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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770z 기나긴 삽질의 기록 6/9 본문

김인성의 삽질기/1. 770Z 기나긴 삽질의 기록

770z 기나긴 삽질의 기록 6/9

미닉스 김인성 2007. 4. 23. 14:48
 

안녕하세요.

770z 개조, 분해와 조립에 관한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저는 이런 분야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컴퓨터가 전공이기는 하지만 배운 것은 소프트웨어에 관한 것이지 하드웨어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직업상 데이터센터를 들락거리고 수 백 대 이상의 서버와 싸우기도 했지만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이란 칩셋 버전을 구별 할 수 있을 정도, 좀 더 쳐주더라도 랜 카드, 스커지 카드 같은 큰 단위의 부품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지요.

물론 PC를 다룬 세월이 있으니까 부품들 간의 궁합을 파악하고 있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팁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USB는 동작 중에 뺏다 꽂아도 되지만 PS/2는 위험하다든지, 구형 IBM 키보드가 신형 보드들에서 인식이 안되면 어떻게 해결하면 된다든지 하는 것도 지식이라면 지식일 수 있겠지요. 74LS04는 게이트 IC 이름임을 아는 정도입니다. 이게 낸드였나요? 노아였나요? 아니 NOT이던가……

그러나 저항, 콘덴서까지 내려오면 전혀 저와는 상관없는 분야가 됩니다. 이런 분야를 배운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납땜에 대해서는 사실 공포감을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저에게는 크나큰 핸디캡이 있었습니다. 바로 덜렁대는 버릇입니다. 언제나 주위를 잘 살피지 않고 함부로 행동해서 문제를 만들고는 했지요. 어릴 때부터 이 때문에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너 손에 들어가면 남아 나는 것이 없어!” 아버지의 이 말씀이 늘 가슴 속에 아프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성격이 쉽게 고쳐지겠습니까? 나이가 들면서 조심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일을 그르치는 제 모습에 스스로 절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노트북을 튜닝 할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실수가 늘 작업의 진행을 방해했고,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다 그만두고 싶었던 때도 많았지요.

아마추어로서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일을 시작한 초보인 저는 많은 잘못을 범해야 했습니다. 물론 사람은 실수를 하면서 큰다고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조금만 더 조심했으면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대충 작업하기의 진수,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고 드라이버부터 들면 결국 이 꼴이 된다. 프로그램 짤 때 에디터부터 열어서 스파게티 코드를 만들 때와 비슷하다. 언제나 이런 수렁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상판과 하판을 고정해주는 고리 부분. 파손되지 않은 정상적인 모습이다.


상판과 하판을 고정해주는 고리 부분 파손. 분리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힘을 주면 이렇게 된다. 이 부분이 부러지면 나사를 아무리 세게 쪼아도 상판과 하판이 서로 뜨게 된다.


녹아 버린 볼륨 조절용 회전 저항. 달궈진 인두를 함부로 두고 다른 작업에 몰두하다가 생긴 상처, 짜증난다. 아주 그냥 다 망치로 때려 부수고 싶다.


드라이버에 맞아 부숴진 코일의 자석. 다행히 동작에는 이상이 없는 듯. 왜 드라이버를 꼬옥 잡지 않았을까? 왜 하필 이렇게 부서지기 쉬운 곳으로 넘어뜨렸을까? 후회가 강물처럼 몰려온다. 타임머신으로 시간을 돌릴 수 없을까?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어설픈 실력에 용감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사고는 언제나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본체 분해하다가 상판 고리 부분을 여지없이 부러뜨리고, 늘 과도하게 힘을 주고 잘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콱 밀어 넣고 중간에 걸리는 느낌이 오는데도 과감하게 확 땡기고…… 위험한 인두 아무렇게나 두고, 대충대충 하다가 여지 없이 중요한 부품 깨뜨려 먹고……

인두에 녹은 볼륨 저항을 봤을 때 정말 황당하고 한심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나는 안돼” 하는 심정이 끓어 올라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왜 이렇게 덜렁대는 성격을 고치지 못하는 것일까요? 분노는 극에 달했고 짜증이 몰려 왔습니다. 이런 날은 안전을 위해 쉬어야 합니다. 하던 일 그냥 두고 잠을 잤습니다. 아마 자면서도 잠꼬대로 투덜댔을 겁니다.




LCD 교체에 성공한 570e와 그 과정에 생긴 여분의 570e.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가슴 아픈 기억이다.



