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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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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들고 싶은 영화들

3. 레인맨

미닉스 김인성 2008.02.02 04:07
 

다시 만들고 싶은 영화들

 

 

 

지나간 영화들이 있습니다. 극장에 다시 걸릴 일은 없지만 미디어의 발달 덕택에 원한다면 쉽게 구해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찾아 다니지 않아도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TV에서 다시 볼 수도 있지요. 그러므로 좋은 영화를 놓쳤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고 또 하고…… 재미있는 것은 지겨워서 쳐다 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반복적으로 틀어주니까요.

 

이런 식으로 완벽한 가족 영화의 대표격인 영화 나 홀로 집에는 감동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 버려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지요. 그저 익숙해져서 채널을 돌리지 않을 뿐……. 캐빈의 깜찍함도 조페시의 멍청함도 세월에 묻혀 버렸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위대한 영화의 단물을 다 빨아 먹어 버리다니……

 

그러나 한 편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영화들도 많습니다. 아주 가끔씩 다시 꺼내볼 때마다 이런 기막힌 영화가 묻혀있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우리를 울고 웃기며 잠시 삶에 대해서 뒤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들, 그 자체로 완벽하여 조금도 손 볼 필요가 없는 것들, 그냥 다시 극장에 걸어도 될 것 같은 영화들이지요.

 

하지만 세상은 반복을 원하지 않습니다. 리메이크도 안 됩니다. 속편은 원작의 감동을 갉아 먹을 뿐이지요. 그래서 제가 상상하는 것은 이런 영화들이 가지고 있던 감동의 요소를 분해하여 새로운 조건 위에서 다시 펼쳐보는 것,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지만 원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영화 한 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들, 그들이 줄 감동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 싶습니다. 결국 다시 만들지 못하게 되더라도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제 생각을 이어받게 된다면 이 글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테니까요.

인성.


이글은 영화를 통째로 보여주는 극악의 스포일러 문서입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 중에서 이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읽기를 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3. 레인맨

 


더스틴 호프만, 톰 크루즈 주연의 또 다른 로드무비, 서로 얼굴도 모르던 형제가 돈 때문에 억지 여행을 떠난다. 그 끝에 작위적이지 않은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시절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미국 영화.

이미지 출처: http://movieimage.hanmail.net/images/photo/photo_poster/photo_poster_021650
/photo_poster_21659_131092_L.jpg

 

 

1. 일상에 매몰된 삶: 동생

 


찰스(찰리) 배빗은 수입차 딜러입니다. 비싼 차를 여러 대 들여왔지만 환경청에서 수입 허가를 내 주지 않아서 어려운 처지에 몰려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레인맨 DVD 캡쳐 이하 동일.

 

 


그는 어떡하든 시간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거짓말을 둘러대며 고객을 잡아두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고객들은 더 이상 그를 믿지 않습니다. 차 값을 뭉텅 뭉텅 깎아 주는데도 상황이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되는대로 일을 처리한 후에 애인과 함께 주말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애인과는 대화를 시작하기만 하면 싸움이 되고, 모처럼 떠나는 여행도 즐겁지 않습니다.

 

 

 

동생의 모습은 일상에 얽매여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특별한 해결책을 가지지 못한 우리들의 초상처럼 보입니다. 정의롭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습니다. 환경에도 관심이 없고 법도 그냥 귀찮은 규제로 보입니다. 나 하나만 잘 되면 다른 것은 어떻게 되도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없습니다.

