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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770z ...... ...... .... 8/9 본문

삽질기1-770Z

770z ...... ...... .... 8/9

미닉스 김인성 2007.04.23 14:48
 

안녕하세요.

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했던 튜닝을 모두 원위치 시켰지만 정작 중요한 스피드스텝 비활성화는 실패했습니다. 850MHz CPU를 너무 괴롭혀서 아마 어딘가 회로가 잘못된 모양입니다. 며칠 동안 회로를 고치며 노력했지만 결국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제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이베이에서 같은 CPU를 하나 더 구입하는 것입니다. 시간과 비용이 들겠지만 가장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입니다. 더 이상 인두 들고 고민할 필요도 없지요. 하지만 이 건 너무 안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CPU를 또 돈 들여 산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를 켜면 자동으로 이베이와 일본 옥션을 검색하고 있었지만 이 방법은 결국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자주 이베이를 뒤지기는 합니다. CPU 가격이 한 오 만원 아래로 떨어지면 고려해 볼 예정입니다.

다른 방법은 750MHz CPU를 그냥 쓰는 것입니다. 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으니까 750MHz CPU를 스피드스텝 활성화 모드로 사용해도 별 문제 없지 않을까 하는 짐작 때문에 생긴 생각이지요. 이 방법을 선택하면 또 다시 안정성 테스트를 위한 수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안정적이라면 좋겠지만 글쎄요. 그 끝에 대한 보장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노트북 분해 조립은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패스.

또 다른 방법은 450MHz짜리 600x를 구입하는 것입니다. 770z에 있던 메모리, 하드디스크, 850MHz CPU를 그대로 쓸 수 있으니까요. 상당히 솔깃한 유혹입니다. 화면 크기에 대한 집착만 조금 포기하면 됩니다. 무게도 가볍고 속도도 더 빠르고 키보드감도 비슷하고……

이 방법도 언젠가는 선택할지 모르지만 현재는 생각이 없습니다. 850MHz로 동작하는 CPU를 놀리기 아깝기 때문에 어쨌든 여벌로라도 한 대 갖추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지만 770z에 600x까지 쌓아 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집에 노는 570e도 있으니까요. 이 것도 패스.

770z를 영원히 쓸 수도 없고 언젠가는 기변을 해야 하기 때문에 꼭 해 보고 싶은 것은 770z 용 키보드 개조입니다. PS/2에 연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지 키 하나 하나를 다른 키보드에 이식하던지 어쨌든 이 최고의 키보드를 살릴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770z 키보드를 생산한 업체와 접촉할 수 있다면 다른 노트북용으로 재생산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이건 개인적으로 할 일은 아니고 사업적으로 가능성을 따져보아야 할 일입니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방법이 있을 겁니다. T시리즈 정도로 큰 본체에 770z의 키보드를 어떻게 구겨 넣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고 열 문제 해결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앞으로 한 번은 조사를 했으면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상 속의 방법은 별로 실효성이 없습니다. 결국은 키감을 포기하고 높은 성능의 노트북에 적응하게 되겠지요. 아니면 기계식 키보드를 갖춘 데스크탑을 사용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무리 저항하더라도 이미 예정된 미래입니다. 어떻게 노트북을 키감만으로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레노보가 770z의 키감을 살린 노트북을 다시 만들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 새로운 고급 브랜드로 부상하고 있는 삼성의 분발을 바랍니다. 이 글을 읽게 계신 분 중에서 삼성 노트북 개발에 관계된 분이 계시면 꼭 이런 점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씽크패드가 중국으로 넘어감으로써 이제 삼성이 최고 노트북 브랜드가 될 기회를 얻었습니다. 씽크패드가 명품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최고의 키감입니다. 꼭 770z를 구해서 그 키보드를 연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씽크패드의 밝고 뛰어난 LCD, 단단함, 안정성, 신뢰성 등을 밴치마킹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저에게 770z를 놓지 못하는 이유 한가지만 들라고 하면 이 절정의 키감을 말씀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삼성노트북에 씽크패드급 키보드를 단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특정 업체를 거론한 것에 다른 뜻이 없습니다. 엘지든 현대든 대우든 상관없습니다. 씽크패드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는 업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600MHz로 동작하는 770z. 어떤 경우에도 죽지 않는 안정성을 얻을 수 있다. 오랜 시간에 걸친 결론이다.



