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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영구에게 갈채를 -- 9. 심형래편 본문

글 쟁이로 가는 길/내 안의 사람들

영구에게 갈채를 -- 9. 심형래편

미닉스 김인성 2007. 8. 21. 00:03

내 안의 사람들

 

 

이 글은 누구나 얻을 수 있을 정보를 근거로 쓰는 글입니다. 글에 언급된 사람들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인적인 접촉을 하거나 근거가 불확실한 뒷얘기를 찾아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알게 된 이야기까지 무시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위대한 인간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씁니다. 알려진 바와 달리 그들에게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 글이 속 모르고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으로 판단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므로 제목과 같이 이 글은 객관화된 인물이 아닌 오로지 제 머리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는 부정하고 싶지만 고백컨대 그들의 이름을 빌어서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안의 사람들 9. 심형래편


 

 

영구에게 갈채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보 영구: 삼룡이 맹구와 함께 대표적인 바보 캐릭터. 어린이들의 코 묻은 돈을 뺏는 유치한 영화에 출연하던 그는 어느 날부턴가 이상한 영화를 만들어 세계를 주름잡겠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고난의 세월을 홀로 견뎌야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jereve/20039431439

 

 

 

실패의 법칙

 

한국은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하청 공장입니다. 뜻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런 인프라를 활용하여 제대로 된 근사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그들과 경쟁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시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90년대에 나타난 <아마게돈> 프로젝트였습니다.


 


아마게돈 원작 만화: 무협지 작가로 유명했던 야설록씨의 장대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인기 만화가 이현세씨가 그림을 그렸던 작품. 대본소를 통해 출시 되었을 때 거의 <공포의 외인구단>급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인 주인공 혜성의 반에 어느 날 매력 만점의 여학생이 전학을 옵니다.

 


수 많은 남학생들의 구애를 마다한 채 그녀는 이상하게 혜성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보입니다.

 


그녀가 나타난 후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알고 보니 혜성은 우주를 지켜 낼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였고 마리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에서 파견된 전사였던 것입니다.

 

 

 

<트랜스포머>에까지 반복되는 남자들의 판타지, 학교의 퀸카가 평범한 주인공에게 관심을 보이고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게돈>에서도 마리라는 여자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혜성이 시간터널을 통과한 후 우주 전쟁에 임하지만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마리에 대한 기억이 그의 인간성을 지켜 냅니다.

 

만화에서는 학교의 일상에서 두 남녀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사건에 휩싸이며 감정이 깊어지는 과정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갑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그들은 미래로 가야 하지만 차원 이동의 에너지가 모자라 한 명이 남아야 할 상황에 빠집니다.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혜성을 위해서 희생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남고 그는 떠나갑니다. 이 부분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애정이 형성되는 중요한 곳입니다. 그녀의 선택을 알게 된 혜성이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는 장면은 가장 감동적인 부분입니다. 영화에서도 마리의 테마를 따로 작곡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임을 알고 있었으나
……

 

 


난데없이 나타난 마리는 그를 구하기 위해서 오토바이에 뛰어들고



 


갑자기 그의 곁에 다가와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 물어보고

 


전학 오자마자 다짜고짜 혜성 옆에 앉게 해달라고 선생님을 조릅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둘은 곧바로 학교 뒷산에서 꽃을 물고 사랑에 빠집니다.

 

 

 

이 중요한 과정이 영화에서는 단 몇 컷으로 처리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애틋한 감정라인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관객들은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업무를 보듯이 사랑을 하는 과정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할 이야기는 많고 시간은 없고 서로 사랑은 해야 하고…… 그래서 디테일은 생략하고 결과만 거칠게 들이밀게 됩니다.

 

