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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예지원: 그녀에게 예의를!! 본문

글 쟁이로 가는 길/내 안의 사람들

예지원: 그녀에게 예의를!!

미닉스 김인성 2009. 11. 26. 13:59
 

내 안의 사람들 7. 예지원편

 

그녀에게 예의를

 

예지원: 그녀는 백치미를 가진 코믹한 여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들은 연기력보다는 그녀의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물론 뒤에서는 출연작의 엑기스만을 간추린 동영상을 돌려보면서 야한 모습의 그녀를 기억할 뿐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koreafilm.co.kr/movie/2424/03.jpg

 

 

새로운 시작

 

그녀가 예지원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것은 2000년에 방영된 TV 드라마 줄리엣의 남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전에 같은 이름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겠지만 예지원씨가 그녀의 본명 혹은 이전 예명을 언제 버렸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프로필에도 데뷔 초기 부분을 부정확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름을 바꾸면서 그전 모습이 함께 잊혀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사이에 차태현이라는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인이 끼어들면서 줄리엣은 방황을 하게 됩니다. 수호천사 차태현의 끝없는 도움을 뿌리치고 로미오에게 가려고 했었던 줄리엣은 결국 두 남자 모두를 버렸고 동시에 버림 받게 됩니다. 로미오 지진희의 멋진 모습과 차태현의 자유 분방함이 돋보였던 드라마였습니다.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 이미지가 이미 이때부터 차태현의 모습에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엽녀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했던 탓인지 이 드라마가 엽녀 이전에 방영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신기해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줄리엣의 남자: SBS에서 2000년에 방영된 드라마. 대부분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전환점이 된 드라마다. 조재현의 코믹한 감초 연기는 환상의 커플의 공실장까지 이어져왔다.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seojen/140007029542

 

 

회사를 뺏으려는 암투를 그린 자극적인 소재와 사채업자들까지 등장하는 충격적인 내용 그리고 감초역으로 등장하는 깐돌이 이미지의 조재현, 아직은 신인이었던 멋쟁이 지진희와 주인공 차태현까지…… 지금보면 정말 화려한 출연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딱 한 명, 여주인공 예지원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니 어색한 연기에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거슬렸던 부정적인 존재감은 있었습니다. 발성도 이상하고 시선처리도 미숙한, 그야말로 난감한 모습의 여주인공이었지요.

 

필요 이상으로 팽팽한 얼굴은 언제나 어색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억지로 피부 근육을 끌어당겨서 만들어내는 듯한 표정들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상대방 연기자도 똑바로 쳐다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뻣뻣하게 대사를 쳤습니다. 생기 있는 다른 배우들 특히 조연들의 톡톡 튀는 연기가 재미를 주었지만 그녀가 분한 채린이만 나오면 드라마는 현실감을 잃어 버리고는 했습니다. 그 당시 예지원씨가 카메라를 두려워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연기도 못하고 대사를 책 읽듯 하면서도 뛰어난 미모 덕에 인기를 유지하는 배우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광고에만 출연하면서도 배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 것도 안 해도 배우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성형 기술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을 수 있게 해줍니다. 사진 보정 기술은 이미지 조작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얼굴 빼고는 모든 부분을 대역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동영상조차도 컴퓨터그래픽으로 교정이 가능하지요. 원하기만 한다면 그 이미지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젊고 예뻐지는 배우들은 불로의 존재인 듯도 합니다.

 

저는 그 때 예지원이란 배우가 연기를 못함에도 이미지로 인기나 얻으려는 한 명의 여배우라고 생각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상한 여배우, 재수 좋으면 인기를 얻어 광고에나 나오겠지만 그냥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더 큰 가련한 여배우. 그렇게 판단 하고서 예지원씨를 잊었습니다.

