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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UCC의 영혼들 2/3 본문

글 쟁이로 가는 길/글쟁이 되기

UCC의 영혼들 2/3

미닉스 김인성 2007. 6. 13. 02:29


UCC의 영혼들 2/3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동영상을 제작하고, 만화를 올리고…… 이런 모든 행동의 동기는 무엇일까요? 프로가 되지 못하면 인터넷에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돈을 벌지 못합니다. 그런 행위를 계속할 근거를 행위 자체에서 찾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마추어로서 인터넷에서 유씨씨를 만드는 목적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유씨씨 제작자들은 누구나 특이한 어떤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인터넷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그 글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인기 검색어가 되고 사람들이 몰려와서 화제가 되겠지요. 수많은 댓글이 붙고 재수 좋으면 뉴스에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과정의 시작에 나의 유씨씨가 있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도 수 많은 아마추어들이 이런 관심을 받기 위해 힘든 제작 과정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강풀 : 프로가 된 제작자. 그는 인기를 얻음으로써 대중에게 말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이제 그의 작은 이야기도 대중의 관심이 되며 그의 소박한 이야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반응한다.

이미지 출처: 강풀의 만화공작소 http://www.kangfull.com

 

 

 

3. 익명의 공간에서

 

운영자와 회원들과의 마찰 그리고 인간 관계를 걱정해야 하는 소규모 동호회를 벗어나면 엄청난 사용자들을 자랑하는 사이트들이 나타납니다. 회원수가 많아서 서로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곳입니다. 비회원에게 글쓰기를 허용하는 곳도 있고 아예 익명을 원칙으로 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곳의 공통점은 글의 내용에만 반응할 뿐 쓸데 없는 예의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글을 올리는 곳, 익명이 보장되며 최소한의 원칙만 지키면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입니다. 폭력적인 댓글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폭포처럼 쏟아지는 리플들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 주기 때문에 글 쓰는 보람이 있습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악플이 있다면 아이피 바꿔서 씹어 주면 됩니다. 그 완전한 자유도는 욕까지 허용할 정도니까요. 심지어 법에 저촉되는 내용도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허용되기도 합니다. 유씨씨 제작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곳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곳에서는 짧고 간단하고 단순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내용 이외에는 어떤 것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엽기적이고 황당한 내용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진지한 내용, 사진이나 그림이 없는 글, 어려운 내용이 포함된 것들은 바로 스크롤 당할 뿐, 본문의 내용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시간과 정성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것은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며 의도를 의심받기도 합니다.

 

일회성이 아닌 시리즈 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첫 글에 조금 반응하던 사람들도 두 번 째 글부터는 아예 읽으러 들어오지조차 않습니다. 답글도 없어지고 추천수도 사라지며 읽은 횟수도 거의 바닥을 기게 되고 댓글이 수두룩하게 붙은 다른 잡담 게시글에 밀려 사라져 버립니다. 만화든 동영상이든 조금이라도 늘어지는 것들은 마찬가지 운명이 됩니다. 한 컷에 3초 이상을 끌지 않는 미국 방송처럼 웹의 속도도 점점 더 가속화되고 사용자들 인내의 한계도 점점 더 짧아지고 있습니다.

 


편집의 승리: 화면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메시지는 짧은 문장으로 전달되며, 그 문장조차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내용이 천천히 스크롤되는 플래시에 질려버린 인터넷 세대를 사로잡은 방송, 유씨씨가 추구하게 될 기법의 한 극단적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ebs.co.kr

 

 

 

이런 추세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글의 호흡을 줄이고, 문단을 짧게 만들고, 글 간격을 띄우고, 사진을 삽입하고, 상황 설명을 웃기는 사진으로 대체하여 읽는 이들의 눈 높이에 맞추어야 합니다. 시장 바닥에 나왔으니 그 정도 변화는 적응과정으로 이해해야지요.

 

메시지를 죽이지 않는 선에서 글이 엽기적이 됩니다. 그 놈의 인기가 뭔지, 하다 보면 내가 비난했던 사람들보다 더 황당한 것들을 만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자괴가 들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추천 게시판으로 옮겨 가기도 하니까요.