원소스 멀티 유스, 캐릭터를 각인시키기 위한 CF같은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은 각종 미니어처를 구입할 것입니다. 주인공을 찍은 브로마이드를 사고, 마리의 테마가 든 OST도 구입해 듣겠지요. TV 26부작짜리 새로운 시리즈, 외전에, 게임에, 실사영화까지, 어쩌면 테마 공원까지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거대한 산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꿈에 부풀어 적당한 컨텐츠를 선정하고 기막힌 제안서로 투자자를 모집하여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이제 깔쌈한 작품을 만들어 흥행만 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수 많은 날을 지새며 모든 문제들을 헤쳐나갔지만 정작 시나리오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디테일에는 집중했지만 장미 빛 사업의 시발점이 될 마리와 혜성의 사랑이야기는 부실한 상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마게돈>은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관객들은 아름다운 화면과 깔끔한 동작을 칭찬했지만 소음 같은 음향효과, 복잡하고 어수선한 진행이 마리와 혜성의 사랑을 방해 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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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게돈> 제작위원회에서 출판한 <아마게돈> 제작과정: 영화를 시작으로 TV 시리즈, 캐릭터사업, 아트 셀까지 가능한 모든 수익 창출 방법을 다 생각해 놓고 시작한 사업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흥행 실패로 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성공하기만 했다면 한국의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가져올 수도 있었을 <아마게돈> 프로젝트는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그 후로도 이런 애니메이션, SF물들의 실패는 오래도록 이어졌습니다. <로보트 태권V> 이후로 그와 같은 흥행을 꿈꾸고 만들어졌던 수 많은 영화들, <전사라이안>, <철인사천왕>, <런딤>, <엘리시움>, <원더풀데이즈>, <내츄럴시티>, <2009 로스트메모리즈>, <성소재>까지…… 이 모든 영화의 실패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빈약한 시나리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더풀 데이즈: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래픽, 완벽한 3D, 정교한 미니어처를 통한 사실적인 장면들, 그냥 보고 있기에 아까울 정도의 화면들이 가득 차 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함 때문에 관객이 외면했습니다. 애니메이션 기술의 정점에 와 있었던 걸작이었지만 시나리오의 허술함은 결코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imgmovie.naver.com/mdi/mi/0315/C1574-00.jpg

 

 

 

오랜 세월 동안 관객들은 화려한 장면들로 가득한 예고편에 넋이 나가 영화를 보러 갔지만 바보 같이 속았다는 배신의 기억만을 안고 극장을 떠났습니다. 다시는 국산 SF와 애니메이션 따위는 쳐다 보지도 않겠다는 맹세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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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게돈> 제작과정의 결론: 이 책의 결론도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전문 각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것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시나리오 부재라는 치명적 약점이 극복되지 못하고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다른 것들이 뛰어나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증명되어 왔습니다. <아마게돈>의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제작자들의 눈물이 강을 이루고 한숨은 충무로를 휘몰아쳤습니다. 그렇게 희망은 아무데도 없는 듯 했습니다.

 


 

한류의 역사


 

한류는 먼 과거에 이미 있었습니다. 50, 60년대 한국의 영화는 동남아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었고 가수와 스타들이 동남아를 순회 공연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날의 한류는 이미 과거에 모든 가능성이 구현되었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 예술계는 긴 침체의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독재 아래에서 자유는 구속당하고 사상은 통제되었으며 상상력은 억압 받았습니다. 검열을 통해 창의력마저 살해당했습니다. 더 이상 시나리오도 미장센도 음악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로비와 뇌물을 통한 외화 판권 나눠먹기로 연명해온 한국 영화계는 철저히 경쟁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민족은 이미 중일의 한자문화권 때부터 그 특유의 신명으로 주변 국가에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방해만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할 줄 압니다. 독재가 사라지고 예술에 대한 자유를 획득한 순간 그 능력은 극대화되고 모든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정치가 발전하자 경제와 문화도 꽃피기 시작합니다. LCD, PDP, DMB, PMP, MP3, DRAM, NANDFLASH, SSD, WiBro, CDMA…… 디지털로 만든 소재, 제품, 인터페이스, 프로토콜까지 모든 것을 한국이 상상하고 만들어내고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어 문제점을 해결한 후 수출까지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이며 세계의 표준을 만들어내는 최첨단 디지털 강국입니다.

 

한류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면 한국인들이 어디까지 잘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한 현상에 불과합니다. 드라마와 음악에서 시작한 한류는 디지털 기기부터 영화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한류는 한 두 개의 히트작이 잠깐 화제가 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는 전 지구적인 경향이 되었습니다.

 

그런 움직임의 하나로 헐리우드의 영화 산업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어져 왔습니다. 여러 번의 좌절 속에서 점차 노하우를 획득하게 되었고 헐리우드에 눌려 어떤 나라도 하려고 하지 않았던 일, 바로 최첨단 기술력을 영화 속에 녹여 내는 작업까지 한국이 해내게 된 것입니다.

