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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2017년 4월, 선동은 끝났다. 본문

기술과 인간/IT가 바꾸는 세상

2017년 4월, 선동은 끝났다.

미닉스 김인성 2017. 4. 21. 02:11

개표 부정에 대한 끝없는 의혹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 끝판왕 급인 영화 더 플랜이 개봉되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기부한 소중한 돈 4억원이 설 익은 주장이 난무하는 완성도 낮은 다큐멘테리 제작에 소비되었다. 하지만 돈을 잃은 사람들은 분노하기는커녕 고생한 다큐팀을 찬양하기 바쁘다.


그 영화에는 "왜 K값이 1.5가 나오는가?"에 대한 선관위 입장의 반박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내부적으로 이런 역할 분담을 맡은 전문가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다큐 제작 초기 취재 과정에 있었어야 할 자체 검증은 완벽하게 빠져버렸다.

때문에 영화가 나오자마자 전문가들이 곧바로 제기한 소위 `노인 가설`이란 아주 간단한 반박에도 영화의 뼈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더 플랜 다큐팀은 선관위가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전혀 답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사를 쓰고, 인터뷰를 진행했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내 기사의 중요한 근거를 반박할만한 상대가 인터뷰를 거부한 것은 엄청난 호재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을 때는 상대방의 반박도 비중 있게 실어 주어야 한다는 편집 원칙을 위배하지 않으면서도 내 주장만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내 주장을 간단히 반박할 수 있더라도 그것은 이미 기사가 나간 후일 것이므로, 기사는, 다큐멘터리는, 영화는, 선동은 무사히 완료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호 다큐를 만드는 모 감독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감독에게 내가 가진 세월호 자료를 적극적으로 전달했다. 그 감독은 다큐 초기에 나에게 여러 가지 가설에 대해 검증을 요청했는데, 그런 주장들이 사실과 다름을 증명해주자 이후에는 나와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그는 모 팟케스트에 매주 출연하여 (검증을 거치지 않은) 설 익은 주장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 감독이 "김인성은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 하고 다닌다는 말들이 들려 왔다. 

그는 곧 세월호 관련 다큐를 완성해서 발표하겠지만 더 플랜과 마찬가지로 다큐 제작 전에 다큐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는지 여부를 제 삼자에게 검증받지 않고 다큐 발표를 감행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검증을 거치면 가설이 모두 폐기되어 다큐 자체를 만들 수 없을 것이므로, 그 많은 돈을 쓰고도 다큐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쏟아질 비판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므로, 그리하여 답변하지 않는 해경을 고마워하며 열심히 후반 작업에 매달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다큐도 잠깐 사람들의 관심을 받겠지만 역시나 쏟아지는 비판에 의해서 또 다른 음모론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놀랍게도 아예 검증 따위는 엿바꿔 먹은 다큐도 나왔다. 

2016년 12월 자로가 세월X를 발표했다. 8시간이 넘는 이 긴 다큐에는 세월호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나는 이 다큐를 보지 않았다.) 이 다큐에는 나를 거론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자로는 이 다큐를 만들면서 나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적어도 다큐멘터리에서 누군가를 거론해야 한다면 그 당사자에게 이를 통보하고, 어떤 내용인지를 다큐 발표 전에 알려 줄 의무가 있다. 만약 상대를 비판하는 내용이라면 그에 대한 반박도 실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큐를 본 사람들이 알려줘서 내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가 다큐에서 (내가 자신의 주장을 반박한다는 이유로 모 감독이 나에 대해서 떠들고 다니는 것처럼)"김인성이 세월호 CCTV 복구를 했다지만 실제로는 방해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면 아마 나는 죽어야 했을 것이다. 자로의 세월X는 엄청난 조회수를 올렸고 12월에 수 많은 언론에서 이 다큐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로의 다큐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피해를 입고 있는 전문가들이 다수 존재한다. 

세월호가 인양된 후 잠수함설이 폐기되면서 자로의 주장이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자로가 다큐에서 부정적으로 말한 전문가들이 받은 피해는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검증 없는 의혹 제기는 상대를 죽일 수도 있으므로 적어도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라면 사전 검증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자로도, 모 세월호 다큐 감독도, 더 플랜 제작팀도 이런 작업은 모두 다큐 발표 이후로 넘겨 버리고 있다.


