최대한입니다. 추가로 할 수 있는 것은 콘텐츠 보호 요청 공문을 발송해 웹하드 업체가 해당 검색어를 막아서 다운로드를 못하도록 처리해 주는 정도입니다. 물론 "해운대"를 보호해달라고 한다고 서버에서 해운대 동영상을 삭제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해_운대", "해운", "운대" "haewoondae"까지 검색을 못하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진정성 없이 말장난하는 자들이 짜증나지 않습니까? 저작권자는 분통 터질 일이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사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불법 복제를 막더라도 근절하기는 힘듭니다. 웹하드를 없애면 서버 없는 피투피로 갈 것이고 그것도 막으면 은밀한 회원제 파일 공유 저장소(FTP)를 만들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단속하면 메신저로 서로 파일을 교환할 수도 있고 직접 디스크 공유도 가능합니다. 이도 저도 안 된다면 USB 메모리를 이용해 서로 돌려 볼 수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해운대 불법 동영상이 USB를 통해 퍼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금지를 통한 방법으로 불법 복제를 줄일 수는 있지만 결코 없앨 수는 없습니다.

 

불법 복제는 도둑질이라고 계몽을 하고 정품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어떨까요? 좋은 일입니다. 이 참에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공익광고도 찍으면 좋겠습니다. 텍사스 쓰레기 투기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자긍심 자극 광고 기법은 어떨까요? "이봐, 한국인은 적어도 불법 복제는 안하다구!" 불법 복제품 화형식도 효과가 있겠지요. 용산 한 번만 훑으면 엄청나게 많이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유 없이는 어떤 홍보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없습니다.

 

불법 복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비록 불법 복제가 판치고 있는 한국이지만 한국 영화는 DVD가 발매되기 전에 유출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영화 파일은 대부분 외국에서 만들어집니다. 외국도 불법 복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불법 복제로 인해 콘텐츠 산업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문화 생활이란 직접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 자체를 포함해 영화를 보기 위한 모든 행위가 다 문화 활동입니다. 관심 있는 영화를 고르고, 영화 표를 예매하고, 극장에 함께 간 사람과 대형 화면으로 영화를 즐깁니다. 마음에 드는 영화 음악을 구입해 듣습니다. 감동 받아 여러 번 보고 싶은 영화, 좋아하는 주인공이 출연 한 영화가 DVD로 나오면 구입해서 소장합니다. DVD에 따라오는 감독의 해설과 스페셜 영상을 보면서 한 번 더 영화의 감동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음악과 책과 만화를 소장하는 기쁨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공들여 만든 노래에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들어 줍니다. 정교하게 인쇄된 만화책에는 디테일이 살아 있어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의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여유만 있다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화질 좋은 블루레이를 구입하고, 책을 사서 읽고, 좋아하는 만화를 소장하려고 할 것입니다. 정품이 주는 기쁨과 만족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으니까요. 선진국 사람들이 피투피로 영화를 다운 받을 줄 몰라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고, 법이 무서워 정품을 구입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계비 이외에 문화비로 쓸 돈의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못할 뿐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돈의 문제지요.

 

교양 오락비: 2009년도 민주노총 표준생계비 자료. 급여로 마땅히 받아야 할 금액을 제시한 자료에서조차 교양오락비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저 금액에는 신문 구독비와 노래방 이용료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 제시한 표준 임금에서도 이럴 정도면 실제 우리들이 받는 임금에서 문화비의 비중은 더욱 줄어들 것입니다. 그래도 이 돈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 일년에 2번 정도는 온 가족이 극장에 가고, 일년에 DVD를 10개 빌리고, 책도 한 달에 한 권은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문화를 맛보기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가정에는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습니다. 바로 사교육입니다.