 

추천 받아 뽑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시판에 글을 써보면 정보의 홍수라는 것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엄청난 경쟁 때문에 웬만한 유씨씨는 그냥 묻혀 버립니다. 첫 페이지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동안 눈길을 끌지 못하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버리고 그냥 잊혀지고 맙니다.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를 가진 것들이 등장해서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 버리는 바람에 내 것은 또 버림 받습니다.

 


과잉 정보: 처리해야 할 전체 글 숫자, 시간 당 새로 게시되는 게시물 숫자, 총 페이지뷰, 각 글에 추가되는 댓글과 추천수
…… 이 모든 것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운영 노하우가 필요하다. 포탈의 게시판 하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첨단의 지식과 관리자의 끝없는 감시가 따라야 한다. 그들에게 있어 내 글은 그저 처리해야 할 수 많은 데이터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물론 방문자들도 내 게시물에서 아무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미지 출처: http://boom.naver.com

 

 

 

그 곳은 순수하게 내용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곳이 아님을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 컨텐츠 자체보다는 외적인 것이 더 중요하지요.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유씨씨들은 추천과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온갖 기발한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됩니다.

 

친구들끼리 서로 추천하고, 추천 맴버를 구성하여 자기들끼리 밀어주기도 하며 남의 글을 무차별로 추천하는 대신 역 추천을 유도하여 자신의 글을 띄우기도 합니다. 글 올리기에 적당한 타이밍을 포착하는 기술도 필요합니다. 익명의 게시판은 거의 전쟁터와 같습니다. 내 유씨씨가 아무런 전략 없이, 우연하게라도 인기를 끌 가능성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어차피 시작한 것, 끝을 봐야지요. 추천 받기 위해서 게시판에 통용되는 방법을 모두 동원합니다. 아이디도 여러 개 만들어 스스로를 추천하고 조회수를 조작하기도 합니다. 내 글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볼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질 수 있다면, 이 정도의 술수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눈물 겨운 노력으로 내 유씨씨가 히트하여 추천 게시판에 이동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도 제작자를 기억해 주지 않는다.


 

추천게시판으로 옮겨 가게 되면 집중적으로 주목 받게 되면서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러나 댓글은 아무리 붙어도 나에게 쌓이지 않습니다. 내 이름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재미있는 내용만을 살펴 볼 뿐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칭찬을 하든 비난을 하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나타난 흥미로운 것에 대한 관심의 표현일 뿐 그것은 결코 지속적인 관계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내 글이 가장 많이 추천 받았었다는 것은 나의 개인사적인 기록일 뿐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런 영향력도 가지지 못합니다.

 

한 때 유명했던 유씨씨가 내 것이라는 것도 기억되지 않으며 그 때문에 새로 만든 나의 유씨씨에 좀 더 많은 관심이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인기 유씨씨를 통해서 나와 연관된 어떤 부가가치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창의적인 내용을 계속 생산하여 반복적으로 추천 게시판에 오르게 되면 사용자들의 질투를 유발하여 오히려 외면을 받게 됩니다. 마치 추천에 환장한 사람 취급을 받아 더 이상 그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가 없습니다. 유씨씨를 만들어 낸 개인들은 그래서 개인 브랜드화 되지 못합니다.

 


성공과 좌절: 김치샐러드님의 놀라운 상상력의 작품, 뛰어난 작품들은 연속적으로 추천게시판으로 이동되었지만 거기에는 악플의 융단 폭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그의 유씨씨는 익명 게시판에서 사라졌다.

이미지 출처: 디시인사이드 힛겔러리


 

 

추천게시판으로 가는 과정도 따지고 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포탈 혹은 유명 사이트는 몰려든 사람들에게 보여 줄 컨텐츠가 필요합니다. 이런 필요 때문에 그들은 내 유씨씨를 채택한 것입니다. 거기에 어떤 필연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당한 때에 적당한 내용의 적당한 내 글이 적당한 위치에 배치된 것이지요. 제작자들은 넘쳐나고 원 제작자가 아니더라도 부지런히 재미있는 컨텐츠를 복사 해오는 사용자들로 인해 쓸 수 있는 컨텐츠는 언제나 충분합니다. 즉 다시 말하자면 이런 뜻이지요.

 

     유씨씨는 일방적으로 이용당한다.


