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도올, 돌아온 탕아 -- 6. 김용옥편 본문
이글은 누구나 얻을 수 있을 정보를 근거로 쓰는 글입니다. 글에 언급된 사람들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개인적인 접촉을 하거나 근거가 불확실한 뒷얘기를 찾아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들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알게 된 이야기까지 무시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위대한 인간은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씁니다. 알려진 바와 달리 그들에게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 글이 속 모르고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으로 판단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므로 제목과 같이 이 글은 객관화된 인물이 아닌 오로지 제 머리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저는 부정하고 싶지만 고백컨대 그들의 이름을 빌어서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안의 사람들 6. 김용옥편
도올, 돌아온 탕아
김용옥: 칠판과 한복, 깨끗이 밀어버린 머리, 카랑카랑한 목소리, 도올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조용하게 시작하지만 곧 핏대를 세우고 소리를 질러댈 것이 틀림없다. 손이 마치 그의 입에서 퍼질 음파처럼 보인다.
이미지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196254.html
시작이 곧 끝
도올 김용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중퇴하기는 했지만 신학대학교를 다닌 적도 있습니다. 학생 때 앓았던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한 고행을 계속하는 동안 한의사를 만나고 동양 철학에 심취함으로써 본격적인 철학자의 길을 가게 되었지요. 먼 길을 돌아 어디로 갔던 그의 출발이 애초에 기독교였으므로 결국 마지막 목표는 기독교 비판이 될 것임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도올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는 적지 않은 그의 저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그의 글을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간 일기장 같다고 한 적이 있을 만큼 도올의 책들은 한 철학자의 개인사의 기록으로 불릴 만 합니다. 형이상학적 주제들을 그가 살아 오면서 겪었던 위기의 순간과 잘 섞어 보여 줌으로써 어려운 철학적 내용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족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형편 없는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 공부 잘하는 나이 비슷한 조카와 비교당하던 이야기, 고려대에 대한 열등감, 연애사, 유학 시절의 고뇌와 고통들…… 철학과 인생, 그리고 삶에 대한 솔직한 토로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올이 가지고 있는 열정이 옮겨 붙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칠십 년대의 최인호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문장은 글 자체에 민감한 팔십 년대 탐미주의자들에게 정말 신선한 어떤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책: 번역과 고전의 문제를 중심으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그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몇 년 후에 나온 개정판에는 양심선언에 대한 과감한 서문이 추가되면서 서문이 더 중요한 그의 책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이미지 출처: http://cafe.naver.com/bookishman/34755
파격과 파격을 넘나들며 동양과 서양을 오가고 이천 년 전의 사상에서 불확정성에 기반한 초 현대의 철학까지, 이것들이 다시 그의 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경험과 결합한 다음 아시아의 근 현대사와 짬뽕이 되어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미래에 대한 선각자적인 혜안으로까지 승화되는 놀라운 글들, 글들 ……
그의 깊으면서도 넓고 전문적이면서도 일반적이며 상스러우면서도 격조가 있는 책들이 끊임없이 출판되었습니다. 따라 읽을 시간도 모자랄 정도의 책이 팔십 년대와 구십 년대에 쏟아져 나왔지요. 쓰다 만 듯 완결되지 않은 책도, 남의 글에 서문만 쓴 책도 그의 이름이 적혀 있으면 일단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도 그의 책을 컬렉션 해 왔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군요. 판금된 루어투어시앙쯔의 서문은 도서관에서 어렵게 복사해서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혁명과 복고
냉소적이고 비아냥거리는 투의 레닌식 문장과 촌동네 훈장님처럼 반복적으로 후진 주체식 문장들에 넌더리가 나고 건조하다 못해 말라비틀어져버린 황석영식 글들부터 썩어서 냄새 나는 내용물을 불안하게 감싸려 짙은 향기와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이문열식 글에 절망했던 저에게 있어 김용옥식 글쓰기가 또 다른 탈출구로 보였던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의 현학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문장과 너무나 개인적인 감정을 나열한 글에 넌더리를 내고 떨어져 나간 독자들이 더 많았지만……
팔십 년대의 한 쪽에서 그의 외침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고민을 놓지 못했던 젊음들에게 또 다른 도전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전두환의 군사 독재와 맞서 싸울 당면한 무기를 고민하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와 주체 사상이 아닌 새로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요. 더구나 그것이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던 공자, 맹자에 대한 재해석으로 출발한다는 것이 더 없이 신기했었던 기억도 납니다. 온고이지신에 대한 실천적 지식으로써 김용옥의 메시지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출세작: 이 책에 그가 앞으로 말할 모든 것이 다 짬뽕되어 있다. 여자란 무엇인가란 자신의 특강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고 장엄한 한 편의 대서사시를 써 내려갔다. 문제제기를 위한 서론의 도입부에 대한 기초적인 발제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근거를 몇 가지 나열하다가 끝나는 책. 아직 미완이다.
