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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컴퓨터 엔지니어의 개인 화기는? 본문

김인성의 삽질기/1. 770Z 기나긴 삽질의 기록

컴퓨터 엔지니어의 개인 화기는?

미닉스 김인성 2009. 12. 23. 21:04

770z 기나긴 삽질의 기록 3/A

 

컴퓨터 엔지니어의 개인 화기는?



결국 770X를 포기했습니다. 어떤 일도 정도를 넘어 집착의 수준에 이르면 그만 두어야 할 때가 오게 되니까요. 원래 구입한 770X와 부품용으로 구입한 770z 그리고 일본 옥션에서 구입한 850MHz CPU까지 싸서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치웠습니다. 드라이버, 뺀치, 납땜기까지 모두 치웠습니다. 책상은 정리되었고 깔끔해졌습니다. 이제 아이들과 놀 시간도 생기고 아내와도 함께 어울려 사람같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금성에서 온 수컷이 드디어 동굴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행복을 느꼈을까요? 좁은 화면의 X22을 들여다 보며, 손가락 끝이 아픈 A22P의 키보드를 치며, 삐걱거리는 570e를 눌러대며 제가 과연 즐거웠을까요? 빠른 CPU, 넉넉한 메모리, 넓고 밝은 LCD에 기계식 키보드를 갖춘 컴퓨터라고 해도 소파에 누워서 무선으로 쓸 수 없다면 부담스러운 물건일 뿐입니다. 집에서 책상에 앉으면 왜 이상하게 허리가 아플까요? 왜 그렇게 소파의 인력을 거부하기가 힘든 것일까요?

좌절한 제 마음은 그래서 새로운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A22P에 PS/2 기계식 키보드를 붙여 보았습니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왔다 갔다 하기가 귀찮아서 마우스도 연결했으나 화면도 멀어지고 복잡하고 소파에서 쓰기 부적절해서 패스, 무선 마우스도 하나 구입했는데 잘못 구입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우스와 크기가 같은 유선 수신부가 있더군요. 이건 마치 옛날 코미디 프로에서 눈에 넣을 수 있는 콘택트렌즈만한 TV를 발명했는데 냉장고만한 전원부가 필요하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요건 컴퓨터로 영화 볼 때 멀리서 조작하는 용도로 PC에 연결해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노트북에 외장 키보드를 연결한 모습, 복잡하고 번잡하다. 사진의 키보드는 최근에 엡솔루트에서 나온 저가 기계식 키보드, 가벼운 키감이 비교적 좋은 느낌을 준다. 키보드매니아 사이트에서는 내구성이 별로라는 평가가 있는 듯.

 


무선 마우스와 수신부, 볼수록 희한하다는 느낌을 받는 구성이다.
한 때는 770을 포기하고 600x를 구입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600x-450MHz를 구입해서 강제 스피드스텝이 튜닝된 850MHz CPU를 넣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600X는 나올 때부터 P3 CPU를 위한 방열 대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CPU로 바꾸어도 열 문제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되면 미리 사놓은 메모리, 하드디스크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더구나 안정성, 성능, 속도 면에서 거의 완벽한 노트북이 됩니다. 속도도 빠르고 키보드도 770 못지 않습니다. 무게도 770에 비해 무척 가볍습니다. 사실 이베이에서 거의 구입할 뻔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이베이에 가면 600x를 검색하곤 합니다. 언젠가는 하나 구입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600x는 이미 제가 가진 570e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570e가 P3-500MHz라는 점만 빼고는 화면 크기도 같고 키감이 좋다는 점도 공통입니다. 오히려 570e가 얇고 가벼워서 더 좋습니다. 그래서 선뜻 600x 경매 물건에 응찰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A22P의 1600x1200 화면을 쓰다 보니까 1024x768 화면이 너무 작다고 느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노트북에는 1280x1024가 참으로 적절한 것 같습니다.

 


중간에 있는 검은 부분을 기준으로 찍은 사진, 카메라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서로 다른 점은 알 수 있다.

 


A22P 화면을 기준으로 찍은 사진, 윗쪽 외쪽이 A22p, 오른쪽 570e, 아래쪽 왼쪽 x22, 오른쪽 770x

 


570e를 기준으로 찍은 LCD사진, 570e와 770x는 CCFL을 새로 교환한 상태

 


X22을 기준으로 찍은 사진, X22이 가장 파랗게 보인다.

 


770x를 기준으로 찍은 사진, 770x는 약간 노란색이 들어 있으며 여전히 가장 화사하고 밝다.