 

 

잘못된 시작

 

그러나 TV에서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그녀가 있다는 것을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까지 바꾸고 지우고 싶었던 그녀의 과거는 어두운 곳에서 은밀히 거래되는 자료들 속에서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 정보는 점점 더 확대되면서 예지원씨가 TV로 연극으로 그 영역을 넓힘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인기 자료가 되어 있었습니다.

 


96: 예지원의 데뷔작, 85이미숙 이대근 주연의 뽕을 리메이크 했다. 격찬을 받은 1편과는 달리 중간에 만들어진 뽕2,3편은 완성도가 낮았지만 4편 격인 이 영화는 1편에 못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스무 살짜리 예지원의 코믹한 애로 연기가 발군이며 최종원 조형기의 연기 또한 일품이다.

이미지 출처: http://image.cine21.com/resize/cine21/still/2005/0526/M0020219_4%5BW600-%5D.jpg

 

 

 

공식 프로필에는 전혀 거론되지 않는 뽕이라는 웃기는 제목의 영화가 원죄와 같이 그녀를 따라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문제가 있습니다. 뽕이라는 영화는 팔십 년대 최고의 인기 여배우 이미숙씨의 주연으로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그 후 4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지원씨의 1996년 작까지 당대의 인기 여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그녀들이 뽕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배우 생활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숙씨는 뽕에 출연한 후에도 최정상의 여배우 지위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그녀가 그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더구나 2,3편의 형편없는 완성도에 비해 뽕96은 결코 조형기의 농담 속에 묻힐 만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상황 설정이 코믹하고 야한 장면을 삽입하려는 지나친 의도가 보이기는 하지만 예지원의 연기와 마을 주민간의 감정 대립이 살아있는 정말 제대로 만든 영화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주인공이 예지원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봤었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분명한 기억이 있었습니다. 몸 팔아 먹고 사는 예지원에게 무시당하는 조형기의 광기에 찬 분노와 그런 남자에 맞서 끝끝내 자존심을 지켜내는 한 여인의 독한 마음을 보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애로 영화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지금 기억해봐도 쓸데없이 삽입되었던 야한 장면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단순히 애로물로 치부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던 영화였음이 틀림없습니다. 놀음에 빠져 아내를 돌보지 않는 남편 역의 최종원의 그 무거운 침묵 연기도 발군이었습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남편에게 놀음에 쓸 줄 뻔히 알면서도 몸 판 돈을 내어 놓는 예지원의 맹목적인 사랑도 눈물겨웠습니다.

 

 

줄리엣의 남자와 뽕96의 여주인공이 같은 배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참으로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발랄하고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하던 배우가 그토록 부자연스러워진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출연 장면 중에서 야한 부분만 모아 놓은 동영상을 사람들이 돌려보고 있을 때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안타까움은 그러나 그녀를 대하는 세상을 보면서 더욱 더 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 살의 그녀에게 영화 주연 자리가 얼마나 크게 보였을까요? 더구나 그 영화가 당대 최고 인기 여배우가 출연했었던 영화의 리메이크 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출세가 보장된 것처럼 여겨져 희망에 부풀었을 지도 모릅니다. 최고의 여배우로 우뚝 설 수 있을 기회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여배우의 성적인 부분을 노골적으로 부각시켜 남자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목적인 싸구려 영화를 만들려는 제작자와 감독들 앞에서 가련한 어린 여배우는 멋모르고 그렇게 옷을 벗고 노출 연기를 했겠지요. 그들이 예술을 이야기하고 고전 문학을 이야기하고 해학을 이야기했겠지만 영화라는 비즈니스 속에서 그들이 원한 것은 그저 노출신에 적당한 몸매를 가진 연기되는 여배우였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개봉 후에서야 그 영화가 자신의 경력을 빛내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소모시켜버리는 늪과 같은 영화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겠지요.

 

마당놀이로 연극으로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 그녀의 긴 슬럼프가 이어졌습니다.

