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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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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선물

미닉스 김인성 2018.04.05 21:41

(긴 글 주의)


이 글은 제가 아직 아마추어 작가였던 
2009년 크리스마스에 쓴 글입니다. 

지금 읽어도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열정이 넘치는 글입니다.


이 후 이 글은 "IT가 구한 세상" 에필로그로 다시 활용되었습니다. 

(길지만 재미있습니다. 사실 제 책의 본문은 재미 없다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와 같은 톤의 글만 담은 책을 써 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정도입니다.ㅠㅠ)


이 글은 제가 쓴 글 중에서 세월이 가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글 중 하나입니다.

아직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해 다시 발행합니다.



         



안녕하세요?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눈이 왔으면 좋았겠지만 비가 오게 될 것 같습니다. 솔로분들은 지금 주무시고 계시니까 모레나 되어서야 이 글을 보겠군요.그분들의 갈망을 하늘에서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우리 사회가 여러 면에서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서 많은 원로들이 가셨습니다. 사회는 다시 수구가 되었고 낄낄대며 그들을 비웃던 사람들까지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언어가 유린당해서 제 의미를 잃었습니다. 지분 50%를 장악한 주식회사 대주주의 뻔뻔한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는 위정자의 모습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입으로 하는 모든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사에 불과합니다. 서류로 된 것도 무시당합니다. “니들이 어쩔껀데?“ 이런 배짱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지요. 미래를 위해 써야 할 축적된 모든 자원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아이엠에프로 국부를 잃었듯이 이제 한국의 발전 가능성도 다 소모되어 가고 있습니다. 도덕성까지 무너져버렸지요. 이를 복구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암담할 뿐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이런 파렴치한 자들의 난동때문에 정의로운 자들이 힘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바라는 것은 모든 가능성이 다 죽어버리기 전에 국가의 운영권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아 저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밝은 별들에게 기원해 봅니다.

올해는 제 인생에도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몇 번의 전환점을 겪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평균 등수로 650명 중에서 108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고3 학력고사에서 전교1등으로 졸업했습니다. 그 2년의 세월동안 제가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읽었던 한 권의 만화책 덕분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출시된 임창의 “잠자는 우등생“이라는 만화에서 늘 조연을 맡던 한 캐릭터가 어느 날 아침 생각합니다. 

  “난 왜 공부를 못하는 것일까? 나도 공부를 잘할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날 외부 경시대회 출전자를 뽑기 위한 모의 테스트에서 우연히 일등을 하게 됩니다. 찍은 것이 다 맞았던 것이지요. 수업 내용과 무관한 것이라 우등생들의 성적이 나빴던 것도 이유가 되었습니다. 학교측은 당황하여 원래 규정을 변경해 그와 우등생을 함께 내 보내기로 합니다. 그는 경시대회에서 창피당하지 않기 위해서 살면서 처음으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만화는 그 과정을 세밀히 묘사하며 그가 한 명의 우등생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만화에 감동한 저는 언젠가 제 인생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예감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던 어느 날, 고1 겨울 방학 때 아버지가 하는 일을 돕기 싫어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 시절 하루 종일 밖에서 노가다성 일을 해야 했는데 공부로 도피한 것이지요. 방학 내내 방에 갇혀 지내던 저는 심심해서 2학년 과정의 참고서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2학년 초, 실력 평가를 위해 배우지 않은 것을 문제로 낸 시험을 치렀는데 마침 제가 다 공부한 부분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반에서 1등을 했던 것입니다. 그 때까지 저와는 다른 종족이라고 여겼던 전교 1, 2등하던 녀석들을 이긴 것입니다. “잠자고 있던“ 우등생은 그 후 2년동안 정말 “공부란 무엇인가“, “뒤쳐진 자가 어떻게 앞선 자들을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살았습니다. 곧바로 원래의 108등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일등이 되기 위해서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했습니다.