그의 파격적인 수업 방식과 한문과 영어가 충돌하는 주제들은 팔십 년대 젊음들에게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들은 풍문으로 혹은 직접 다녀온 친구들의 전언 속에서 김용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많은 경우 그에 대한 비판이 주였지요. 전달자의 부정적인 전언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어떤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익도 아니었고 진보도 아니었습니다. 사회주의 혹은 주체 사상을 받아들인 친구들에게는 부르주아적인 지적 유희를 일삼는 뭔가 의심스러운 존재였던 것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사상에 경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자기 과시가 심한 천박한 양키적 지식인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류와 비주류 양쪽에게 폄하되고 의심받고 평가절하되어 왔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그래온 것이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니까요.
도올 김용옥은 석연찮은 양심 선언을 거쳐 교수 사회 특히 고려대학교에서 파문되었으며,
번역이라는 주제로 기존의 동양학자들의 실력을 문제 삼음으로써 학자들에게서 추방되었으며,
이 천년 전의 구름 잡는 철학 책을 교과서로 삼고 있는 동안 자기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한의대생들의 솔직한 편지들을 세상에 그대로 출판함으로써 한의학계에서 이단시 되고 있으며,
태권도는 가라데가 수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태권도협회로부터 학회지에 실렸던 논문을 통째로 삭제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으며,
해방 후 깡패들이 절을 장악한 역사를 폭로하고 패 싸움판이 된 이판사판의 불교 현실에 대한 자성을 촉구하는 글 때문에 불교계에서 공적 1호가 되어 있으며,
공자에 대한 글로 비난 받고,
노자에 대한 강의로 웃음거리가 되었으며,
임권택 감독에게 흥행 감독이라는 칭호를 받게 한 장군의 아들의 시나리오를 썼지만 제작자와의 불화로 엔딩크레딧에 정당한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며,
음악과 철학의 만남을 위해 한대수 전인권과 함께 랩을 함으로써 광대짓한다는 핀잔을 받고 있으며,
그 특유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짱꼴라 옷을 입고 하는 강연으로 개그맨들의 패러디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꿋꿋하게 그의 신앙의 출발점이자 젊은 시절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절대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용감하게 털어 놓음으로써 또 다시 기독교계의 반발과 분노를 사고 철학계에서 인격신씩이나 믿고 있었냐는 비아냥을 듣고 있습니다.
길들지 않는 영혼
솔직히 저는 그의 투지와 미련함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세상과 맞서 싸우는 용기도 젊은 한 때의 열정 혹은 객기로 가능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의 이면을 보게 되면 뭔가 변화시켜보겠다고 나선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알게 되지요. 삶의 비밀이란 그저 존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 뿐이란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으로 생각되는 도올이 아직도 세상과 맞서 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팔십 년대 온 몸을 던져 현실을 고쳐 보겠다고 나섰던 젊음들, 삼팔육이든 사팔육이든 그들은 이제 타협을 배우고 중용을 기본 가치로 삼고 있지요. 안티로 살아온 시간만큼 늦어 버린 성취를 축약하기 위해서 고시나 정치로 달려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은 적도 많습니다.
그런 저에게 있어 환갑을 넘긴 도올의 지속적인 열정은 한 편 진심으로 부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를 따라 의욕적인 삶을 살아 볼까요? 죄송합니다. 저는 너무나 삶이 진부해져서, 아니 이도 저도 모두 귀찮아져서, 뭔가를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이 느껴져서, 한쪽으로 입장을 굳히는 것이 곧 손해 보는 일이라는 것을 다 알아버려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꿰뚫게 되어서…… 이젠 어떤 일에도 열심을 낼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젊은 시절 품었던 열정은 다 사그라들고 아픈 기억과 실망만 남아 이제 그 어떤 것도 믿지 않습니다. 여전히 철모르고 날뛰다가는 남은 삶마저 피폐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지배하고 있지요. 그러나 도올은…… 늦게 배운 도둑질인가요? 사십이 넘어 시작한 도올의 탐험은 환갑을 넘기고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아쉬운 점은 많지만 그 기상이 길게 계속되기를 바라는 제 마음만은 진심이라고 믿어도 좋습니다.
