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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오타쿠가 북간도에 간 까닭은?-770Z삽질기 본문

김인성의 삽질기/1. 770Z 기나긴 삽질의 기록

오타쿠가 북간도에 간 까닭은?-770Z삽질기

미닉스 김인성 2009. 12. 16. 17:48


이 글은 4년 전에 쓴 글입니다. 블로그 발행 시스템을 모르던 시절에 몇몇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흩어진 여러 블로그를 정리하다가 사진 링크가 다 사라지는 바람에 다시 올리다 보니 그냥 발행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읽으신 적이 있으신 분들은 재활용에 욕심을 내는 저를 용서하시고 그냥 패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직도 읽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 글을 보이고 싶습니다. 성의 있게 쓴 글이 홍보 시스템을 가동하지 못하는 바람에 전파되지 못하고 그냥 묻히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구요.

꼭 사 년 전 이 맘 때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서 애쓰던 기억도 납니다. 세상에는 천사들이 살고 있음도 그 때 알았지요. 이렇게 다시 먼지를 털어 내다보니 사 년 전, 그때의 열정이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바램도 생기는군요.

김인성.

 

이 글은 시리즈물의 두번째입니다. 첫번째 글은 여기에 있습니다.


770z 기나긴 삽질의 기록 1/A

 

오타쿠가 북간도에 간 까닭은?

 

안녕하세요.

씽크패드에 매료된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IBM 기종을 여럿 다루어 보았습니다. 560x, 390e, 240, 570, 570e, 600x, x20, x22, a22p까지 사용해 보았고 현재 이 중에서 몇 종류는 아직도 보유 중입니다.

아마 2005년 이월이었을 겁니다. 그때로부터 삼 년 전인 2002년에 a22p를 구입해서 써오면서 큰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노트북을 너무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싫증이 나 있었습니다. 기변병도 도지고 있었지요.

 


A22P 사진, P3-1GHz, 512MB 램. 1600x1200(UXGA)의 15인치 화면을 자랑한다. 무게도 3kg을 훨씬 넘는다.

 

그러나 그 어떤 노트북도 a22p를 대체할 만큼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1600x1200 해상도의 15인치 화면보다 더 큰 LCD를 가진 제품도 없었고 Pentium III 1GHz의 CPU도 전혀 불만이 없었습니다. 최신의 새로운 노트북 모델들에서도 별로 매력을 느낄 만한 구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P4는 실제 동일 클럭에서 P3보다 느립니다. 그래서 P4 2GHz가 P3 1.5GHz 보다 성능이 떨어지지요. P4 다음에 나온 Pentium-M 프로세서에 와서야 P3와 동일 클럭에서 비슷한 성능을 내게 됩니다. 그렇다고 Pentinum-M을 살 이유도 없습니다. 3D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저로서는 P3-1GHz나 P-M 2GHz나 별로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64Bit를 지원하는 모바일 CPU가 한 칩 안에 듀얼로 탑재되고 64Bit 오에스가 보편적이 되면 구입을 고려해 볼 수 있을 뿐 32bit 노트북으로의 기변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제품들이라고 무조건 성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벼운 노트북이 좋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키보드가 점점 얇아지기 시작해서 이제 씽크패드에서도 더 이상의 키보드 성능 향상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종 숫자가 올라 갈수록 키감은 더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 생각과는 달리 언제나 정신차리고 보면 노트북 사이트에서 새 기종을 검색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마땅한 노트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최신의 P자 붙은 T 시리즈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가장 이상적인 노트북을 상상하는 것이었습니다.

 


570e 사진. P3-500MHz, 320MB 메모리, 13.3인치 1024x768 LCD. 얇고 가볍고 큰 LCD가 장점. CDROM과 플로피를 위해서 도킹스테이션이 제공된다. 딱딱한 키감이 타이핑의 쾌감을 준다. 기변을 위해서 아내에게 강제로 떠 넘겼음.

 


X22 사진. 투알라틴 코어의 P3-800MHz, 640MB메모리, 12.1인치 1024x768 LCD. 1.3kg의 무게, 도킹스테이션 제공. ATI mobility radeon 그래픽 칩이 사용되었다. 작고 가볍고 단단한 제품. 단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역시 기변을 위해서 첫째에게 양도함.

