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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그해 가을, 770Z에게 했던 엽기적인 짓들 본문

김인성의 삽질기/1. 770Z 기나긴 삽질의 기록

그해 가을, 770Z에게 했던 엽기적인 짓들

미닉스 김인성 2009. 12. 27. 19:14

770z 기나긴 삽질의 기록 4/A

 

그해 가을, 770Z에게 했던 엽기적인 짓들


이제부터 조금 복잡하고 약간은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집니다. 감안해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770을 다시 부팅하면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CPU 속도를 850MHz로 만들고 나면 안정성이 없어진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고 지난 여름에 실제로 고생도 했었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지나고 있어서 기온이 많이 내려갔기 때문에 혹시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기는 했습니다.

그날이 상대적으로 추운 날이라서 그랬는지, 창문이 부실하게 닫혀서 책상 쪽이 특히 추웠었기 때문이었는지, 혹은 보일러 순환 밸브를 그 방만 잠그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4가지 백신 테스트에도 770이 죽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단숨에 770Z를 주 기종으로 사용할 플랜과 남은 노트북 처분 방법까지 생각했습니다.

"A22P는 팔아 버릴까, 아니면 570e 쓰는 마눌님 줄까? 차라리 a22p를 첫째에게 주고 X22을 마눌님에게?, 그럼 570e는? 이거 팔리기는 할까?"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하는 동안 제가 안정적인 770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노트북은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770만 쓸 수 있다면……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770Z를 사용하던 다음 날 테스트 도중에 공포의 파란 화면을 다시 보고야 말았습니다. 행복한 상상이 모두 물거품으로 변하고 이제 남은 것은 고생길뿐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안정성 테스트, CPU 사용률 100%로 만들고 끊임없이 하드디스크를 억세스 하도록 한다. 네트웍도 풀로 쓰도록 만든다. 모든 자원이 다 동원되어 컴퓨터 내부를 그야말로 열 지옥이 되도록 만든다. 4개의 백신 프로그램이 돌고 있다. 바탕에는 돌고 있는 동영상 프로그램이 보인다.

 


안정성 테스트 도중 여지 없이 죽어 나가는 770Z, 인텔 CPU는 열을 받으면 보호회로가 작동되어 동작을 멈추도록 설계되었다. 사진은 윈도우의 유명한 공포의 블루스크린이다.

 

처음에 죽지 않은 것은 따지고 보면 기온, 창문 열림, 보일러 잠그기 모두 노트북의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770이 정상 동작하게 만드는 것은 적절한 온도 조절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혹시나 아무런 추가 작업 없이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기대를 하며 노트북의 한계치를 시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창문을 꼭 닫고 돌려보고 보일러 밸브를 열고 돌려보며 이런 조건에도 노트북이 살아 있기를 내심 바랬습니다. 고생하지 않고 내년 여름까지 그냥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지요.

그러나 770은 이런 저의 바램을 무참하게 짓밟고 말았습니다. 온도에 대한 대책이 없이는 안정성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졌습니다. 일부러 외면했던 일을 결국은 해야 한다고 받아들이자 차라리 마음이 편했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Wimsbios의 600e 업그레이드 관련 쓰레드를 모두 읽어 놓았고 몇 가지 대책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노트북 분해 조립이 지겨울 뿐이었습니다.

먼저 단순 동작 테스트에 들어 갔습니다. 웹서핑과 문서 작성 등의 단순한 작업을 할 때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때도 책상과 노트북의 하판에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뒷부분에 있는 높이 조절 장치를 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백신 프로그램을 여러 개 돌리자 770은 여지 없이 죽어나갔습니다.