씽크패드 570e의 LCD가 어두웠습니다. LCD는 뒤에 빛을 내는 저온 형광등(백라이트, CCFL)이 있는데 수명이 다하면 어두워진다고 하더군요. 다시 밝게 만들고 싶으면 이 백라이트를 갈면 된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CCFL을 구입해서 직접 갈았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백라이트는 밝아 졌는데 데이터 화면이 안 나왔습니다. 작업 중에 데이터 케이블을 끊어 먹은 것입니다. 용산 선인 지하의 노트북 수리 점에 가서 최종 사망 확인. 서비스센터에서는 새 LCD가 약 80만원이라고 하더군요. 중고 570e 가격이 30만원이 될까요? 포기.

선인 이층 정문에서 들어 왔을 때 세 부분으로 갈라지는 지점, 삼각형의 공간에 중고 부품점이 있습니다. 선인 이층 입구는 목이 좋아서 대부분 신제품을 팔고 있는데 이 가게만 특이하게 중고 노트북 수리를 전문으로 하더군요. 다른 곳에 없던 570e용 중고 LCD가 이 가게에 있었습니다. 한 십오만원 정도 부르면 살 용의가 있었는데 삼십만원 부르더군요. 두말 하지 않고 나왔습니다. 이베이에서 십만원 아래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귀찮아서 삼십만원이나 내고 구입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돈을 주고 LCD를 살리면 570e를 볼 때마다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이 날 것 같았습니다.

몇 군데 더 돌아다녔지만 구할 수 없어서 결국 이베이에서 구했지요. 십 만원에 이주일. LCD를 포함한 부분 전체의 케이스까지 같이 온 물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흥분했던 탓일까요? 케이스에서 LCD를 꺼내려고 무리하게 힘을 주다가 쫘악 금이…… 저는…… 구석에…… 가서…… 쳐 박혀…… 있었습니다. 아, 썅…… 내 인생 왜 이 모양일까?

그렇다고 중간에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이베이에서 어렵게 LCD를 재 구입. 다시 이주일.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도저히 백라이트를 갈기 위해서 LCD를 분해 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조심스럽게 고장 난 LCD와 교체만 했습니다. 또 고장 낼까 봐 정말 두려웠습니다. 이 570e LCD는 그 후 육 개월 이상 지난 후 770z LCD 교체를 감행한 다음에 어렵게 용기를 내서 성공했습니다. 물론 깔끔하지 않습니다. 반사판 부분에 흠집이 나서 잘 보면 바탕화면이 울퉁불퉁 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백라이트에 관한 정보를 모르고 살았더라면 좀 더 행복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연 많은 DC/DC보드. 어댑터 종류에 따라 휴즈가 나갈 수도 있다는 노하우까지 얻게 되었다. 이걸 실력향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두 종류의 어댑터 끝 부분, 매끄러운 것은 문제가 없으나 홈이 있는 것은 770Z의 전원 부분에 문제를 일으킨다.


화면에 보이는 하얀색 부품이 휴즈이다. 잘 보면 용량까지 적혀 있다. 전자랜드 지하에 가면 요것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백원도 하지 않을 듯.



어느 날 소파에서 770Z를 쓰다가 배터리가 다 되어서 어댑터를 꼽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770Z가 죽었습니다. 그 후에 부팅을 해 보니까 전원을 꼽아도 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배터리로만 동작이 가능한 상태였지요. 다행히 부품용의 DC/DC 보드가 있어서 교체를 해서 살렸습니다.

저는 그 때 전원을 770Z 쪽에 나중에 꼽아서 그렇게 되었거나 꼽을 때 무리하게 힘을 주어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댑터는 x22에서 잘 쓰고 있던 것이기 때문에 크게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소파에서 또 노트북을 쓰다가 x22용이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그 어댑터를 다시 꼽았습니다. 여지없이 770Z가 죽어 나갔습니다.

한 번 문제가 생긴 적이 있는 것은 확실한 이유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점을 명심하지 않았고, 가능하면 문제가 없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점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순간적인 편안함을 위해서 아무 생각 없이 위험한 일을 반복한 것입니다.

또다시 용산 행, 다시 북간도 뒤지기, 여러 곳을 전전한 끝에 겨우 고칠 수가 있었습니다. 이베이에서 동작하는 물건이 10달라가 안 되는데, 수리비로 삼 만원이나 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리한 부분이 퓨즈에 불과했다는 점을 뒤늦게 알아내었습니다.

플러스 마이너스를 바꾸어 끼운다든지, 잘못해서 틀린 전압의 어댑터를 끼운다든지 하는 전원 부분의 문제를 위해서 퓨즈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 정도는 저도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DC/DC 보드에 문제가 생겼을 때 퓨즈를 먼저 찾아 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아마 단돈 백 원으로도 해결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미 삼 만원의 수리비를 낸 지금은 당연히 이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DC/DC 보드를 두 번째 고장 냈을 때는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차분히 앉아서 잘 생각해 보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저는 아마추어였으므로 퍽하고 나간 보드를 붙잡고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싼 수업료지만 충분히 지불할 가치는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 지식을 써먹을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어댑터를 구별해서 쓰는 조심성이 없었다는 점, 그게 원통할 뿐입니다.




