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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김진홍 목사님을 위한 기도 본문

글 쟁이로 가는 길/내 안의 사람들

김진홍 목사님을 위한 기도

미닉스 김인성 2009. 10. 6. 21:53

내 안의 사람들

 

 

이 글은 누구나 얻을 수 있을 정보를 근거로 쓰는 글입니다. 글에 언급된 사람들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인적인 접촉을 하거나 근거가 불확실한 뒷얘기를 찾아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알게 된 이야기까지 무시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위대한 인간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씁니다. 알려진 바와 달리 그들에게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 글이 속 모르고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으로 판단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므로 제목과 같이 이 글은 객관화된 인물이 아닌 오로지 제 머리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는 부정하고 싶지만 고백컨대 그들의 이름을 빌어서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안의 사람들: 10. 김진홍편.

 

목사님을 위한 기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빈민 선교에 힘쓰다 감옥까지 다녀온 김진홍목사, 그 후 오랫동안 두레공동체 운동을 통해 길 잃은 크리스천들에게 성경적 모범을 보였다. 삼십 년을 계속한 사랑의 실천은 결코 폄훼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값진 자산이다.

이미지 출처: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표지

 

 

 

가난한 자들 편에서

 

진홍목사는 젊은 날의 방황 속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목회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후 청계천에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선교 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1971년의 일입니다. 그 시절은 누구나 다 가난했겠지만 청계천 빈민가는 특히 더 했습니다. 최소한의 인간적 조건도 갖추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아무리 성직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권위를 얻을 수 있는 엘리트 코스를 포기하고 낮은 데로 임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그의 선택은 미래의 어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력을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희망조차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신하기 위해 스스로를 던졌을 뿐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의 저서 새벽을 깨우리로다에 기술되어 있고 일련의 설교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같은 제목의 설교 테이프인 새벽을 깨우리로다에서는 그의 육성으로 실감나게 그 시절의 애환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의 설교는 올바른 성경적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 이외에도 어려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깨달은 삶의 지침들이 현실적이라는 점 때문에 특히 좋았습니다. 물론 그가 들려주는 예화들이 감동적이며 재미있기도 했지요. 느릿느릿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에 감동하여 눈물 짓기도 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고뇌에 찬 불면의 밤을 이길 수 있는 정신적 안정제이기도 했지요.

 

 


70
년대 청계천 모습: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가난한 자들의 모습, 아프리카든 서울이든 도시 주변이라면 어디에나 있었던 빈민촌의 전형이다.

이미지 출처: 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ensagas_285711_1[445575].jpg

 

 

 

새벽을 깨우리로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지내겠다는 결심은 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너무나 힘든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으로 건강 문제가 심각했고 경제적인 문제는 늘 사람들이 서로 다투도록 만들었습니다. 수시로 들이 닥친 철거반들은 판자집을 무너뜨려 추운 겨울에 몸을 녹일 방 한칸조차 없애버렸습니다. 알코올 중독, 가정 불화, 끊이지 않는 범죄 등, 그야말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활을 기초로 선교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로 외부의 지원을 받지 않기 위해서 낮에는 넝마주이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청년이 배가 아프다고 쓰러져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갔지만 입원비가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절당했습니다. 그를 대기실에 눕혀 놓고 급히 돈을 구하러 판자촌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아까운 시간이 지나고 어렵게 입원비를 구해서 달려갔지만 청년은 이미 숨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외마디 비명을 지릅니다. ! ! 약값! 약값!

 

얼마 되지도 않는 입원비 때문에 청년을 죽게 내버려 둔 병원에 복수하려고 분노에 차 넝마주이들을 모으러 가던 그는 마음을 돌려 교회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주여, 저로 하여금 병든 세상을 욕하는 자가 되게 하지 마옵시고 고치는 일에 헌신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청계천 활빈교회: 70년대 빈민선교의 중심지,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정신에 감화되어 훗날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될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시절 이 교회에 헌신했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dkbnews.com/img/2006/04/11/chung2.jpg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가난한 사람은 줄어들지 않고 언제나 일은 고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그는 활빈교회 간판을 스스로 내리고 빈민촌을 떠나기로 합니다. 짐을 다 싸놓고 마을을 둘러보던 그는 한 방에 다섯 아이들이 힘없이 누워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노점상을 하던 어머니가 단속반에 걸려 유치장에 갇히는 바람에 사흘을 굶고 있었던 것입니다. 배가 고파요 배고파 우는 세 살짜리 아이 얼굴에서 그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갇힌 엄마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아이들, 쇠창살 너머로 아이들을 움켜잡고 통곡하는 엄마…… 그 지옥 같은 유치장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는 잠시나마 약해졌던 자신을 반성하며 가난한 사람의 눈물을 씻어 주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맹세합니다.