 

힘들고 화나고 짜증나는 시간들, 남은 삶이라고 별다를 것도 없습니다. 작용에 반작용하듯, 무의식적으로 생긴 대로 성질 드러내고 살게 되겠지요. 하루 하루 살기도 힘든데 쓸데 없는 생각을 할 여유가 있겠습니까?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는 따위는 정말 쓸데 없는 짓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고 여태까지 무슨 계획이란 것이 도움이 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방학 때 세웠던 생활 계획표도 지켜 본 적이 없으니까요. 다 부질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어제처럼 오늘을 살면 내일이 오겠지요. 그나마 장수하려면 성질내지 않고 순간에 충실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구원은 이렇게 절망적인 우리들에게 어느 날 문득 찾아 옵니다. 그것은 그러나 절대로 희망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지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삶이란 또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어릴 때 가출 한 후에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의 장례식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는 혹시 남은 유산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차를 돌립니다.

 

 


정작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찰리

 

 


허락 받지 않고 끌고 나갔다가 아버지가 도난 신고를 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갇히게 만들었던 아버지의 차, 그는 원망스럽게 차를 쳐다보지만 한 가족을 이어지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것을 알아채지는 못합니다.
어릴 때는 상상 속의 친구인 레인맨이 노래를 해 주기도 했지만 가출 한 후로 어른이 되어버렸지, 더 이상 옛날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유언장에는 300만 달러를 이름도 밝힐 수 없는 사람에게 준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에게 남긴 것은 장미 정원과 부자간의 인연을 끊게 만든 뷰익 자동차뿐이었습니다.

 

 


꽃은 나만 받았어, 그 사람이 받은 것은 300만불 뿐이야, 꽃은 못 받았지, 꽃은 나한테만 줬다니까 분노에 찬 그는 뷰익을 몰고 신탁회사를 찾아 갑니다. 300만 달러를 가져간 자를 찾기 위해서지요.

 

 


여기 저기 헤맨 끝에 월브룩 병원에서 신탁 관리자를 찾았으나 아무 것도 이야기해 줄 수 없다는 말 밖에 듣지 못합니다. 그는 재판을 통해 권리를 찾을 결심을 하고야 맙니다.

 

 

2. 예비된 구원:

 


차에 돌아와보니 자폐증 환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차와 찰리의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박사를 추궁하여 그가 찰리의 숨겨진 형 레이몬드(레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여태껏 외동아들이라고 알고 있던 그에게 형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정작 그가 화가 난 것은 아무도 그에게 형이 있음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형 레이의 책에서 아버지의 글을 찾아낸 찰리는 그가 친형이라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레이는 함부로 자신의 물건을 만지는 찰리가 불만스럽기만 합니다. 찰리는 레이를 데리고 감으로써 상속받은 재산을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형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로 꼬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게 그들은 병원을 나섭니다. 우리의 기억에 선명히 찍혀 있는 명 장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더스틴 호프만의 완벽한 자폐증 연기의 놀라움과 동생 역 탐 크루즈의 이기적인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그저 로드무비라는 목적을 위해서 대충 만들어지는 여행의 이유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떠난 억지 로드무비들은 여행의 의미도 드러나지 않고 주위의 풍광들이 그저 볼거리로 전락하는 소품이 되어 버립니다. 최근에는 짜증나는 코미디성 로드무비도 많습니다.

 

그에 반해 레인맨은 정말 명확한 여행의 이유가 제시됩니다. 그 여행은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것이며 한가하게 여행을 떠날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을 환영하거나 도와주는 사람도 하나도 없습니다. 자폐증 형은 잠시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차를 훔쳐서 일탈을 느꼈던 어릴 때처럼 그는 또 한 번 형을 납치하여 떠나고 있습니다.

 

 

3. 형과 아우의 동행 첫째 날 : 절망

 


보호소를 벗어나서 여행을 떠난 레이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합니다.

 

 


규칙적이고 잘 정리된 병원과는 완전히 달라진 환경에 레이는 어쩔 줄 몰라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 동안에도 찰리의 회사 일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프로를 봐야 하는 레이는 자리잡고 앉아 TV에 몰입합니다.

 

 


취침 시간이 안됐다고 잠자기를 거부하는 레이에게 찰리는 전화번호부를 던져줍니다. 레이는 한 줄 한 줄 외우기 시작합니다.

