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이해 가능한 글의 의미, 공정성논쟁 #3 본문
이해 가능한 글은 엔지니어의 강력한 무기: 공정성논쟁 #3
사실 저는 <미안하다 '네이버', 나는 '구글'편이다>란 기사를 쓰면서도 이렇게 논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IT 게시판에서 날마다 떠드는 이야기에 불과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책 출판 후에 강연 요청이 있어서 일반인을 위한 발표 자료를 만들고 보니 기사로 내보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벼운 마음에 쓴 글입니다. 그 후 네이버의 과민 반응을 지켜 보면서 저는 정말 포털이 위기에 처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털은 이제 이런 단순한 기사 하나에까지 예민하게 굴어야 할 정도로 여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여태까지와 다르게 이런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은 무슨 말을 하는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글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엔지니어들은 서로 외계어를 주고 받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들어도 모르고, 마케터들은 유행어나 만들려고 인터넷 서비스를 신격화나 하고 있고, 기자들은 자신이 무슨 소리 하는지도 잘 모르고 글을 쓰니까요. 알아듣게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 희귀한지 정말 몰랐습니다. <한국 IT산업의 멸망>이란 책을 쓰면서도 저는 상식적으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태까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기술적인 내용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하게 글을 써 온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좀 더 이해가 쉽게 하려는 노력을 하기는 했습니다. 전문 용어를 가능하면 풀어 쓰고(영어를 순수 우리말로 바꾸었다는 뜻이 아님!) 글과 그림을 적절히 배치하고, 캡션에서 본문의 구체적인 근거를 알게 하는 것과 같은 제 글의 스타일은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제 책을 읽고 칭찬을 해 준 분들이 한결 같이 의외로 쉽고 재미있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놀랐던 것은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알아듣게 문제 제기를 한 책이 없었다고 말 하는 분들이 많았던 점입니다. 사실 찾아 보면 이런 책이 많습니다. 네이버를 비판한 <네이버 공화국>, 오픈웹 운동을 하시는 김기창 교수님의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등 비판적 시각에서 IT를 바라보는 책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 듣도록 하는 장치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진실을 알리려는 열정이 너무 커서 글의 기교에 신경을 못 쓴 것이지요.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많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이건 IT에 관한 대부분의 글에서 발견되는 사항입니다.
일반적인 IT 기사의 캡쳐 화면: 기자는 뭔가 중요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뒷받침 해줄 결정적 증거로 웹 화면을 제시하지만 화면이 너무 복잡하고 글이 작아서 독자들은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김인성의 캡쳐 화면: 불필요한 부분은 제거해버리고 중요한 내용만 보여줍니다. 필요하다면 여러 화면을 합쳐서 한 개의 이미지로 만들어 누가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게 만듭니다.
알아듣게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 엔지니어들은 일상적으로 전문 용어를 쓰기 때문에 각 단어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뉘앙스도 느껴집니다. 죄수들이 모여서 "1번"하면 배를 잡고 웃고 "7번"하면 모두 뒤집어진다는 웃기는 이야기처럼(이 농담의 맥락을 이해 못하는 분들은 검색을 해보시기를. 이 농담을 들은 적이 있는 분들은 바로 이 비유가 적절하다고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이 여러분이 지금 느끼고 있는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반인은 우리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펀치 카드로 프로그램을 입력하고 라인 에디터에 익숙했던 저는 어느 날 vi라는 풀 화면 편집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이 무엇인지 상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IT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IT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우리가 제공한 지식을 활용하여 다시 우리를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기사 교정: <미안하다 '네이버', 난 '구글'편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저는 "공정위여, 우리의 포털을 구원하소서"라고 적었습니다. 이 문장이 외국 서비스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가지지 못한 포털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은 딸의 가차 없는 비판 때문에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내공을 길러야 합니다. 마치 디버깅하듯이 언어 능력을 기르고, 글을 쓰고 교정하는 지루한 작업을 계속해야 합니다. 엔지니어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엔지니어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것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따지고 보면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 능력을 기르기 위해 통찰력을 주는 전통적인 사고의 틀을 찾아 보고, 사람들을 감동시켜 온 명문장을 읽고 체화 시키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글을 읽은 사람들의 부당해 보이는 지적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IT를 배울 시간 조차 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물리적 현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면 당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각성한 엔지니어가 바로 당신이기를 기원합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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