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뽀빠이의 “우정의 무대” 복귀를 누가 막고 있는가? 본문
뽀빠이 이상용의 13년전 그날의 진실
어머니와 군인 아들이 무대에서 눈물로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우정의 무대", 뽀빠이 이상용 아저씨는 이 프로로 90년대에 국민 MC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의 사건과 함께 우리들에게서 사라졌습니다.
고속도로에서 팔리고 있는 뽀빠이의 최신 "폭소 열차" 만담 테이프가 있습니다. 그 중 한 에피스드에서 파트너가 노래를 부릅니다. "엄마가, 보고플 땐~~" 그러자 뽀빠이가 말합니다. "야, 하지마." 파트너는 웃으며 대꾸합니다. "왜, 재밌잖아?" 뽀빠이는 정색을 하고 다시 말합니다. "에이 씨, 하지 말라니까"
뽀빠이는 자신의 최대 히트 방송이었던 "우정의 무대"가 개그 소재로 쓰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아쉬움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젠가는 명예를 회복하여 "우정의 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날을 꿈꾸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심장병 어린이 성금을 착복했다는 혐의는 진작에 무죄로 판명되었는데도 말입니다. 기껏해야 아무도 보지 않는 일요일 새벽 방송만 허락되고 있습니다. 라디오 국군 위문 방송엔 출연조차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뽀빠이는 아직도 고난을 받아야 할까요?
이상용: 어린이들의 친구였으며 국군장병들의 맏형이었던 우리들의 영원한 뽀빠이. 그러나 세월은 흐르는 법, 아저씨는 이제 노인이 되어 가고 있다. 시간이, 시간이 없다. 이미지 출처: http://blogfile.imbc.com/files/img_file/club_file/24/imnews355/bbs/51/DSC_2093_copy %5B20060503131323%5D.jpg
성인의 길
뽀빠이 이상용 아저씨는 70년대, 80년대를 거쳐 90년대까지 늘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어린이 프로의 사회자로, 심장병 어린이 치료 사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다부진 체격에 끊임없는 운동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로 언제나 튼튼한 뽀빠이 이미지 그 자체였습니다.
술, 담배는 물론 커피까지 입에 대 본 적이 없고 하루 두 세시간의 운동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원칙에 충실한 분인지 알게 해 주는 작은 증거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체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전국을 도는 군장병 위문을 수 십 년 동안 계속해서 할 수 있었겠지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예전에 이런 강행군으로 인해 여러 차례 심각한 교통 사고를 당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수 많은 위문 공연을 거친 결과였을까요? 팔 십 년대 말에 시작한 "우정의 무대"가 대히트 하면서 뽀빠이 아저씨는 결국 국민적인 사회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눈물 흘리는 군인들을 보면서 저도 눈물 지은 적이 많았지요. 아저씨 소망대로 다시 군장병 위문 공연 사회를 보는 날이 다시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정의 무대: 이제는 잊혀진 프로. 그 높았던 인기에 비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프로가 되어 버렸다. 인터넷에서 더 이상 우정의 무대 사진을 구할 수 없다. 이미지 출처: http://img.news.yahoo.co.kr/picture/d5/20060313/6a1487b.jpg
아픈 어린이를 위해 수술비를 마련하는 선행과 힘든 일정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을 내었던 위문 공연 그리고 각종 이웃 돕기 바자회를 통해서 뽀빠이 아저씨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뽀빠이는 가난한 자, 아픈 자들에게 임한 천사였고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성인이었습니다. 반복적인 자기 단련이라는 동양적 공부의 극한을 보여준 한 위대한 자였으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전범이었지요.
저의 이 발언에는 어떠한 냉소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들의 습격
그러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시련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치료비로 쓰겠다고 했던 심장병 수기 책 수익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으며 심장병 어린이 기금을 유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높았던 우리들의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KBS 추적 60분의 뽀빠이에 대한 폭로는 사람들에게 깊은 실망을 주었습니다.