 

 


돈 때문에 동생을 강제로 끌고 왔음을 알게 된 애인은 말다툼 끝에 그를 떠나버립니다.

 

 


싸움 소리에 놀란 형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외워 놓은 농담을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무력한 형의 뒷모습이 애처롭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상황은 꼬여만 가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왜 그는 뭔가 해보려고만 하면 이런 상태가 되는 것인지
…… 형을 쳐다보며 찰리는 절망에 빠집니다.

 

 

4. 동행 둘째 날: 보이지 않는 작은 희망

 



다음 날 아침 식당에서 종업원 이름을 보고 전화번호를 알아 맞춥니다. 전날 밤에 본 전화번호부를 머리 속에 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힌트는 계속해서 드러나지만 찰리는 아직 형의 천재성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이쑤시개 개수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하고 인상 깊게 만드는 부분이지만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설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폐증에 갇혀 버린 천재성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능력이 없는 단순한 자폐아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소중한 것은 활용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더라도 그냥 그대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평범할 뿐이며 잘나지도 못했고 뛰어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조미료 듬뿍 친 가게 음식처럼 감칠맛 나게 진행됩니다. 그러나 형과 아우의 화해가 형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는 과정과 오버랩 됨으로써 진정한 화해에 이르지 못하고 판타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일은 점점 꼬여 갑니다. 빨리 가서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그럼에도 형은 그저 보고 싶은 TV를 볼 수 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습니다.

 

 

형은 바쁜 아우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기를 타지 싶지 않아 발작을 일으킵니다. 로드무비를 위한 기본 설정, 직선 코스를 피하라. 비행기를 타지 마라. 공포증 때문에, 경찰 때문에, 돈이 없어서, 기상이 악화되어 긴 시간이 필요한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낭만은 그런 곳에 있으니까요.

 

 


형과 동생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만큼의 시간을 벌 방법은 길을 좀 더 돌아가는 것이지요. 형은 고속도로도 위험하다고 차를 타기를 거부합니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날 때까지 형은 걸어서 갑니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

 

 


동생은 그나마 이제 형이 원하는 것을 맞출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규칙을 지키려고 할 뿐 조금도 타협하지 않는 형을 보면서 아직은 짜증을 참기가 힘듭니다.

 

 


해결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시간을 허송하는 것이 답답합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끓어 오르는 화를 참아내고 있습니다.

 

 

5. 동행 셋째 날: 화해에 이른 형제




계속해서 똑 같은 소리만 반복하는 자폐아 형을 참아내기가 힘듭니다.

 



화가 폭발한 동생,
그깟 팬티 아무데서나 사면 어때서 똑같은 소리를 하고 또 하는 거야?

화를 푸는 방법 중에 하나는 마음껏 화를 내는 것입니다. 차 밖에서 길길이 날뛰고 나서야 동생은 형에게 미안해하게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찰리는 자폐아 형 레이를 이해하게 됩니다. 신호등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서 빨간 불 일 때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동생이 와서 구해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교통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병원에서 상담을 거친 후에 형의 병증에 대한 이해도 깊어 집니다.

형은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수학의 천재였습니다. 동생을 포함해서 그에게 외부 세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의사가 말합니다.

 

 


그럼에도 동생은 형을 잘 돌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시간에 맞추어 TV를 봐야 하는 형을 위해 모르는 집에 가서 사정을 합니다.

 

 


TV
를 보고 있는 레이, 그 때문에 만화 프로를 보지 못해서 울고 있는 아이들, TV에 몰입해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삼일 밤낮을 함께 지내고 나서야 찰리의 어릴 때의 상상 속의 친구 레인맨의 비밀이 밝혀 집니다. 레이는 찰리가 어릴 때 자기를 레인맨이라고 불렀다는 말을 합니다. 그는 찰리에게 와서 노래를 불러 주고 했었습니다. 자폐아 형에게 의미 있던 것은 가족 특히 찰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형제는 헤어지게 되었을까요?