이런 저런 많은 방법 중에서 제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안 되는 850MHz CPU는 포기하고 750MHz CPU를 600MHz로 쓰는 방법이었습니다. 스피드스텝 기능도 죽이고 8% 오버클럭도 포기하고 그냥 600MHz에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의지가 꺾인 것일까요? 용기가 없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이제 피곤해진 것일까요? 시작은 거창했고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지만 최종적으로 진부한 결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저 자신을 설득할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최신 컴퓨터에 비하면 어차피 느린 노트북입니다. 850, 700, 600이라는 속도가 체감상 그렇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 850MHz 짜리를 700MHz로 쓰는 것이 최선이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다시 10만원 가까운 돈을 지불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750MHz 짜리 600MHz로 쓰는 것이 최선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150MHz 차이에 목숨 걸던 제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더구나 낮은 클럭에서는 100MHz 차이가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닙니다. 애초에 원했던 850MHz에 비해서는 600MHz는 거의 1/3이나 속도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속도에 연연하지 않게 된 이유는 열 문제 해결을 위해서 튜닝을 시도하면서 770z의 장점이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클래식 기종인 770z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정성이었습니다. 튼튼하고 신뢰가 가는 디자인에 결코 죽지 않는 안정성이 770z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지금도 770z를 바라보고 있으면 단단함이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의 노트북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770z의 단단함이 두꺼움과 투박함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브 노트북은 논외로 치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3kg 이상의 최신의 올인원급 노트북에서 770z와 같은 단단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단아한 770z 모습. 흠잡을 데 하나 없는 디자인. 바라볼수록 단단한 노트북이라는 느낌이 든다. 참 예쁜 모습이다.


열려 있는 770z. 560의 형님이라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다.



충격적으로 데뷔했던 560의 그 이미지가 그대로 살아있는 모습은 참으로 예술입니다. 키보드도 정말 제대로 입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이 글도 770z로 쓰고 있는데 한 자 한자 칠 때마다 손가락 끝에 쾌감이 느껴집니다. 쫀득쫀득한 이 느낌. 이거면 됩니다. 속도? 필요 없습니다. 600MHz면 충분합니다. 600이든 700이든 어떤 부하를 걸더라도 절대 죽지 않는 견고함을 보장한다면 그 것으로 됩니다. 빠를 필요 없습니다. 하드웨어적인 단단한 이미지를 소프트웨어에도 연장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외부에 장착한 팬을 돌리지 않게 만들고 내장된 쿨러도 CPU 온도 측정치에 따라 돌도록 원위치 한 결과 아주 정숙해졌습니다. 내장 팬 하나만 돌 때는 팬이 도는지 안 도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합니다. 배터리도 길게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개로 2시간 이상 쓸 수 있습니다. CD-ROM을 제거하고 이차 배터리를 끼우면 거의 다섯 시간을 배터리만으로 쓸 수 있습니다.




770z의 뒷부분. 튜닝의 흔적이 남아 있다. 뻥뚤린 곳을 막아야 하는데 게을러서 그냥 쓰고 있다. 팬은 돌리지는 않지만 나중을 위해서 그냥 둠.


배터리 게이지. 두 개의 배터리를 모두 끼운 상태의 모습이다. 최신 노트북 배터리 사용 시간이 부럽지 않다.


부품용 770z와 함께 찍은 모습. 깔끔한 외형을 위해서 하판을 바꾸어야 할 텐데 귀찮아서 그냥 쓰고 있다. 밑판을 바꾼다는 것이 말이 쉽지 사실 노트북 두 개를 완전 분해 조립하는 중노동이다.



Deepsleep은 저 클럭 모드에서도 쓸모가 있습니다. 하드웨어 회로를 원위치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스피드스텝 고클럭 모드를 활성화 할 수는 없지만 대신 슬립에 들어갔다 나올 때 powerleap을 불러서 자동으로 캐시를 활성화 해줍니다. L2 캐시를 활성화하지 않았을 때와 했을 때의 차이는 상당한 편입니다. 소프트웨어적인 자동화가 되었으므로 이런 부분에 신경 쓰지 않고 작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오버클럭 했을 때는 이어폰에서 잡음이 많았는데 이제 잡음도 들리지 않습니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세상과 싸울 작은 무기로써의 저 만의 노트북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노트북은 처음 샀을 때 그대로인데 저는 이 모습에 만족하기 위해서 참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습니다. 온갖 엽기 삽질을 감행한 끝에야 처음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도를 깨달으면 오히려 평범해진다는 진리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니 사실 노트북의 상태는 처음 샀을 때보다도 더 나빠져 있습니다. 뒷부분이 엉망이고 속도도 느리고 여기 저기 긁힌 상처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상처들이 오히려 저의 770z를 다른 것과 구별해 주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저의 770z에 제가 이미 길들여진 듯합니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때까지는 알차게 쓸 예정입니다.

지난 일 년간 770z를 상대로 보낸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770z와 함께 하면서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힘을 얻은 것 같습니다. 한 때는 명기로 군림했으나 이제는 빛 바랜 과거에 불과한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770z를 살려내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저도 새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이제 희망을 가져도 될까요?

이 글을 쓰면서 행복했습니다. 머리 속에만 있는 어떤 것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지만 글을 써나가는 동안에 오히려 글 자체가 저를 구원해준 듯 합니다. 여러분의 격려가 정말로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완결 짓기 위해서 노력하는 동안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끝에 왔습니다. 이 글이 저에게 구원이었듯이 여러분들에게도 조금은 의미가 있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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