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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삶은 계속된다 -- 3. 구봉숙편 본문

글 쟁이로 가는 길/내 안의 사람들

삶은 계속된다 -- 3. 구봉숙편

미닉스 김인성 2007. 2. 11. 06:02

내 안의 사람들 3. 구봉숙편


삶은 계속된다.



구봉숙 트리오:  노숙자의 다마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모습. 암울했던 시기에 대한 초상. 언제나 그렇듯 지나고 나서야 이 때가 그들의 전성기였음을 알게 된다.
이미지 출처: 오인용의 플래시 구봉숙의 엽기극장

 

희생된 자들
 
김구(김현동), 황봉아(황봉, 황봉알, 황원식), 노숙자(최두영)SBS 공채 개그맨으로 방송에 입문했습니다. 선후배 사이로 각자 활동했지만 특별한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습니다. 김구라의 고등학교 동기였던 지상열 염경환이 클놈을 결성하여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동안 그는 존재감 없는 조연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특별한 개인기도 뛰어난 순발력도 없었던 황봉아도 마찬가지로 로봇 찌바 가면을 쓰고 고생을 해야 했지요. 노숙자의 과거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시절의 끔찍한 기억과 방송국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컸었는지는 그들의 토크쇼를 단 한 번만 들어 보면 알게 됩니다. 찰나에 불과한 인간 관계, 오로지 인기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냉혹한 시스템, 필요에 따라 사람을 가차없이 버리고 또 다시 찾는 철면피들의 세계…… 한마디 한마디 격정에 찬 그들의 토크를 듣고 있으면 인기 없는 개그맨들이 어떻게 이용당하고 폐기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지요.

 

무명 시절: 90년대 구봉숙이 방송에서 활동하던 흔적들. 마냥 착하게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으나 남이 시키는 일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 시기. 신동엽이 날아가고 있는 동안 소모품처럼 쓰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이미지 출처: http://netv.sbs.co.kr

 


 

그렇게 시간이 갔습니다. 방송이 뭔지 조금 알게 되었을 즈음에서야 자신들이 설 땅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수 많은 거짓 약속을 믿고 순진하게 희생하다 보면 오히려 기회를 놓치고 용도폐기 될 뿐이라는 것을 왜 그 때는 몰랐을까요? 지난 시절을 뒤돌아보면 저도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 의도를 이용당하고 세상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는 저도 인생의 후배들에게 좀 더 영악하고 냉정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믿음은 지켜지는 동안만 믿을 수 있으며 더럽혀진 아름다움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으니까요.

 

이제 그들은 신인이 아니었습니다. 조금도 새롭지도 않았고 쌓아 놓은 인지도도 없었습니다. 차례대로 기회가 제공되지도, 고생하고 도와줬다고 방송을 하게 해 주는 것도 아니었지요. 그 곳은 오로지 시청자들의 관심만을 최우선으로 하며 시청률과 인기를 위해서 순간 순간 인간을 소모시켜버리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신인이라는 이유로 잠시 카메라의 관심이 자신들에게 머물렀던 그 짧은 순간, 차라리 미친 짓이라도 하던지, 욕먹어 가면서 애드립이라도 펼쳐서 스스로를 돋보이게 했었다면 상황이 조금 나아졌을 거라고, 그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구봉숙 트리오가 여러 번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언제일지도 알 수 없고 온다는 보장이 없으며 실패할 것이 뻔한 미래만 남았지요. 가망 없는 기대로 버티기에는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방송국을 떠났습니다. 다시는 그 쪽으로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마지막까지 남은 자들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동안 인터넷이 매체로 부상하며 가능성을 열어 주었지만 방송국 출신인 그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 발을 담그는 순간 정상적인 개그맨으로서의 생명은 끊어져 버리지요. 인터넷 방송은 방송이라는 이름도 붙여 줄 수 없는 저질스러운 쓰레기들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추잡하게 변하고 더러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곳이었지요.