 

키감은 a22p보다 570e가 더 좋았습니다. 바닥에 금속이 있는 듯한 딱딱한 느낌의 570e의 키감을 느끼기 위해서 가끔 아내의 570e를 사용해 글을 쓰고는 했습니다. P3-500MHz, PC100 320MB 메모리, 13.3인치 XGA LCD의 570e는 정말 좋은 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windows 2003을 최적화해도 조금 느린 감이 없지 않습니다. 너무 얇게 만들어서 삐걱거리는 소리도 많이 납니다.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해서 LCD도 흔들거립니다. 이런 여러 가지 단점을 키보드가 좋다는 이유만으로는 모두 덮을 수가 없었습니다.

x시리즈는 12.1인치의 LCD에 XGA 해상도를 갖추고 있으며 무게도 가볍습니다. 도킹스테이션을 이용하면 간편하게 CD-ROM, 플로피, 추가 포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600x1200에 익숙해진 제 눈으로는 1024x768의 해상도가 너무 답답했습니다. 12.1인치의 LCD 자체도 너무 작았습니다. 키보드도 불편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에 ibmmania 사이트에서 770x(z)에 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키감이 최고이고, 화면도 13.7인치에 1280x1024를 지원하고 옛날에는 천 만원이 넘는 가격이었고 등등……

처음에는 그냥 과거의 명품에 대한 향수에 젖은 사람들의 회상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종에 관한 글을 검색해서 읽고 나서 P3로 CPU를 업그레이드 해서 쓸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고 850MHz까지 가능하다고 하는 글을 읽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최고의 키감을 가지고 있고, SXGA 해상도가 가능하고 DVD-ROM에 최신 하드 디스크를 사용할 수 있으며, 메모리도 512MB까지 확장 가능하다면 현실적으로 제가 지금 쓰고 있는 A22P와 비교해도 별로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XGA 화면은 조금 적은 느낌이 있지만 UXGA를 사용하는 제 입장에서도 SXGA 해상도는 결코 낮은 해상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15인치에 1600X1200 해상도는 글이 너무 깨알 같이 보여서 시력에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더 클 수 있지요.

A22P가 3.2KG 정도 되기 때문에 770X가 3.5KG 이상이라는 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종적으로 770X에서 쓸 수 있는 CPU의 최고 클럭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Thinkpads.com과 wimsbios.com을 뒤진 결과 850MHz의 SpeedStep을 지원하는 mmc-2 타입의 CPU를 조작하고 보드를 오버클럭하면 900MHz 이상의 CPU를 사용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이베이에서 중고로 770X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구한 제품의 최대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튜닝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우선 오버클럭과 스피드스텝 최대 속도 설정을 했습니다.

요즘은 모바일 CPU가 단일 칩 형태로 나오지만 예전에는 여러 가지 외부 부품을 단 모듈 형태였습니다. 주로 L2 캐시 때문이었는데 770x와 600x(e)는 mmc-2 타입의 CPU를 지원했습니다. 인텔은 500MHz 이상의 CPU를 생산 할 때부터 스피드스텝을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770x보드는 이 기능이 없을 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스피드스텝 기능이 있는 CPU를 꽂으면 디폴트로 저 클럭 모드로 동작하므로

850MHz ->700MHz
750MHz -> 600MHz

로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wimsbios.com에 글을 쓰는 sharedoc이라는 대단한 실력을 가진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mmc-2 타입의 cpu 모듈에서 speedstep 설정을 강제로 조작해서 처음부터 고클럭으로 동작하게 하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조언에 따라 저도 성공한 것이지요.

Sharedoc에 의하면 770x의 버스클럭을 오버클럭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역시 이 방법도 같이 사용하여 600MHz로 동작하던 750MHz 짜리 spedstep CPU를 800MHz로 동작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600-> speedstep 활성화 -> 750 -> 오버클럭 8% -> 800MHz.)

 


770x 보드 오버클럭 설정 후. 두 저항간에 단순한 구리선을 연결하면 된다.

 


750MHz CPU 모듈의 speedstep 설정 전 앞쪽 모습. Mmc-2 타입의 CPU 모듈이다.

 


750MHz CPU 모듈의 speedstep 설정 후 앞쪽 모습. 2.2키로옴 저항을 연결한다.

 


750MHz CPU 모듈의 speedstep 설정 후 뒤쪽 모습. 칩에서 스피드스텝 신호를 보내는데 이것을 막기 위해서 회로를 칼로 끊어 버렸다.

 

업그레이드를 완료하면 770X는 다음과 같이 됩니다.

