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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짱깨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만든 한마디 본문

기술과 인간/IT로 본 세상

짱깨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만든 한마디

미닉스 김인성 2019. 1. 24. 17:33

아버지는 중국 사람들을 떼놈이라 불렀습니다.

만주 살던 피난민이라 중국 사람들과 가까이 산 덕분에 나쁜 기억들이 겹쳐서 그런지 경멸적인 용어로 불렀죠. 

밤에 술 취해 쓰러진 놈은 조선놈이고 아편 맞고 쓰러진 놈은 떼놈이더라는 말도 자주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 떼장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메주 담그며 삶은 콩을 계란보다 작게 빚은 다음 납작하게 눌러 부뚜막에 말린 것을 떼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잘 마른 떼장은 밥도둑이었죠. 

짭짤하고 고소한 그 맛이 일품이라 겨울 철 메주 담글 때만 기다릴 정도로 환장했던 반찬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서울 생활 초기 하숙집에서 만들어주던 청국장 국은 먹지 않았습니다. 

찌개 속에 섞여 있는 동그란 콩의 비주얼이 혐오스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청국장 속에 우연히 뭉쳐져있는 된장 덩어리를 고기인 줄 알고 씹게되었습니다.


아.... 그것은 제가 고향에 두고 온 떼장의 맛이었습니다.

떼장, 청국장, 떼장, 청국장...

만주 출신의 아버지가 떼장이라고 불렀던 음식이 바로 청국장이었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며 아편이나 하는(아버지 표현) 떼놈들을 직접 만나보지 못한 한반도의 조선 사람들은 그것을 청국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서방, 중국놈이라고 부르던 한국인들도 중국과 점차 접촉이 많아지면서 그들을 짱꼴라, 짱깨로 부르고 있는 것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나쁜 기억이 많아진다는 법칙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 사람들과 접촉을 한 주변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특히 한족들)은 씻지 않아서 더럽고,

집 안은 화려하게 치장하지만 집 밖은 아무리 더러워도 치울 생각은 하지 않을 정도로 공공의식이 부족하며,

돈을 너무 너무 밝힌다고 하더군요. 


저도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경험을 통해 이런 편견을 수정해야 할 상황이 되었네요.


제가 좋아하는 구형  씽크패드에서 키보드만 분리해서 외장 키보드로 만들 수 없을까 생각을 해왔는데 중국의 한 개발자가 이미 이런 기능을 가진 부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씽크패드 키보드와 빨콩이라고 하는 키보드 내장 마우스를 동시에 인식해서 컴퓨터에 연결해 쓸 수 있게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이 부품만 있으면 구형 씽크패드를 키감 좋은 외장 키보드로 변신 시킬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제품은 작년에 씽크패드 커뮤니티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사용하고 싶은 씽크패드 키보드는 이 부품이 지원하는 씽크패드보다 더 이전의 구형 씽크패드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제품은 거의 16년 이상된 구형 씽크패드까지 지원하지만 제가 원하는  골동품에 가까운 ThinkPad 600X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커넥터가 다르고, 트랙포인트는 인식되지 않아, 호환 제품으로 교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국 개발자에게 이런 까다로운 튜닝을 부탁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중국 친구는 별다는 조건을 달지 않고 선뜻 튜닝을 해주었습니다.

추가되는 부품비 이외에 특별히 돈을 더 달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의 키보드 뒷면의 얼기설기 얽힌 선이 이 친구의 튜닝 작품입니다.)


사실 이런 전문적인 작업이 가능한 엔지니어의 시간당 노임을 따져보면 이런 부품값은 푼돈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런 부탁을 한 것이 미안해서 튜닝만 해 준다면 10세트를 한꺼번에 주문하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이 키보드만 쓸 계획이었기 때문에 10세트(50만원 상당)를 주문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더군요.



    You can buy the quantity you need, because only adapter boards are customized.
     I do this not for money, just for pleasure.

    My name is 肖洋(Xiaoyang), Nice to meet you.


   필요한 만큼만 사도 됩니다. 
   왜냐하면 (어댑터 보드만 튜닝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돈 때문이 아니라, 단지 재미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메일을 주고 받던 사이인데 갑자기 자기 소개를...)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소양입니다.



단 한명의 말 한마디가 중국 인구 14억 명에 대한 저의 편견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모든 중국인이 돈만 밝히는 건 아니구나. 이런 친구도 있구나...

저는 이제 중국인을 생각할 때 적어도 이 짱개새끼는 돈 밖에 모르겠지 하는 생각은 접어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옛날 키보드 덕분에 저는 쓸만한 중국 친구를 하나 구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이런 신박한 제품을 만든 이 훌륭한 중국 엔지니어에게 혜택을 돌려 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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