순간접착제로 막힌 PS/2 키보드, 임시로 필요한 일이 있어서 사용했다가 아예 구멍이 막혀 버려서 PS/2 포트는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사산이 망가진 나사들, 수 없이 분해 조립을 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한도를 넘은 힘을 주고 크기가 맞지 않는 드라이버를 무리하게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770Z 백라이트 가는 모습. 사진에서처럼 완전 분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잘 살펴보면 CCFL만 살짝 빼낸 후 새것으로 바꿀 수 있다. 물론 나는 완전히 분해 한 후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분해 해 버리는 바람에 먼지 제거하느라고 고생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언제나 대충 대충하면서 결국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무리하게 힘을 가해서 그 것을 키우고, 처음에 잘 살펴보지 않아서 쓸데없는 사태에 봉착하게 됩니다. 좀 더 조심성이 있었다면 피해 갈 수 있었을 일들이지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잘못된 때에도 어떡하든지 꾸역꾸역 정상에 가까운 정도로 해결해 냅니다. 제가 만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놓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런 일 할 시간에 돈 더 벌어서 잘 고치는 사람 사서 쓰면 안돼?”

어찌 보면 그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기술 없는 사람들이 기술자들을 부리고 살지요. 저도 제 자신이 인터넷, 컴퓨터, 노트북 중독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온갖 실수를 하면서 770Z에 방열 팬까지 달고 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CPU 변경을 위해서 20킬로 옴짜리 저항이 하나 필요했습니다. 용산에 가면 오 백 원으로 열 개도 넘게 구할 수 있지만 저녁이라서 영업이 끝나버렸을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근처 전파상에서 쌓아 놓은 기판을 뒤져 원하는 저항을 찾아서 뜯어 올 수 있기를 바라며 차를 타고 동네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몇 블록 떨어진 주변의 다른 상가, 주택가를 뒤져도 전파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있는 곳이라고는 신제품을 파는 대리점과 양판점뿐이었습니다. 전기 제품을 취급하는 구멍가게들도 수리를 접은 지 오래되었다고 하더군요. 전자 제품은 이제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니라 고장 나면 새 제품을 사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연 많은 저항. 어렵게 구한 저항이지만 결국 제대로 쓰여지지 못했다.



겨우 찾은 전파상에서도 저항 하나 팔려고 기판 뒤지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항하나 찾아 주고 만원을 달랠 수도 없고, 일 이 천원 받자고 귀찮은 일 할 생각도 없는 듯 하더군요. 저는 저녁 시간을 다 소비하며 전전하다가 재래 시장 구석에 있는 중고 전자 제품 가게에서 원하는 저항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고장 난 전기 장판 조절기를 던져 주며 혹시 있는지 찾아 보고 있으면 알아서 뜯어 가라고 하더군요. 돈 받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 저항을 뜯어 내면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엽기의 끝은 어디일까요? 엽기는 결국 실패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구하는 것이 재래시장 구석에 고장 난 물건 속에 있다면 이 것은 길이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나는 실력도 없으면서 이렇게 어렵게 어려운 길을 골라서 오고 있을까. 이렇게까지 해서 770Z를 튜닝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시끄럽고 지저분해졌을 뿐이지 않는가.

문제를 발견하면 무조건 해결할 때까지 밀어 붙이고, 더 이상 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야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 것일까? 전기장판 조절기에서 구한 저항을 들고 오면서 저는 저의 극단적인 행동의 원인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 저도 아버지가 되었지만 제 속은 여전히 작은 아이에 불과한 모양이었습니다. 공대를 가고, 아는 사람들의 모든 컴퓨터를 손 봐주면서, 집안의 모든 물건들을 스스로 고치면서, 제 스스로에게 뭔가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나 봅니다. 아니 지금은 안 계신 아버지에게 제가 최선을 다했음을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속에는 칭찬에 목말라있는 작은 아이가 남아 있는 듯 했습니다.

히트파이프를 구하러 청계천에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더 이상 제가 할 것은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770Z를 850MHz 모드로 동작하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서야 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많은 실수를 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그 행동의 이유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나자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70Z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 온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좀 더 성숙해진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악착같이 최고 성능이 나도록 만들려는 마음을 접고 속도는 조금 늦지만 조용하고 안정적인 방법을 편안한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혼자말을  했습니다. 저 스스로를 독려하려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아버지의 목소리인 듯도 했습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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