1. CPU PII 300MHz -> PIII 850Mhz

speedstep 활성화, 8% 오버클럭을 해서 910MHz로 돌릴 수 있습니다.

2. 하드디스크 , 5400RPM 40G 장착. 7200RPM의 80G도 동작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장착된 하드디스크는 크고 회전 소음이 많이 났습니다. 데이터 탐색을 위해서 동작할 때 기계적인 동작음도 큰 편이었습니다. 캐시가 적어서 하드 긁는 소리도 시끄러웠습니다. 버퍼 8M인 최신 하드디스크를 달면 성능이 아주 좋아집니다. 최신 하드는 소음도 없어서 더욱 조용한 시스템이 됩니다.

3. 메모리 512MB

장착된 모든 메모리 모듈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PC100짜리 메모리로 바꾸면 원래 66MHz로 동작하던 버스가 아무런 설정 변경 없이 100MHz로 바뀝니다. 노트북에 512MB 메모리는 아직도 쓸만한 용량입니다.

4. 액정 백라이트 교체

13.7인치의 적절한 크기에 1280x1024 SXGA의 높은 해상도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세월의 흔적이 있어서 LCD에 내장된 백라이트(CCFL)가 조금 어둡습니다. 이 백라이트는 만원만 들이면 새 제품을 구할 수 있습니다. LCD를 분해 조립하는 부담스러운 DIY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새 것으로 갈 수 있습니다. 770Z의 LCD는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하면서 약간 노란색을 뛰고 있어서 오래 사용하더라도 눈이 편안합니다.

이렇게 하드웨어적인 튜닝이 끝나면 바이오스를 고쳐야 합니다. 메인보드가 새로운 CPU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캐시를 활성화하지 못하고 에러가 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이오스 화면에서 특정 부분을 고쳐야 합니다. 이 것은 sharedoc씨가 바이오스에 있는 변경 가능한 데이터 한 비트 한 비트를 테스트하면서 알아낸 것입니다.

캐시 에러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아직 활성화된 것은 아닙니다. 해커들은 powerleap이라는 프로그램에 캐시 활성화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 냅니다. 윈도우에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L2 캐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LCD 백라이트 갈기 전 사진. 상당히 화면이 노랗다.

 


LCD 백라이트 갈고 난 후 사진. 화면의 노란색이 많이 빠졌다.

 


770z의 바이오스 화면. 특정한 부분을 사용자가 강제로 변경할 수 있다. 이런 자유도를 제공하는 씽크패드도 대단하지만 이 데이터를 변경해서 그 의미를 알아내는 인간들이 더 대단하다. 화면의 숫자는 비트마다 의미가 다르다.

 

그러나 770Z에 P3-850Mhz의 CPU를 꼽아도 600e, 770의 메인보드가 기본적으로 스피드스텝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편법을 써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CPU를 최고 속도로 쓰기 위해서는 꼭 배터리로만 부팅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고 언제나 최대 속도가 되지는 않습니다. 세 번에 한 번 정도만 850MHz로 부팅 되기 때문에 몇 번씩 재 부팅을 해야 합니다. 부팅하면서 최대 속도가 되기를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안되면 재 부팅 또는 슬립 갔다 오기 신공을 써야 했지요.

사용 중에 저절로 슬립 들어가고 나면 L2 캐쉬가 비활성화됩니다. 그러므로 슬립 후에는 직접 powerleap 프로그램을 돌려서 활성화 해 주어야 합니다. 이 것도 일이어서 쓰다 보면 잊어 먹게 됩니다. 770을 쓰다가 느린 것 같아서 확인해 보면 L2 캐쉬가 비활성 상태인지도 모르고 쓰고 있었음을 알고는 다시 활성화 해주는 귀찮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고민 하던 wmarcusm이라는 뛰어난 엔지니어가 소프트웨어적인 해결책을 찾아 내었습니다. 그가 만든 deepsleep 프로그램은 부팅 후에 자동으로 실행되어 CPU 최대 속도를 만들어 줍니다. 슬립 갔다가 나왔을 때도 자동으로 실행되어 알아서 CPU를 최대 속도로 재설정해 주고 powerleap cache utility를 불러서 캐쉬도 활성화 해줍니다. 이렇게하여 600e, 770의 마지막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왼쪽은 A22P 오른쪽이 튜닝이 끝난 770Z. P3-850MHz, 13.7인치 1280x1024 LCD, PC100-512MB 메모리. 5400RPM 40G 하드디스크. 단단하고 깔끔한 마무리가 돋보이는 외형. 밝고 화사하며 적절한 크기와 해상도. 발군의 키감. 완벽한 노트북의 원형이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770X 튜닝을 끝냈습니다. 새롭게 만든 770X에 제가 만족하고 있을까요? 이 것이 정말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씽크패드가 맞을까요?