 

 


디지털 한류: 3D로 구현된 귀여운 캐릭터, 잘 짜여진 설정, 욕심내지 않는 시나리오.  세계적으로 성공한 어린이용 디지털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 영화와 달리 <큐빅스>를 비롯해 TV용 애니메이션은 큰 성과를 거두어 왔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jei-tv.com/fun/imgs/wallpaper/200704_pororo1024.jpg

 

 

 

심형래씨는 이런 경향의 한 상징입니다. <디워>가 실패하더라도 그는 다음 영화로 재도전할 것입니다. 심형래씨가 포기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를 대신할 것입니다. 언제일지 모를 그 날을 위해 끝없이 도전할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입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 작은 반도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민족입니다. 문화 산업을 지배하려는 열기는 한국인들이 가지는 근본적인 경향이라고 믿습니다.

 

 

 

심형래의 영화들




영구와 땡칠이: 주연만을 맡았던 초기 작품들 중의 하나. 바보 영구 캐릭터로 승부했으며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

 

 

 

심형래씨는 영구라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일련의 아동 영화의 주연을 맡아왔습니다. 황당한 설정에 말도 안 되는 줄거리, 열악한 제작 시스템까지 문제투성이의 영화들이었지만 어린이들은 영구를 보러 극장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런 탄탄한 관객층을 바탕으로 자신의 캐릭터가 인기의 주요한 비결이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는 직접 제작까지 하게 됩니다.

 

 


영구와 공룡 쭈쭈:  주연, 감독, 기획, 제작에 특수 효과까지 모든 것을 직접 하면서 고군분투하던 시기의 영화들.

 

 

 

여전히 인기가 있었던 영구 캐릭터는 그가 어려울 때도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게 해준 원천이었습니다. 평단의 비난과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돈도 벌었습니다.

 

어린이용으로 제작되면서 여러 가지 설정이 등장했는데 미래와 과거로 가는 타임 머신, 외계인들과의 전투, 우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그리고 괴수물 등이었습니다. 영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B급 영화는 오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파워레인저>와 같은 특촬물과 괴수물이 훨씬 더 큰 시장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잘 만든 괴수물은 세계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음을 알게 되어 드디어 공룡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티라노의 발톱: 본격적으로 공룡이 등장하는 심형래 감독 작품. 여러 가지 특이한 설정이 많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영화라면 당연히 언어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심형래씨가 선택한 것은 아예 대사가 없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설정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무대도 원시 시대로 옮겨졌습니다. 공룡이 소품이 아니라 사람과 소통도 하며 나쁜 공룡, 착한 공룡이라는 캐릭터도 갖추게 됩니다. 자식을 위해 어미 공룡이 죽어 갈 때는 눈물을 흘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구 캐릭터가 사라지고 코미디가 잘 드러나지 않는데다가 어린이들이 보기에 거북한 잔인한 장면도 많았습니다. 대사가 없다 보니 상황을 이해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우연한 사건이 남발되어 재미도 떨어졌습니다. 거대 공룡의 화끈한 액션마저 없었기 때문에 애쓴 보람도 없이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함께 상영되었던 <쥬라기 공원>과도 비교되어 비웃음도 많이 받았지요.

 

 


용가리: 두 단계 업그레이드된 영화였지만 여전히 관객의 기대에는 턱없이 모자랐던 영화, 거의 재앙에 가까운 실패를 하게 됩니다.

 

 

 

<티라노의 발톱>의 흥행 실패 후에 그는 다시 영구 캐릭터를 내세우는 유치한 영화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런 절치부심의 시기를 거쳐 그는 다시 한 번 공룡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를 만들게 됩니다.

 

세계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아예 처음부터 영어로 영화를 제작하기로 합니다. 영구 캐릭터도 빼버렸고 배우 심형래 또한 어떤 장면에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괴수물이 된 것이지요.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된 <용가리>가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은 통쾌함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았습니다. 교과서 읽는 배우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이 잘 안 되는 스토리,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3D임이 한 눈에 드러나는 용가리 그래픽,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문제들……

 

의욕 과잉에 자랑스러운 3D를 남발했지만 그런 장면을 보고 있어야 할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던 관객들은 철저히 <용가리>를 외면했습니다. 용가리 치킨 프랜차이즈를 신청했던 사람들의 분노와 테마파크까지 구상했던 기획팀의 절망이 또 다시 휘몰아쳤습니다. 그는 사기꾼으로 몰렸고 영화 인생은 끝장 난 듯 했습니다.

