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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기자 인터뷰, 강연, 토론, 라디오 출연, 전화 인터뷰, TV 출연 그리고 녹화 방송과 생방송 출연자들을 위한 조언 본문

글 쟁이로 가는 길/글쟁이 되기

기자 인터뷰, 강연, 토론, 라디오 출연, 전화 인터뷰, TV 출연 그리고 녹화 방송과 생방송 출연자들을 위한 조언

미닉스 김인성 2011. 11. 27. 01:18
책을 낸 후 갑자기 IT 관련 사건이 자주 터져서 인터뷰 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저는 사실 익명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저자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사진을 찍지 않는 조건으로 응했습니다. 한겨레의 저자 인터뷰에 제 사진이 없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출판사의 책 홍보에 상당한 지장을 준다는 걸 알게 되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부터는 매체들의 어떤 요구라도 다 들어 주고 있습니다. 책 들고 폼잡으며 사진 찍는 것까지 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쪽"을 팔았지만 책 판매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이런 거 안 하겠다고 끝까지 우기는 것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어쨌거나 그 후 각종 라디오 출연을 하게 되었니다. 스튜디오 녹화 방송, 생방송 전화 인터뷰, 스튜디오 출연 생방송 등 다양한 방법을 모두 체험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떠드는 강연도 했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주제 토론도 여러번 했습니다. 

TV 출연도 했습니다. 녹화 인터뷰 뿐만 아니라 생방송에도 나갔습니다. 일회성 출연이 아니라 IT 분야의 적당한 인물로 거론되면서 지속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60분짜리 주제 토론도 방송으로 나왔습니다. 이제 100분 토론과 같이 카메라 앞에서 서로 적대적으로 싸우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 전투를 벌일 날도 올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남들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숨도 가빠집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의 하울링이 증폭되는 겁니다.

실수할까봐 두려운 탓에 헤매는 제 모습이 느껴집니다. 그걸 신경 쓰느라 부자연스러워집니다. 그 부자연스러움을 어색해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신경이 쓰이고 다시 그것이...... 스피커에 마이크를 갖다 댔을 때 생기는 하울링처럼 나중엔 숨쉬기도 어러워질 정도였지요. 그래서 남들 앞에 서는 것만은 피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날 간단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진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건 본능적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인상은 거의 0.5초 만에 파악이 끝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가 어떤 인간인지 보자 마자 다 알아챘던 것입니다.

제가 사람들을 보는 즉시 그 사람에 대해 거의 모든 판단을 끝내듯이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말을 하든 않든 그냥 저를 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제가 안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2.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다.

저는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좋게 생각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게 대하려 했고 가능한 많은 배려를 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의 본 모습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굳이 그런 사실을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지만 그것이 저의 본 모습을 모른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친절을 베풀어도, 아무리 잘해줘도 저의 본 모습은 감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알게되고부터는 저를 꾸미는 연극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정말 부질없는 짓임을 “진심”으로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저는 사람들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어떻게 행동하더라도 그것이 저의 본질을 감출 수 없고, 뭔가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지도 않으며, 사람들의 판단을 바꿀 수조차 없다면 그냥 제 마음대로 해도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요.
  
이런 마음으로 꾸미지 않고 행동한 후에 오히려 더 나은 평가를 들었습니다. 냉정하게도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동안에는 결코 그것이 오지 않습니다. 사랑은 포기해야만 옵니다. 필요가 없을 때 오히려 귀찮을 정도로 달려 듭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이런 역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이젠 이런 관심이 귀찮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해 전혀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가기도 합니다. 때문에 가끔 헛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도 누가 신경 쓰는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런 원리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도 중요합니다. 각종 인터뷰나 방송 출연을 준비 중인 분들을 위해 여태까지 겪었던 저의 경험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기자 인터뷰는 그냥 평소에 아는 사람 만나 대화 하듯이 하면 됩니다. 적대적인 기자와 인터뷰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말해도 알아서 적절히 편집해 줍니다. 물론 아무리 열심히 말해도 결국 기자가 쓰고 싶은 대로 쓰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습니다. 