 

물론 그가 어떤 결심을 하든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궁에 혹이 생긴 아주머니를 치료해주기 위해 병원을 찾아 다녔으나 그 어떤 병원도 치료비 없는 환자를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날이 저물고 차비도 없어서 할 수 없이 뚝방촌을 환자를 업고 걸어 가야 했는데 자꾸 뒤로 넘어져 그를 힘들게 하던 아주머니는 결국 그의 등 뒤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세상을 불질러 버리고 싶은 분노를 느끼며 예수를 저주했습니다. 예수 필요 없어! 힘없는 여인이 죽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는 예수가 무슨 구주야! 이제 가서 예배당 간판 떼 버리고 세상 뒤집는 일이나 하겠어!. 업고 갈 기력도 남지 않은 그는 아주머니 시체의 옷자락을 잡고 끌고 갔습니다. 시체조차 끌고 가지 못할 탈진 상태가 되었을 때 그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진홍아! 네 등 뒤에서 죽은 힘없는 여인이 누군 줄 알겠느냐? 그의 등 뒤에서 죽은 여인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가로등 불빛을 의지하여 성경을 읽었습니다. 고난 중에 세상을 구하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하는 다윗의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이런 단련의 시기를 거쳐 김진홍목사는 새벽을 깨우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그렇지만 그가 깨달음을 얻고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후의 시간들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또 다른 고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새벽을 깨우리로다: 유신시대와 전두환시대에 우여곡절을 거쳐서 출판된 체험 수기집. 은혜로운 내용으로 100쇄를 기록했다.

 

 

 

정치범으로

 

좀 더 조직적인 빈민 구제 활동을 위해 노력하던 그는 유신시대를 맞아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시국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그 일로 긴급조치 대상으로 구속되어 15년을 선고 받고 감방 생활을 하게 됩니다. 평소 낙천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감옥에서도 죄수들에게 성경적인 모범을 보여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또한 스스로도 좀 더 깊은 영적인 수양을 하게 됩니다.

 

함께 지내는 죄수들에게 전도를 하고 생필품을 함께 나누어 쓰도록 만들기도 하며 급기야 일요일 예배까지 인도하는 등 죄수들이 단결하는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을 보고 안기부에서 그를 독방으로 이감시킵니다. 추운 겨울, 혼자 있게 된 그는 추위를 이겨보려고 성경에서 자를 찾았습니다.

 

호렙산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말씀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라는 부분에서 성령 체험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온 몸이 따뜻해지면서 추위를 느끼지 못하게 되고 동상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이 체험을 통해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온 지난 날을 반성하고 앞으로 기도와 묵상을 통해 영적인 복음 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때 밖에서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활빈교회 신도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십일 철야금식기도에 들어갑니다. 김진홍목사의 석방을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기도는 헛되지 않아 사십일 째 되는 날 그는 기적같이 석방됩니다. 구속된 지 13개월 만이었습니다.

 



설교 테이프: 감옥 생활은 종교적 고난으로 승화되었다. 그의 깨달음이 말씀이 되어 담긴 테이프들, 그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두레 공동체 운동

 

성경에 기초하지 못한 빈민 선교에 대한 반성과 감옥에서의 사색의 결과 출소한 후 그는 좀 더 진전된 신앙운동으로써의 공동체 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청계천 빈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 정착촌 형태의 공동 생활 공간을 구하여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으로 이주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첫 번째 두레 공동체 운동은 예수님을 이장으로 모시고 사랑의 법만으로 운영하며 무소유의 정신으로 모든 재산은 공유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험 없이 시작한 공동체 생활은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1년이 되기 전에 실패하고 맙니다. 때마침 불어닥친 축산물 파동으로 남양만 일대가 큰 피해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것도 한 이유였습니다. 그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소수 정예의 신앙심 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2차 두레 공동체를 발족합니다. 1986년의 일이었습니다.

