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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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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인간/IT가 바꾸는 세상

블로그를 다시 열면서

미닉스 김인성 2015. 12. 23. 06:07

다들 잘 지내고 계셨나요?


자숙의 의미로 닫아 두었던 블로그를 다시 열기로 결정하고나니 그 동안의 경과를 설명 드려야 할 것 같아 글을 씁니다.

2014년 4월에 검찰 조사를 앞두고 성완종회장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직전에 회장님은 뇌물을 받은 사람들 명단을 작성하고 경향신문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세한 설명까지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경향신문 기자는 이 내용을 폭로한 후에 음성 통화 내용을 담은 디지털 파일을 검찰에 제출했습니다.

저는 경향신문 측의 연락을 받아 제출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를 진행해드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획득하게 된 음성 파일을 제가 JTBC에 넘겨주었는데 JTBC가 곧바로 방송에 내보내는 바람에 두 언론사 간에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저는 음성 파일을 유출한 당사자로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그 후 자숙의 의미로 조용히 지내왔습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향신문 측은 JTBC에 대해 고소, 고발을 검토했었으나 언론사끼리 법원에서 다투는 것이 좋은 모습이 아니란 판단으로 결국 JTBC와 화해를 했습니다.

경향신문과 JTBC가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에 저도 참석하여 협의 없이 음성 파일을 유출한 것에 대해 정식으로 경향신문에 사과를 드렸습니다.

성완종회장님 유가족 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사과를 드리려 했으나 그 분들이 외국에 나가 계셔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직접 사과드릴 예정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사과 드립니다.


그 동안 자숙하면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경위와 저의 잘못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성완종회장님의 목소리를 직접 국민들에게 들려 드리는 것이 성완종회장님의 뜻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경향신문은 유가족과 비공개 약속을 한 상태라 경향신문으로서는 회장님 녹음 내용 전체를 공개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경향신문은 녹취록으로 풀어서 신문에 전재하는 것만 유가족의 허락을 받고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JTBC는 음성 파일을 넘겨 받을 당시 경향신문이 녹취록 전문을 신문으로 발행한 다음에 방송을 하기로 저와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JTBC는 그 약속을 깨고 해당 신문이 발행되기 전 날 밤에 곧바로 성완종회장님의 음성을 방송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왜 음성 파일을 넘겨 주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다만 성완종회장님의 육성을 그대로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JTBC에 넘긴 것은 세월호 사건 이후 JTBC와 형성된 최소한의 신뢰가 있었고 회장님의 음성을 그대로 틀어 줄 수 있는 언론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대가를 요구한 적도 없고, 대가를 약속 받은 사실도 없습니다.

음성 파일을 넘기는 것은 위험한 일 일뿐 이득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유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비난뿐만 아니라 법적 처벌까지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넘겨줬다는 사실을 제 스스로 말할 수도 없고 JTBC도 취재원보호 차원에서 누가 했는지 함구해야 할 사안이었습니다.

성완종회장님의 육성은 언젠가는 방송되었어야 할 내용입니다. JTBC측이 좀 더 신중하게 판단해 경향신문에 녹취록이 전제된 후,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방송했더라면 논란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국민들은 회장님이 말씀하고자 했던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 판단이 어떻든 음성 파일을 넘긴 행위로 성완종회장님 유가족 분들과 경향신문에 피해를 입힌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유가족 분들과 경향신문 측에 다시 한 번 사과 드립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제 나름의 방식으로 보상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생각입니다.

혹독한 경험을 하고 나니 언론과 방송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겼습니다. 때문에 그 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있었습니다. IT 사건이 터질 때마다 출연 요청이 있었지만 다 고사했습니다. 앞으로도 가능한 언론이나 방송과의 접촉은 자제하고 주로 블로그를 통해서 활동할 생각입니다. 서둘러 블로그를 다시 연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이와 별도로 디지털 포렌식, 보안 관련 분야에 대한 활동은 조심스럽게 접근할 생각입니다. 다만 여태 제가 해왔던 일들을 생각해 볼 때 앞으로 이런 활동을 아예 하지 않겠다고 말씀 드리기는 어렵다는 말씀은 미리 드려야 할 듯합니다.

제가 주로 했던 일은 국정원, 경찰, 검찰, 국과수 등의 조작 행위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의 최열 환경 재단 대표 회계 자료 증거 조작, 국정원의 유우성씨 간첩 조작을 밝히고 카카오톡의 실시간 감청 영장 등을 폭로해 왔습니다. 이런 일은 제 직업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하면 할수록 사회적으로 고립될 뿐이었습니다. 저한테 의뢰가 오는 이유는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였고 의뢰하는 분들의 사정이 안타까워 거부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경향신문 음성 파일 검찰 제출 작업도 이런 취지에서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했던 일이었습니다.

여태까지 IT 기술을 도구로 사용해 진실을 밝히는 일을 하면서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포털 독점의 문제와 통신사 그리고 보안 현실을 비판할 때는 IT 업계에서 저를 기피대상으로 낙인 찍었습니다. 국정원과 검찰 경찰 그리고 국과수의 증거 조작을 폭로할 때는 디지털 포렌식 분야에서 저를 비전문가라고 매도해 왔습니다. 제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게 되자 그들은 주로 저 개인을 비난하는 전략을 써왔습니다.

특히 통합진보당 선거 시스템 조사 보고서를 제출한 후에는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IT 전문가일 뿐인 저를 통진당 당권파 추종 세력이며 종북이라고 정치, 사상적으로 낙인을 찍어 버렸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도 저에 대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이미지 중에서 한가지 이상은 사실일 것이라고 믿고 계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디지털 증거 조사로 확인한 사실을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말해왔기 때문에 제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었으므로 그 모든 비난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완종회장님 유출 건은 도의적인 잘못이 명백했기 때문에 저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로 이 글을 끝낼 수 없어 저도 안타깝습니다. 그 동안 오래 생각을 했지만 이런 잘못 또한 저의 업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완종회장님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회장님은 당신의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들이 직접 듣기를 원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결국 저는 어떤 방법으로든 성완종회장님의 뜻을 지켜주기 위해 행동했을 것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제는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잘못될 수 있는 일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분명한 잘못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비난이 두려워 방관자로 남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억울한 상황에 처했는데도 모든 사람이 당신을 탓하며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저는 당신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이 약속이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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