정말로 열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노트북 뒤에 작은 USB 선풍기를 달고 동작 테스트를 했습니다. 허접한 제품이었지만 의외로 강력한 바람을 내뿜는 제품이었습니다. 바람이 노트북의 바닥과 뒷부분을 식혔고 공기 흡입구를 통해서 강제로 노트북 내부로 빨려 들어가 CPU 내부 온도까지 떨어뜨렸습니다. 이 때는 어떤 프로그램을 돌려도 안정적인 동작을 했습니다. 백신 프로그램 4개와 동영상 프로그램을 돌려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CPU 사용량을 100%로 유지하도록 한 상태에서 밤새도록 동작하도록 했는데 아침에도 여전히 꿋꿋하게 돌고 있더군요. 열만 내리면 된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제 그 부분만 집중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USB 선풍기를 돌린 상태에서 노트북을 작동 중. 앞에 앉아서 작업하기에 추울 정도이다.

 

웹서핑이나 문서 작업 정도의 작업을 할 때 죽지 않는 것을 기본 상태라고 기준을 정했습니다. 백신 프로그램을 4개 돌렸을 때 죽지 않는 것을 좋은 상태라고 설정했습니다. 백신 4개를 다 돌리는 좋은 상태를 얻을 수 없다면 다운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개선 정도를 파악하기로 했습니다.

완벽한 상태는 백신 4개와 하드 디스크 정리 그리고 동영상 재생까지 하면서도 죽지 않는 상태, 말 그대로 완전한 안정성을 가지는 상태입니다. 목표는 완벽한 상태였지만 우선 좋은 상태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CPU와 방열판이 밀착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써멀구리스를 사용하여 연결 부위의 밀착도를 개선시켰습니다. CPU와 방열판, 방열판과 팬 연결 부위, 방열판과 VGA 부분, VGA와 알루미늄 판 사이에도 발랐습니다. 써멀테이프로는 칩셋과 방열판 사이에 연 전달이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열을 뽑아 낼 수 있도록 조치를 했더니 백신 4개 돌릴 때 10분 정도 버티더군요.

 


mmc-2 CPU, 방열판이 기본적으로 붙어 있으며 이 것이 방열팬 모듈과 연결된다.

 


방열팬과 방열판 사이의 블록, 열이 이 부품을 거쳐 방열팬 모듈에 전달된다.

 


방열팬이 연결된 모습, 이 세가지 부속은 나사로 연결되기 때문에 열 전달에 문제가 있다.

 


p2와 p3를 위한 mmc-2 CPU 구조 비교, 왼쪽의 P2는 CPU 방열판과 칩셋 방열판이 붙어 있으나 p3에는 서로 떨어져 있다.

 


방열 부분의 밀착도 개선을 위한 작업, 방열판과 중간 블럭을 위해 써멀 패드를 붙이고 써멀 구리스까지 발랐다. 칩셋의 열도 전달 받기 위해 써멀 패드를 연결하고 있다.

 


방열팬까지 붙인 후의 모습, 써멀패드로 떡칠한 모습이다. 오른쪽의 홀로 사각형으로 써멀패드에 쌓여 있는 것은 VGA에 밀착하는 방열판 부분.

 


완전히 보드에 장착된 모습, 나중에 말할 튜닝 부분도 있고 일부 다른 CPU 사진도 있지만 일단 패스.

 

스피드스텝의 두 모드에 따라 전압의 차이가 있습니다. CPU 카드의 전압 설정 부분의 연결 부위를 인두를 사용해서 끊어 내었습니다. 고클럭일 때 인가전압이 낮다면 아무래도 열 발생이 줄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한 작업이었었습니다.

여기까지 했을 때 백신돌리기 시간이 늘기는 했지만 죽지 않고 통과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정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랬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결코 권할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민은 깊어졌습니다. 애초에 원했던 바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그만 둘 것인가, 아니면 목표를 위해서 앞으로 나아 갈 것인가?

 


스피스스텝 고클럭을 위한 전압 변경 부분, 새로 단 저항 윗 쪽에 파란색 바탕에 O자가 적힌 것이 전압 변경을 위한 저항들이다. R3, R5, R14, 여기서 R5를 끊으면 0.2볼트가 낮아진다.