 

사교육비 통계: 2008년 기준 사교육을 받는 학생은 한 명당 31만원을 지출했습니다. 사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은 스스로 학습 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가정 형편이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통계청

 

술을 마시거나 차를 바꾸는 등의 활동은 선택적이라 통계에 넣자고 주장하기 힘들지만 75퍼센트 이상의 참여율을 기록하는 자녀 교육비는 절대적입니다. 한국 가정의 수입은 생존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교육비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아니 생존과 관련된 부분마저 희생될 정도입니다. 모든 자원이 자녀 교육비로 소모되는 현실에서 그나마 최소한으로 책정된 문화비, 교양오락비를 제 용도로 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실 표준 생계비 요구도 현실을 무시하고 떠드는 주장입니다. 성장을 최고 가치로 치고 분배를 죄악시 하는 왜곡된 한국 사회의 지배츻들은 노동자들에게 최저 생계비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뺏어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받는 노동의 대가에는 최소한의 문화비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휴일도 줄이고 야근까지 하면서 일만 하도록 강요 당합니다. 평일 저녁에 가족과 함께 문화 행사에 가는 것을 너무나 사치스러운 일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주택 자금 마련과 자녀 교육비에 허리가 휘어 하다못해 DVD 하나를 살 돈과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진행되어 음반을 구입하고 DVD를 소장하는 자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놈 알고 봤더니 만화책을 사 모으더라고, 조심해 변태 오타쿠니까."

 

언제나 일은 많고 퇴근은 늦습니다. 문화 생활은 꿈도 못 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도구는 바로 컴퓨터였습니다. IMF의 고난을 거치는 동안 억압되었던 문화 욕구를 인터넷이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남는 시간에 겨우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컴퓨터로 새 소식을 듣고 정보를 공유하며, 영화를 다운 받고 웃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는 우리의 선생이며 친구이자 극장이며…… 애인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는 우리들은 오늘도 컴퓨터를 끌어 안고 처절한 문화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성장이냐 분배냐: 아직도 멀었어. 더 성장 해야 돼. 분배를 이야기하는 것은 좌익들이 함께 망하자는 방해 공작이야. 우리 삶의 분배는? 주말에 영화도 보고 놀러도 가고 싶은데요? 무슨 소리? 배가 불렀구먼, 그 따위 것에 낭비할 돈과 시간이 있으면 더블잡을 뛰어서 아들 학원비나 더 보태야 되지 않겠나?

저작권: 권우성

 

언론의 자유를 틀어 막으려 하면서 민주주의 국가라고 주장하고, 지적 재산을 지키는 데는 무관심하면서 자본주의 국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한국의 실상은 황당하게도 남의 노동의 산물인 콘텐츠를 대가 없이 평등하게 공유하고 있는 고도화된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능력에 따른 생산에 필요에 따른 소비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서 자유분방하고 비판을 일삼는 문화 권력이 힘을 얻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김제동씨가 정치적 입장을 밝혔다고 축출 당한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문화인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콘텐츠를 이용해 자본을 축척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지요. 수입은 딱 컵라면 정도만 허용합니다. 컵라면에는 다음 컵라면을 끓일 정도의 영양가만 들어 있습니다. 딴짓하다가는 굶어 죽겠지요.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불법 복제를 단속하여 저작권을 지켜야 할 사법 기관이 손을 놓고 있어도 되는 환경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문화 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불법 복제가 자연스럽게 용인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창의력을 말살하면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습니다. 상상력을 제한하면 국가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사상 검열이 시작되면 문화가 죽습니다. 이런 것들도 심각하지만 경제적인 자립이 되지 않는 것이 더욱 큰일입니다. 창작자들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불법 복제를 막고 문화비를 적극적으로 임금에 반영하고 창작자를 우대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지적 자산이며 성장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오타쿠: 우리는 누구나 뭔가에 집착합니다. 특별한 것들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갈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기 분유 값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지요. 당신이 저처럼 밥값을 아껴 읽지도 못하는 일본 만화를 모으는 순간 오타쿠로 전락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무난함이란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남들보다 튀지 않으며 그저 생존을 이어가는 것이니까요.