 

그러나 <용가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영구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 제작으로 퇴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믿어준 사람들과 함께 남은 여력을 모아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주력하게 됩니다. 평론가들이 인간극장이라고 간단히 평가해버린 그 세월 속의 아픔을 누가 알겠습니까? 다만 그가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놀라운 완성도를 지닌 <디워>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디워: 부족했던 그래픽의 완성도를 높이고, 시나리오를 손 보고,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설정으로 업그레이드 된 새로운 <용가리>. 동양적인 특이한 괴수물로써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imgmovie.naver.com/mdi/mi/0395/C9569-22.jpg

 

 

 

그러나 <디워>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마게돈>의 실패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백 년을 뛰어 넘어 사랑을 느껴야 할 주인공들의 애틋한 감정은 그냥 처음부터 주어집니다. 뜬금없는 조선 시대 여주인공의 사랑해요라는 대사는 오히려 무턱대고 들이대던 <아마게돈>의 마리보다 더 못한 어색함만을 줄 뿐입니다.

 

하나도 애틋하지 않은 그들의 사랑은 아직도 교과서를 읽는 조연들과, 우연에 의한 사건 전개와 함께 짜증을 불러올 뿐이었습니다. 이 따위 영화가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원더풀 데이즈는 이천만 명이 봐도 성에 차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평론가들은 이런 광풍을 이해할 수 없었고 때문에 그 이유를 영화 외적인 것에서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애국심 마케팅, 인간 극장 스토리라고 평가절하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여태까지 시나리오가 허술했음에도 성공한 SF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디워>도 실패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탄탄한 시나리오가 바탕이 된 영화 <괴물>의 흥행을 보면서 그들이 가장 걱정스럽게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심형래 감독이었습니다. 아이구, 우리 영구씨 이제 어쩌나……”

 

그러나 놀랍게도 <디워>는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평론가의 비난과 충무로 감독들의 야유를 뒤로 한 채 <디워>는 힘차게 날아올랐습니다. 이무기가 감싸고 올라온 빌딩 옥상 씬에서 울부짖는 부라퀴의 사실적인 모습에 전율한 관객들은 놀라운 영화라는 입소문을 냈고 일본과 중국에서까지 시기와 질투, 놀라움과 부러움에 가득 찬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무도 예상 못한 성공이라는 면에서 보면 <디워>는 가히 기적이라고 부를만합니다.

 

 

당신의 아이디어에 인생을 걸어라

 

 

맨땅에서 헤딩하듯이 새롭게 시작했다가 엄청난 부대비용에 대부분의 자금을 소비해 버린 후 정작 중요한 이야기 구조에는 소홀함으로써 철저하게 망해간 수 많은 충무로의 영화 기획자들, 그들과 심형래씨가 달랐던 단 한가지를 들라고 하면 심형래씨는 어떤 경우에도 그 다음 영화를 제작할 여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제작자들은 투자자들을 찾아 다녔지만 다시 기회를 얻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정말 어렵게 재기할 기회를 얻었더라도 이전의 실패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는 했습니다. 두 번째 실패로 좌절하지 않은 제작자는 없었습니다.

 

심형래씨는 실패하고 나서도 영구 캐릭터를 되살려 유치한 영화를 만들면서까지 버티며 다음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서 영화 제작을 계속했기 때문에 이전의 실패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좀 더 발전된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트랜스포머: 실패하지 않는 제작 노하우를 습득하기까지 오랜 경험을 쌓아 온 헐리우드 시스템이 만든 걸작. 변신로봇이라는 아이디어를 그래픽으로 구현하더라도 주인공간의 감정이 살아나지 않으면 아무런 감동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거대한 우주적 사건도 그들 둘의 사랑을 깊게 만들어주기 위한 소재에 불과한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usemycomputer.com/indeximages/2006/July/bumble1.jpg

 

 

 

잘 짜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뛰어난 특수 효과를 끼워 넣고, 연기력 있는 배우들을 출연시키고, 깔끔한 편집과 뛰어난 연출을 한다면 세계적인 흥행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누구라도 이 법칙대로 영화를 제작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실제로 영화 제작을 이 법칙대로 하는 사람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나리오가 중요하다고 외쳐도 결국은 앞뒤가 맞지 않는 황당한 결과물만을 생산해내고 마는 것입니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닙니다. 언제나 시작은 거창했지만 쓸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이었고 대부분의 비용은 에니메이션과 특수 효과 작업 비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나마 남은 돈은 마케팅으로 쓰기 위해 남겨 두어야 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들을 천대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도 한몫 했습니다.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너스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깎고 시작하는 시나리오 비용 때문에 성의를 기울일 여유도 이유도 없습니다.