 

 


그 비밀도 곧 밝혀지게 됩니다. 레이는 실수로 찰리를 뜨거운 물에 빠뜨린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찰리의 안전을 위해서 자폐아인 레이를 수용소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안전을 위해 형을 떠나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찰리는 마음의 동요를 느낍니다.

 

 

그 순간 부모님에 대한 오해와 미움이 사라지고 형이 가족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돈을 위해서 끌고 다니던 존재가 그의 기억 속에 있었던 친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비로소 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드러납니다. 자폐아 레이는 처음부터 찰리의 레인맨이었습니다. 형은 동생을 위해 편안한 병원을 떠나 불안한 세상으로 나와주었던 것입니다. 정상인이지만 이기심에 눈멀었던 찰리는 이제서야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찰리는 이제 레인맨을 정성껏 보살펴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잠들어 있는 레이를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구원의 순간에 대한 은유, 저는 살아오면서 저에게 내려진 이런 아까운 순간을 여러 번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톰 크루즈가 단순히 얼굴로 승부하는 배우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

 

 


깨달음의 순간에 잠시 용기가 납니다. 그는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해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합니다.

 

 

6. 패밀리 비즈니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그를 괴롭힙니다. 계약은 취소되고 8만 달러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가족은 만났지만 현실은 완전히 파탄 났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라스베가스를 무심히 지나가는 형제.

 



노래 표를 보고 순식간에 순서를 외우는 형을 보고 불현듯 카지노가 기억난 동생. 
바닥의 카드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 남은 카드를 알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완벽한 무기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급하게 차를 돌려 라스베가스로 되돌아 갑니다.  빨리 가서 돈을 벌어 봅시다.

 

 

가진 돈을 모두 털어서 멋지게 차려 입고 카지노로 향합니다.

 


형은 섞인 카드를 외워서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를 알려 줍니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카드를 주시하고 있는 레이.

 



형제는 순식간에 8만 달러가 넘는 돈을 따버립니다.

 


당연히 카지노에서는 조사에 들어 가고,



큰 돈을 들고 있는 손님에게 제공된 고급 객실에서 동생은 형의 데이트를 위해 춤을 가르칩니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동생은 형을 안아보려고 하지만 아직은 멀었습니다. 자신을 건드리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 발작하는 형, 동생은 애써 형을 위로하지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7. 가족 : 마음 속의 둥지

 


여행을 마치고 재판을 준비하는 찰리에게 완강하던 병원에서 동생에게 25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애초 그가 원한 돈 150만 달러 보다는 작지만 타협할 만한 금액입니다.

 

 


그는 그 돈을 거절합니다.
형이 있었음을 알려 주었다면 우린 좀 더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그의 진심은 이해 받지 못합니다. 나중에 의사가 한 말처럼 지난 주엔 150만 달러와 바꾸자고 하던 사람이 이 번 주엔 형이랑 살고 싶어지는 것을 믿어 줄 사람은 없으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이런 종류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저 150만 달러 혹은 그 이상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일 뿐이지요. 어쩌면 이 말을 하고 있는 그 자신도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찰리의 말이 진심임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관객들도 사실은 이 모든 장치로 인해 속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영화는 현실 속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판타지의 영역으로 진입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영화 레인맨은 손쉽게 그 길로 도피하는 대신 현실로 되돌아오기 위한 힘든 길을 선택합니다. 선명한 선악대립도 제시하지 않고 한 쪽의 승리로 결론 내지도 않습니다. 레이의 천재성을 살려야겠다는 식의 거창한 목적 의식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레이의 증세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찰리의 현실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중재를 맡은 의사는 형제애를 구하는 찰리를 위해 특별한 배려를 하지도 않습니다. 인간들은 회개하지 않고 다만 자기 역할에 맞는 선택을 사무적으로 할 뿐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공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뭔가 변할 수도 있었던 세상은 조용히 제 자리로 돌아가고 안정된 시간이 지속됩니다.