본격 인터뷰 기사는 그래도 말의 맥락을 살려 주지만 한 두 줄짜리 코멘트를 따는 경우는 정말 기자 맘대롭니다. 삼 십분 이야기해도 딱 한 문장으로 인용하는데 제가 말한 것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마이 갓, 정말 저 문장을 제가?”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거의 대부분은 기자가 쓰고 싶은 내용을 물어봅니다. "이런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질문하면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그게 제가 한 말로 둔갑하는 거지요. 기자의 코멘트 따기는 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악의적으로 왜곡한 것이 아닌 한 그냥 넘어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걱정되다면 만일에 대비해서 녹음을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앞의 두 원리를 체득했다면 강연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을수록 오히려 더 좋은 강연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 없으면 파워포인트 켜 놓고 할 말만  열심히 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듣는 분들 입장에서 최대한 이해가 갈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같은 강연을 여러 번 하게 되면 꼭 필요한 설명도 빼먹기 쉬운데 이런 문제를 없애려면 모든 강연은 처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청중들도 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지겹더라도 기초적인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도 같은 내용을 몇 번 말하다 보니 그만 내용에 익숙해져서 이 부분은 이제 충분히 다 알고 있겠거니 하고 설렁설렁 넘겼다가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청중들의 평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던지는 메시지를 단 한 번만에 세상이 받아들이게 할 수 없습니다. 반복에 또 반복하고, 한 이야기 또 하고, 여기서 한 말 저기서도 해야 "뭐라고 떠드는 듯한 느낌이 조금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반응을 조금 얻을 수 있습니다. 알리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하고 또 하고 또 또 하세요.

하지만 아무 말이나 함부로 막 하면 안됩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동안에는 마음대로 말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인지도가 쌓이고 당신의 말을 언론들이 인용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됩니다. 

사실 이건 자연스럽게 조심하게 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당신이 한 말이 전문가의 발언으로 인정되어 여기 저기서 근거로 쓰이기 시작하면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좀 더 충분한 근거를 찾게 되고 점차 포괄적이고 중립적으로 말하게 됩니다. 

게시판이나 블로그에서는 방방 뜰 수 있지만   발언에 책임을 지고 다양한 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어떤 사안이든 일면만이 진실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언론들은 경구를 좋아합니다. 상황을 설명하는 짧고 멋진 문구를 만들어 내면 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고전적인 사례나 유명한 문구를 재활용하기를 좋아하지만 이건 별 힘이 없습니다. 

“정직당한 기자들이 만든 정직한 시사인”과 같은 주진우식 라임 맞추기나 “xx는 안 해본 게 없고 xx는 모르는 게 없고”와 같은 트위터 식으로 짜맞춘 문장도 별 효용이 없습니다. 억지스러운 것은 잠시 관심 받다가 금방 사라집니다. 

탁월한 경구는 당신을 유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억할 만큼 탁월함을 갖춘 새롭고 멋진 문구를 만들어 내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물론 그래 봤자 대개는 몇 시간 못 가지만......

라디오나 TV 녹화 방송도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모든 방송은 최초 1분이 고비입니다. 이시간만 지나가면 술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녹화 때는 처음에 헤매도 됩니다. 재 녹음을 하거나 첫 부분은 대충 넘긴 다음 뒷부분을 끝낸 후 다시 녹음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미 발동이 걸린 상태기 때문에 가장 자연스러운 앞부분이 나올 수 있게 됩니다. 책 동영상 강의를 할 때 프롬프터에 쓴 글을 읽는 식이었는데 녹화 다 끝낸 다음 첫 부분을 다시 녹화하자더군요. 첫 부분이 가장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그 때문일 겁니다.

문제는 생방송입니다. 방송에서의 1초는 영원과 같습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앵커가 쉴 새 없이 질문하고, 카메라 쪽에 있는 누군가가 말이 길다고 빨리 끊으라고 신호를 보내고...  스튜디오에 나가보면 알게 되겠지만 생방송은 정신 없이 진행됩니다. 