 

그 곳에서도 경쟁이 존재했으므로 남들보다 더 많이 망가져야만 돋보일 수 있었고 출연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이 그들에게 지옥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구봉숙은 그렇게 인터넷이라는 지옥에서 마지막 희망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악귀 같은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구봉숙의 등장: 주병진이 만든 인터넷 방송 프랑켄슈타인에서 성을 주제로 한 방송 모습. 심한 욕설도 아무 제한 없이 그대로 나왔고 주제 또한 엽기적이었다. 막가는 방송으로 인기는 올랐지만 방송인들의 원성 또한 높아졌고 시간이 갈수록 인터넷의 대표적인 쓰레기로 낙인 찍혀갔다.

이미지 출처: http://www.cyworld.com/ghksdl0902


 

 

외설스럽고, 독하고, 잔인하고 막가는 방송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배설의 욕망을 충족시켜준 덕분이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방송은 음지에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사실 그 때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아직도 구해 볼 수 있는 그들의 초기 방송들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위험 수위를 넘고 있지요.

 

그러나 그들의 방송은 어떤 것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고소를 당하고 협박을 당해 몇 개월 만에 폐지되기도 하고, 인터넷 방송국 자체가 하룻밤 새 문을 닫기도 하면서 부침을 계속했습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규제를 피할 수 없는 방송들은 외국으로 나가버렸고 국내에 남은 인터넷 방송은 단속 기준을 넘지 않는 수준의 유료 성인 방송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인터넷 스타들: 음치가수 이재수와 엽기김대중의 배칠수, 그들은 각자 한 개의 mp3 파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양지로 힘차게 날아 오르는 동안 구봉숙에게는 더욱 더 철저히 망가져야 할 날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taxr11, http://smile.khan.co.kr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다양하게 시험되면서 또 다른 흐름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는 매체로 활용한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인기를 얻고 주류 방송으로 진출하는 모델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룻밤 새에 스타로 부상한 얼짱들이 배출되기도 하고 모창, 성대모사, 엽기 소설이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구봉숙에게는 그저 남의 일에 불과했지요.

 

구봉숙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지만 남들과 함께 이야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즐겨 들었음에도 방송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는 철저히 무시되어야 할 대상이었지요. 더구나 사람들은 남 욕하는 방송이라 그랬는지 아무 죄책감 없이 P2P로 돌려 듣는 바람에 정작 그들은 인터넷 방송으로 연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을 짓밟으며 얻은 것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오를수록 그들은 오히려 주류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며 고립되어 갔습니다.

 

 


생존게임: 초기 인터넷 방송국들은 수익모델을 제대로 찾지 못해 하루가 멀다 하고 망해갔다. 성인 토크쇼를 시도했던 많은 사람들도 버티지 못하고 다 떠나가 버렸다. 다양한 포맷으로 시도된 여러 방송들, 구봉숙과 함께 묻어가고 싶어 했던 이우민의 모습도 보인다.

이미지 출처: http://www.cyworld.com/LTB82

 

 


하나였던 자들



구봉숙의 결합: 인터넷에서 각개 약진하던 세 스타가 만났다. 정리가 끝난 인터넷방송에서 결국 살아남은 세 명의 악귀들. 그들에게 있어 처음으로 진정한 전성기가 시작되려는 때의 스냅샷

이미지 출처: 바나나TV 구봉숙 동영상




유료 성인 방송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그들에게 드디어 최적의 방송이 기획됩니다. 딴지일보에서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을 시작한 것이지요. 김구라 황봉아가 주로 진행했고 노숙자가 가끔씩 출연했습니다. 이전까지의 성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시사적인 내용이 많이 추가되었지요. 여전히 아무 규제 없이 독한 욕설을 내뱉고 있었지만 듣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시원한 느낌을 들게 하는 어떤 통쾌함이 있었습니다.