 

 


남양만 활빈교회: 80년대와 90년대를 이끈 두레 공동체 운동의 중심지: 농촌선교와 지역 공동체 운동이 자립에 기초해야 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두 번째 운동은 농가의 자립을 최우선으로 하여 안정적인 생산물 판로를 확보하고 열심히 일한 만큼 더 가져 갈 수 있는 인센티브를 장려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개개인들에 대한 성경적인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공동체가 서로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곳에서 고치기를 포기한 심령이 상한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기적적인 치유의 은사가 나타나도록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두레 공동체 운동은 오래 계속되어 그의 간증 같은 전도 집회를 통해 기독교인들에게 퍼져갔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 같은 곳이 되어 갔습니다. 실제로 어려움을 겪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두레마을에 함께하겠다고 지원하며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청계천에서 시작된 김진홍목사님의 사랑의 실천은 30년 동안 계속되어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씻어 주었고 힘든 사람들에게 안식이 되었으며 기독교인들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한 선각으로서 백성들의 신앙심 깊은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련의 저서들: 그는 책을 통해서 끊임없이 회개와 개혁을 이야기했다. 실천하는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메시지들은 힘이 있었다. 청년들은 희망을 보았고 노인들은 꿈을 꾸었다.

 

 

 

희망의 메시지

 

팔십 년대 전두환의 폭압 정치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젊음들, 특히 크리스천들에게 김진홍 목사의 메시지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기도, 사랑, 봉사, 희생, 섬김의 의미를 온몸으로 증거하는 그의 책과 설교 테이프는 진리를 갈구하는 젊음들에게도 전파되었습니다. 방언과 이적 그리고 은혜와 축복만을 추구하던 기성 교단에 실망한 젊은이들은 그의 메시지에서 길을 찾고 삶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미국에 갔다가 한 교회의 목사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빈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작했던 설교가 특별집회로 발전하고 다시 3일간의 특별성회로 늘어났습니다. 이 설교는 테이프에 담겨 놀라운 속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저는 외항선을 타는 형이 가져온 테이프를 내용이 뭔지, 누가 하는 말인지도 모르고 들었다가 크게 감동하여 그에게 빠져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오랫동안 저도 그의 메시지를 경청하며 지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상식에 기초한 성서적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독재정권에 타협해버린 한국 교단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이야기와 합리적인 판단을 기초로 바라보는 성경적 세계관, 느헤미야와 이사야와 같이 성경 속에 존재하는 개혁에 대한 메시지, 통일 한국을 바라보며 인재를 기르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말씀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선지자의 목소리였습니다.

 



대표작: 그를 세상에 알린 설교 테이프, 특히 7,8편 사랑의 공동체편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크리스천이라면 젊은 김진홍의 목소리가 담긴 이 테이프를 반드시 들어야 한다.

 

 

언젠가 YWCA 강연회에 참석했다가 목사님과 악수를 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한테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이 부끄러웠던 기억 때문에 1년 간의 금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부인하지만 상당한 영력을 갖춘 분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IMF가 닥쳐 왔을 때 저는 어려워져서 서울에 있지 못하고 평택으로 월세를 살러 가야만 했습니다. 그 때 남양만 활빈 교회 근처에 집을 구하려고 했었습니다. 사정상 그렇지 못했지만 대신 아내는 활빈 교회에서 약 일 년 정도 성가대에 참석했습니다. 저는 이층 유아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았지요. 아내와 아이들을 활빈교회에 데려다 주는 것 정도가 제 믿음의 깊이였던 것 같습니다.

 

아내의 기도 때문이었을까요? 그 후 저는 화려하게 서울에 재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10년 간을 준비해왔던 리눅스라는 인터넷 운영체계가 빛을 보면서 저는 제 인생의 전성기라고 할만한 시간을 맞이 했습니다. 목사님은 동의하시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는 활빈교회에 봉사했던 시간들이 이후 우리 가족에게 은혜로 되돌아왔다고 믿습니다.

 

 


봉화산 사색의 길: 두레마을이 있는 뒷산의 오솔길, 김진홍 목사는 문제가 있으면 이 길을 걸으며 묵상했다고 한다. IMF 시절을 겪었던 나도 이 길을 많이 걸었었다.

 

 

 

목사님도 활빈교회를 넘어서 두레 공동체 운동이 확산되고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실천한 대표적인 분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2001년 양수리에서 열렸던 목사님의 회갑연에서 삼십 년 간의 봉사에 대한 존경심을 품고 수 많은 성도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인정할 수 있는 한 인격을 바라보며 행복해했습니다.

