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티벨리 언덕에서 -- 까탈박을 위하여 본문
2000년에 쓴 글입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요. 이 때의 순수함을 되찾고 싶군요. 그러나, 세월은 가고 사람은 변하는 법, 안타까워라, 우리의 그 날들.
티벨리 언덕에서 -- 까탈박을 위하여
1. 서버 이전
월요일 오후 2시, 오늘까지 사흘 째, 아직도 서버들은 제대로 동작하지 않고 있다. 300여대의 서버를 K 데이타센타에서 G 데이타센타로 옮겨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이트가 정상 서비스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었다.
그 때부터 거꾸로 53시간 전인 토요일, 서버 반을 옮기고 밤샘 작업을 진행해 셋업을 마친 후, 아파치의 리다이렉션 기능을 이용해서 새로 옮겨 온 서버들이 서비스를 하도록 셋업을 해야 했다. 그래야 밤에 자러 간 사람들이 나머지 서버들을 옮길 수 있으니까.
작업 시작 후 26시간이 지난 일요일 오전 11시, 내가 완전히 맛이 간 상태에서 리다이렉션 셋업을 하고 있는 동안에 까탈박은 옆에 앉아서 상태를 점검하다가 졸고 있었다. 일부 직원들은 거의 기절해서 엎어져 자고 있고..., 사람들의 상태를 보아서는 서버 반으로 일요일을 넘기고 월요일에 다시 작업 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으로 보였지만 까탈박의 성격상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28시간 후, 일요일 오후 1시, 새 서버로 리다이렉션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그 때까지 깨 있던 직원은 자러 갔고 그외 직원들이 남은 서버를 옮겼다. 다시 밤이 되었다. 때려 죽여도 절대 수면 시간을 보장받아야 하는 나는 꽉채운 6시간을 자고야 말았다. 빗발치는 전화를 온몸으로 방어한 '께서의 덕택이었다. 까탈 박은 몇시간 대충 눈을 붙인 후에 G 데이타 센타로 달려 간 후 였다.
53시간 후인 월요일 오후 2시. 간 밤에 300대의 서버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는 모두 생기고 있었다. IP 세팅 에러, 로드밸런싱 에러, 서버 부팅 불 뿐만 아니라 외장 레이드도 몇 개 깨졌다. 소소한 웹페이지 설정은 차후 문제였다. 일단 기본 서비스가 돌아야 했으니까.
회사로는 사용자들이 왜 검색이 되지 않느냐고 전화문의가 빗발쳤다. 이틀 밤을 새운 직원들의 육체는 정신이 지배하고 있었다. 좀비처럼 기계적인 동작을 반복하며 어서 빨리 끝날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서버 장애 복구 작업이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명확한 반면 문제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상 최후의 가능성이 해결책인 법이다. 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 가능성은 찾아 볼 필요가 없으니까. 장애 복구는 결코 밤 10시에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데이타 센타에 뛰어간 시간이 언제든, 밤을 지세우고 날이 밝아야 해결책이 보인다.
언제나 그랬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마지막까지 인간을 괴롭힌 다음에 서버는 동작을 시작한다. 때문에 직원들은 마지막 가능성이 발견되고 상황이 종료될 시점은 결코 오지 않을 미래라고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리눅스 서버가 에이징이 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새벽 3시까지 동작하지 않던 서버가 전혀 손을 대지 않았는데 새벽 4시에 정상 동작하는 경우가 있다. 뭘 고쳤는지 모르고 있을 뿐, 분명히 손을 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동작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자포자기 해서 담배피고 졸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한 시간 후에 서버는 동작했다. 아마 고생하는 내 모습을 측은히 여긴 서버가 스스로 장애를 복구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컴퓨터가 인간보다 체스를 잘 두는 시대인데 리눅스 서버가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나는 리눅스 서버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으므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부차적인 에러는 무시하고 기본 서비스가 제대로 동작하는 것까지만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직원들을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까탈박이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선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좀처럼 까탈박의 입에서는 이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웹페이지를 검사하면서 귀신같이 에러를 찾아 내는 것이다. 에러가 난다는데 어떻하겠는가? 다시 한 시간, 다시 에러 확인, 다시 한시간... 까탈박을 이기는 방법은 놈보다 더 지독하게 구는 수밖에 없다. 결국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하고 막중한 대표이사께서 쉬셔야 한다는 논리로 집에 보내고 나서야 상황을 종료할 수 있었다. 집에 가면서도 몇번 전화가 왔지만 바로 씹어 버리고 대충 정리해 버렸다. 내일이면 또 까탈을 부리겠지만 어쩌겠는가. 사람부터 살아야지.