 

김구라 황봉아의 콤비 플레이가 빛나던 시절이었지요. 황봉아와 노숙자를 부추겨 심한 말을 하게 만들면서도 적절한 선에서 그들을 제어하며 수위를 조절하는 김구라의 진행 능력이 탁월했다면 그 통제아래서 마음껏 내지르는 황봉아 노숙자의 아무 생각 없는 미련함도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욕 먹는 대상에게는 그보다 더 지독한 모욕이 없었겠지만……

 


시사대담: 구봉숙이 절정기를 맞았던 시사대담 시절. 그러나 음지의 인기는 빵으로 바뀌지 않았다. 딴지 방송국은 오 만원인 그들의 출연료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http:://www.ddanzi.com/


 

 

시사대담은 100회를 넘기면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획득하게 됩니다. 쓰레기 취급되어 무시되던 방송에서 그들의 욕에 대해서 상대방이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로 바뀌었지요. 고소도 여러 번 당하고 스포츠 신문에 기사도 자주 나갔습니다. 물론 좋은 이야기는 전혀 없었지만 인지도는 오를 수 있었지요.

 

이 때 시사대담 방송을 들으면 스스로 즐거워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이 올랐다고 할까요? 아주 자연스럽게 방송을 진행하면서 자기들끼리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즐거웠습니다. 이 때쯤 시사대담을 듣고 있는 시청자들을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었지요. 더 이상 구봉숙의 방송이 음지가 아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양지로 떠 오른 구봉숙: 오노 테러를 기획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구봉숙. 오노는 만나지 못했지만 대신 오노 아버지를 만났다. 자식 교육 잘 시키라고 꾸짖고 나서 악수하는 모습. 쓰레기들이 깨끗해지는 길은 더 더러운 쓰레기 옆에 서는 것일까?

이미지 출처: 딴지일보 구봉숙의 오노 테러 동영상




그들은 출연료를 몇 년씩 받지 못하면서도 버텼습니다. 인기의 근원인 시사대담을 끝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웠겠지요. 그러나 딴지일보의 경영이 어려워서 더 이상 방송을 제작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시사대담은 막을 내립니다. 2004년 가을의 일이었습니다.

 


시사대담 고별 방송: 화려한 날의 마지막, 시사대담을 끝내면서 구봉숙의 실질적인 결합은 끝이 났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http://www.ddanzi.com

 
 

죽을 때까지 함께 가려 했던 자들

 

시사대담을 시작하던 때와는 달리 그들은 이제 인터넷을 뛰어 넘어 주류 방송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라디오 방송에 고정 출연을 하게 되고 케이블 방송에까지 진출했지요. 욕은 음성 처리되어 나오지 않았지만 케이블 방송에서 방송 중에 욕을 내지르는 모습은 상당히 신선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스타일을 그대로 밀고 가며 주류 방송에까지 진출하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되지요.



양지로 가는 길: 케이블 방송등에서 자신들의 스타일 대로 막가는 방송을 하는 모습. 앙드레김에게 난닝구 패션을 들이대고 놀이 공원에서 팬티 바람으로 날뛰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etn의 쏜데이서울, 미디어몹 플래시 간밤의 TV연예



 

케이블 방송에서는 B급 개그맨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구봉숙 트리오가 함께 출연할 수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노숙자는 조금 소외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트리오였습니다. 그러나 주류 방송은 달랐습니다. 음성 처리될만한 비속어는 아예 입 밖에 낼 수도 없었고 그들 트리오가 함께 출연할 권한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그들이 함께 출연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김구라가 봉숙과 함께 하려고 애썼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지요. 애써 피해보려고 하지만 결국은 마주쳐야 할 순간이 다가 왔습니다. 믿음, 신뢰, 동료애와 같은 단어들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고, 자신을 키워준 것들이 부담스러워지며, 조강지처가 짜증나기 시작할 때…… 바로 그 때가 오고야 말았지요. 그렇게 구봉숙은 결별하게 됩니다.