키보드 감은 정말 좋습니다. 글을 주저리 주저리 길게 쓰고 있는 것도 사실 키보드의 쫀득쫀득한 느낌을 즐기려고 일부러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기 때문입니다. 자판을 치는 동안에 손가락이 즐겁다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은 이해하지 못할 어떤 것입니다.

770Z는 저에게

빠른 560(돌처럼 단단한 느낌과 딱딱한 바닥에 닿는 듯한 키감을 계승하고)

튼튼한 570E

해상도 높은 600x ( 1280x1024의 넓고 밝고 화사한 화면은 지금도 구할 수 없지요)

a22p의 키보드 업그레이드(770의 키보드를 튜닝해서 a22p에 붙여 볼 수 없을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었습니다, 그얘기도 쓰지요)

같은 느낌입니다.

살인적인 두께의 이 노트북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저를 보면서 누군가 "구닥다리 노트북을 사 놓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그는 모릅니다. 저에게는 이 두꺼움 조차도 아름다움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두께 비교. 왼쪽이 A22P, 오른쪽이 770Z

 


두께 비교. 왼쪽이 770Z 오른쪽이 X22. 엄청 두껍다.

 


두께 비교. 뒤쪽. X22과의 비교.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두껍다.

 

이렇게 770X의 CPU를 업그레이드하고 오버클럭 한 후에 잘 쓰다가 여름이 되었습니다. 에어콘이 있어도 높아진 온도를 식히지 못해서인지 770X가 다운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보드 문제라고 생각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조치를 취해 보았지만 다운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을 불안정한 770X에 매달린 후에 어느 날 지긋지긋해져서 770X를 구석에 처박고 말았습니다.

"도구에 불과한 기계에 이렇게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은 정상이 아니야, 이건 집착에 불과해, 그래...... 이제 그만 포기하자."

그렇게 770X를 창고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다시 꺼내든 a22p는 역시 770보다는 빨랐습니다. x22도 빨랐습니다. 트랙포인트도 더 부드럽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키보드를 칠 때마다 짜증이 났습니다. 울트라나브를 달아보려고 했지만 키감이 별로라는 평가를 보고는 포기했습니다. 기계식 키보드를 연결해서 쓸까요? PS/2는 마우스 전용이니까. PS/2 2 USB 젠더를 사고 기계식 키보드를 붙이는 세팅을 해 보았습니다.

키보드를 붙여서 써 보니 제가 소파에서 노트북을 쓰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노트북에 주렁 주렁 무엇을 달고 다니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순정품만으로 제 욕구를 충족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새 기종들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X3x, X4x, X41t, t42p까지 키보드도 짜증났고 화면 크기도 짜증났습니다. 왜 아이비엠은 화면크기도 적당하고 해상도도 적당하면서 키보드도 좋은 제품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일까요? 왜 기종이 변할 때마다 키보드를 호환되지 않도록 하는 것일까요? X시리즈도 저마다 키보드가 다릅니다. T도 그렇고 A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최신 기종을 사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현실적으로 1GHz 짜리 a22p를 능가할만한 제품이 없습니다. 인텔이 펜티엄4를 가지고 삽질하는 동안 세월이 가버렸습니다. 펜티엄4는 나오지 말았어야 할 CPU입니다. 펜티엄3보다 더 느리고 전기는 더 소모하면서 열만 많이 나는 CPU입니다.

X41t에 들어있는 펜티엄M 1.5GHz는 펜티엄4의 업그레이드 형이라고 보기보다는 펜티엄3의 고클럭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므로 1GHz의 P3 노트북과 1.5GHz의 PM 노트북은 약간의 속도차이 밖에 없을 뿐입니다 (물론 버스 클럭, 비디오칩 성능증가, 메모리 속도 증가 등도 성능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어차피 게임이야 GeForce 6600GT를 꼽은 데스크탑에서 하지요. 오피스, 워드, 웹서핑, 리눅스 엑스 터미널 작업을 주로 하는 노트북은 이 정도의 차이가 크게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여름도 가고 가을도 지난 어느 날, thinkpads.com, wimsbios.com을 검색하던 저는 불현듯 770을 다시 꺼내서 부팅했습니다. 만약 죽으면 들어 있는 5400rpm 40G 하드나 재활용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 동안 지식도 늘어서 770이 그렇게 죽어 나간 것은 열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날이 추워서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770을 열고 키보드를 치는 순간, 다시 이 노트북에 대한 집착이 되살아 났습니다.

