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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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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지랄인가?

미닉스 김인성 2018.04.02 01:45

저는 맨날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살고 있습니다.


IT 스타트업에 뛰어들어 주식으로 돈 벌 기회가 이렇게 많은데 뭐하러 이런 궁상을 떨고 있나?

하다못해 비트코인 채굴을 해도 쉽게 돈 만질 수 있을텐데 왜 팔리지도 않는 IT 만화 그리겠다고 지랄을 하고 있나?

책을 써도 하필 통신사, 포털 비판에 맨날 정부까지 까고 있으니 팔리지도 않는 거 아니냐?

이명박근혜 때 애쓴 공으로 어디 줄 대서 한 자리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저도 이런 소리 하는 분들이 틀린 소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건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서 자꾸 세상과 어긋나 보이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글 하나 쓰고 싶다"



이게 제가 원하는 것의 모든 것입니다.


저는 나름 오랜 세월 동안 글쓰는 재주는 조금 익혔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오래 가는 글은 글 재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살펴본 결과 오래 가는 글은 

"천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글"이었습니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그 당대의 철학적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청춘이다"(오타 아님.^^)는 몇 백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지만 진정한 문제 해결을 담은 책이 아니므로 

잠깐 인기를 끌다가, 비웃음 당한 후, 경멸 받으며 묻히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창작물이 출현하지만 

세월의 주름 속에서

단 하나의 작품으로 추상화 됩니다.


70년대 한국 문학은 황석영의 객지로 대표됩니다.

90년대 한국의 수많은 유행가가 출현하였지만 결국 서태지의 난 알아요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100년 동안의 팝의 역사는 비틀즈, 그 중에서도 렛잇비로 상징될 수 있습니다.

서양 철학사 전체는 여전히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의 2000년대, 아니 2000년대 인류를 상징할 글은 무엇이 될까요?


그것이 어떤 것일지,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가장 레디컬하게 세상을 보아야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금기를 뛰어 넘는 동시에 용감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선 시대의 신분제 철폐를 주장한 사문난적처럼,

한국에서 비토 당하고, 북한에서 거부 당할 정도가 돼야 합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아니 전 세계에서 한 목소리로 비난하는 것일수록 

더 긴 생명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글은 제 목숨과 바꾸어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 삶의 한 시점에 이런 거창한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지만

언제나 현실에 매몰되어 잊고 지내고 맙니다.


하지만 멀리 여행을 다녀왔거나, 긴 휴일의 휴식을 끝내고 잠깐 깨어난 순간에 

제 삶의 목적을 자각하게 됩니다.


며칠 전 "이명박근혜 때 내가 노력했는데 왜 안 알아주냐?"고 징징대는 글을 썼지만

그 목적이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억되는 "글"을 위해 사는 존재일 뿐입니다.

저의 현실적 성공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현실적인 보답을 받을수록, 세태와 영합 할수록,

제 글의 생명력은 짧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억되는 "글"의 형식도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문학적인 글이나 전통적인 예술만이 미래에 받아들여진다고 믿을 근거가 없습니다.

그 내용이 유효하다면 웹툰이 되었든, 동영상이 되었든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예술 형식도 차용할 것입니다.


결과가 어떨지 전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작업을 묵묵히 수행할 뿐입니다.


제가 죽은 후에도 인류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글 하나만 남길 수 있다면 

제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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