생방송 불 들어오기 전에는 내가 방송을 하는 일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냥 스튜디오에 놀러 온 것 같습니다. 생방송에 출연할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카메라가 돌고 있는 와중에도 이런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장난 같습니다. 

하지만 몸은 경직되고 말투부터 모든 것이 카메라를 의식한 탓에 부자연스러워 집니다. 당황하지 않으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물론 생방송인 탓에 대개 예측대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질문과 답을 준비한 대로 진행하더라도 돌발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즉흥적인 대처 능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처음부터 즉흥 질문이 들어오면 황당해집니다. 이건 노련한 앵커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앵커들에겐 작가가 준비한 질문지도 그냥 참고용일 뿐입니다. 생방송 불이 들어오면 질문지 싹 다 무시하고 갑자기 전체적인 통찰을 해야 답할 수 있는 질문부터 시작합니다.

구글과 모토로라 합병에 대해 질문해야 할 앵커가 처음부터 “한국 스마트폰 산업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렇게 치고 나오면 골치 아픕니다. 사실 저는 이 질문을 받고 한 5초 정도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 있었습니다. 

그 때 제 머리 속에 떠 오른 답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려면 내가 여기 왜 나온 것일까?”란 존재에 대한 회의가 오고 “그렇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한마디로 좃 됐습니다. 뭐 이렇게 답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느라 5초가 지나간 것이지요. 제가 당황한 것을 알고 앵커가 다시 질문을 고쳐 해줘서 그나마 사고 안나고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해보시면 알겠지만 사실 자유 질문이 훨씬 편합니다. 준비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미리 적어 놓은 글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방송 중에는 글이 잘 안 보입니다. 답변 부분을 찾을 시간도 없습니다. 적은 것에 의지하다보면 맥을 놓치기도 합니다. 

준비된 답지를 보고 하더라도 중요 단어 몇 개만 적어 놓고 나머지는 즉흥적으로 채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말이 구어체가 되면서 알아듣기도 쉽지요. 

5초나 헤맸던 상황에서 그 순간을 넘긴 이후에는 앵커가 마음대로 질문한다는 것을 깨닫고 저도 준비한 답변을 무시한 채 제 생각대로 답함으로써 생방송 상황을 신경 쓰지 않고 앵커와 서로 대화하듯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엔 앵커가 제 말을 알아들었는지 체크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반복 설명하는 여유까지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생방송인 경우 질문에 대한 답변은 꼭 말해야 하는 중요 단어만 몇 개 적어 놓고 질문을 받는 동안 그 단어들을 다시 한 번 훑은 다음에 대답할 때는 그 단어들을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앵커가 자유롭게 질문하는 스타일이면 그에 맞추어 당신의 견해를 편하게 말하면 됩니다. 사실 이게 더 쉽다고 했지요?

열심히 대답하다가 질문을 잊어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경 설명을 한 후 이를 종합해서 결론을 내 줘야 하는데  배경 설명을 너무 열심히 하다가 질문을 잊어 버리는 바람에 뭐라고 정리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럴 때는 당황하지 말고 솔직히 질문이 뭐였는지 물어 보면 됩니다. 