 

770을 다시 부팅하면서 바랬던 것은 문제 없이 도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안 된다면 하드나 빼서 재활용하던지 600x를 구해서 850MHz CPU를 제 성능으로 사용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열 문제 해결에 매달리기 시작하면서 이 모든 생각은 사라지고 770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만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한 번 포기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다시 불붙은 집착은 끝장을 보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노트북의 외형을 변형해야 하고 보드의 회로를 건드려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자칫하면 노트북을 못쓰게 만들 수도 있었고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외형이 망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장을 보기로 했으므로 이제 이런 문제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부품용으로 하나 더 구입해 놓은 770이 있다는 점이 용기를 내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팬이 돌면서 공기를 뽑아내는 부분에 가로 세로로 격자가 있었습니다. 이 부분도 공기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두 짤라 내었습니다.

울트라포트를 연결하기 위한 커넥터가 CPU와 방열판 아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울트라포트를 사용할 계획이 전혀 없었으므로 뜯어 내기로 했습니다. 이 정도의 공간만 확보된다면 공기의 흐름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습니다.

말이 쉽지 울트라포트 커넥터를 뜯어 내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만 해도 납 흡입기를 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납을 다 빨아들인 후에 부품을 들어낼 생각은 하지 못하고 니빠로 윗부분의 프라스틱과 쇠 부분을 무자비하게 뜯어 낸 다음 연결 핀 하나하나를 합선 되지 않도록 끊어 내었습니다.

작업 한 후에 부팅하니까 보드에러 메시지가 뜨더군요. 그 때마다 문제 있어 보이는 연결 핀을 찾아 내서 다시 깔끔하게 끊어 내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보드가 망가질지도 몰랐지만 아까 말했듯이 여분의 보드가 있으므로 상관없었습니다. 다행히 몇 번의 재 작업으로 보드에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울트라포트와 연결된 알루미늄 부분을 짤라 내고 뒷부분의 막음 용 플라스틱도 제거했습니다. 보기에 흉측해졌지만 뒷부분은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작업으로 백신 돌리기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보기는 싫어졌지만 그 대신 상당한 안정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손 대기 전의 770 보드. 중간 위쪽에 있는 것이 울트라포트 커넥터이다.

 


울트라포트를 뒷쪽에서 본 모습

 


니빠로 뜯어내고 핀 하나 하나 짤라 낸 모습, 실패를 예감하며 작업해야 하는 노동이다.

 


원래의 770z의 뒷부분 모습, 위에 있는 것은 a22p이다.


울트라포트를 뜯어 내고 방열팬의 출구쪽의 격자를 뜯어 낸 후의 모습. 흉칙하다.

 


그 상태에서 조립을 완료한 모습, CPU 모듈이 들여다 보인다.

 

그러나 사람 마음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백신 프로그램 4개를 동시에 돌릴 수 있을 정도의 안정성을 얻었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아무 생각 없이 그 한계를 시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소파에 앉아서 무릎 위에 얹어 놓고 사용하면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바지가 바닥을 통한 방열을 방해하는 듯 했습니다. 백신 돌리기를 하면서 동영상을 동시에 돌리는 테스트를 하면 770z는 여지 없이 죽어 나갔습니다.

저는 노트북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의해서 사용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떤 프로그램을 얼마나 돌리던 노트북은 버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안정성이 없으면 어떻게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죽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한 작업을 하다가 데이터를 잃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770z가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이런 불안정한 상태로 쓸 수는 없었습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모든 씽크패드는 이런 안정성을 기본으로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770을 최대 성능으로 쓰고 싶다는 마음, 최선의 안정성을 가지게 하고 싶다는 마음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지만 모두 충족시키기는 힘든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여태까지 한 작업은 대부분 웹에서 찾을 수 있는 조언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들이 간 길을 지나 혼자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진리와 만나게 됩니다.

결국에는 스스로 나서야 하는 시간이 오게 마련이라는 뜻이지요. 노트북의 외형이 벌써 많이 망가졌지만 제가 시도하려는 방법은 이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궁극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 방법은 결코 권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염원은 이제 제어할 길이 없었습니다. 어떤 논리도 통할 수 없는 상태에 접어 든 저의 정신은 그리하여 결국 엽기 혹은 하드코어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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