전염된 열정: 도올의 강의에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이 모여든다. 그의 강의는 여인들이 뜻을 품게 만들고 노인들이 꿈을 꾸게 한다.
철들지 못한 지성
그러나 도올의 열정은 수 많은 문제를 만들어 왔습니다. 아무리 그가 열심을 내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잘못들까지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포스의 어두운 면 즉 기철학을 완성하기 위해 한 일들로 그는 다음과 같은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사건을 일으키고 그 중심에서 관심 받고 있어야 안심하는 노이즈 마케터,
TV에서 철학이랍시고 떠들며 스타가 되기 위해 안달하는 텔레페서,
내용도 없는 그저 교양 수준의 상식을 떠드는 잡학 지식인,
어제는 노태우 오늘은 김우중 내일은 노무현에게 아부하며 곡학아세 하는 자,
한의사, 교수, 기자, 강사, 가수 도대체 전공도 직업도 알 수 없으며 그 중 한가지도 꾸준하게 하는 법이 없는 자,
도교, 유고, 불교, 동학, 증산교 거기다가 기독교까지 종교를 까서 돈벌이 하는 사기꾼,
유명인만 만나고 다니는 명품 환자,
목소리가 쇳소리 같아서 듣고 있으면 짜증만 나게 하는 자,
잘난 체가 끝이 없는 자칭 천재,
한가지 주제에 대해서 공자말씀, 부처 말씀, 예수 말씀, 마호멧 말씀, 소크라테스 말씀, 칸트 말씀까지 지 필요한 것만 골라서 써 먹는 지식 장사꾼.
이 모든 비난들은 유효한 것이라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는 천박하고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잘난 체가 심할뿐더러 부잣집 막내 아들 특유의 까다롭고 성질 나쁜 망나니 같은 사람이며 아직 철들지 못한 노인이라는 점을 명시해둡니다. 그를 존경하고 대접하기 위해서 별장에 초대했던 한 지방 유지는 완벽한 칙사 대접을 했으나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이불을 준비하지 못하고 그 귀하신 몸이 나이론 이불을 덥게 만듦으로써 그의 글에서 처절할 정도로 돈 밖에 없는 못 배워 먹은 졸부로 낙인 찍혀 버렸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며 저는 도올이 참으로 철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번뇌를 떨치지 못하는 자가 스님이 되고 남의 사랑만을 갈구하는 가련한 영혼이 성직을 택하며 인간에 대한 어짊이 없는 자가 공맹을 논하는 법이지요. 때문에 절에는 각목이 날아다니고 교회에는 증오가 판을 치며 동방예의지국이 가장 무례한 곳이 됩니다. 동양학으로 하버드에 가서 박사 학위까지 받아온 도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예의인 것이 그 때문입니다. 그는 오늘로 왜 자기가 비난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강대상 위에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도올이 노망 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철이 들어야 하니까요. 도올에게 수모를 당한 그 지방 유지 분에게 제가 대신 사과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철부지 도올의 못난 투정을 이해하시고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시기를……
그의 행태가 싫고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으며 그의 모습이 기분 나쁘고 그의 목소리가 짜증난다면 그를 비난하고 우리들에게서 파문시켜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자와 상대할 필요가 있을까요? 바쁜 시간을 할애하여 기분을 더럽힐 필요도 없습니다. 여태까지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그에게 신경을 꺼버렸으니까요. 김용옥만 나오면 바로 채널 돌려 버리는 분들이 대부분이지요. 더 말하기도 귀찮습니다. 꼴 보기 싫은 자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기로 하지요. 이상 끝.
들이대기: 도올이 또 누구 하나 조지고 있는 모습. 언제인지 모르게 목소리가 이미 두 옥타브는 올라가 있다. 짜증이 몰려온다.