 

결국 처음의 의도는 사라지고 자금난에 허덕이며 어떡하든지 완성만 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에 가서는 영화라고 부르기도 힘든 어떤 것을 던져 놓고 달아나버리지요.

 

평론가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시나리오의 부재라는 것도 실제 제작에서 그것을 염두에 둘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런 실패의 과정을 거치며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경험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조언도 알아들을 수 없고 실천할 수도 없습니다. 오랜 시간을 버티지 않는다면 결코 탄탄한 이야기를 담을 수 없습니다.

 

<디워>도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허술한 이야기 구조만 뺀다면 괴수물 SF 영화로서 손색이 없는 뛰어난 영화입니다. 영화의 속도감은 단점들을 눈치채기도 전에 다음 사건으로 휩쓸려가도록 만듭니다. 이무기라는 소재와 그것들이 추구하는 변신과 승천이라는 목표는 끝까지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중반부터 휘몰아치는 사실적인 그래픽과 공포감을 유발하는 이무기의 모습이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 줍니다.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디워>가 외국에서는 먹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심형래씨는 다시 도전할 수 있으니까요. <디워>에 대해서 혹평을 하든 감동을 하든 어떤 입장에 있어도 좋습니다. 비판은 다음 영화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격려는 그의 작업에 힘을 불어 넣어 줄 것이니까요.

 

우리는 이제서야 겨우, 그래도 봐줄 만한 SF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을 하나 얻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 십 년 이상의 고통스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일생을 바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심형래씨는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심형래씨의 앞날에 축복과 <디워>가 외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성공하고 싶은가요? 당신의 아이디어에 인생을 거세요. 그 고난의 시간이 꼭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겠지만 그런 과정이 없다면 성공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뿐입니다.

 

 

성공은 어떻게 오는가


 

어느 날 떠오른 아이디어, 사람들의 비웃음과 비난 속에서 키워 낸 소중한 꿈, 그 것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삶.

 

쓸데 없는 일에 당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십 년 이상의 세월을 허송하고, 또다시 실패하고, 사기꾼으로 몰리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일가 친척들이 신용불량자가 되고, 한 가문이 망하고, 친구들이 빚 보증 독촉 전화에 시달리고, 채권자가 당신을 찾아 다닐 때,

 

당신이 허황된 꿈에 빠져 있는 동안 외판원으로 고생하는 아내가 생활의 무게에 찌들려 더 이상 당신을 보고 웃지 못할 때, 어렵게 마련한 외식 자리에서 돼지갈비를 뜯던 철없는 아들놈이 1인분만 더 시켜달라고 조르지만 주머니 속의 외식비가 모자란다는 것을 깨달을 때,

 

성공의 문 앞에서 좌절해야 했던 자들의 질투와, 쓸데 없는 짓 하지 말라는 경험자들의 조언과, 왜 안 될 일 하느냐고 말리는 소리들이 하늘까지 가득 찰 때, 잘 되는지 보자는 뒷다리 잡기에도 넘어지지 않고 끝끝내 견뎠을 때,

 

그 때 비로소 성공이라는 이무기는 오백 년 동안 실패한 자들의 새카맣게 타버린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여의주를 물고 힘차게 하늘로 날아 오를 것입니다. 성공은 준비하지 않은 순간에 벼락같이 찾아 옵니다. 그 찬란한 승천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지난 세월의 고통을 일순간에 잊게 해 줄 것입니다.

 

저는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극장 안에서 아무렇게나 살아버린 지난 시절과, 힘들다고 포기해버렸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그 때 좀 더 참았더라면…… 후회가 밀려오고 안타까움 때문에 뱃속에서부터 슬픔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창피해서 참으려고 했지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영구처럼 살지 않았던 지난 날들을 후회하며 그가 저 찬란한 하늘로 이무기처럼 승천하는 광경을 부러움 속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아아 정말 처량해진 제 처지를 생각하면서 어둠 속에서 그와 같이 날아 오르고 싶은 욕망에 떨며, 안달 난 가슴을 쓸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심형래씨의 <디워>는 저에게 있어 하나의 여의주였다고 믿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늦지 않았으니. 세상에는 여전히 도전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저만의 이무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비웃음을 견디며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일생을 바친

우리의 영구에게 갈채를!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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