 

 


찰리의 집에서 레이는 자꾸 문제를 만듭니다. 전기 제품을 오동작 시켜 집에 불을 내고,

 


형을 잠시도 혼자 둘 수 없지만 그를 돌봐줄 사람을 쓸 여유가 없는 동생은 힘이 듭니다.

 


함께 살아야 할지 병원으로 보내야 할지 어떤 것이 형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인지 동생도 잘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홀로 되었다고 여기던 그에게 함께 웃을 수 있는 형이 있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서로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 그는 이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형과 있고 싶다는 찰리의 말 속에서 드러나는 화재, 카지노 도박 등이 그를 불리하게 만듭니다. 의사는 레이의 상태가 좋아질 것이라고 보지 않고 입장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레이를 두고 싸우게 만들 뿐입니다. 보다 못한 찰리는 레이를 위해 싸움을 포기합니다.

 


, 자꾸 물어보는 게 싫지? 이제 더 못 물어보게 할게 동생은 형 이마에 입을 맞춥니다. 그 때 즉흥적으로 형이 말합니다. My main man Charlie(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 찰리) 드디어 형과 동생이 연결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진정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8. 구원, 그러나 사랑은 남다.


 


병원으로 떠나는 형에게 동생은 2주 뒤에 찾아 가겠다고 말합니다.
2주뒤, 336시간, 20160, 1209600

 



여전히 그는 지금 하고 있는 TV 프로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러나 동생은 그런 형이 더 이상 섭섭하지 않습니다. 이젠 그를 이해하니까요.

 

 

기차는 떠나고

 



그는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봅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형이 있으니까. 이젠 더 이상 고아가 아니니까, 삶이 허무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이제 막 가족이라는 작은 어떤 것이 그의 가슴 속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냘픈 끈이 오랜 세월을 거쳐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그가 바라보는 화면 바깥의 어떤 것이, 가족, 형제, 사랑이라는 이 작은 열매가 그렇게 우리들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작위적이지 않은 진행, 여러 갈래의 감정들이 중첩된 시간, 사건의 연쇄, 어쩔 수 없는 여정,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숨겨진 비밀, 그리고 남은 슬픔, 이십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 기억 속에 버무려져 분리할 수 없는 낭만적인 추억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로드무비의 걸작입니다. 그 후 수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그들도 여행을 떠났지만 어떤 영화도 레인맨의 여정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지만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이 영화가 제 기억에 새겨지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힘들고 아픈 현실이 그런 욕망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잠시도 과거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저는 늙어버릴 것이니까요. 추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저는 갈망합니다언제나 새롭기를, 끝없이 새로운 추억을 창조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아아 레인맨과 함께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설이 되었습니다. 회귀하는 본능을 가진 우리들은 교통지옥을 뚫고 다시 가족을 찾아 떠나겠지요.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접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관심이며 관심은 함께 한 시간만큼만 진실이기 때문이니까요.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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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odnara.co.kr BlogIcon Mercutio 2008.02.02 05:33 신고 밤새 야근하다 김인성님의 주옥같은 글을읽고 나서
    필린 피로를 알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inix.tistory.com BlogIcon 미닉스 김인성 2008.02.11 16:44 신고 감사합니다. 님의 댓글에 제 피로도 풀립니다.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inoci.net BlogIcon 민노씨 2008.02.02 09:54 신고 정말 오랜만에 다시 써주셨네요. : )
    한참 기다렸습니다.