 

함께 굽고 함께 먹었던 돼지 불고기 파티도 좋았습니다. 저는 돼지고기를 구우며 생각했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일생에 걸쳐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성공하셨습니다. 세상에 희망을 주고 귀감이 되셨습니다. 저도 님과 같이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진심으로 목사님을 축복했습니다. 아아 그 날로 시간이 멈출 수 있다면…… 물 맑은 양수리의 아름다운 저녁 노을과 함께 이 이야기가 끝날 수 있다면……

 



양수리 회갑연: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은 목사님의 회갑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는 원효와 같은 열린 신앙을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날이 김진홍 목사가 가장 높임을 받은 날이었다. 2001년 6월 16 일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mooksang.net/sh_admin/news_img/30th_DCM_an_99.jpg

 

 

 

자기 부정의 시간

 

그 후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요? 이제 은퇴해서 지난 날을 정리하는 글을 쓰시고 후학들에게 못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최선이었겠지요. 지리산의 작은 마을에 소박한 교회를 짓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즐겁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끔씩 찾아 오는 신도들에게 차나 한잔 하라고 권하면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위로의 말씀을 해줄 수도 있었겠지요. 그렇게 저물어가는 작은 마을의 굴뚝 연기처럼 그도 편안하고 충만한 노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을 초탈한 듯, 소박하게 사셨다면 저희들은 또 다른 영적 안식처를 가진 듯 안심하고 살아낼 수 있었겠지요. 하다 하다 힘들면, 정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면, 거기에 갈 꺼야, 목사님을 만나서 뭔가 희망을 만들어 와야지, 깊은 산골에 계신 목사님으로 인하여 번잡한 삶 또한 아름답고 희망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네트웍 마케팅: 사업취지를 설명하고 있는 목사, 그의 이름은 김진홍.

이미지 출처: 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yoyogong_122766_1%5B1%5D.jpg

 

 

회갑연을 마친 후 그를 잊고 지내던 어느 날 교회에서 한 두 번 마주쳤던 분이 연락을 해 왔습니다. 그 분은 김진홍 목사의 인도아래 저희를 주제로 놓고 기도 한 후에 전도하는 심정으로 네트웍 마케팅을 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피라미드 판매를 목사님이 권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사실이었고 그는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까지 설교하고 다녔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교단 안팎의 반대에 부딪혀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순수한 뜻에서 잘 모르고 한 일일 것이라고 믿고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후 김진홍목사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걷기 시작합니다.

 

- 그는 구리 두레교회로 옮기면서 남양만두레마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며 손해를 끼쳐 그들로부터 배임, 횡령 혐의로 고발을 당했으며

 

- 모든 인간을 품어야할 성직자가 좌우를 구별하고 진보적인 인사들을 좌익이라고 타도의 대상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 친미적, 친일적, 친자본적, 전체주의적, 성장 제일주의, 극우편향의 비성서적인 뉴라이트라는 정치 집단을 이끌고 있으며


 


이미지 출처: http://www.seoprise.com/pds_data/seoprise_11/images/1213234525.jpg



 

- 교계 지도자임에도 특정 정당의 정치에 관여하여 특정 대통령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여 선거법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고소 고발을 당했으며


 


이미지 출처: http://photo-media.daum-img.net/200711/27/newsis/20071127144513.779.0.jpg

 

- 영적 지도자로서 쓴 아침묵상 편지에 다섯차례나 부도덕한 정치 지도자를 지지하는 글을 썼으며

 

- 오로지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란 이유로 특정 정치인을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그의 모든 부패에 눈을 감았으며

 

- 말할 수 없이 부도덕한 후보를 가장 도덕적이고 깨끗한 후보라고 하나님앞에서 서언하였으며

 

-  자신의 교회 신도인 구리시장과 결탁하여 70억원대의 초 대형 교회를 건축하며 온갖 편법을 동원하였으며

 


이미지 출처: http://www.gurinet.org/imgdata/gurinet_org/200805/2008052010015483.jpg

 

- 불법건축물로 판결이 난 구리 두레교회는 근처 주민들과 불화하여 고소 고발을 당했으며

 




 

-  정권의 홍위병이 되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공영방송의 임원들을 우익으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공영방송을 민영화하여 타락시키는데 앞장 서고 있으며

 

-  온 나라 백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광우병 소고기 수입을 수출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찬성하고 있으며






 

-  경제성이 없다고 밝혀진 대운하를 주장하며 민의를 배신하고 있으며

 

