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10. 일체형 카트리지 개조 [미닉스의 잉크젯 스토리] 본문
10. 일체형 카트리지 개조
무한 잉크킷이 있는 잉크젯 프린터라면 그것을 구입하면 간단합니다. 그럼 무한 잉크킷이 없는 제품은? 직접 만들면 됩니다. 제가 했었던 카트리지 개조 작업 내용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제가 잉크젯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은 무한 잉크 카트리지 개조에 실패하면서부터였습니다.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은 늘 저를 괴롭혔고 좀 더 편하고 완벽한 제품을 찾아 헤매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형편이 조금만 나았더라면 돈을 잃을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고생인 그 쓰잘데기 없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란 것이 어떻게 생각대로 흘러가겠습니까? 지나고 나면 말도 안되고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시간들의 연속이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 때를 되돌아보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더 나은 방법을 모두 피하고 최악의 길로 간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미 프린터와 정품 카트리지가 있었고 보충용 잉크도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싸게 무한 잉크를 구현하는 길은 호스를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HP 6110을 위한 완제품 무한 잉크킷이 없었고 정품 잉크를 구입할 형편이 못되었으며 재생 잉크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직접 리필한 카트리지는 조금만 프린트를 해도 불안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다른 방법이 보이지만 그 때는 사실 외길이었습니다. 프린트는 해야 했고 돈은 없고…… 사람이 뭐 별거 있나요? 궁해지면 결국 도박을 하게 됩니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습니다. 크게 한 방 터뜨려 다시 일어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몰랐습니다. 아직도 저에게 잃을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런 개조는 그 일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설명서와 동영상이 아무리 자세하다고 해도 일반인은 성공하기가 힘듭니다. 저는 숙련자가 아니면 실패할 작업임이 분명하다는 뻔한 사실을 무시했습니다. 오히려 인터넷을 뒤지다가 자작 부품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더구나 호스와 피팅의 가격이 얼마 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 기뻤습니다. 택배비까지 포함해서 오천원 정도 든 것으로 기억합니다. 리필 카트리지는 조금만 잉크가 줄어도 불안정해져서 출력물의 상태가 나빠졌는데 카트리지에 잉크 병만 연결할 수 있다면 잉크압 변화에도 안정적인 출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부 병에는 수시로 보충하는 것도 손쉬우니까 정말 편해질 것입니다. 드디어 부품이 도착했습니다. 그날 저녁 바로 개조를 시작하였습니다. 카트리지와 ㄱ자 피팅, 부싱 그리고 호스를 조심스럽게 연결하고 잉크병에도 꽂았습니다. 공기도 빼서 이제 본체에 장착만 하면 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HP는 이미 이런 시도가 있을 줄 알고 여러 가지 대비책을 강구해 놓았던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고민을 했습니다. 현재까지는 본체를 손대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A/S를 받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중고로 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프린터를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개조하지 않으면 비싼 정품 잉크를 사용해야 하는데 차라리 안 쓰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재생이나 직접 리필한 카트리지로는 안정적인 출력을 할 수가 없고 리필 과정이 너무나 고생스러웠습니다. 이제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중고로 팔고 무한 잉크 잘 되는 제품으로 사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무한 잉크 가능한 제품과 안 되는 제품에 대한 식별력이 없었습니다. 잉크젯은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잉크젯 중고로 팔아봐야 반값도 받기 힘듭니다. 다른 제품 살 돈도 건지지 못할 것입니다.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뭔가 절박하고 급할수록 그 문제에서 떨어져 차분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은 화장실에서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모니터에서 떠나 딴 짓하고 있을 때 반짝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 것이 결정적인 해결책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 날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급했고 손은 벌써 잉크 범벅이었으며 방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빨리 끝내고 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해결책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안되겠군요. 단순한 해결책이란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완벽한 해결책일 수 있으니까요. 면도날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요?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생각해낸 것은 가장 안이한 해결책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땜빵식으로 작업을 하다 보면 이상한 열기에 휩싸이게 됩니다. 어느 선을 넘어가면 자포자기 상태가 되고 실패의 예감을 하게 되지요. 결국 잘 안될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여기서라도 멈추고 상황을 재점검 하면 좋겠지만 스스로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속도가 더 붙게 됩니다. 조심하지도 않습니다. 부품들이 사라지고 부서집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나면 결국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계가 사정 봐주지도 않습니다.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더욱 더 무식한 방법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프린트에 이상은 없었습니다. 상판 스캐너 부분도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결정적인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후회는 항상 늦습니다. 그날을 기억할 때 여기서 멈추어야 했지만 언제나처럼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개조는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카트리지를 헤드에 결합하는 부분은 노즐의 위치 안착과 연관이 있는 곳이라 정말 제대로 했어야 합니다. HP는 이 부분을 아주 예민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인두질로 플라스틱 녹여 버리는 식의 작업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원하는 목적도 달성할 수 없었습니다. 작업 시간이 길어지고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엽기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던 저는 이 마지막 부분에서 크게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작업을 하면서 이래서는 안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결국 잘 안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두운 기운이 지배하고 있는 시기에는 모든 일이 내리막 방향으로 진행되지요. 그렇게 저는 스스로 외길을 만들고 그 곳으로 갈 수 밖에 없도록 상황을 몰아감으로써 일을 망쳤습니다. 낙오자들은 파멸의 길을 가는 동안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아마 결과야 어찌되든 빨리 끝내고 싶어 저처럼 뛰어 가지 않았을까요?
프린터는 이제 A/S도 받을 수 없고 중고로 팔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헤드 뭉치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프린트도 되지 않습니다. 카트리지는 잉크 없이 프린트하는 바람에 노즐이 이상해졌습니다. 프린트 하려면 다시 카트리지를 재 구입한 다음 무한 잉크 개조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암담해졌습니다.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시간은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피곤이 몰려와 쉬고만 싶었습니다. 일단 스톱하고 내일 다시 할까요? 그러기도 싫었습니다. 저는 그 시점에 모든 것을 확정 짓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문제를 정상으로 돌려 놓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서 또 다시 잉크젯과 씨름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프린터와 부품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습니다. 아쉬웠지만 마음은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날 밤 저는 이젠 다시는 잉크젯 카트리지는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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