2. 전락
나는 IMF가 시작되던 때 삶이 고단했다. 전세금을 뽑아서 평택으로 월세살러 내려가야 했었는데 그 때에도 리눅스를 놓치 못했다. 내가 버는 돈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지에 연재하던 글로 받은 이십여만원이 전부였다. 아내가 삶을 책임져야 했는데 성격 좋은 아내는 이런 삶의 전락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고 따라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글 특히 리눅스관련 글로는 생계비도 건질 수 없었다. 지금은 89년 부터 리눅스를 했다는 사람들이 나올 정도로 리눅스 엔지니어가 인기있는 분야지만 그때까지는 리눅스 기술이 가치가 없었다. 실업자였던 나는 낮에 주로 근처 들판에 나가 산하나 없는 평택을 바라보며 지냈다.
한심한 생활도 익숙해지면 편한 법이다. 도시에서 자라고 줄곧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처음엔 도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어두운 저녁이 견딜 수 없었으나 점차 익숙해 지면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나중에는 이따금 올라오는 서울이 갑갑해지기도 했다. 한여름의 서울은 거의 도가니와 같다. 도시 전체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도배가 되어 있고 어느 곳 하나 땅을 볼 수 없다. 거의 땅으로만 되어 있고 주위는 모두 녹색인 평택이 진정 사람이 살아야 하는 곳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역삼역에서 강남역으로 내려가는 내리막에서 주위의 빌딩들이 숲처럼 보인 적이 있었다. 거대한 콘크리트의 숲, 평택에서 안성으로 달리던 길에서 보았던 가로수들과 대비되어 거대한 콘크리트 나무들이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티벨리 중심인 바로 이 길에서 하루 온 종일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때의 느낌을 잃어 버렸다. 나는 언젠가는 다시 평택으로 내려가서 숨쉬는 것 자체가 즐거운 삶을 살고 싶다. 그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도시를 떠난 삶이 아름답다고 느낄 즈음, 내가 내린 결론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리눅스로 끝장을 보자는 것이었다. 리눅스로 밤을 지샌 날이 너무나 아까왔으므로, 외국의 리눅스 열풍이 곧 한국에도 상륙할 것으로 믿었으므로. 그 달 벌어 그 달 먹는 시간 동안 리눅스 관련 문서를 다시 보고 있을 때,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98년 10월, 박이었다.
3. 까탈박
박은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다. 나이도 적지 않다. 64년 생이니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느라고 바빠서,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느 날 그는 CPU 500개가 넘는 사이트 IP 정리 문서를 만들면서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음... 내가 생각해도 이런 일은 참 잘한단 말이야..."
박은 내 친구다. 84년에 처음 만나서 늘 서로 잘났다고 싸워왔다. 서로 다른 일을 할 때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를 토론할 때에도 결코 서로 질려고 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로서 상식에 대해서는 X도 아는 것이 없는 놈이 늘 개겨서, 콱콱 밟아 주는 것이 내 취미였다. 물론 박은 이에 대해서 다르게 말한다. 물론 내 말이 맞다.
이 시기에 박도 어려웠다. 개발 용역으로 버티던 회사가 IMF로 힘들게 버텨왔는데 기존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혀 수익이 나지 않아서 안정된 수익 모델을 찾고 있었다. 그 중에서 선택한 것이 웹호스팅이었고 서버 구축을 해 줄 리눅스 엔지니어가 필요했었던 것이다.
나중에 박이 말한 바에 의하면 그 때 그는 회사 운영비가 없는 달이 많았다고 한다. 엔지니어였던 그는 어디가서 사기칠 능력도 안되고 가까운 시일 안에 돈이 생길 구멍도 안보이고 이런 저런 머리 굴려도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 머리가 아파왔다고 한다. 마치 머리가 바이스에 낀 것처럼 지끈 지끈 아파오는 경험은 안 해 본 인간은 모른다고 얘기한 바 있다.