    인성님의 소망처럼 저도 영화 한편 만드는게 제 인생의 꿈인데요.
    이렇게 분석적이며, 또 동시에 따듯한 에세이와 같은 영화 리뷰들은 시나리오 작업이든 영화연출이든.. 꽤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말미를 읽으니, 설이 다가와서 굳이 '레인맨'을 선택하신 것 같기도 하네요. : )

    저 같은 애독자를 생각해서.. ^ ^;
    좀 자주 자주 써주세요.
    인성님께서 만들어주실 영화도 기다리겠습니다...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inix.tistory.com BlogIcon 미닉스 김인성 2008.02.11 16:46 신고 고향에 잘 다녀오셨는지? 다음 글은 "의혹은 없다 1편 - 일산에서는 행복을 노래하라" 입니다. 어떻게든 완성을 해보고자 하는 시리즈의 일편의 첫 번째 글을 시작해보려는 강제 예고입니다. 물론 머리 속에는 있지만 아직 첫 줄도 쓰지 않았습니다.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cansmile.tistory.com BlogIcon cansmile 2008.02.09 23:07 신고 제목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관계로 첫 번째 스크린샷을 보고 기억하게 된 영화!
    제 기억속에 더스틴 호프만이라는 배우를 새겨 넣은 첫 번째 영화입니다.
    표면적인 화면들을 통해 즐기고 감동(!)했던 영화를 멋지게 정리해 주셨네요.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inix.tistory.com BlogIcon 미닉스 김인성 2008.02.11 16:50 신고 cansmile(캔스마일로 읽습니다)님도 고향에 잘 다녀오셨는지요. 늘 관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글로 정리하면서 좀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탐 크루즈의 마지막 표정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지요. 감동은 그렇게 조용히 가슴 속에 각인되는 것 같습니다.
  • 프로필사진 jaseng54 2008.02.20 16:21 신고 오랫만에 즐겨찾기를 쭉 살펴 보다 미닉스님의 새 글을 보게 됐습니다.

    반갑습니다.

    레인맨은 저도 본지는 오래됐지만 인상에 남는 영화였습니다.

    저는 작년에 쓰기로 했던 <노자> 개정판을 올해는 정본 형태로 필히 내기로 출판사 사장과도 약속을 하였습니다.


    건강하십시요.
  • 프로필사진 대나무잠자리 2008.08.14 18:57 신고 보고 나면 화가 나고, 한동안 안보면 또 보고 싶어지는 이상한 영화들이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뻐꾸기 둥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그리고 구로자와 아끼라의 란 정도가 되겠네요.

    얼마전 또 뻐꾸기를 혼자 보면서, 한 칠팔년 입에 대지 않았던 맥주를 한병 마셨네요.

    대마초가 없어서 눈물을 나지 않더군요.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rpainc.egloos.com BlogIcon RomanticPanic 2009.03.25 19:16 신고 저와는 비교도 안되실 정도로 잘쓰신 리뷰군요.....제글이 무척이나 초라해지는 군요....흑...
    김인성님의 리뷰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들릴께요..^^ 사실 저도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아주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올해는 무척이나 바빠서 그 일에 투자를 못할 듯 싶습니다.(매우 슬프죠...) 그래서 결국 중대한 연습(?)중 하나인 영화보고 시놉시스 배껴쓰기(?)스킬을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암울하죠...
    인성님은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그럼 건강하세요^^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inix.tistory.com BlogIcon 미닉스 김인성 2009.03.26 11:05 신고 좋은 정보를 서로 나누고 싶어서 트랙백을 건 것입니다. 각각의 글을 나름의 가치를 가지니까 비교할 대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일은 관계자들과 조금씩 연결이 되고 있는데 언젠가는 성과가 있겠지요. 님도 건투를 빕니다.
  • 프로필사진 samuel 2009.04.16 12:01 신고 영화 레인맨 한편을 다 옮겨 놓은 것 같네요. 오랜만에 예전을 추억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나 저나 레인맨을 곧 연극으로도 공연한다는데.. 영화의 감동을 살릴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괜히 잘 못할거면 건드리지 말았으면 한다는...ㅋㅋ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inix.tistory.com BlogIcon 미닉스 김인성 2009.04.17 14:07 신고 레인맨을 연극으로 한다구요? 기회가 되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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