필요악의 효용
남들 고생하고 있을 때 외국 가서 학위 해오고, 현장에서 핍박 받고 있는 사람들 뒤에서 잘난 평론이나 일삼다가 뒤늦게 숟가락 들이미는 격이라고 폄하하더라도 지난 이십 여 년 간 그가 제기한 주제들조차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사회주의에 대한 문제 많은 이해를 감안하더라도 당면한 운동의 필요성을 넘어선 철학적 사고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이즘은 결국 종교의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는 그의 문제제기는 주체 사상을 학습하고 방송을 필사하던 맹목적 젊음들에게 본질적 회의를 준 것도 사실입니다.
아름다운 지식: 한가지 주제를 위해서 동서양, 고금이 모두 봉사한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도올의 책들. 어렵기만 했던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해 준 식자는 그가 유일했다.
그 이름만으로도 경외감을 느끼던 과거의 철학자, 종교 지도자들이 우리와 다를 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과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허술한 바탕 위에 서있는지 알려 주며 지적으로 용감해지라는 주장을 펼칠 때면 도그마에 사로 잡혔던 사고가 시원하게 열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계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권위들을 가볍게 무시하는 그의 용기는 지성의 또 다른 힘으로 보였습니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에 감화 받아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도 많았지요. 진리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하게 해준 그의 책들을 성경처럼 들고 예배에 참여하듯이 그의 강연을 들으러 다니는 무리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시작하면 두 시간을 넘겨 버리는 그의 성령 충만한 강연을 듣고 나면 가서 세상을 구원해야 할 의무의 세례를 받은 듯 도 했습니다. 그가 늘 주장의 근거로 삼는 공자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의 신비화 이전 모습, 원시 불교와 초대 교회의 실상 그리고 평생 도바리만 쳤다는 동학지도자 최해월이 주관한 모임이 그러했을지도 모릅니다.
불교 철학과 고유 종교: 바람 풍이라는 한자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우리 고유의 종교에 대한 모습을 논증해 낸다. 추리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지적 탐험이다. 초기 도올의 학문적 성취가 돋보이는 책.
불교 철학에 관한 그의 책은 오히려 우리 민족 고유의 종교인 풍도에 대한 분석에 더 많은 노력이 바쳐집니다. 음운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종교란 보편 주제를 통해 과거에 전해 내려오는 문헌들을 치밀하게 분석해 들어감으로써 화랑이 육군사관생도의 과거형이 아니라 한반도에 고유한 달라이라마였음을 증명하고 불교라는 외래 종교의 성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합니다. 과거에 대한 연구가 오늘을 변화 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의 책들은 당면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투쟁만이 최선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김용옥식 박해의 표본: 이 책을 읽고 나면 김용옥에 대한 추종자가 될 수도 있다. 완전한 사실만을 가지고 누구나 알기 쉽게 진실을 알려 주는 책. 이 책은 아직도 논쟁의 한 가운데 있으며 이렇게 쉬운 책이 전혀 이해되지 않고 있다. 한 신문기자는 이 책을 소개하며 “김용옥이 태권도가 태극권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했다”라고 썼다. 게으른 전달자들은 언제나 도올을 왜곡해왔다. 이 책에는 태극권의 태자도 나오지 않는다. 도올은 읽히기 전에 비판 받으며 이해되기 전에 비난 받는다.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jblue1008/40005019480
태권도는 태껸과 같은 전통 무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단순히 가라테가 직수입된 것일 뿐이라는 태권도의 기원에 대한 그의 폭로는 너무도 시대를 앞서간 선견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제태권도협회의 남북간 대립과 가라테와의 원조 논쟁은 이미 외국에서는 상식이었음에도 아무도 한반도에 갇혀 있는 우리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태권도 협회 강연 날 진실을 담은 그의 논문만 급하게 칼로 오려낸 학회지를 보고 경악할 수 밖에 없었던 기억뿐입니다. 아직도 태권도의 기원에 대해 사회적 상식이 교정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진실을 그대로 내뱉는 그의 정직성 하나만으로도 도올은 존재가치가 있는 지성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무술은 실전 대련에서 그 가치가 나타나는 몸의 길일 뿐이다. 무술인들은 신비함 속에 숨지 말고 잠실 운동장에 모여 결투로 그 우열을 가리자!”는 발언은 동양적 무술이라는 것이 또 다른 신비화 전략에 빠진 사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의 이 발언대로 그 후 모든 무술들이 K-1과 같은 이종격투기로 실력이 낱낱이 공개되었음을 보면 도올의 선견지명은 정말로 탁월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저서는 눈 길을 주지 않더라도 태권도 철학의 구성원리라는 책은 필독해도 좋다고 감히 말씀 드립니다.