 

 

갈 수 없는 길

 

누군가 저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남산에 가려면 어디로 가면 됩니까?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팔팔 순환도로로 가면…… 북단으로 가기가 힘들지…… 남부 순환도로로 가면…… 반대로 가게 되니까 안되고…… 강북 강변로로 가면…… 너무 막힐꺼야…… 저는 오랫동안 따져 본 후에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기서는 남산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상대편은 저를 비웃으면 말했습니다. 아니 세상에 갈 수 없는 곳이 어디 있단 말이요?

-- p61, 포지셔닝, 잭트라우트와 알리스, 안진환역, 을유문화사, 2003. 김인성 각색.

 

그녀는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저를 연기로 인정하게 할 수 있나요?

 

저는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한국 무용의 전공을 살려 마당놀이에 출연해도, 여성의 성을 주제로 한 파격적인 연극을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술 감독의 진지한 영화에 한 히로인으로 출연해도 그녀는 성적인 이미지로 소모될 뿐이었습니다. 정치와 성을 풍자한 부조리 코미디의 주연을 맡아도 사람들은 영화의 메시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출연한 부분만을 잘라서 돌려 볼 뿐이었습니다. 교복을 입고 나와서 흑장미파 두목을 연기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를 희한하게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참 애쓴다 기껏해야 그녀는 이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애써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본 후에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이제 연기로써 인정받는 여배우로서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여성의 성을 주제로 한 연극. 예지원도 출연했다. 성적인 담화를 여배우가 관객 앞에서 용감하게 풀어 놓는다. 예술의 한 표현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출연 배우의 격조를 높여줄 수 있지만, 물론 애로배우 이미지의 예지원과는 무관한 일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playvagina.com

 

 

이미 신인상과 여우 주연상까지 받고 고래사냥과 같은 불후의 명작으로 대중에게 정상급 여배우로 각인된 이미숙씨가 뽕에 출연한 것은 팬 서비스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아무 것도 없었던 예지원씨의 출연은 이미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애초에 예지원씨는 잘못된 포지셔닝으로 배우의 길을 시작한 것입니다.

 

 

무지의 힘

 

잔인한 세상,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이제 예지원씨는 너무나 견고하여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일, 인생 선배가 가르쳐 주는 것, 세상의 모든 지식과 경험이 말해 주는 것, 계란과 바위, 피를 끓게 만드는 도전의 열정을 주지만 또한 그 분명한 실패란 결과도 함께 주는 것. 마케팅 교과서에서 언제나 비웃음 받는 일, 바로 세상의 인식과 싸우는 무모한 도전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일련의 영화들: 여고시절, 나쁜 여자들, 2424를 거쳐 여전히 인기 여배우라면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은 배역들만 줄기 차게 맡았다. 정치계를 풍자한 영화로도 예지원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영화들은 동영상 컬렉터들의 수집 목록만 늘여줄 뿐이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koreafilm.co.kr/movie/pleasehanpyo/main_poster.jpg

 

 

 

긴 슬럼프 후에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시작했으나 그녀에게 들어오는 배역은 결코 뽕에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않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녀의 슬럼프가 너무나 길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의 인식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던 것일까요? 예지원씨는 그 후 제작자와 감독 그리고 작가들이 주는 독배를 서슴지 않고 받아 마시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 마신 독배는 더욱 쓰고 독한 독이 담긴 새로운 독배만을 불러올 뿐이었습니다. 그녀의 처절한 노력이 계속되면서 저는 안쓰러움 속에서 그녀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생활의 발견: 여배우로서 하기 힘든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장면이 아니라도 예지원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충분히 값싼 여자로 묘사 되었다. 홍상수는 결코 예지원을 구원해주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도 고현정은 그레이스 켈리로 보였을까? 해변의 여인에서 그녀에게 굴복한 홍상수에게서 나는 더 이상 예술을 구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http://www.koreafilm.co.kr/movie/life/7.jpg

 

 

 

