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3. 레인맨 본문
다시 만들고 싶은 영화들 지나간 영화들이 있습니다. 극장에 다시 걸릴 일은 없지만 미디어의 발달 덕택에 원한다면 쉽게 구해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찾아 다니지 않아도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TV에서 다시 볼 수도 있지요. 그러므로 좋은 영화를 놓쳤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고 또 하고…… 재미있는 것은 지겨워서 쳐다 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반복적으로 틀어주니까요. 이런 식으로 완벽한 가족 영화의 대표격인 영화 “나 홀로 집에”는 감동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 버려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지요. 그저 익숙해져서 채널을 돌리지 않을 뿐……. 캐빈의 깜찍함도 조페시의 멍청함도 세월에 묻혀 버렸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위대한 영화의 단물을 다 빨아 먹어 버리다니…… 그러나 한 편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영화들도 많습니다. 아주 가끔씩 다시 꺼내볼 때마다 이런 기막힌 영화가 묻혀있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우리를 울고 웃기며 잠시 삶에 대해서 뒤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들, 그 자체로 완벽하여 조금도 손 볼 필요가 없는 것들, 그냥 다시 극장에 걸어도 될 것 같은 영화들이지요. 하지만 세상은 반복을 원하지 않습니다. 리메이크도 안 됩니다. 속편은 원작의 감동을 갉아 먹을 뿐이지요. 그래서 제가 상상하는 것은 이런 영화들이 가지고 있던 감동의 요소를 분해하여 새로운 조건 위에서 다시 펼쳐보는 것,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지만 원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영화 한 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들, 그들이 줄 감동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 싶습니다. 결국 다시 만들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제 생각을 이어받게 된다면 이 글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테니까요. 이글은 영화를 통째로 보여주는 극악의 스포일러 문서입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 중에서 이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읽기를 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3. 레인맨 1. 일상에 매몰된 삶: 동생
이미지 출처: 레인맨 DVD 캡쳐 이하 동일.
동생의 모습은 일상에 얽매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특별한 해결책을 가지지 못한 우리들의 초상처럼 보입니다. 정의롭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습니다. 환경에도 관심이 없고 법도 그냥 귀찮은 규제로 보입니다. 나 하나만 잘 되면 다른 것은 어떻게 되도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없습니다. 힘들고 화나고 짜증나는 시간들, 남은 삶이라고 별다를 것도 없습니다. 작용에 반작용하듯, 무의식적으로 생긴 대로 성질 드러내고 살게 되겠지요. 하루 하루 살기도 힘든데 쓸데 없는 생각을 할 여유가 있겠습니까?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는 따위는 정말 쓸데 없는 짓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고 여태까지 무슨 계획이란 것이 도움이 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방학 때 세웠던 생활 계획표도 지켜 본 적이 없으니까요. 다 부질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어제처럼 오늘을 살면 내일이 오겠지요. 그나마 장수하려면 성질내지 않고 순간에 충실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구원은 이렇게 절망적인 우리들에게 어느 날 문득 찾아 옵니다. 그것은 그러나 절대로 희망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지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삶이란 또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2. 예비된 구원: 형
그는 차와 찰리의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박사를 추궁하여 그가 찰리의 숨겨진 형 레이몬드(레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여태껏 외동아들이라고 알고 있던 그에게 형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정작 그가 화가 난 것은 아무도 그에게 형이 있음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더스틴 호프만의 완벽한 자폐증 연기의 놀라움과 동생 역 탐 크루즈의 이기적인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그저 로드무비라는 목적을 위해서 대충 만들어지는 여행의 이유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떠난 억지 로드무비들은 여행의 의미도 드러나지 않고 주위의 풍광들이 그저 볼거리로 전락하는 소품이 되어 버립니다. 최근에는 짜증나는 코미디성 로드무비도 많습니다. 그에 반해 레인맨은 정말 명확한 여행의 이유가 제시됩니다. 그 여행은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것이며 한가하게 여행을 떠날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을 환영하거나 도와주는 사람도 하나도 없습니다. 자폐증 형은 잠시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차를 훔쳐서 일탈을 느꼈던 어릴 때처럼 그는 또 한 번 형을 납치하여 떠나고 있습니다. 3. 형과 아우의 동행 첫째 날 : 절망
4. 동행 둘째 날: 보이지 않는 작은 희망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하고 인상 깊게 만드는 부분이지만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설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폐증에 갇혀 버린 천재성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능력이 없는 단순한 자폐아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소중한 것은 활용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더라도 그냥 그대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평범할 뿐이며 잘나지도 못했고 뛰어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조미료 듬뿍 친 가게 음식처럼 감칠맛 나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형과 아우의 화해가 형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는 과정과 오버랩 됨으로써 진정한 화해에 이르지 못하고 판타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형과 동생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만큼의 시간을 벌 방법은 길을 좀 더 돌아가는 것이지요. 형은 고속도로도 위험하다고 차를 타기를 거부합니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날 때까지 형은 걸어서 갑니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
5. 동행 셋째 날: 화해에 이른 형제
화를 푸는 방법 중에 하나는 마음껏 화를 내는 것입니다. 차 밖에서 길길이 날뛰고 나서야 동생은 형에게 미안해하게 됩니다.
