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예지원: 그녀에게 예의를!! 본문
내 안의 사람들 7. 예지원편 그녀에게 예의를 이미지 출처 http://www.koreafilm.co.kr/movie/2424/03.jpg
새로운 시작
그녀가
로미오와 줄리엣 사이에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seojen/140007029542
회사를 뺏으려는 암투를 그린 자극적인 소재와 사채업자들까지 등장하는 충격적인 내용 그리고 감초역으로 등장하는 깐돌이 이미지의
필요 이상으로 팽팽한 얼굴은 언제나 어색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억지로 피부 근육을 끌어당겨서 만들어내는 듯한 표정들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상대방 연기자도 똑바로 쳐다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뻣뻣하게 대사를 쳤습니다. 생기 있는 다른 배우들 특히 조연들의 톡톡 튀는 연기가 재미를 주었지만 그녀가 분한 채린이만 나오면 드라마는 현실감을 잃어 버리고는 했습니다. 그 당시
연기도 못하고 대사를 책 읽듯 하면서도 뛰어난 미모 덕에 인기를 유지하는 배우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광고에만 출연하면서도 배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 것도 안 해도 배우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성형 기술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을 수 있게 해줍니다. 사진 보정 기술은 이미지 조작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얼굴 빼고는 모든 부분을 대역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동영상조차도 컴퓨터그래픽으로 교정이 가능하지요. 원하기만 한다면 그 이미지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젊고 예뻐지는 배우들은 불로의 존재인 듯도 합니다.
저는 그 때
잘못된 시작
그러나 TV에서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그녀가 있다는 것을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까지 바꾸고 지우고 싶었던 그녀의 과거는 어두운 곳에서 은밀히 거래되는 자료들 속에서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 정보는 점점 더 확대되면서
이미지 출처: http://image.cine21.com/resize/cine21/still/2005/0526/M0020219_4%5BW600-%5D.jpg
공식 프로필에는 전혀 거론되지 않는 뽕이라는 웃기는 제목의 영화가 원죄와 같이 그녀를 따라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문제가 있습니다. 뽕이라는 영화는 팔십 년대 최고의 인기 여배우
저는 여주인공이
“줄리엣의 남자”와 뽕96의 여주인공이 같은 배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참으로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발랄하고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하던 배우가 그토록 부자연스러워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출연 장면 중에서 야한 부분만 모아 놓은 동영상을 사람들이 돌려보고 있을 때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안타까움은 그러나 그녀를 대하는 세상을 보면서 더욱 더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 살의 그녀에게 영화 주연 자리가 얼마나 크게 보였을까요? 더구나 그 영화가 당대 최고 인기 여배우가 출연했었던 영화의 리메이크 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출세가 보장된 것처럼 여겨져 희망에 부풀었을 지도 모릅니다. 최고의 여배우로 우뚝 설 수 있을 기회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여배우의 성적인 부분을 노골적으로 부각시켜 남자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목적인 싸구려 영화를 만들려는 제작자와 감독들 앞에서 가련한 어린 여배우는 멋모르고 그렇게 옷을 벗고 노출 연기를 했겠지요. 그들이 예술을 이야기하고 고전 문학을 이야기하고 해학을 이야기했겠지만 영화라는 비즈니스 속에서 그들이 원한 것은 그저 노출신에 적당한 몸매를 가진 연기되는 여배우였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개봉 후에서야 그 영화가 자신의 경력을 빛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소모시켜버리는 늪과 같은 영화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겠지요.
마당놀이로 연극으로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 그녀의 긴 슬럼프가 이어졌습니다.
갈 수 없는 길
누군가 저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남산에 가려면 어디로 가면 됩니까?”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팔팔 순환도로로 가면…… 북단으로 가기가 힘들지…… 남부 순환도로로 가면…… 반대로 가게 되니까 안되고…… 강북 강변로로 가면…… 너무 막힐꺼야…… 저는 오랫동안 따져 본 후에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기서는 남산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상대편은 저를 비웃으면 말했습니다. “아니 세상에 갈 수 없는 곳이 어디 있단 말이요?” -- p61, 포지셔닝, 잭트라우트와 알리스, 안진환역, 을유문화사, 2003.
그녀는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저를 연기로 인정하게 할 수 있나요?”