잠들지 않는 지성
좌충우돌하는 그의 행태는 자세히 보면 이런 수 많은 신비화된 권위에 대한 도전의 기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도 철학도 무술도 의학도 음악도 미술도 모두 그의 관심사이며 그가 깨부수어야 할 신비화된 권력이었던 것입니다. 전위예술가 백남준과 나눈 대화 속에서 그는 “모든 예술은 사기다”라는 백남준의 발언을 매우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이 쌓아 온 모든 권위와 권력은 신비화 과정을 거쳐 거짓으로 담을 쌓은 사기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입니다. 서로 아무것도 감출 것 없는 원초적인 시기로 돌아간다면 우리 눈을 막는 모든 것은 쓸데없는 거짓의 덩어리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도올의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본질에 대한 접근과 솔직하고 직관적인 해석을 책 혹은 방송으로 주장
이에 대해 관련된 단체와 학계의 반발
여기 저기서 김용옥에 대한 비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비난과 모독이 시작됨
김용옥이 또 시끄럽게 한다는 말만 남고 주제는 사라짐
이 과정은 학교, 학계, 종교단체, 의학단체, 무술단체, 방송국, 영화계 모든 곳에서 동일했습니다. 그는 거짓을 말할 수 없게 만들어진 자동 기계처럼 외롭고 처절하게 싸워 온 한 명의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의 문제제기가 가져온 충격파는 언제나 기존의 권위를 깨부수고 진실의 한 단면을 우리들에게 전달해준 것 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나이 들고 권위를 쌓은 사람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문제제기를 하는 자가 아름답거나 부드러울 수도 없습니다. 환갑을 넘겨 일가를 이룬 도올의 이런 식의 싸움은 아무리 평가절하하더라도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선수들끼리 업자들끼리 서로를 보호하는데 협조하지 않고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내부자 고발을 일삼고 있는 것이지요. 그가 짜증나더라도 그의 메시지는 결코 쉽게 들을 수 없는 목소리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마치 팔십 년대에 빨갱이로 비하되던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학생들의 목숨을 건 데모 행렬이 전두환의 대미 협상력을 높일 수 있게 해 준 것처럼, 그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언제나 그의 혜택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 사상, 종교, 철학, 예술, 문학, 과학, 기술 모든 분야에서 신성시 되고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처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문장을 저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배웠다는 인간들이 곡학아세 하지 않고 언제나 깨어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주는 진정한 지성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파괴의 길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인간은 변하는 법,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스스로 권위가 되고 신비를 까발김으로써 스스로 신비화가 되었습니다. 그가 기독교를 논하고 그리스 철학을 논하는 동안 그의 안방, 바로 노자 철학에 대한 그의 해석에 문제제기를 하는 책이 나타납니다.
그 책의 저자는 전문 지식인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인 이경숙씨는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에서 도올의 노자 해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크게 문제가 된 부분 중 하나: 이경숙씨는 도올 번역에 대해 암컷, 여자 소리만 나오면 환장하는 인간이다라고 썼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한 도올의 전통 번역보다 이경숙씨가 번역한 문장이 훨씬 자연스럽고 그 뜻이 분명하다.
가장 문제가 된 부분: 전통 번역은 뭔가 무난하게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번역이다.
김용옥 역: 바퀴살과 바퀴통에 대한 번역을 기존의 설을 따르면서도 도올은 뭔가 석연찮은 부분은 이해할 수 없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경숙 역: 기존의 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두 가지 설 모두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으며 어느 한 쪽이 옳다고 판단하기 애매한 구석이 많다.