뽀빠이 이상용씨에 대한 폭로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심장병 어린이의 수기를 모은 책을 팔면서 이익금 전액을 치료비로 쓰겠다고 했으나 그 일부를 제외한 2억 5천여 만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
둘째, 시민들이 보내온 치료비조의 성금 육백 만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뽀빠이가 모델료 5천 만원 중에서 3천 만원을 치료비로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횡령한 적이 있다고 어떤 건강식품 회사에서 고소를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알게 되자 분노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뽀빠이 너마저…… 하는 심정이 되어 세상에 대한 마지막 믿음마저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들은 허무에 빠져버렸지요. 그 때문에 메스컴이 달려 들어 그를 짓뭉개 뜯어 먹는 것을 눈뜨고 지켜 보면서도 아무도 그를 도우러 나서지 못했습니다.
KBS의 추적 60분: 최철호 PD에 의해 제작된 1996년 11월 3일자 방송에서 우리들은 뽀빠이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남의 잘못을 파헤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그들의 삶은 행복할까?
일제히 들고 일어선 메스컴들: 어제까지 순결하던 자가 돈 액수 가지고 서로 다투어야 하는 천박한 자가 되어 버렸다. 영웅이 몰락하고 있는 현장.
옥죄어 오는 수사망: 국민들의 분노가 너무나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수사는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뽀빠이는 출국금지 조치에 이어 압수수색까지 당해야 했다.
우리들은 여태까지 오랜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이 속아왔습니다. 그들은 종교를 사칭하며, 가난한 자를 등에 업고, 장애인의 손을 잡은 채, 버려진 어린이들을 안고서 우리들을 기만해왔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정말 믿고 기댈 곳은 세상에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아 왔습니다.
깊고 깊은 불신의 시대, 이젠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겠다고 수 많은 다짐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세상에 뽀빠이가 나타났습니다. 물론 처음엔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뽀빠이는 묵묵히 자기 일을 쉬지 않고 계속 해 나갔습니다. 오늘은 강원도, 내일은 목포, 하루는 부산에서, 다음 날은 포천으로…… 장병들을 위문하며 아픈 어린이들을 돕는 그의 모습은 어느 새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되어갔습니다.
그가 있는 곳은 신도들에게 둘려 싸여 내막을 알 수 없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뽀빠이의 활동은 라디오로, 방송으로 늘 우리에게 알려졌고, 누구나 낱낱이 지켜 볼 수 있는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었습니다. 그것이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 십 년이 되고 이십 년이 되었습니다. 어느 새 삼 십 년이 가까워 오는 길고 긴 세월 동안 그는 여전히 전국을 누비며 다녔고 그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은 어린이들이 수백 명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 가지게 된 신뢰는 이렇게 오래도록 계속되어 온 봉사의 세월을 눈으로 직접 지켜 보면서 쌓은 것일 것입니다. 하루 이틀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어떻게 세상을 삼십 년 동안 속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의 행적은 모두 공개되어있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신뢰는 얻을 수 없으며 그가 한만큼의 활동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 명확했습니다. 위문 공연과 아픈 어린이 치료, 또 다시 위문 공연, 또 다시 치료, 반복 또 반복, 다시 반복, 그리고 또 다시 반복……
수신을 가장 기본으로 치는 동양적 사상에서 공부란 자신의 몸을 닦는 행위의 방법론을 말합니다. 국영수 외우는 것이 아니라 예와 기를 몸으로 익히는 것이란 뜻이지요. 그 가장 중요한 기법은 반복입니다. 공부는 바로 예와 기를 습득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반복 훈련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동양에서 존경 받는 사람들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를 단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십 년 동안 수도한 사람과 삼십 년 동안 청소를 한 사람은 똑 같이 존경 받아야 합니다. 물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정말 제대로 그 일을 했는지 확인할 필요는 있지만……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법. 조금의 잘못은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삼십 년을 봉사활동을 해 온 뽀빠이는 존경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삼십 년을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반복적인 봉사를 통해서 누구보다도 더 성인에 가까이 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건 종료: 그의 비리가 폭로된 삼 개월 후인 1997년 2월 28일 사건은 재판까지 가지도 않고 수사를 하던 검사 손에서 혐의 없음으로 마무리 된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던 뽀빠이 아저씨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일부의 소문과 같이 그가 정치권의 압력에 저항하다가 어용방송의 정치 PD에게 걸려 무고를 당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를 파멸 시키려던 세력이 마침 여론의 뭇매를 맞고 몰락함으로써 다행스럽게 검찰로부터 제대로 된 판단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죄가 없음이 밝혀 졌지만 한 번 더럽혀진 명예는 다시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 후 그는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든 명예를 반납하고 일개 사회자 혹은 방송인의 신분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봉사하는 연예인이라는 자랑스런 칭호는 더 이상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실망한 그는 건강을 헤치게 되고 화병이 생겨서 외국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지방 방송 사회나 돈 받고 하는 경로 잔치가 고작이었습니다. 서해 대교 넘어 있는 행담도 휴게소에서 만담을 녹음한 고속도로용 테이프를 팔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요?