지금 박은 자본금이 현금으로 100억이 넘고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검색사이트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돈쓰는 방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직원들 여름 휴가비도 안준다. 돈아낄려고 밥도 회사에서 해먹는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인터넷 사이트의 기술적인 아름다움 뿐인듯하다. 한국에서 이런 인간이 성공하기는 참으로 힘든 법인데 인터넷이라는 환경이 이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진작에 그와 헤어지고 리눅스업체로 도망갔는데 요청에 의해서 회사대 회사의 기술지원 명목으로 그를 도와주고 있다. 요청 사항은 항상 까다롭고 어렵다. 며칠을 고생해서 요구사항을 만족시켜 주어도 수고했다는 말을 듣기가 힘들다. 더 괴로운 것은 데이타센타에 있는 서버가 문제가 생기면 지가 뛰어 간다는데 있다. 회사 직원들은 당연히 같이 가서 끝날 때까지 고생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표이사가 뛰쳐 갔으니 이들은 거의 죽음이라고 말할 수있다. 나는? 나도 당연히 가야한다. 지가 갔는데 내가 어떻게 개길 수가 있겠는가?
물론 한 번 가면 밤을 지새우고 해장국 먹으러 가는 것은 기본이다. 이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직원들도 괴롭고 나도 괴로워서 언젠가 말했다.
"야, 대표이사가 이런데 뛰어오면 어떻허냐? 다른 회사 대표이사처럼
외부 사람들 만나러 다니고 경영 공부나 좀 해라"
까탈박이 말했다.
"내가 이런거 안하게 니가 좀 잘해봐라"
시스템을 맡으면 항상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고 언제나 깨지게 되어 있다. 어떻게 시스템이 일년 삼백 육십오일 아무 문제 없이 돌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인데 막을 수도 없다. 앞에서 말했지만 까탈박을 이기는 방법은 까탈박보다 더 지독하게 설치는 수 밖에 없다. 문제를 먼저 발견하고 데이타센타 먼저 뛰어가고, 일요일 오후에 전화 걸어서 시스템 상태 알려 주고...
이 글은 읽는 그 회사 직원들을 위해 한 말씀. 내가 얼마 전에 회사 직원들에게 휴가비도 좀 주고 데이타센터 이전하느라 일요일에도 나와 고생한 직원들에게 휴가도 주라고 말했다. 까탈박의 답변은 이렇다.
"일요일에도 일하고 그럴 때도 있지 꼭 그렇게 꼬박 꼬박 따져서 휴가주고 그래야 되겠냐? 그럴 거면 우리 사주, 스탁옵션 같은 것은 뭐 때문에 있냐?"
그 회사 직원 분들, 이왕 하는 고생, 좀 더 적극적으로... 죽지 않을 정도까지는...
4. 리눅스
나는 박을 만나고 나서야 리눅스 기술로 처음으로 다달이 돈을 받아 보았다. 좋은 직장 마다하고 리눅스에 미쳐서 동네에서 이상한 놈 취급 받으며 산 지 몇 년 만에, 리눅스가 OS/2, 지오웍스 앙상블, 넥스트스텝같은 꼴이 나지 않기를 희망하며 산 지 수 년 만에, 리눅스 기술을 인정 받아서 다달이 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다른 이론이 있다. 한우물론과 여러 우물론이 있다. 인간은 그저 죽으나 사나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이론, 이 것은 현대 사회에서 한 분야의 전문가이기만 하면 다른 분야는 잘 몰라도 크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한다. 그에 반해 한 우물을 열심히 파다가 다행히 물이 나오면 좋지만 그렇치 않으면 완전히 찌그러들기 때문에 여기도 조금 파보고 저기도 조금 파보면서 코를 봐야 한다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의 장점은 어쨌든 그 중의 하나는 물이 나올 확률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큰 물은 잘 안나오겠지만 물먹고 살 수는 있으므로 안전한 방법이기는 하다.
1998년 이전에는 리눅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 우물 파기 중에서도 최악의 선택이었다. 유닉스라는 이름도 못붙여서 유닉스같은(unix-like) 이라는 수식어만 가능한, GNU인지 빨갱이인지 저작권을 무시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아마추어적인, 아무도 책임을 지거나 보증하지 않고 유지보수도 해 주지 않는, 비주류적인, 성능이 의심스러운, PC에서만 돌아가는, 해킹을 주로하는 인간들이 쓰는, 그런 운영체계였다.