그릇은 비어 있어야 쓸 수 있다는 주장을 바퀴에 대입하면 바퀴 중간에 구멍이 있어야 쓸 수 있다는 주장과 디스크 형 바퀴에 비해 바퀴 살로 된 바퀴가 가볍고 안정성이 있으므로 비어 있는 듯이 갸날프게 연결된 바퀴살 사이가 비어 있음이 바퀴의 쓸모를 만든다는 주장입니다. 그릇의 비유는 명확하지만 이 부분은 의미하는 바도 애매하고 번역하기도 애매합니다. 용감하게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측보다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쓴 도올이 훨씬 정직하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경숙씨의 책은 도올에 대한 비하가 너무 심해 읽기가 거북할 정도입니다. 기존의 학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도올에 대한 공격이 일부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고전이라는 것이 쉽고 단순한 사실을 적어 놓더라도 후학들이 온갖 미사여구와 형이상학을 갖다 붙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진면목이 가려지는 면이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경숙씨의 용감하면서도 매끄러운 번역에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도올이 여태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하자면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는 듯한 주장을 만나면 학구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도올 비판에 대한 그의 태도는 너무나 우리들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애써 도올의 존재를 무시하던 학계와는 달리 일반인 신분이었던 이경숙씨의 파격적인 도올 비판이 관심을 받으면서 논쟁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이에 자극 받은 일부 학자들이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그는 본격적인 논어 강좌로 장안의 관심으로 떠올라 있었고 메스컴에서는 연일 이들끼리 싸움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여태까지 제가 알던 도올이라면 이런 것들을 웃어 넘겨버릴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가 모든 것에 대해서 정답일 수도 없는 법, 최소한 그들이 진리의 일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너그럽게 포용해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옹졸하고 치사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는 강의 시간을 통째로 할애하여 대만의 마지막 한문의 대가들에게 교육 받았으며, 엄정한 일본의 교육을 이수했으며, 하버드에까지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아 온 것을 자랑하고,
자신의 실력이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갈고 닦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여태까지 번역한 책들을 들고 나와서 하나씩 보여 주며 번역 성과를 과시했고,
자신은 아무런 사심이 없으며 역사와 민족을 위해 번역에 매달리는 순수한 학자라고 주장하면서,
왜 이런 자신을 알아주지 않느냐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방청객들은 감동의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TV를 보고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도올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고 그를 조롱하고 비난한 사람들에 대해 분노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별 생각 없이 보면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지성을 탄압하기만 하는 잔인한 사회가 안타깝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연설은 분명히 감동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설 그 어떤 곳에서도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 자신의 번역이 더 정확하다는 논증을 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았고 힘들게 살았고 앞으로도 잘 해 보겠다는 말 밖에 없었습니다. 말이 길고 복잡했으며 핵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피눈물 나게 노력해서 쌓은 실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는 말만 했지요. “시골의 문집을 갖다 놓고 누구라도 나와 같이 앉혀 놓고 누가 더 해석하는 실력이 나은지 비교해 보세요”
권위의 죽음: “국민 여러분 제발 좀 믿어 주세요. 제가 가장 번역 실력이 좋아요.” 학문적 논쟁을 자기 자랑으로 덮어 버림으로써 도올은 더 이상 정신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2001년 2월 23일 도올 논어 제 39강 학문의 길, 그 날 그의 지지자는 모두 떠나고 그의 곁에는 믿음이 충만한 신도만 남게 되었다.
뻔뻔함을 넘어
점차 도올의 문제 제기는 일정한 패턴이 생기게 됩니다. 한 분야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논점을 뒤엎기 위해서 그 분야가 태동 하던 시기의 다양한 주장들 중의 하나를 취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사해문서가 좋은 예입니다. 1940년대 사막에서 발견된 초기 기독교 문서는 이후 발전되어 온 기독교를 비판하기에 더 없이 적당한 무기가 됩니다. 유교, 도교 등의 동양학에 와서는 최근에 발굴된 문서로 기존의 학설을 뒤엎을 수 있습니다. 진짜 오리지날을 손에 쥐게 되었으니 걸리적거리는 것은 모두 다 쓸어 버릴 수 있지요.
도올은 결국 이런 패턴을 불교에도 그대로 적용하게 됩니다. 구십 년 대 말까지 초기 불교에 대한 학계의 연구 성과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본에 갔을 때 원시 불교에 대한 경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달라이라마를 만나다”라는 책을 쓰면서 중국 불교 중심의 한국 불교는 새롭게 깨어나야 한다. 기존의 불교는 모두 쓸어버려라. 진짜 붓다의 목소리가 담긴 새로운 불교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런 과격한 주장을 펼치게 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유학 가 있는 동안 한국 불교계는 법정스님을 필두로 원시 불교에 대한 연구 성과를 착실하게 쌓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도 잘 알아보지 않고 뜬금없이 헛소리를 하고 있는 도올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도올이 너무 자신만만 했던 것일까요? 국내 학계를 우습게 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책을 출판 했고 TV에서 자기가 처음 알리는 놀라운 연구 성과인 것처럼 강의도 하고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미 공부다 끝내놓은 것이라고 하니까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이경숙 사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태였습니다. 그러나 도올은 여기서 또 다시 치사한 방법을 씁니다. 불교 강의 중에 잠깐 짬을 내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런 논란에 대해 언급합니다.
