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촌지 요구하던 옛날 선생과 싸우는 정호씨 사태를 보면서 본문
유명 유투버 정호씨가 스승의 날 맞이 기념으로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찾는다고 유투버에 공개 수배를 했습니다
그 선생은 정호씨 엄마에게 촌지 요구했다가 안 주니까 정호씨를 때리고 학생들 앞에서 모욕을 했다고 합니다.
돈달라고 뺨 떄렸던 담임선생님 찾았습니다(링크 클릭)
(첫 수배 영상은 삭제된 듯 합니다.)
이 방송을 본 같은 학교 출신들이 자신들도 당했다고 엄청난 제보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급기야 정호씨는 교육청을 통해서 그 선생이 현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까지 찾아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정호씨는 차마 선생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아 마지막 순간에 학교 정문에서 되돌아오고,
함께 갔던 엄마와 누나만 선생을 만나러 갔으나,
그 선생이 만나 주지 않아서 실제 대면은 이루어지지 못했답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그 선생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바람에 온오프라인에서 비난이 거세지자 급기야 그 선생은 정호씨를 고소했다고 하네요.
정호씨는 이 재판을 끝까지 진행해서, 이런 관행을 아예 학교에서 사라지게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을 보며 저도 과거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선생님들과 인간적인 교류를 했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피난 내려와 살기 바빠 학교에는 무심했던 부모님과
삭막했던 부산(우리 친구 아이가! 바로 그 동네!!)에서의 학창 시절이라,
선생과의 접촉이란 그저 꾸지람과 훈계 혹은 구타가 전부인 경외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아내의 학창시절 경험담과,
우리 아이들이 요즘 선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독재자였던 선생이 서울에서는(특히 2010년대의 서울에서는) 권력자의 지위에서 내려와 동네 친구와 비슷한 존재가 되었더군요.
학교에 대해 제가 끔찍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돈 문제는 일상적인 구타(선생에 의한, 뒷자리 양아치들에 의한)보다 훨씬 끔찍했습니다.
저는 12년 내내 학교에 내야 하는 수업료(월사금?) 때문에 고생해야 했습니다.
5명의 자녀 중 막내였던 저는 형과 누나들에 비해 차별 아닌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수업료를 주지 않아 늘 학교에서 독촉을 받아야 했습니다.
형과 누나 때는 그래도 집이 부유한 편이라서 과외까지 따로 시킬 수 있었으나,
형과 누나가 연속으로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바람에, 막내인 저에게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중학교에 진학할 때 쯤에는 가세도 기울어 아무런 지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진 것도 한 이유가 되었을 겁니다.
국민학교 시절,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하다고 차례로 나가서 손 바닥을 맞고 들어온 직후,
수업료를 안 냈다고 다시 불려 나가 손 바닥을 맞은 다음,
집에 가서 돈 받아 오라고 학교에서 쫓겨난 기억도 있습니다.
얼얼한 손바닥을 비비며,
머리 위에서 따갑게 내리 쬐는 햇빛을 받으며 집으로 갈 때,
밝고 한적해서 몽롱한 느낌까지 나던 그 거리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자습 시간에 뒤로 불려 나가,
"수업료 언제까지 가져 올 거냐?"는 담임 선생의 독촉을 받아야 했습니다.
독촉 받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소리를 같은 반 놈들이 다 듣고 있다는 것이 더 창피해 죽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자습 시간이 시작되면 언제 호출될 것인지 초초하게 기다려야 했던 그 시간이 얼마나 끔찍했던지...
그런 날이면 집에 가서 돈 달라고 떼를 썼지만, 손 벌리는 누나와 형들 상대하기도 벅차서 저에게는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셋째 형에게 뭐라고 대답하면 그 추궁을 빨리 끝낼 수 있을지 물어 봤을 때,
"내일 가져 온다고 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도 나네요.
저와 비슷하게 후 순위였던 형은 자포자기해서 하루 하루 넘기는 쪽을 선택했던 겁니다.
고등학교 1년 정도는 생계형 장학금을 받아서 편하게 보낼 수 있었으나
장학금 수혜를 받지 못하게 된 2,3학년 때 다시 독촉이 계속되었습니다.
이후 나름 성적이 올라 전교 10등 안에 들게 되었음에도 자습 시간의 수업료 독촉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 3의 삼사분기 때까지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이미 이사분기 수업료를 포함해서 6개월치 수업료가 밀린 상태라 독촉 시간이 계속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어김 없이 교실 뒤에 앉은 담임이 한 명씩 불러 독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공부에 집중할 수 없게 된 저는 신경을 곤두 세운 채 담임의 호출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뒤로 나가자 웬일인지 저를 지그시 바라보던 담임이 말했습니다.
"그래 너, 이렇게 수업료도 못 낼 정도로 어려운데도 엇나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대견스럽네,
마, 내가 앞으로 말 안 할 테니까, 그냥, 니가 내고 싶을 때 내라."
아마 그 때 쯤 제가 전교 1, 2등을 다투고 있었기 때문에 담임이 약간의 관용을 베풀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습니다.
이런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자기반 학생이 전교 1등을 굳힐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있었겠지요.
물론 이런 판단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된 것일 뿐 그 때는 그냥 기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이 작은 관용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영화 친구의 "느그 아버지 머하시노?"와 흡사했던 담임이 스승님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수업료란 감옥에 갇혀 있던 저를 해방시켜 준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자습 시간에 수업료 독촉 안 받고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지난 12년 간의 수업료 독촉에 시달렸던 아픈 상처들이 한 순간에 치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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