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제이크 라모타, 성난 황소, 그리고 나의 30년 본문
제이크 라모타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습니다.
제이크 라모타는 1940년대 활동한 복싱 선수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영화 "성난 황소(Raging Bull)"의 실제 모델입니다.
제이크 라모타는 무수히 얻어 맞으면서도 절대로 다운되지 않고 버티는 대단한 맷집을 가진 선수로 유명했지만 난잡한 사생활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았다.
이미지 출처 https://www.psacard.com/autographfacts/boxing/jake-lamotta/3861
제이크 라모타는 말년에 술집 기도 생활을 하는 등 생활고에 시달렸으나,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자서전 덕분에 로버트 드니로의 눈에 띄어 영화의 주인공으로 기억될 수 있게 됩니다.
(인생 팁: 글을 써라. 글이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로버트 드니로는 제이크 라모타의 자서전에 감동 받아 직접 영화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마틴 스콜세지를 감독으로 영입함으로써 투자에 성공하여 결국 자신이 주연을 한 "성난 황소"를 만들게 됩니다.
제이크 라모타는 영화를 준비하는 로버트 드니로에게 직접 권투를 가르쳤습니다.
(이럴 수 있었던 이유는? 맞습니다. 자선전을 썼기 때문이죠.)
1980년에 발표된 "성난 황소"는 미국영화협회가 뽑은 100대 영화의 10위권에 들어가는 위대한 영화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bluscreens.net/raging-bull.html
제이크 라모타가 쓴 자서전은 그를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성난 황소"도 로버트 드니로와 마티 스콜세지 뿐만 아니라 조페시와 캐시 모리어티가 은막에서 영원히 살아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직 파릇파릇하게 젊었던 어느 한 때,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비디오 대여점을 뒤졌으나 실패하고 피시통신에서 수소문한 끝에 강남에 있는 으뜸과버금에서 겨우 빌려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영화 속의 로버트 드니로(제이크 라모타)는 화려한 권투 경력과는 반대로 반복되는 이혼에, 주변 사람들과 불화를 겪습니다. 심지어 그의 매니저였던 동생 조이 라모타(조 페시)를 주먹으로 패는 바람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미성년자를 고용했다가 운영하던 술집이 파산하는 등 몰락을 거듭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나이트클럽에서 스텐딩 코미디를 하며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게 됩니다.
감옥에 갇힌 성난 황소: 화려했던 삶이 끝나고 힘겹게 살아내야만 하는 날들이 시작되는 시점. 이 짧은 영상 속의 회환에 가득한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를 보고 나면 당신의 인생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cNqstBuw5ZY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장자의 호접몽을 경험한 듯 저는 한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마치 저의 미래를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살지 않으면 어쩌면 제 인생도 제이크 라모타 아니 성난 황소와 같이 끝나게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두려움은 이십대에 만난 이웃때문에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와 저는 만나자 마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부부 생활을 시작한 탓에 남의 집 옥탑방에서 소꿉놀이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래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집 남편이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때 갖다 준 목돈 다 어떻게 했어?"
그들은 압구정에서 잘 나가던 가족이었으나, 사업이 실패하여 다 큰 자녀와 함께 단칸방으로 이사를 와야만 했습니다.
좁은 집에 갇힌 그들은 거의 매일 서로 싸우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했다면 실패를 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비난하며 지옥같은 시간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돈을 목적으로 살다가 실패한 인생은 그 어떤 실패자의 모습보다 비참하다는 사실을 그들이 직접 증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싸우는 소리들 듣고 저는 "삶의 목적이 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30년이 흘러 저도 이제 중년이 되었습니다.
비록 비디오 대여점은 사라졌지만 온라인에서 몇 천원만 내면 곧바로 "성난 황소"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감히 "성난 황소"를 다시 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젊은 날 그 영화를 보면서 불편하게 여겼던 부분들을 나도 반복했을 것이란 두려움 때문입니다.
제이크 라모타의 잘못된 행동을 멍청하다고 비난했던 젊은 날의 저에게 떳떳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살아 갈 날이 많은 분이라면 "성난 황소"를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당신은 결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분들도 이 영화를 꼭 보시기를 권합니다.
아직 당신의 인생을 되돌이킬 기회가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니까요.
늦긴 했지만 위대한 복서 제이크 라모타의 명복을 빌며...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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