 

내 유씨씨를 통해서 강화되는 것은 포탈과 유명 사이트의 브랜드입니다. 그들 입맛에 맞는 적당히 멋있고 적당히 쓸만한 컨텐츠가 골라집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필요 없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하여 전문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아마추어 제작자들은 한 두 번의 관심을 받은 후에 그 수명을 다합니다.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제작자가 간택되겠지만 유씨씨를 통해서 만들어진 부가가치는 조금도 원제작자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포탈 사이트의 메인 검색에 내 글의 제목을 쳐 넣으면 불펌한 사이트가 먼저 나옵니다. 자사 페이지뷰를 늘이기 위한 정책에 따라, 원본인지 펌인지 구별하지 않고 게시 날짜가 최근인 것을 먼저 보여 줍니다. 가끔 내 글을 찾아보면 원본은 나타나지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이너 포탈에서는 미약한 검색 기능 때문에 자기들이 관리하는 사이트의 데이터도 검색해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메이저 검색 사이트에서 마이너 포탈의 데이터가 더 정교하게 나옵니다.

 

지속적으로 추천 게시판으로 보내 줄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는 어떤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거기에만 쏟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플롯을 짜고, 소재를 찾고, 내용을 작성 하고, 교정을 보고, 재수정까지 하는 과정에는 만만찮은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유씨씨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사이트, 포탈, 익명 게시판들은 이런 제작자들 노력의 산물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사용할 뿐, 그들을 배려해주는 곳은 전무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유씨씨라는 마케팅 용어의 선점일 뿐입니다. 유씨씨라면 우리가 최고! 이 문장을 가지고 싶어 할 뿐이지요. 유씨씨를 차지하는 진정한 방법은, 불면 날아갈 버릴 정도로 섬세하고 예민한 영혼을 가진 컨텐츠 제작자를 보호하고 관심 가지며 그들을 배려하는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한국화 된 야후: 웹의 표준으로 군림하던 야후의 첫 페이지가 국내 포탈의 메인과 같이 변해버렸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야 원하는 광고를 노출 시켜 줄 정도로 영향력이 큰 곳이다. 그 아까운 공간을 공짜로 유씨시에 할애하여 전국민에게 홍보해주는 것을 고마워하기는커녕 제작자들은 오늘도 불평만을 일삼는다.

이미지 출처 : http://kr.yahoo.com

 

 

 

그러나 더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대규모 사이트가 엄청난 사용자들을 상대하는 동안 관리자들은 사용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악플과 광고성 글로 넘쳐나는 게시판을 운영하다 보면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만 글을 삭제하거나 이동시키는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운영에 관한 비판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실망한 사용자가 떠나는 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떠난 자들보다 더 많은 사용자들이 곧바로 몰려 올 것이니까요. 귀찮고 시끄러운 자들이 제 발로 떠나는 것을 오히려 기뻐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곳에서 활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있지요.

 

   유씨씨 제작자는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 받지 못한다.


 

내 글이 아무런 통보도 없이 추천 게시판으로 이동됩니다. 물론 추천 게시판으로 이동시킬 글을 선별하는 원칙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냥 자기들 마음대로, 대문에 올리기에 적당한 내용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글이라고 판단되면 필요할 때 그냥 갖다 씁니다. 어느 날 글이 없어졌습니다. 이동한다고 말해주지도 않고 추천 게시판으로 옮겨 버린 것이지요. 그 것도 모르고 누군가가 비번을 해킹하여 글을 삭제한 줄 알고 다시 올린 적도 있습니다.

 

평소와 다른 조회수와 댓글 수를 보고 사이트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대문에 링크되었다는 댓글을 보고 방문자 수가 폭주하는 이유를 알게 됩니다. 어디에 링크했는지 어느 게시판으로 옮겼는지 공지도 없고 안내도 없고 쪽지도 없고 메일도 없습니다. 그나마 통보 정도라도 해주는 메이저 포탈의 관리자들이 고마울 정도지요.

 

그러나 추천 게시판, 대문 링크의 위력 앞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힘을 알게 된 관리자들은 점점 더 예의 없이 컨텐츠 제작자들을 대하게 됩니다. 그들은 제멋대로의 관리에 항의하는 사용자를 비웃을 권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예고 없이 글을 옮겨 간 것을 문제 삼는 사용자는 전무합니다. 그저 뽑아준 것을 고마워하고 늘어난 방문자 수에 기뻐하며 갑자기 달라 붙는 댓글에 답글 다느라고 즐거워할 뿐, 관리자에게는 아무런 불만도 품을 수 없습니다.