형은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수학의 천재였습니다. 동생을 포함해서 그에게 외부 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의사가 말합니다.
그 순간 부모님에 대한 오해와 미움이 사라지고 형이 가족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돈을 위해서 끌고 다니던 존재가 그의 기억 속에 있었던 친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비로소 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드러납니다. 자폐아 레이는 처음부터 찰리의 레인맨이었습니다. 형은 동생을 위해 편안한 병원을 떠나 불안한 세상으로 나와주었던 것입니다. 정상인이지만 이기심에 눈멀었던 찰리는 이제서야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잠들어 있는 레이를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구원의 순간에 대한 은유, 저는 살아오면서 저에게 내려진 이런 아까운 순간을 여러 번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톰 크루즈가 단순히 얼굴로 승부하는 배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
6. 패밀리 비즈니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동생은 형을 안아보려고 하지만 아직은 멀었습니다. 자신을 건드리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 발작하는 형, 동생은 애써 형을 위로하지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7. 가족 : 마음 속의 둥지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이런 종류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저 150만 달러 혹은 그 이상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일 뿐이지요. 어쩌면 이 말을 하고 있는 그 자신도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찰리의 말이 진심임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관객들도 사실은 이 모든 장치로 인해 속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영화는 현실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판타지의 영역으로 진입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영화 레인맨은 손쉽게 그 길로 도피하는 대신 현실로 되돌아오기 위한 힘든 길을 선택합니다. 선명한 선악대립도 제시하지 않고 한 쪽의 승리로 결론 내지도 않습니다. 레이의 천재성을 살려야겠다는 식의 거창한 목적 의식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레이의 증세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찰리의 현실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중재를 맡은 의사는 형제애를 구하는 찰리를 위해 특별한 배려를 하지도 않습니다. 인간들은 회개하지 않고 다만 자기 역할에 맞는 선택을 사무적으로 할 뿐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공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뭔가 변할 수도 있었던 세상은 조용히 제 자리로 돌아가고 안정된 시간이 지속됩니다.
“형, 자꾸 물어보는 게 싫지? 이제 더 못 물어보게 할게” 동생은 형 이마에 입을 맞춥니다. 그 때 즉흥적으로 형이 말합니다. “My main man Charlie”(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 찰리) 드디어 형과 동생이 연결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진정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8. 구원, 그러나 사랑은 남다.
이렇게 이제 막 가족이라는 작은 어떤 것이 그의 가슴 속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냘픈 끈이 오랜 세월을 거쳐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그가 바라보는 화면 바깥의 어떤 것이, 가족, 형제, 사랑이라는 이 작은 열매가 그렇게 우리들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작위적이지 않은 진행, 여러 갈래의 감정들이 중첩된 시간, 사건의 연쇄, 어쩔 수 없는 여정,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숨겨진 비밀, 그리고 남은 슬픔, 이십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 기억 속에 버무려져 분리할 수 없는 낭만적인 추억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로드무비의 걸작입니다. 그 후 수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그들도 여행을 떠났지만 어떤 영화도 레인맨의 여정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지만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이 영화가 제 기억에 새겨지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힘들고 아픈 현실이 그런 욕망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잠시도 과거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저는 늙어버릴 것이니까요. 추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저는 갈망합니다. 언제나 새롭기를, 끝없이 새로운 추억을 창조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아아 레인맨과 함께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설이 되었습니다. 회귀하는 본능을 가진 우리들은 교통지옥을 뚫고 다시 가족을 찾아 떠나겠지요.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접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관심이며 관심은 함께 한 시간만큼만 진실이기 때문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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