비행역학을 연구하는 자들은 말벌은 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몸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말벌은 이들을 비웃듯이 잘 날아 다닙니다. 왜 말벌은 날 수 있는 것일까요? 말벌은 자신이 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훌륭하게 날 수 있는 것입니다. : “지그 지글라, 정상에서 만납시다“ 

저는 다시 1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2까지 공부란 것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전교1등은 늘 공부를 해 왔습니다. 그들은 원래부터 전교 1등이었고 그 때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일어날 줄을 모르지만 저는 십분도 그냥 있지 못하고 온 몸이 뒤틀립니다. 그들은 부유하여 참고서도 풍족하고 과외도 받으며 부모들이 선생님에게 촌지도 보내줘서 선생님들도 관심있게 대해 줍니다. 저는 그 때 늙은 부모님께서 고등학교 수업료도 제 때 내주지 못했습니다. 참고서 살 돈도 없었습니다. 일부 양심 불량 선생들은 다음 시험이 어떤 책에서 나올 것인지 미리 흘려서 문제지를 사게 만들었는데 저는 그 책을 살 돈도 없어서 친구들에게 잠시 빌려 보고는 했습니다. 사 놓고 보기는 싫지만 제가 보는 것은 더 싫어 빌려 주지 않으려는 녀석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적인 공부 시간을 늘릴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이기는데 익숙한 녀석들은 같은 시간에 성실한 자세로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정적으로도 평온하고 교우관계와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안정되어 있어 오직 공부만 하면 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는 것도 없고 잘나지도 못했으며 성적 비슷했던 친구들의 질시와 공부 잘하는 녀석들의 따돌림을 받는 열악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저를 배제하는 그룹이 늘어날 뿐이었습니다. 제가 다시 일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여러 가지 여건들로 볼 때 일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던 고3 가을의 어느 날, 저녁 9시경 야자를 하던 도중 정전이 되었습니다. 오분도 채 되지 않은 그 시간동안 교실은 의자가 날아다닐 정도로 무정부 상태로 변했습니다. 당연히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잽싸게 집으로 날랐지요. 그러나 저는 그 어둠 속에서 생각했습니다. “아, 오늘치 분량 다 끝내야 하는데......“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저를 이길 수 없을 것이란 것을......

그 후 군대 빠지는 방법이 수백가지이며 가는 놈을 바보라고 여기던 공대에서 돌멩이 던지느라고 신경을 안쓰는 바람에 현역 30개월을 꽉채우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대학 동기놈들 사이에서는 컴퓨터 제일 못하는 놈으로 찍혀 있었고 그 후에도 오랜 시간을 보낸 후, 턱걸이 성적으로 구년 만에 겨우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7년동안 집에 쳐박혀서 리눅스를 혼자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에 우연히 접하게 된 리눅스에 빠져 취직이고 뭐고 생각도 못하고 긴 세월을 보낸 것이지요. 