역사서는 후대로 갈 수록 더 고대사를 기술하게 된다. 리눅스가 주류가 되자 여기저기서 10년씩 리눅스를 사용했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SLS 배포판 한 번 깔아본 것을 리눅스 경력 사항으로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당시는 각종 운영체계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인 사람들이 많았는데 리눅스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리눅스 인스톨 하는 것이 힘든 일이었기는 하지만 그 후에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았다면 경력 사항에 추가하기는 힘들다고 생각된다. IMF 이전에 리눅스 사용자들은 서로를 알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남을 도와 준 사람은 도움 받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리눅스는 오픈소스의 산물이고 오픈소스는 상호작용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이 기억해 주는 경력이 진짜 리눅스 경력이라고 생각한다.
IMF가 없었고 30대들이 직장에서 해고 되지 않았다면 지금같이 리눅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가 있었을까? 아직도 인터넷 업체에 가면 유닉스 경험자들이 리눅스를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티벨리가 뜨지 않았다면 안정된 직장에서 여유있는 자금으로 서버를 구입하려는 관리자들이 리눅스를 염두에 두었을까? IMF는 나에게 지옥과 천국을 동시에 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리눅스 때문에 날밤을 지새우면서 꿈꾸었던 미래보다 지금이 더 아름답다. 내가 바랬던 리눅스의 미래보다 오늘 티벨리의 현실은 더 거창하다. 데이타센타의 서버 중에서 반 이상이 리눅스 서버이며 아무도 리눅스의 성능이나 안정성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리눅스는 인터넷 업체의 디폴트 운영체계이다. 여기에 누가 다른 말을 할 수 있으랴. 나는 지금 죽어도 좋다. 그 옜날 리눅스로 꾸던 꿈의 모든 가능성이 발현되었으므로, 한 남자의 유치한 선택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으므로.
한 인터넷 업체의 열대의 서버를 한텀 10개 띄워 놓고 각각 텔렛으로 로그인 한 다음에 차례 차례 셋업해서 완전한 클러스터링을 구성할 때, 나는 행복하다. 이런 작은 규모의 서버들을--백여대 이상의 서버를 구축하다 보면 서버 10대로 구성된 시스템은 작은 규모의 시스템으로 보인다-- 원격으로 조작해 완전히 상호 협동하에 동작하게 해 놓은 후, 실제 서비스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작업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이런 즐거움 때문에 밤을 새울 수 있다. 여러분은 그렇치 않은가?
5. 티벨리
누가 벤처에 대해서 뭐라고 하든, 인터넷 업체에 대해서 어떻게 떠들든 제대로 일하고 있는 업체는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다. 이런 진부한 발언을 왜 또 반복하는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세우는 업체들이 그 동안 언론을 장식하면서 부상했지만 육개월 후, 일 년 후에는 사이트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기막힌 도메인을 확보하고 멋있는 계획을 들고 찾아 오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단 사이트를 개설하세요. 그리고 투자받지 말고 일 년을 버티세요.
그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제가 밀어 드리겠습니다."
사업 아이템 특허, 투자자 확보, 펀딩등으로 이어지는 장미빛 인터넷 비지니스 모델은 예전에 끝났다. 아니 애초부터 있어 본 적이 없다. 지금 당신의 머리에 떠오르는 유명 웹사이트들은 투자자들이 인터넷 업체에 관심을 가지기 훨씬 전에 웹사이트를 구축했고 기술 개발이 다 끝났던 곳들이다. 깊은 바다 어딘가에서 돌연변이에 의해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도 있겠지만 지구 상에는 이미 생명체가 너무 많아서 진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어렵게 태어난 새로운 생명체는 순식간에 완성된 다른 생명체가 먹어 치울 것이다.
당신이 기막힌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언론에 홍보할 생각 이전에 조용히 사이트를 열고 우연히 들어온 사용자들의 입소문으로 사이트가 유명해 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까탈박이 MBN에 나갔을 때 패널들이 "이렇게 충실한 컨텐츠를 가진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왜 홍보를 하지 않는가"라고 질문하며 안타까워 했다. 사용자들을 감동 시키면 반드시 그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다. 사이트에 한 번 왔던 사용자들이 다시 올 수 있도록 컨텐츠에 충실해야 한다. 그에 더해서 사이트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항상 점검하고 있을 것. 인터넷 업체는 넘쳐 나고 정보가 너무 많아서 식상할 지경이므로 조금이라도 시스템이 불안정해서 사용자에게 응답을 하지 않는다면 방문자가 늘어 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인터넷 업체로서 진화하기를 바란다면 당신이 까탈박을 이기는 수 밖에 없다. 어떻게 까탈박을 이길 수 있는가? 앞에서 누누이 얘기 했듯이 까탈박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 보다 더 지독하게 구는 수 밖에 없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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