선관위 개표 부정에 대한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 "기술자들"의 발표가 임박했다. 나는 기술자들 카메라 앞에서 "개표 부정은 국정원이 기획한 오도된 타겟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는 또 여태까지 개표 부정의 근거로 제시된 증거들은 모두 사실이 아님이 증명되었음을 밝혔다. 

나는 기술자들 제작팀에게 내가 반박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기술자들 감독에게 이런 다큐는 만들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기술자들 다큐가 발표된다면 아마 내가 발언한 장면은 "개표 부정의 범인들인 선관위를 편드는 편향된 전문가"의 모습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인터뷰를 한 이상 그 인터뷰를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카메라 앞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반박한 인터뷰를 (재반박할 수 없다고 해서) 무시하는 다큐는 다큐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2012년 대선에서 개표 부정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여러 단체에게 욕을 먹어 왔다. 

나는 개표 부정을 주장하다가 구속된 분들의 조사 의뢰를 받기도 했다. 그 때 개표 부정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물론 그 내용은 선관위에 의한 개표 부정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진보 진영에 몸 담고 있는 분들이 엄청나게 나를 비난했다.


선관위에 의한 개표 부정은 사실 전문가 입장에서 꽃놀이 패에 해당한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시스템과 국민들의 불신, 현장에서 일어난 다양한 부실 사례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개표 부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스텐스이다. 부정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언젠가 단 하나의 부정 증거만 나와도 개표 부정을 주장하던 측이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증거가 영원히 나오지 않아도 상관 없다. 국민들이 그렇게 믿는 한 개표 부정이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이 훨씬 선명하고 정의롭게 보일 수 있다.

"정치하는 새끼들 그 놈이 그놈이지. 선관위 놈들이 언제나 권력자 편에서 일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 아냐?" 이런 주장을 이길 수 있는 팩트는 없다. 

하지만 나는 전문가 입장에서 근거 없는 주장을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 선관위의 개표 부정에 대한 증거로 제출된 것들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 명확한 증거가 나타난다면 나도 개표 부정에 동의하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선거 날보다 빠른 날자에 작성된 투표 결과 엑셀 파일도 왜 그런지 기술적으로 설명 가능하며, 개표가 되기도 전에 방송이 나왔다는 주장도 해명되었다. 지역 선관위원장의 도장이 바뀐 것도 선거 감시 경험이 없는 현장에서 일어난 실수일 뿐이다. 수 많은 부실이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선관위의 개표 부정을 증명하는 증거는 될 수 없었다. 

더 플랜의 K값도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 취재 시점에 이루어졌어야 할 K값 이상에 대한 정교한 반박이 전문가 사이트에서 이미 제기되었다. 현재는 더 플랜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거꾸로 정당한 반박을 하는 전문가들을 핍박하고 있는 중이다. 더 플랜의 논리는 완전히 무너졌다. 하지만 이런 반박을 위해 공식적으로 나서는 전문가는 없을 것이다. 

선동은 이미 끝났으므로 아무리 정당한 반박을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들이밀어도 결국 "선관위를 옹호하는 자"가 될 뿐이다. 아무리 애써도 나쁜 놈을 편드는 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 따위 설거지에 적극적으로 나설 전문가는 없다. 그래서 김어준과 다큐팀들이 만든 판에 아무도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선관위에 전화를 걸어 대선 후에 "김어준이 지정하는 선거구의 투표 용지를 다시 검표하는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을지" 확인했는데 이미 선관위 내부적으로 이런 방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던 (더 플랜이 신빙성 있다고 믿고 있는) 또 다른 다큐 감독에게 이런 방법으로 의혹을 해소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선관위 놈들이 이미 표 바꿔치기 다 했을텐데 이제 와서 재검표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반응이 돌아왔다.(그는 처음에 선관위가 이미 표 다 태워버렸기 때문에 검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가 사실 확인을 했더니 2012년 대선 투표 용지는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오류는 그들의 논리 전개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사소한 오류는 꽃이다-김수영)

선동은 끝났다. 

이미 신념의 차원을 넘어 종교적 맹신 수준에 다다른 더 플랜 다큐팀의 선관위 개표 부정 논리를 깰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이여, 이 따위 종교 전쟁에서 손을 떼고 좀 더 생산적인(예를 들어 온라인 댓글 알바 같은) 일에 헌신하기 바란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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