저는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한국 무용의 전공을 살려 마당놀이에 출연해도, 여성의 성을 주제로 한 파격적인 연극을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술 감독의 진지한 영화에 한 히로인으로 출연해도 그녀는 성적인 이미지로 소모될 뿐이었습니다. 정치와 성을 풍자한 부조리 코미디의 주연을 맡아도 사람들은 영화의 메시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출연한 부분만을 잘라서 돌려 볼 뿐이었습니다. 교복을 입고 나와서 흑장미파 두목을 연기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를 희한하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참 애쓴다” 기껏해야 그녀는 이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애써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 후에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이제 연기로써 인정받는 여배우로서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playvagina.com
이미 신인상과 여우 주연상까지 받고 고래사냥과 같은 불후의 명작으로 대중에게 정상급 여배우로 각인된
무지의 힘
잔인한 세상,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이제 일련의 영화들: 여고시절, 나쁜 여자들, 2424를 거쳐 여전히 인기 여배우라면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은 배역들만 줄기 차게 맡았다. 정치계를 풍자한 영화로도 이미지 출처: http://www.koreafilm.co.kr/movie/pleasehanpyo/main_poster.jpg
긴 슬럼프 후에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시작했으나 그녀에게 들어오는 배역은 결코 뽕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않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녀의 슬럼프가 너무나 길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의 인식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던 것일까요?
이미지 출처: http://www.koreafilm.co.kr/movie/life/7.jpg
예술적 장치로써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한 여배우를 그토록 처절하게 소모시키는 역들이 필요했는지 의문입니다. 필요했었다고 하더라도 꼭
이미지 출처: http://www.koreafilm.co.kr/movie/cute/new_10.jpg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애로배우라면 그녀는 애로배우로 활동하면서 그 속에 뭔가 새롭고 의미 있는 것을 담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그녀 만의 노력이었겠지만 바닥까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에게 배역이 들어오지 않을 걱정은 없었습니다. 열심히 할수록 더욱 더 독한 배역이 들어왔고 그녀의 바램은 더욱 더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기적이란 이렇게 무모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미다 ?
올드미스다이어리의 미자역도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연기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여배우에게 시트콤 주연이 무슨 매력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여배우로서의 품위는 기대할 수도 없고 넘어지고 깨지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그런 역할이었지요. 열심히 하면 할수록 배우의 생명을 갉아 먹는 배역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무시당하고 천대 받아온
이미지 출처: http://www.movist.com/article/read.asp?type=13&id=13557 미자는 무능하고 나이만 찬 직장인입니다. 실업과 휴업을 반복하는 동안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탈출 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한탄하며 삽니다. 이미지 출처: 올드미스 다이어리 DVD 캡쳐, 이하 동일 그녀를 무시하는 세상에 대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언제나 상상으로 그치고 맙니다. 실수 연발의 그녀는 어느 날 처음 만나는 나이 어린 후배 상사 지피디에게 꼴불견인 모습을 들키고 맙니다. 한 때 좋아했던 남자는 어느 새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고 그 여자 또한 그녀를 비웃으며 지나갑니다.
꾸짖고 있는 남자가 사랑을 들킬까 봐 오바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게 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그녀의 믿음은 그러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두 남자는 그들 사이의 또 다른 여자 때문에 싸운 것이란 사실이 밝혀 집니다. 지피디가 미자는 그냥 직장 동료에 불과하다는 진술을 하는 것을 엿들은 미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피디의 석연찮은 행동에서 사실은 미자가 정확히 진심을 알고 있었으며 속은 것은 관객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들은 모두 숨어서 그녀의 벗은 몸을 즐겼고, 음란한 상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배우됨과 연기력을 보여줄 기회가 있을 것이란 신념으로 최악의 배역을 기꺼이 받아 들인 채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들이대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 모든 몰상식에 항거하여 영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결코 그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참다 못한 그녀는 확성기를 들고 지피디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외칩니다.
진정한 시작
그 모습을 보면서 미자가 아니
가슴 밑바닥까지 아려오도록 울부짖는
그래요, 이젠 됐어요. 그만 해도 돼요. 나도 당신을 사랑해 줄게요. 아니 예의를 갖추어서 조심스럽게 대해줄게요. 이젠 안심해도 돼요. 거친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힘겹게 살아온
그래요, 당신은 여전히 아름다워요. 절망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아름다움. 세상의 인식에 도전하여 불가능한 싸움을 해낸 용감한 여인. 그 어느 누구보다 더 넓은 연기의 스펙트럼을 확보한 배우, 당신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세상의 모든 것들아, 이 시대, 진정한 여배우로 우뚝 선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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