 

 


배신의 예감: 구봉숙이 언제까지 같이 갈 것인지 묻는 질문에 김구라가 말했다. 우린 아마 노숙자가 죽으면 끝날 거야. 노숙자가 말했다. 그럼 오래 가겠네.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이미지 출저: etn의 쏜데이서울


 

떠나간 자들

 

어떻게 얻은 기회입니까? 수 년 간의 무명 시절을 겪으며 좌절했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연찮게 얻게 된 것입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같은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을 무시하던 방송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그 황금 같은 기회를 누가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저 같아도 아마 절대로 포기 하지 않았을 겁니다.

 

주류 방송에서는 시청자들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지요. 구봉숙 중에서 상품 가치가 큰 김구라만 필요했을 것입니다. 구봉숙 트리오로 출연시킬 만한 코너를 만들기도 어려웠겠지요. 감히 PD들의 결정에 대해서 반대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공생: 이효리를 욕해서 인기를 얻은 김구, 김구라를 비난하며 스포츠 신문에 신곡 발표 기사를 좀 더 많이 실을 수 있었던 이효리. 이효리에 대한 사과문 발표를 기회로 주류에 편입된 김구. 드디어 김구라는 이효리와 같은 프레임 안에 자신의 사진을 실을 수 있게 된다.

이미지 출처: 스타뉴스 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6021714220260486&type=1


 

 

그 시점의 김구라의 선택에 대해서 저는 사실 아무런 논평을 할 수 없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방송 시스템에서 혼자서 들어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함께 한 동료를 옵션으로 걸면서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겠지요. 그러나……

 

지금 다시 지나간 초기 방송들을 들어 보면 이미 시작부터 그들은 서로 생각이 달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언제나 망가지는 것은 봉숙이었고 김구라는 항상 적정한 선을 그어 놓고 조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김구라에게는 시작부터 뭔가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처음부터 그랬다고 하는 것은 너무 음모론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기를 얻은 후부터는 이별을 준비해왔을 것이라고 믿는 제 생각이 틀렸다고는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헤어진 후 김구라의 행보를 보면서 봉숙이 분노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결과론적으로 봉숙은 김구라의 출세를 위한 발판에 불과했었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방송을 하게 되었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DJ를 하는 프로에 초대를 할 수는 있었을텐데……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요. 김구라의 가요 광장이라는 라디오 방송에 봉숙은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김구라는 구봉섭이라는 팀을 만들고야 맙니다. 이름 중에 봉자와 섭자가 든 두 명을 데리고 와서 구봉숙이라는 기억을 없애버리려고 시도하지요. 이렇게 그의 배신은 완성되었습니다.

 

 

 

완벽한 방어막: 아들을 데리고 방송에 출연한 김구. 우리 모두는 그의 과거를 알고 있다. 그러나 누가 어린 아들 앞에서 그 아버지의 죄를 까발릴 수 있는가? 죄 없는 자, 그 아비를 돌로 쳐라. 잔대가리의 승리. 그러나 방어막이 걷히는 날 단 한마디의 말 실수로 김구라는 몰락하리라. 그가 뱉었던 지난 말들이 비수가 되어 등에 꽂히고 그가 쓰러질 때 모든 방송인이 돌을 던지리라.

이미지 출처: http://star.moneytoday.co.kr/view/stview.php?no=2006121109560753757&type=1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세 명이 이룬 음지에서의 성공은 정말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는 곳에서 그토록 원하던 인기를 얻게 되었으니까요. 트리오가 모두 뭉쳐 세상과 맞섰다면 시간이 좀 더 걸렸을지는 모르지만 함께 잘 될 수도 있었겠지요. 우리들은 여전히 구봉숙이 내뿜는 포스를 즐기며 악동들을 응원하듯 낄낄거리며 함께 세상을 조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수 많은 밴드가 해체되고 트리오와 콤비가 끝내 각자 제 갈 길을 갔었지요. 헤어지게 된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끝내 잘 된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날 것 그대로의 방송으로 인기를 얻은 구봉숙에게 있어서 해체는 더욱 더 치명적이었지요. 맴버 모두 힘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양지로 간 김구라는 비판 정신을 잃고 과거를 부정한 후 한 명의 말 잘하는 개그맨으로 변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봉숙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남겨진 자들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요? 배신당한 그들은 무엇을 꿈꿀까요? 성공? 더 큰 성공? 복수?