뽀빠이 테이프: 야한 농담이 담긴 만담 한마당. 그 속에 우리가 알던 뽀빠이는 더 이상 없다. 아직도 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결코 들어서는 안 되는 테이프.
시간, 거짓을 이기는 힘
그 후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은 이길 수 없고, 세월 앞에서는 아무 것도 감출 수 없습니다. 오늘 날 우리들은 그 날의 진실을 알아낼 많은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 보았을 때 우리가 알고 있던 뽀빠이, 우리가 믿고 싶었던 뽀빠이가 아닌 뽀빠이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뽀빠이 이상용씨에 대한 저의 의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 그는 무혐의를 받은 후에 KBS와 추적 60분을 고소하는 등의 법적 조치를 취하여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는가?
그가 무죄라면 왜 방송에 재기할 수 없었나?
왜 그가 치료를 도운 수 백 명의 어린이들은 그의 명예 회복을 위해 나서지 않는가?
김현철이 그의 국회의원 출마를 종용했었고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탄압받은 것이 과연 사실인가?
이 모든 것은 지나간 역사의 화석처럼 기록되어 있는 자료들을 통해 그 진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사실 확인과 증거 확보도 가능합니다.
우선 그의 심장병 어린이 기금 유용 부분은 그 스스로 시인한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 보복과 외압 혹은 음해 세력의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추적 60분에서 주장한 자금 유용과 횡령 부분은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여태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던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제 기억과는 달리 그는 사실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변명만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뽀빠이의 해명: 폭로 이틀 후, 이상용씨는 방송에서 시인한 자신의 발언을 뒤집는 기자회견을 한다. 그는 이후 일련의 과정에서 자신의 활동이 봉사가 아닌 영업 행위였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자기 변호를 하기 시작한다.
그의 약속: 그는 또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연예계를 은퇴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이 약속은 그가 법적으로 무혐의가 됨으로써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 되었다고 스스로 믿게 된다.
절묘한 타이밍: 그가 수사를 받는 동안 대통령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뽀빠이 이상용씨는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은 김현철 때문이라는 신화를 스스로 만들게 된다. 기록을 살펴보면 그의 주장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정교해지고 복잡한 스토리를 가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수 십 년간에 걸친 사회에 대한 봉사와 인기 절정에 있는 방송 프로의 사회자 역할을 하루 아침에 그만 두어야 한다면 누구라도 억울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그가 수고한 것에 비하면 정말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몇 푼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이 급해서 자금 관리는 조금 주먹구구식으로 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자금 유용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크게 봤을 때 언제나 이상용씨는 손해 보면서도 자신의 돈을 더 많이 쏟아 붓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익을 따지지 않고 선한 일을 하는 곳에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었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한 번도 남을 도와본 적이 없는 인간들이 평생을 헌신한 사람의 사소한 잘못을 파헤쳐서 세상에 대고 떠드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겠습니까? 먼저 조언을 해주었다면 잘못을 고쳐서 더 잘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원망을 가져본들, 남의 잘못을 이용해서 유명해지는 것이 목적인 자들 앞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시청률 높이는 데만 혈안인 자들에게 말려들어 자신을 변호하고 조목조목 따지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선한 일,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상대적인 도덕적 우월감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둑놈도 남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의 선행보다는 잘못된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지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의 죄에는 관대하지만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잘못에는 크게 분노합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에는 인색한 반면 선행은 열심히 할수록 오히려 더욱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세상 인심입니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겨 먹었는데 어떡하겠습니까?