저는 두 번이나 그랬는데 방송 중에 “죄송합니다. 질문이 뭐였지요?”하고 되 묻고 답을 다시 했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리고 이런다고 저를 더 나쁘게도 더 좋게도 평가하지 않는데...... 이미 판단은 끝나 있는데...... 이건 그저 사소한 실수일 뿐이데...... 그리고 어쩌면 “경제를 살리자는데 파리가”처럼 이런 실수로 인해 더 유명해질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실수를 해도 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이유가 있습니다. 여태까지 거의 모든  행사를 큰 문제 없이 치러 왔지만 라디오 생방송 전화 인터뷰만은 늘 헤맸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자유 질문을 받는 바람에 버벅이기도 하고, 헤매다가 내용 없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고, 한가지 질문을 너무 열심히 설명을 하다가 시간을 다 잡아먹어서 중간에 끊기기도 했으며, 이상하게 마음이 급해져서 숨도 쉬지 않고 답을 하다가 숨이 막혀 캑캑거리기도 했고, 입이 바짝 마르는 바람에 소리가 안 나와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생방송 전화 인터뷰만은 저의 이론과 경험이 통하지 않는 영역이라고 두려워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문제를 해결할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전화 인터뷰를 했는데 아는 사람과 대화 하듯이 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역시나 첫 질문을 받자 긴장한 탓에 입이 마르고 마음이 급해지더군요. 그래서 숫자를 잘못 말했습니다. “1800만 중의 1300만 해킹”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1800만 해킹” 이렇게 말해 버렸습니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정을 못했습니다. 자칫 준비된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이탈했다가 혹시 실수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답변을 끝내자 앵커가 물었습니다.

“1300만으로 알고 있었는데 1800만이라고 말씀 하셨네요…”

제가 답했습니다.

“1300만이 맞습니다. 제가 라디오 인터뷰만 하면 헤맵니다.”

이 답변을 하고 나자 마술같이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방송 내용이 아닌 제 상황에 대해 말을 하는 순간 그 상황  자체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생방송이란 중대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전화로 뭔가 물어보는 사람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는 행위에 불과하게 된 것입니다. 

앵커는 제 대답을 듣고 웃었습니다. 앵커를 웃기고 나자 이제 더 이상의 금기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이란 행위에 저를 맞출 필요도 없이 그냥 평소처럼 말하고 행동하면 된다는 점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감출 수 없고 꾸밀 수도 없다는 이론을 이성적으로 믿었고, 평소 모습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방송이란 형식에 압도당해 그것을 정말로 실천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저를 드러내고 나니 정말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방송에서 뭔가 당황스럽다면 “당황스럽네요”라고 말해도 된다는 것, 라디오 인터뷰가 부담스럽다면 그냥 “부담스럽습니다.”라고 말해도 된다는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 그 순간 이후부터 전화 인터뷰를 즐겁고 편안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마지막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3. 상황에 압도되지 말고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라.

강연, 인터뷰, 라디오, TV, 토론, 논쟁 그 어떤 행위라도 그냥 평소 모습대로 하면 됩니다. 특히 카메라 앞이라고 자신을 감출 필요도 없습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부담스러우면 부담스럽다고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특히 자신이 당황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당황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압도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상태를 감추지 말고 오히려 드러내야 합니다.
 
세가지 원리를 체득하신다면 여러분들도 부담 없이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당황스러울수록 자신의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거리낌없는 한 자연인으로 돌아가 방송을 즐길 수도 있게 되지요.실수를 해도 됩니다. 큰 실수를 할수록 더 유명해질지도 모르니까요. 큰 웃음을 줄수록 더크게 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상황을 즐기시기를,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하든 이미 그들은 나에 대한 평가를 바꾸지 않을 것이니까요. 자신을 드러내도 손해는 없습니다. 다만 자연스러움만 있을 뿐이지요.

마지막으로 들려드릴 진실은 방송이든 강연이든 다 부질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쑈에 불과합니다. 뉴스를 해설해 줄  적당한 사람이 필요하고 마침 당신이 적당한 스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을 활용할 뿐입니다. 

기자들은 의무적으로 일정량의 원고를 써내야 하고  방송은 끊임없이 생성되는 시간을 때울 뭔가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오늘 이 사람, 내일 저 사람을 가져다 쓰지만 딱히 당신을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방송에 많이 나와도 당신에게 아무 것도 쌓이지 않습니다.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은 방송에서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단련하고 내공을 쌓아 스스로 빛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관심과 마찬가지로 언론도 갈구하는 동안엔 결코 그것이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갈고 닦고 나면 그것들이 귀찮게 당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내일 방송 출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 당신, 

스스로 빛나서 방송 따위는 귀찮아지게 되시기를 기원하며.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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