가망없는 칠년이 지난 후 기적같이 아이엠에프가 왔습니다. 비싼 유닉스 머신을 쓰던 사람들이 찬 바람부는 벤처를 시작하면서 서버 살 돈이 없어서 피시서버와 리눅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리눅스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더구나 컴퓨터 전공자가 거의 10년 동안 리눅스를 준비하고 있었던 경우는 정말 희귀했습니다. 때문에 제가 갑자기 각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리눅스원이란 회사에서 초기 엠파스 사이트 전체를 완전히 리눅스로만 구축했고 대형 사이트로 키워도 리눅스로 훌륭히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비싼 서버때문에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던 포털들이 엠파스의 성공 사례을 보고 다들 리눅스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10년 전 컴퓨터를 가장 모르던 녀석이 한국의 리눅스를 선도하는 인간이라고 나타나자 당황해하던 동기 녀석들의 얼굴 표정이 기억납니다. 이건 마치 중학교 때 공부잘하던 녀석들을 우연히 대학교에서 만났을 때 반가워하며 “우리 학교에 무슨 일로 놀러왔냐?“고 묻던 기억과 겹칩니다. 그들은 제가 감히 자기들이 다니는 대학교 학생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그러나 엔지니어로서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포털 사이트 구축을 도와주기 위해 데이터센터에서 밤을 새며 노력하는 동안 경영을 한다는 자들은 밤새 룸싸롱에서 회사 돈을 물쓰듯 쓰고 있었으며 온갖 명목으로 횡령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벤처 거품이 꺼지고 난 후에 제게 남은 것은 날밤까며 기계와 지낸 기억 밖에 없었습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일입니다. 구글보다 더 크게 사이징을 해서 초 대규모 서버군을 조화롭게 돌려 볼 수 있었을텐데...... 언젠가는 그런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나이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공부와 컴퓨터, 아이티와 벤처 그리고 최근에는 SSD까지 접했지만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작가는 그냥 처음부터 작가로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저는 작가로 태어난 인간이라고 믿습니다. 언제나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를 막는 것은 게으름입니다. 여태까지 어디 응모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작가니까...... 그리고 언제나 구상하는 즐거움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엠파스와 리눅스원을 떠난 이후 다시 제 내면으로 들어갔습니다. 거의 7년동안 저는 한가지 주제를 구상하고, 그것의 체계를 잡고, 글로 완성해내는 고통스런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그 인고의 세월을 거쳐 이제 저는 말로만 작가인 단계를 넘어 제 스스로 작가라고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만 만족하는 글쓰기 단계, 독자들도 좋아하는 글쓰기 단계를 지나 올해는 편집자들도 저를 원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상업적인 가능성도 보는 듯 합니다. 아마 내년부터는 블로그 이외에서도 제 글을 자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제 블로그의 방문자수는 하루 몇 백명 밖에 되지 않지만 방문자수가 아니라도 제가 인정받고 있다고 여길만한 다른 지표도 많습니다. 아니 최근까지 블로그 글 발행 시스템을 몰랐을 정도로 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간 덕택에 다른 길들이 열린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 인생의 이야기에서 교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일단 저는 “뒤쳐진 자가 앞서가는 자들을 이기는 법“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고 믿습니다. 제 글의 대부분이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인 것이 이 때문입니다. 잘 모르시겠다구요? 저는 늘 이 주제로 열심히 이야기를 해왔는데요? 소재는 다르지만 결국 한가지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잘 모르신다면 아마 아직도 제가 쉽게 풀어 쓰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릴 예정입니다. 물론 제가 인생을 걸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공부“에 대한 것입니다. 수영과 담배에 관한 이야기 같은 지독한 공부 이야기를 언젠가는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2009년의 크리스마스입니다. 공부와 리눅스를 거쳐 다시 십년이 지나 저는 “글“이라는 제 인생의 가장 큰 화두를 푸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젠 제가 날카롭게 갈아 온 촉을 사용해 여러분들에게 의미있는 것들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제가 부러우신 분이 계시다면 제가 삶에서 뭔가 성취해내는 비밀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오늘 하는 일이 내일의 꿈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삶이 급하고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무의미한 일을 하고 살아서는 안된다. 따뜻하고 안락한 곳보다는 찬바람 부는 곳에 있어야 정신이 깨어난다. 하고 싶은 일에 인생을 걸어라. 악착같이 노력하라.“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각을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벗어난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술과 같은 도피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맑게 깨어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멀리 여행을 떠나라고 말하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세 시간 이상의 걷기도 괜찮습니다.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연속된 시간을 만들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참선이며 깨달음과 득도의 찰나를 만날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득도의 찰나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대리니까 딱 그 분수에 맞게 행동하고 사고해 왔던 것에서 벗어나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가 이 따위로 하면 안되지, 이 놈의 회사의 지향점은 뭐야?“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부산까지 이동하려면 회사에 헬기를 요청해야겠네“, 뭐 이런 식의 용감함도 생깁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태리에 출장을 좀 갔다와야 되겠어, 회사에서 안 보내주면 내 돈으로라도 갔다와야지“ 이런 황당함을 동반한 굳건한 믿음도 그 한 종류입니다. 

“내가 인생에서 정말 성취하고 싶은 것은 뭔가?“ 이 화두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나요? 멀리 갈수록 인간은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받는 것이고 성불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당신은 이 질문에 답을 할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의 장애물이 없어지고 스스로를 제한하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인지 알게 될 것이며, 거대한 가능성을 가진 한 인격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것을 잡고 인생을 거시기 바랍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늦지 않았다. 당신은 위대하다. 당신 스스로 이 사실을 자각하라. 그것을 진실로 깨달을 시간을 만들어라“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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