“사실 남전대장경이 번역되어 있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았지, 몰랐단 말이야. 달라이라마 써서 발표했단 말이야. 어느 신문에서 어느 스님이, 너 이제서야 그거 알았냐? 우린 다 알았는데. 그게 나에 대한 비판이야. 세상에 이런 비판이 어디 있어요? 난 이제 알았어요. 이제 알아서 죄송합니다.”
죄송한데 어떻하시겠쑤? : 강의의 존재 이유가 없어졌음에도 그는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얼버무리고 강의를 계속한다. 2002년 9월 20일 EBS 기획특강-도올, 인도를 만나다. 제8강 아함의 재발견. 뭐 크게 상관은 없다. 이젠 어떻게 해도 괜찮다. 그의 주변에는 열성 신도만 남았으니까.
바울을 기다리며
도올의 모든 저작과 활동은 기철학의 완성이라는 명제와 관련 있습니다. 그의 모든 사유의 바탕에는 도올 고유의 철학 체계가 내재해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결코 그것을 드러내어 보여주지 않습니다. 기철학은 도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모두 담겨 있고 그가 쓰는 글, 그가 부르는 노래에 다 발현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도올은 기철학의 구현체이며 그의 모든 것이 기철학의 한 모범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기철학은 하루하루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시점의 도올을 택해서 그 완성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기철학은 그가 죽는 날 완성될 하나의 살아있는 체계입니다.
도올은 이런 생각을 수 많은 저작 속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 보다는 그를 재발견해 줄 미래의 후학들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올, 달라이라마를 만나다”라는 명제는 그에게 있어 “이퇴계, 칸트를 만나다”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미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스스로 들어가 있으며 반드시 미래의 철학도들이 그의 기철학을 재조명하고 체계를 잡아 줄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그가 쓰는 편지 한 장, 그가 부르는 노래 한 구절도 이런 기준에 따라 선택 됩니다. 기철학적 재즈는 이래야 한다. 기철학적 랩은 저래야 한다. 한대수와 만난 도올은 기철학적으로 요런 의미가 있다. 기철학적으로 볼 때 그것은 바로……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믿습니다. 그의 이 절절한 소망은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삼십 년이 되든 사십 년이 되든 제가 살 수 있는 만큼 살면서 그가 재평가되는 모습을 지켜 볼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를 기릴 바울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좀 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깊으면서도 넓고 넓으면서도 깊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볼 때 두 가지 모두를 취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성급했고 너무 쉽게 생각했고 너무 가벼웠습니다.
비판에 대해 열심을 내었다면 자신에 대한 비판에 너그러웠어야 합니다. 모르고 시작한 일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과감하게 모든 것을 포기했어야 합니다. 좀 더 전략을 세워서, 좀 더 천천히, 길고 끈기 있게, 좀 더 많은 사람을 포섭하며 갔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최후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좀 더 다지고 철저히 준비 했어야 합니다. 일회적이 아닌 기독교계의 변혁을 위해 헌신할 마음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여태까지와 같은 패턴을 동일한 방법으로 적용함으로써 그저 잡음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올의 하나님이 한국 기독교를 구원할 희망이 있기는 한 건가요? 오히려 도올의 회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도올을 선각으로 만들 사람이 나오기가 힘들 것입니다. 중용을 몰라도 좋습니다. 깨달음이 육화된 진정한 인격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인 의 예 지 신을 몰라도 좋습니다. 어차피 세월이 지나고 나면 당신의 어질지 못함으로 인해 상처받을 위험은 없어지니까요. 도올을 기억하고 한 위대한 지성으로 세워 줄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권위를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솔직함을 다시 무기로 삼을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매스컴과 연계함으로써 점점 더 넓어질수록 당신은 얕아지고 있습니다. 관심은 찰나적이 되고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무도 당신을 길게 생각해주지 않습니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겠지요. 안타깝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도올이라면 시간을 이기고 인류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겠지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저의 개인적인 도올에 대한 기억을 놀라움 속에서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도올의 건투를 빕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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