"아아...... 어떻게 이렇게 쫄깃쫄깃한 키보드가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이렇게 단아한 노트북을 왜 내가 버려 두었을까? 560의 그 단단함을 그대로 간직한 이 디자인, 정말 아름답다.. 13.7인치에 1280x1024의 화면은 또 왜 이렇게 화사하단 말인가? 다시 살릴 수 없을까? 다시 쓸 수 없을까?"

아니나 다를까 770은 4개의 백신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렸더니 여지 없이 죽어 나갔습니다. 저는 선풍기를 노트북 뒤에 두고 강풍모드로 두고 770을 돌렸습니다. 앗싸...... 770은 4개의 백신 프로그램과 하드 디스크 정리 프로그램을 돌리고 동영상 파일 재생까지 하면서도 죽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 시점에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집착이 아닐까? 오타쿠적인 쓸데없는 짓이 아닐까? 과연 이렇게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는 것일까? 솔직하게 집착이 맞고 오타쿠적인 태도라고 인정을 하기로 하고, 그러므로 정상이 아니라고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인정하고도 770을 쓸 이유가 있는가? 제 마음은 이미 그 대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770의 열 문제만 해결한다면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키보드를 칠 때마다 손가락 끝에서 전해져 오는 이 행복감을 어디서 얻을 수 있단 말인가? 13.7인치에 1280x1024, 이 절묘한 해상도의 화면을 어디서 다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LCD, PDP 등의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아무리 세상을 휘어 잡아도 화질의 궁극은 브라운관입니다. DLP, LCD 프로젝터가 아무리 까불어도 필름라이크한 삼관 브라운관 프로젝터가 표현하는 흑색이 그 기준일 수 밖에 없습니다.

디지털극장의 소리는 어떤 포맷일까요? 돌비디지털, dts는 음을 깎고 포개는 기술입니다. 디지털극장의 소리 포맷은 RAW입니다. 물론 5+1,7+1등의 음장은 제공하지만 기본적으로 전혀 압축, 변형하지 않는 RAW 포맷을 하드디스크에 담아와서 그냥 틀어 줍니다. 앞으로 기술이 발달하면 mpeg4,5,6,7....x나 나오겠지만 그 궁극은 초당 24장의 gif파일을 그냥 출력해주는 것입니다(무손실 압축 등에 관한 내용은 제가 쓴 글 "인터넷 TV 이야기: 손실 압축은 디지털 마법인가?" 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770에서 보는 것은 컴퓨터의 아날로그틱한 부분입니다. 770은 원가절감을 위해서 부품들을 고급품과 호환되는 저가품들로 대체 하는 분위기가 되기 전 마지막 제품인 듯 합니다. 770은 IBM에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돈에 구애 받지 않고 적용해 본 기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 제품들에서는 일정 정도의 타협한 부분이 보이지만 770에서는 그런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770은 그야말로 그 시대에 구현 가능한 모든 것의 최고를 호환품이 아닌 원본으로 구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막귀로는 CD와 mp3의 음질을 잘 구별할 수 없는 것처럼 화면의 차이나 키보드의 차이, 안정성 등이 대개다 비슷해 보일 뿐입니다. 때문에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면서 헤드폰은 젠하이저급의 50만원대 이상을 찾게 됩지요.

저도 막귀일 뿐이고, 그 작은 차이를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은 부족했으나, 다시 마주한 770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건 정말 최고의 물건이야. 언젠가는 성능 때문에 쓸 수 없게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야. 열 문제를 해결해서 쓰기로 하자. 엽기래도 좋고, 집착이라고 해도 좋다. 다시는 이런 물건을 쓸 기회가 오지 않을 거야."

용산 북간도의 구석진 곳에서 하드웨어 문제를 고쳐 줄 가게를 찾으러 다닐 때, 매장 사람들이 이상한 놈 취급을 해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김인성.


이 글은 시리즈물의 두번째입니다. 첫번째 글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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