예술적 장치로써 꼭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한 여배우를 그토록 처절하게 소모시키는 역들이 필요했는지 의문입니다. 필요했었다고 하더라도 꼭 예지원씨였어야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수위를 조절할 줄도, 자기 이미지 관리에 능하지도 못했던 예지원이라는 한 여배우를 그들은 정말 극한까지 몰고 갔지요. 여배우이기 이전에 한 여성으로서도 수치스러울 정도로 그녀를 짓이겼습니다. 그럼에도 예지원씨는 그 속에 눈요기 감으로 전락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뭔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귀여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기이한 영화. 평론가들은 자신들이 버린 시간이 아까워 복수하는 심정으로 최고점을 주었다. 예지원의 귀여움만이 두드러지고 배우들도 거기에만 몰입해 들어간다. 예지원이 아니면 결코 찍을 수 없었을 영화. 물론 아무도 그녀의 연기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http://www.koreafilm.co.kr/movie/cute/new_10.jpg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애로배우라면 그녀는 애로배우로 활동하면서 그 속에 뭔가 새롭고 의미 있는 것을 담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그녀 만의 노력이었겠지만 바닥까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에게 배역이 들어오지 않을 걱정은 없었습니다. 열심히 할수록 더욱 더 독한 배역이 들어왔고 그녀의 바램은 더욱 더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기적이란 이렇게 무모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미다 ? 예지원에 대한 완벽한 은유

 -- 주의: 이 뒷부분은 올미다에 대한 극악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이 다음 부분을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올드미스다이어리의 미자역도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연기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여배우에게 시트콤 주연이 무슨 매력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여배우로서의 품위는 기대할 수도 없고 넘어지고 깨지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그런 역할이었지요. 열심히 하면 할수록 배우의 생명을 갉아 먹는 배역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무시당하고 천대 받아온 예지원씨의 내공은 미자에게 입체적인 사실성을 부여했고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 그녀의 연기에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TV 시트콤이었던 드라마가 그 인기를 바탕으로 놀랍게도 영화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정말로 드문 일이었습니다.

 


올드미스다이어리: 삼 십대 미혼 여성들의 삶에 관한 영화. 비슷한 주제의 외국 드라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 자체로 감동적인 의미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크게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극장 재개봉까지 이루어낸 열광적인 관객층을 확보함으로써 컬트 무비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movist.com/article/read.asp?type=13&id=13557

 



미자는 무능하고 나이만 찬 직장인입니다. 실업과 휴업을 반복하는 동안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탈출 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한탄하며 삽니다.

이미지 출처: 올드미스 다이어리 DVD 캡쳐, 이하 동일

 

그녀를 무시하는 세상에 대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언제나 상상으로 그치고 맙니다.

 

실수 연발의 그녀는 어느 날 처음 만나는 나이 어린 후배 상사 지피디에게 꼴불견인 모습을 들키고 맙니다.

 

한 때 좋아했던 남자는 어느 새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고 그 여자 또한 그녀를 비웃으며 지나갑니다.

 


대 놓고 무시하는 어린 상사 때문에, 그녀에게 함부로 하는 좋아했던 남자 때문에 그녀는 언제나 서러워서 눈물이 납니다. 그렇게 구원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지피디의 무뚝뚝하고 냉정한 표정 뒤에 숨어 있는 어리고 여린 마음을 발견합니다.

 


커피 심부름을 시킨 상사가 미워서 침을 뱉는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그에게도 아주 작은 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고자질이 두려워 억지로 술을 사는 것을 자신과 데이트하는 것이라고 믿어 버리는 그녀, 언제나 오바와 지레짐작으로 일을 그르쳐왔음에도 같은 패턴을 반복합니다.

 

꾸짖고 있는 남자가 사랑을 들킬까 봐 오바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게 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그녀의 믿음은 그러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의 확신에 대해 의심을 품는 친구들에게 행간의 의미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런 그녀의 마음과는 별개로 영화는 그녀가 발견한 것들이 착각일 것이라는 의심을 품고 그녀의 행동을 따라갑니다.