 

600x는 화면 해상도가 별로고 570e는 CPU가 너무 느리고 삐걱거리고 X22은 너무 작고 A22P는 키보드가 너무 허접하고…… 다른 제품들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더군요. 어떤 것은 너무 작고, 너무 크고, 키보드가 형편없고…… 정말 770을 빼고는 마음에 드는 노트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디오를 취미로 할 때 막귀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가장 좋은 오디오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좋은 소리를 듣고 나면 저가형 오디오에서 나는 소리에서 부족한 부분이 저절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프로젝터를 구입하려고 돌아다닐 때 9인치 바코 삼관이 설치된 소극장 수준의 데모룸에서 테스트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 프로젝터에 별 경험이 없는 저도 "흑이 뜬다(검은색이 완전한 암흑이 아니고 뿌옇게 보인다)"라는 말의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터는 타협을 했습니다. 삼관과 비교하면 이천만원이 넘는 DLP 프로젝터도 이백만원짜리와 마찬가지로 흑이 형편없이 뜨니까요. 그렇다고 삼관 중고가 싸다고 해서 덜컥 들여 놓고 초점 맞추는 고생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비쥬얼 동호회에 가면 아직도 삼관 가지고 고생하는 분들의 글을 볼 수 있지요.

 


770의 키보드, 팬터그래프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600x와 마찬가지로 키감을 위해 희생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770과 함께 있는 570e의 키보드, 팬터그래프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나 높이가 희생되었다. 그러나 딱딱한 키감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왼쪽이 A22p의 키보드, 공간 절약을 위해서 모든 것이 희생된 제품, 570이후 T,A,X,I,R 시리즈 모두 더 이상 키감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시류에 따라 경,박,단,소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IBM의 고유함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IBM의 씽크패드가 레노보로 넘어간 것은 고급함을 추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유함을 잃었기 때문일까?

 

현존하는 노트북 중에서 770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면 770에서 키보드와 LCD를 분리해서 이후에 나온 제품에 붙일 수는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LCD를 1400x1050으로 타협한다고 하면 770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키보드인데 이 것을 뽑아서 a22p에 연결할 수는 없을까? 만약 이렇게 770의 키보드만 뽑아 낼 수 있다면 일거에 모든 고민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고 구상을 했지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게 되면 앞으로 어떤 노트북을 구입하더라도 최고의 키감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의 튜닝 영역으로 남겨 둡니다.

발명 수준의 아이디어는 770의 키패드 부분과 일반 키보드의 제어 회로를 합친 다음 노트북의 PS/2 부분으로 직접 연결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770의 키보드 회로에 대한 한 번의 연구만으로 어떤 노트북에라도 다 연결할 수가 있지요. 키보드가 장착되는 부분의 차이점은 또 어떻게 해결가능 할 것입니다. T42P에 맞는 커스텀 770 키보드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렇게 되면 모든 고민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770을 제외한 x22, 570e의 키보드와 a22p 키보드의 뒷면, 많은 부분이 유사하고 연결 부위도 공통점이 있다. 왼쪽이 770 키보드

 


770의 키보드 분해 모습, PS/2 부분이 분리되어 있다. 필름 기판을 주문 제작할 수 있다면 다른 노트북에 붙일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770의 필름 기판 부분, 두 부분의 선이 구분되어 있고 키 건반이 이들을 접촉 시킨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지요. 돈도 시간도 제한된 한 개인이 기성품을 자신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서 뭔가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하다못해 키보드 기판 회로도나 핀 정의 명세 정도도 쉽게 구하기가 힘듭니다. 이런 튜닝을 스스로 할 능력도 되지 않습니다. 발명 수준의 변경은 아직 저에게 먼 나라 일일 뿐입니다.

대안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770에 대한 아쉬움은 더 깊어 졌습니다. 그래서 짜증나는 A22P 키보드 쳐가며 정보를 얻으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좌절한 제 마음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었을까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은 제 마음 속에서 스스로 큰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770을 다시 살릴 가능성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Ibmmania, wimsbios, thinkpads 같은 싸이트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Parkoz, kbdmania같은 튜닝 관련 사이트를 다니면서 정보도 얻었습니다. 지름신을 영접하여 쇼핑 카트 채우며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게 튜닝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 마냥 즐거웠습니다.

늦은 밤, 새로운 정보를 얻으며 저는 동굴 속에서 행복했습니다. 770은 이미 저에게는 단순한 노트북이 아니었습니다. 제 꿈을 위한 소품이며 제 능력의 시험대였습니다.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저에게 집착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완벽한 어떤 것에 대한 경외감이었을까요? 철 지난 노트북에 불과한 이 물건을 붙잡고 저는 무엇을 그렇게 안타까워했을까요?

컴퓨터쟁이인 저에게 노트북은 언제나 지녀야 할 개인화기였습니다. 힘든 세상,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고, 제대로 이룬 것 하나 없는 못난 삶이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저는 세상과 다시 한 번 맞서기 위한 준비로 작은 총 한 자루를 닦고 있는 듯 했습니다.

꿈과 희망을 조금씩 조금씩 포기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었는데, 대신 그저 무난하게 사는 것이 좋다는 진리를 몸으로 익힐 정도로 철이 들어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멀었던 것일까요? 770의 성능을 끌어올리면 저도 다시 무언가를 꿈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할 작은 무기를 마음에 들게 바꾸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지며 공부를 하던 시월의 어느 날, 저는 다시 770을 재 부팅했습니다. 길고 긴 열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뒤돌아 보면 차라리 그 때 부팅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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