뽀빠이 이상용씨는 그 때 봉사의 삶을 살아 온 자신을 이 따위로 대접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여태까지의 노력에는 관심도 없던 방송국 피디들이 갑자기 사소한 잘못을 물고 늘어지는 그 저의가 의심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그들에게 익명의 투서를 넣고 자신을 의도적으로 죽이려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일년이나 전에 있었던 어떤 정치인과의 만남과 그 사건을 연결하고 피디들이 그들의 하수인이라고 믿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부분들은 사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악의 무리라고 믿게 된 이상용씨는 그리하여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잘못된 선택
김현철씨가 청문회를 거쳐 완전히 권력을 상실한 이후에도 피디들의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들의 기억과는 달리 오히려 피디들이 약자였습니다. 뽀빠이는 수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인 권력이었던 것입니다. 방송을 통해 사실 전달을 하려는 피디들을 방해하는 어떤 힘이 존재했습니다. 그의 비리를 파헤쳤던 PD들의 주장, 그 당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고 우리에게 들리지도 않았던 주장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상용씨는 그 때까지의 모든 방송 인맥을 활용하여 피디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의혹이 있으며
그 모든 사건이 정치인의 음해라는 주장은 이상용씨 측에서 퍼뜨린 것이며 이에 대해 피디들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려고 하자 한 쪽으로는 제 삼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방송국에 사과를 하고 다른 쪽으로는 같은 주장을 반복해 왔다.
이상용씨에게 우호적인 지방 신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은 방송국간의 알력에 의한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며 방송국간의 싸움을 조장하고 동정 여론을 유도했으며
처음에 시인했던 내용들을 조사 과정에서 모두 부인했고 횡령 부분은 돈을 돌려 줌으로써 해결했다고 주장하고 재산 환원과 은퇴 선언을 번복한 후 아무런 사과 없이 지방 방송을 재개했다.
정치, 언론, 검찰에 있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각종 로비를 한 의혹과
뽀빠이 이상용 2차 폭로 방송을 하려던 KBS 추적 60분이 결국 방영 하루 전에 취소되도록 했다는 의혹이 있다.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한 검사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아무런 해명도 해주지 않았으며 공식적인 검찰 공보관은 사건 당사자가 아닌 자에게 사건 내용을 말해 줄 수 없다고 답변을 거부했다.
(PD저널 1997년 4월 3일자, 10월 16일자, www.pdnet.or.kr)
이렇게 지난 기록을 들여다보면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지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명확하게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저 같은 개인은 그냥 짐작으로 생각할 수 있을 뿐, 어떤 것도 확인해 줄 수 없습니다. 당연히 제 생각이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이 뽀빠이 이상용씨의 명예를 되살리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지금 제가 해야 할 이야기는 단 한가지뿐입니다.
아직도 열심인 그들: 공개되지 않고 있는 한일합방 문서를 들고 열심히 폭로하고 있는 KBS 추적 60분 피디들. 뽀빠이 폭로에 앞장 섰던 최철호 PD는 최근에 사실을 캐내기 위해서 공무원을 사칭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제는 그들도 조금은 행복할 수 있기를……
다시 사는 길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한다면 사람들의 용서를 받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뽀빠이의 잘못은 그의 자복만으로도 충분히 용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를 잃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니까요.