 

물론 불만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용자는 공식적인 사과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런 기회는 단 한 번뿐일 것입니다. 그 후에는 결코 추천 받을 기회는 오지 않겠지요. 불만분자들은 조용히 무시당한 채 무력하게 잊혀질 뿐입니다.



유씨씨 제작자에게 댓가를! : 블로그에 1억원을 지불한 구글, 구글은 유씨씨 제작자들에게 확실한 수익모델을 제시한다. 유튜브도 제작자와 수익을 배분할 예정이다. 제작자들에게 좀 더 나은 제작환경을 제공해주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이렇게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깔끔하다. 그러나 uccc의 클릭당 1원 모델은 최악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shoemoney.com/gallery/v/misc/adsensecheck.jpg.html

 

 

 

추천 게시판에 글이 옮겨져도 문제는 계속됩니다. 그렇게 이동한 글에 붙는 댓글은 내 글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 더 많습니다. 등수 놀이에, 리플로 서로 잡담을 늘어 놓지요. 자기들끼리 채팅도 합니다. 글과 관련 있는 댓글도 본문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쓸데없이 본문을 폄하하고 비난하며 이상한 트집을 잡습니다. 아무 근거 없는 비방을 일삼는 악플도 넘쳐 납니다. 익명 사이트와 포탈 게시판은 그렇게 게시자의 의지를 꺾습니다.

 

비수같이 가슴을 찢어 놓는 악플들, 그 따위 댓글이나 받으려고 글을 썼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게 만들던 악플들, 그런 악플을 본문 게시자가 지우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은 악플러보다 더 미운 사이트. 그리하여 유씨씨 제작자는 익명 게시판에 글을 쓰는데 공포감을 느끼게 되고 글을 올리는 것이 즐겁지 않게 됩니다. 다시는 그 곳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상처 받은 제작자들도 많습니다. 유씨씨 제작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곳이 필요하게 됩니다.

 

4. 나만의 공간으로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개념은 개인 사이트, 무료 홈페이지를 거쳐 블로그로까지 진화해 왔습니다. 개인 브랜드화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개인 사이트는 운영비와 관리의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외로움이라는 강력한 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듣지 않는 적막한 곳이 될 가능성이 크지요. 때문에 홈페이지는 필연적으로 개인간의 연결을 확보해주는 블로그로 넘어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자기만의 공간이라는 자유를 누리게 해주면서도 서로를 엮어주는 기능을 가진 블로그는 대형 사이트가 운영을 하기 때문에 안정성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료라는 장점도 빠질 수 없지요.

 

개인적인 일기장 같은 홈피보다는 블로그가 내 생각을 남들에게 전하기가 더 적당하지요. 1인 미디어 시대에 가장 주목 받는 것이 블로그인 것이 그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블로거는 여론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도 가지지요. 내가 쓰는 글이 내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한 매력입니다.

 

동호회의 인간 관계에 상처 받고 익명의 공간에서 일방적으로 소모되면서 악플에 시달리던 개인들은 그리하여 결국 블로그에 안착하게 됩니다. 개인 블로그에서 드디어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유씨씨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 홈페이지부터 이어져온 외로움은 블로그에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무도 유씨씨를 보기 위해 스스로 찾아 오지 않는다.


 

블로그에 컨텐츠를 올리고 나면 적막한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새로운 유씨씨가 블로그 메인 페이지에 걸리는 잠시 동안, 시기 적절한 주제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흥미 있어 할 것이라면 방문자 수가 늘 수 있습니다. 좋은 내용이라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검색에 걸려서 인기가 올라갈 가능성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때까지는 길고 외로운 시간이 버티고 있습니다.

 

방문자도 없고 댓글도 없으며 스크랩도 없고 추천도 없습니다. 그냥……. 아무 것도 없는 것이지요. 드넓은 우주에 외롭게 떠 있는 한 개의 어두운 행성일 뿐, 아무도 그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모나드에게는 창이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썼는지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좋은 소리는 세상에 널려 있고 옳은 소리는 흘러 넘쳐서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별로 뛰어나지도 않는 내 유씨씨가 어느 날 갑자기 주목 받을 가능성은 사실 제로에 수렴할 뿐입니다. 의욕적으로 만든 블로그는 그렇게 묻히고 관심에서 멀어지며 방치되다가 버림받습니다. 죽어 버린 사이트, 더 이상 관리되지 않는 적막한 블로그가 얼마나 많습니까?