 

작은 시작

 

그러나 내일 당장 생계비에 문화비가 포함되어 사람들이 안심하고 사고 싶은 것들을 구입하는 세상이 되기는 힘듭니다. 창작자가 대우 받는 날도 요원하고 불법 복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불법 콘텐츠를 공유하는데 익숙해져서 아무도 잘못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가 공범이 되어 스스로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가 이 모양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곳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입니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 여유 시간이 생기면 교사들이 영화를 틀어 줍니다. 그런데 현재 이들 학교에서는 책뿐만 아니라 DVD도 구매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보는 영화들은 어디서 난 것일까요? 맞습니다. 불법 복제한 것들입니다. 학생들이 가져온 것을 교사가 공유하거나 교사가 직접 불법 자료를 다운 받아 쉬쉬하면서 교실에서 보여 줍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제대로 된 화질의 정품 매체를 사용해야 합니다. 정품을 사용하게 된다면 드러내놓고 사용할 수 없어 음성적으로 쓰는 불법 콘텐츠와 달리 수업 시간에도 공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5000개가 넘는 초등학교, 3000여 개의 중학교, 2000개 이상의 고등학교가 음반과 블루레이, 책과 만화를 구입하도록 해야 합니다. 최소한 한 학년 당 2개씩은 갖출 수 있도록 정부에서 각 학교의 도서와 음반 구입비 확보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학생들이 손쉽게 정품 매체를 활용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품질에 대한 기준도 달라져 불법 복제를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전 학교 차원의 도서 선정 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하고 일괄 구매가 아닌 정가 수시 구매 방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기본 판매량이 보장된다면 제작자들의 생활이 안정되어 창작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고, 권장 목록에 들기 위해 자극적이지 않은 양질의 콘텐츠가 적극적으로 생산될 것입니다. 이것이 불법 복제를 근절하고 문화를 살릴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구입: 도서관만은 도서 정가제에서 예외입니다. 도서관은 최저가 입찰로 한꺼번에 책을 구입합니다. 극히 적은 도서 구입비, 철 지난 도서 구입등 수 많은 문제가 있지만 출판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최저가 입찰제만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합니다.

 

아, 또 제가 너무 이상주의로 흘렀나요? 이정도 바람도 현실과는 괴리된 것 같습니다. 입시 학원화 된 학교에서 그 따위 것들을 구입할 여유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푸는 게 남는 장사겠지요. 잠시 시간 때우기라면 모를까, 재미와 감동 속에 삶의 교훈을 담고 있는 영화와 음악, 책과 만화를 활용한 수업은 시간 낭비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은 나중에 좋은 대학가서 해도 늦지 않겠죠?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변화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불법 복제가 최소한 학교에서만은 용인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시작은 어떤 경우에도 학교에서 불법 복제 파일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암울합니다. 학생들에게 올바름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불법 복제 파일을 틀어주고 있으니까요. 그것도 남들보다 빨리 구했음을 자랑하며 많은 학생들에 보여줍니다. 이것은 명백한 도둑질입니다. 워낙 일상적인 일이라 죄의식도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도둑질도 괜찮다고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과 학생이 장물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은 바뀌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불법 복제된 콘텐츠를 보여주는 교사는 선생 자격이 없습니다. 모르고 했다면 무지한 자를 선생이라 부를 수 없고, 알고서도 했다면 이런 범죄자를 선생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교사들이 이 문제를 자각해야 합니다. 더 이상 부끄러운 범죄자가 되지 말고 학교에 정품 콘텐츠가 보급되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정품 구입이 당연한 일이 되도록 만들고 충분한 예산이 배정되도록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학생들이 교실에서의 불법 복제를 거부해야 합니다. 학생들도 그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부모들이 나서야 합니다. 이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공범이라고 해도 최소한 교실에서만큼은 범죄에 무감각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교사라면 학교 시스템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이 학생이라면 불법 복제를 하는 선생에게 직접 잘못된 일임을 소리 높여 지적해야 합니다.

 

사회가 구제 가능성이 없다면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 수 밖에 없습니다. 불법 복제를 하는 선생은 범죄자란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그런 선생은 더 이상 선생이 아니며 도둑놈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것이 시작입니다. 이 사회에 자그마한 희망이 죽지 않고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믿습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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