 


저기요 저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말하는 거 다 거짓말이에요. 그래요 믿어요. 막무가내로 믿고 들이대는 그녀 때문에 지피디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도와줍니다. 그녀는 그것조차 믿음의 증거로 확신해 버립니다. 영화가 계속될수록 미자가 믿고 추구하던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심증을 굳히게 만듭니다.

 


예전의 바람둥이 박피디는 미자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해 다시 대시하고, 이런 모습을 지켜 보는 지피디의 모습도 함께 보여줍니다. 영화는 복선을 깔고 관객을 속인 채 등장 인물들까지 진실을 오해하게 만들면서 절정으로 치달아 갑니다.

 


박피디 실종 사건 때문에 관련 인물들의 생각이 다 드러납니다. 그러나 미자가 생각하고 있는 진실은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두 남자가 모두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미자의 믿음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관객에게도 끝내 착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두 남자는 그들 사이의 또 다른 여자 때문에 싸운 것이란 사실이 밝혀 집니다. 지피디가 미자는 그냥 직장 동료에 불과하다는 진술을 하는 것을 엿들은 미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피디의 석연찮은 행동에서 사실은 미자가 정확히 진심을 알고 있었으며 속은 것은 관객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절망적인 마음에 오랫동안 누워 있던 미자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국수를 먹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다시 뭔가를 먹어야만 하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리가 필요했을까요? 미자는 결국 지피디를 찾아 갑니다.

 

 

 

우리들은 모두 숨어서 그녀의 벗은 몸을 즐겼고, 음란한 상상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배우됨과 연기력을 보여줄 기회가 있을 것이란 신념으로 최악의 배역을 기꺼이 받아 들인 채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들이대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 모든 몰상식에 항거하여 영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결코 그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참다 못한 그녀는 확성기를 들고 지피디에게 아니 우리들에게 외칩니다.

 

 


왜 나한테 뭐라 그래? 왜 내가 어떻게 했다구. 왜 나한테 함부로 해. 내가 그렇게 만만해? 내가 그렇게 우스워? 왜 나를 독하게 만들어? 왜 예의를 안 지켜? 단 둘이 술마시고, 만나주고 그랬으면, 사랑하지 않아도, 그냥 사랑해줘야지, 그게 예의야. 알어? 그게 예의야 예의.

 

 

진정한 시작

 

그 모습을 보면서 미자가 아니 예지원씨가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여태까지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예지원씨의 동영상들을 돌려 보던 녀석들 곁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지만, 아니 저도 같이 낄낄대며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젠 그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젠 당신이 여태까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당당히 말해 줄 용기가 생겼습니다. 배우로서, 한 인격으로서 당신이 이렇게 소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졌습니다. 예지원씨는 정말 뛰어난 배우라는 것을 이젠 소리 높여 외쳐도 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96이라는 영화가 예지원씨의 데뷔작임을 당당히 말해도 된다고 믿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그 영화는 결코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슴 밑바닥까지 아려오도록 울부짖는 예지원씨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요, 이젠 됐어요. 그만 해도 돼요. 나도 당신을 사랑해 줄게요. 아니 예의를 갖추어서 조심스럽게 대해줄게요. 이젠 안심해도 돼요. 거친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힘겹게 살아온 예지원, 당신이 배우로서 인정받기 위해 해왔던 노력은 반드시 보상받게 될 거에요. 희망은 종종 기적을 낳기도 하니까요.

 

그래요, 당신은 여전히 아름다워요. 절망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아름다움. 세상의 인식에 도전하여 불가능한 싸움을 해낸 용감한 여인. 그 어느 누구보다 더 넓은 연기의 스펙트럼을 확보한 배우, 당신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세상의 모든 것들아, 이 시대, 진정한 여배우로 우뚝 선 우리의 예지원씨에게 이젠 예의를!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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