 

악으로 버티며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고, 디자인을 바꾸고, 글꼴을 구입하고, 배경음악을 깔아도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잔인한 검색엔진은 돈 주고 산 배경음악을 공짜로 들으려는 사용자들만 유인할 뿐, 내 블로그의 컨텐츠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개인 도메인, 개인 홈페이지, 무료 홈페이지, 위키, 홈피, 블로그…… 시대를 앞서 가야 한다는 마케팅의 구호에 넘어간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돈과 노력을 들여 뭔가를 만들고 유지해 왔지만 모든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했었던 것입니다. 남의 글을 퍼와서 조회수를 올린다고 무엇이 바뀌겠습니까? 이웃끼리 방문해서 카운터를 늘려도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화제의 기사를 스크랩해서 검색의 최 상단에 걸린들, 그렇게 들어온 사람들이 잠시라도 내 사이트를 기억이나 해 줄까요? 수 천 개의 글을 모아 놓은 불쌍한 개미들의 블로그는 안타까운 연민만 불러 일으킬 뿐입니다.

 


피시툴즈 김현국: 그의 삶은 그 자체가 재미있는 유씨씨 같아 보인다. 명불허전에 죽지 않은 노병, 가끔씩 이렇게라도 그의 생존이 확인되어서 좋다. 그가 주는 즐거움은 추억과 섞여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든다. 꾸준하게 유씨씨를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미지 출처: http://board.wassada.com/iboard.asp?
code=freetalk3&mode=view&num=288563&page=0&view=n&qtype=user_name&qtext=%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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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용한 날, 평소와 같이 습관처럼 관리하러 들어왔다가 내 블로그의 방문자수가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시스템이 잘못되었는지 0이 몇 개 더 붙어 있습니다. 썰렁하기만 하던 글에 수 십 개의 댓글 카운터가 늘어 나 있습니다. 광고 댓글이겠거니 하고 지우러 들어가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 있습니다.

 

…… 그 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시장 바닥 같이 붐비는 와중에 댓글이 줄줄이 붙어 있습니다.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댓글이 쭉쭉 늘어납니다. 내 글이 포탈의 메인에 붙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됩니다. 블로그 개설 이후에 쌓였던 몇 년 동안의 방문자 수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간단히 돌파 당합니다. 순식간에 백을 넘기고 천을 넘기고 만을 넘기고 십만을 넘어서 신기록을 경신합니다. 묻혀 있던 다른 글들에도 갑자기 관심이 쏟아지고 수 백 개의 댓글이 붙기 시작합니다. 적막한 시간만이 계속될 것 같던 나에게 갑자기 쏟아지는 이 행복한 관심에 기뻐하지 않을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댓글마다 감사 글을 붙이고 질문에 답하고 비판에 대응하다가 하루가 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 ..

 

일순간에 사라져버립니다.

 

포탈 메인에서 링크가 제거되는 순간 그 전보다 더 완벽하게 적막한 시간이 시작됩니다. 아무도 내 블로그로 오는 길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애써 기억을 더듬어 다시 들어온 방문객들도 조용한 분위기를 눈치 채고 더 이상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갑자기 방문자 수 증가가 스톱되고 댓글이 끊어집니다. 크나큰 지진 후에 여진이 있어 방문자 수가 백 명이 넘는 날이 며칠 계속되지만 일주일이 되지 않아서 예전과 같이 한 자리 수 방문자로 돌아갑니다. 더 이상 댓글도 없습니다. 다시 조용한 날의 시작입니다.

 

그제서야 나는 방문자수에, 조회수에, 댓글에 중독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외로움을 견딘 시간이 너무나 길었던 탓일까요? 그렇게 무시했었던 익명 게시판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그리워집니다.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세상에 대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라지고 단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유씨씨를 만드는 목적이 달라져버립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목적이 달라져도, 생각을 바꾸어도, 여전히 정말 특별한 유씨씨는 다시 만들기 힘들다는 사실 앞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 대한 원망과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또 한 명의 실패한 유씨씨 제작자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씨씨 제작자에게는 이 모든 위험을 알면서도 그리고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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