-  국민을 부하로 생각하는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그를 따라 오로지 경제적인 삶만을 중요시하는 듯한 발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지도자의 도덕성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명박의 CEO 경력이 이나라를 구할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말합니다. 검찰의 BBK 수사를 선지자가 받아야 할 고난의 과정으로 인식할 뿐이며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수출증대를 하는 것이 이 나라를 선진국으로 이끄는 방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것은 김진홍 목사님께서 그토록 강조해오시며 실천해 오셨던 지도자를 기르는 일에도 위배됩니다. 지도자의 덕목으로써 정직을 최우선으로 말씀하시며 목사님께서 예를 들었던 안창호 선생님을 안창호씨라고 부르는 자를 어찌 이 시대의 지도자라고 주장하고 계십니까? 아무리 그리스도 안에서 헌신할 지도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시더라도 정말 그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구리 두레교회 내부: 세상에 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교회는 크고 넓어졌으나 열정은 찾기 힘들다.

 

 

 

느헤미야의 개혁 정신에 비추어도 이명박은 자격미달이지 않습니까? 국민에 대한 설득과 참여에서 시작한 느헤미야의 개혁을 주장하셨으면서 어찌 그의 회개를 이끌어내지 않고 있습니까?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은 여호수와, 도덕성을 드높인 에스라, 비전을 제시한 다윗, 솔로몬의 지혜를 높여주시고, 르호보암의 공안통치를 꾸짖던 님께서 지금은 어디에 서 계십니까? 어떻게 사십년을 민족의 지도자 기르는 일에 헌신하신 목사님께서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를 버리고 가시나무를 세우고 계십니까?

 

이 모든 것을 떠나서 이제 목사님의 설교는 새롭지도 아름답지도 즐겁지도 은혜롭지도 않습니다. 더 이상 설교 말씀 중에 미소를 짓지도 않습니다. 개혁을 설파하던 목사님의 목소리는 스스로를 배신하는 허구의 언어로 변했습니다. 세상에 외치던 정의로운 메시지는 저주의 주문이 되었습니다. 심각한 어조로 세상을 비난하는 목소리와, 빚더미에 앉은 교회를 위한 십일조에 대한 강조와, 백억원을 일시에 헌납할 사람이 나올것이라 믿는 아집만 보일 뿐입니다.

  



두레교회 외부: 서울 외곽 순환 고속도로에서도 잘 보일 정도로 높고 큰 교회, 건물의 크기와 반비례하여 우리들 마음 속에서 그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는 호렙산 가시나무에 불을 불여서 모세에게 경고하셨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불을 불이러 오신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고난 중에 깨달으신 님의 말씀을 들으며 살아온 저에게 있어서 촛불집회는 그 불이 붙은 현장으로 보입니다.

 

지도자 복이 없는 이 나라 백성들은 고난의 시간들을 스스로 개척하며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백만명이 모여도 아무런 사고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질서있게 치루어지고 있는 촛불집회는 그 열정에 비해 너무나도 이성적입니다. 저는 단언컨대 이 땅의 백성들이 가장 선진적이며 최첨단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던 예수님께서 촛불 하나하나에 임하고 계십니다. 촛불 집회는 바로 역사 속에서 구현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촛불집회: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물대포로도 총칼로도 이 불은 끌 수 없다. 예수님의 종이라 일컫는 그대들이여 이 곳은 성스러운 곳이다. 신을 벗어라!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나라를 걱정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구하셨던 분들이 어찌 우리 눈앞에 임한 이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지막 희망은 놓치 않았습니다. 이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의 진정한 회개가 있게 된다면 주께서 당신을 새롭게 하실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 날이 더 이상 늦지 않기를!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지나가지 않기를!

 

목사님을 위한 기도

 

주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고난 중에도 희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이제 촛불을 들고 세상에 불을 붙여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올바른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또한 그 오랜 세월 하나님의 나라를 간구하며 사랑을 실천하셨던 우리 목사님을 바른 곳으로 인도해주시옵소서. 주의 종되신 목사님께서 더 이상 저주의 언어로 스스로를 더럽히고 신도들을 타락시키며 교회를 욕되게 하고 나라를 환란에 빠뜨리지 않게 하소서. 이렇게 끝내기에는 한 인간으로서 목사님이 쏟았던 실천의 시간들이 너무나 길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새롭게 이 나라의 영적 지도자로 다시 설 수 있게 하소서.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주의 뜻대로 하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죄송합니다. 목사님의 회개가 있기 전에, 정말로 저의 음성이 하늘에 닿을까 두려워 차마 아멘 만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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