방송국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면 오늘 날 뽀빠이의 모습은 정말로 많이 달라져있을 것입니다. 그 때 막 설립된 뽀빠이 재단이 이런 비판을 수용하여 주먹구구식 방식을 탈피하고 투명한 경영에 전념했다면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제도적인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음지는 생기기 마련이지요. 뽀빠이는 그 곳을 비추는 한 상징으로 따뜻한 빛이 되어 우리들 곁에 영원히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뽀빠이 이상용씨는 그 동안의 봉사에 대한 대가가 이 따위 폭로인가 하는 억울함 때문에 진실을 호도하고 세상을 속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보통 사람들은 뽀빠이가 정치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탄압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권력에 희생당한 수난자의 모습으로 믿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은 정치인들은 욕하면서 뽀빠이를 안타까워하고 있으나 그것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힘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진실이었다면 뽀빠이 주변에서 그를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고쳐 준 수 많은 어린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었습니다. 새 생명을 얻은 오 백 명이 넘는 어린이들 중에서 그를 위해 힘써줄 오십 명이 없단 말입니까? 아니 그를 끝까지 믿고 따를 다섯 명의 은혜 갚을 사람들은 있겠지요? 그 다섯 명의 외침 만으로도 세상은 바뀔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거짓으로 세상을 호도한 뽀빠이의 잘못 때문에 그를 도울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방송인들도 거짓으로 회칠한 뽀빠이의 과거를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진실을 덮기 위해 영향력을 동원하고 아무런 해명 없이 은퇴를 번복했으며 재산 사회 환원 약속을 지키지 않은 뽀빠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 생명을 얻은 어린이들이 은혜를 갚고, 그의 오랜 봉사의 세월을 재평가하고, 그의 노력에 대해 공로를 인정하려고 해도 그가 거짓으로 틀어막아 버렸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제 뽀빠이 자신이 나서야 합니다.
뽀빠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진실한 자기 회개뿐입니다.
영웅을 만들지 않는 사회, 남 잘되는 것은 눈뜨고 못 보는 세상, 남을 위해 사는 것을 바보 같은 짓이라고 믿는 시대.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더라도 위대해지기 위해서는 가장 냉정한 자들의 잔인한 검열까지 통과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에 검증 없는 신비는 없습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기를! 또한 뱀처럼 지혜롭기를!
방송은 주기적으로 존경 받는 사람들 뒤를 캐서 특종이나 잡으려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존경 받는 자 중에서 여태까지 그들의 공격에 살아 남은 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참하게 잡아 먹힌 뽀빠이는 그래서 위대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들을 혐오함으로써 가장 나쁜 길로 간 뽀빠이는 이제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 그저 한 연예인으로 남았습니다.
뽀빠이: 세월을 이기며 아직도 건재한 이상용씨. 사람들 마음 속에서 명예를 회복하고 다시 사랑 받는 날이 오기를. 고난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가 충만하기를. 이미지 출처: http://file2.cbs.co.kr/newsroom/image/2006/03/27114434028_60800020.jpg
영원한 생명
그러나 저는 아직도 뽀빠이 편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뽀빠이 아저씨가 했었던 만큼의 봉사를 할 수 없습니다. 저도 현역 시절 뽀빠이 아저씨의 위문 공연을 경험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벌이 했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뽀빠이 아저씨의 순수했던 봉사의 열정은 저도 결코 의심하지 않습니다. 뽀빠이를 돕고 싶어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순간의 잘못을 덮기 위해 만들어 낸 거짓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뽀빠이를 잠시 살게 해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그 후 영원한 죽음만이 남았습니다. 당신의 진실된 회개가 필요합니다.
뽀빠이 아저씨는 오늘도 열심히 운동을 하고 계시니까 건강하게 장수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도 그렇게 길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다시 봉사에 임함으로써 방정환 선생만큼 역사에 남을 존재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긴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진실은 드러난 곳에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 새벽에 홀로 깨어난 채 이불 속에서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생각할 때, 그 외롭고 조용한 순간, 오직 제 내면의 소리만 들릴 때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진실이란 자기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 홀로 있을 때 떳떳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 깜깜한 새벽, 홀로 고뇌한 뽀빠이의 내면의 결정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일시에 바뀔 것이라는 것을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제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나이가 되셨을 뽀빠이 아저씨께 제가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 조금은 들렸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도 사람들도 당신을 용서하고 이해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뽀빠이 아저씨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고 회개함으로써 다시 위대한 영웅으로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그것만이 뽀빠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고 있는 "우정의 무대"로 복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김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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