 

성공한 동료가 만든 길을 나머지 사람이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지요. 고생했다고, 함께 했다고, 차례대로 같은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해 주지는 않지요.

 

 


주류 방송으로: 김구라에 이어서 황봉아도 폭소클럽에 출연했다. 둘 다 별 인기를 못 끌었으나 김구라는 버라이어티쇼로 방향을 틀어 살아남은 반면 황봉아는 이름까지 바꾸었음에도 더 이상 출연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kbs 폭소클럽 동영상




주목 받고 있을 때 잘하지 못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봉숙이지만 아직도 김구라의 빈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요? 이 아까운 기회를 그냥 놓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김구라에 대한 미움만 커지고 있을 뿐이지요. 배신은 배신당한 자에게 아픔뿐만 아니라 수 많은 가능성까지 박탈하는 악랄한 짓이지요.

 

 

배신에 대해, 복수에 대해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같은 상황이 되면 누구나 배신을 꿈꿀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 이제 더 이상 떠나간 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런 일에 얽매여 있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지요.

 

성공이라는 것이 또 다른 김구라가 되는 것이라면 애당초 가망이 없는 일입니다. 새로 시작한 봉숙의 인터넷 방송은 그래서 많은 문제점이 보입니다.

 

시원하게 내지르던 B급 방송에서 웃음 효과음을 사용할 정도로 대중성을 지향하게 되면 그 방송은 이미 망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지요.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하며 무슨 풍자 개그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옳은 말만 하겠다는 진보적인 지식인을 참여시켜서 방송을 하게 되면 삐딱하게 살았던 봉숙의 생명은 끝날 뿐이지요.

 


남은 자들: 또 다른 김구라인 권순우를 초빙하여 권봉숙으로 재포장중인 봉숙. 황봉아가 메인을 맡아도 노숙자가 사회를 봐도 진보적인 락커인 권순우가 주도를 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돈 맛을 안 젊음. 고기 맛을 안 스님, 미래의 인기를 위해 현재를 죽이고 있는 봉숙 콤비. 날카로운 비판도, 촌철살인의 비유도, 재미조차도 없는 요령부득의 방송.




이제 주류 방송으로 진출하기 위한 준비로써의 B급 방송을 그만 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방송을 계속한다고 불러줄 리도 없습니다. 힘 빠지고 재미도 없고 안쓰러운 방송, 그저 적당히 어떻게 해보려는 방송, 생각이 딴 데 있다는 것이 그대로 보이는 방송 그런 방송을 한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남은 봉숙 콤비가 해야 할 일은 재야 개그맨의 야성 회복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군요.

 

성공이란 단 맛을 알아버린 봉숙에게 있어서 다시 B급 방송을 하는 것이 맥 빠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정된 미래의 성공을 위해 거쳐가야 할 단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결코 원하는 성공은 오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 성공할 생각을 없애는 것, 다시 한 번 죽는 것입니다.

 

성공, 미래, 인기……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내지르던 그 때, 쓰레기라는 남들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던 그 때, 방송의 재미를 최우선으로 삼던 그 때로 돌아가야 하지요. 세상의 부조리에 일갈하던 당신의 그 속 시원한 욕을 다시 듣고 싶은 것은 저 만의 바램은 아닐 것으로 믿습니다.

 

~이 개~~~들아!!!!

 

물론 그렇게 했을 때 성공은커녕 확실히 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봉숙에게 있어서 오늘 현재의 방송이 재미있고 팬들이 만족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승리가 아닐까요? 우리의 삶은 성공하지 못해도, 목적이 없어도 계속되는 것이니까요.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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