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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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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의 집 지키기

나의 피자 정착기

미닉스 김인성 2017. 6. 16. 17:22

아재로서 저는 요리를 잘 할 줄 모릅니다.

사실 부엌에만 가면 사모님에게 잔소리를 듣기 때문에 잘 가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설거지를 하는 정도입니다. 

물론 여기서 설거지란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고 동작 버튼을 누르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 때문에 제가 할 줄 아는 요리가 딱 3개 있습니다.

스파게티와 피자와 바게뜨 만들기입니다.

밥이나 김치 찌개 또는 라면 끓이기는 요리라고 부르기 애매하고, 이것들은 해봐야 사모님의 잔소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할 줄 알아도 안 하는 것이 낫습니다.

제가 스파게티, 피자, 바게뜨를 하는 이유는 이걸 만들어 주면 식구들이 마구 감동을 먹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래 전부터 주말이면 가끔 요리를 하곤 했습니다. 


바게뜨 만들기에 도전합니다. 


밀가루, 소금, 이스트만 사용해서 성형을 하고 오븐에 굽습니다.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바게뜨는 만드는 과정은 간단한 반면, 제대로 만들기 어려운 음식입니다.


잘 구워진 바게뜨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엄청난 시행 착오를 거쳤습니다.


사실 제가 원하는 바게뜨는 파리바게뜨 같은 곳에서 파는 두께는 얇고 속은 부드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서 그런 바게뜨는 만들 수 없었습니다.

(모양은 뽀대나지만 프렌차이즈 빵집 바게뜨는 더럽게 맛이 없습니다. 빠XXXX는 졸라 딱딱하고, 뜨XXX는 더럽게 짭니다)


한 때 전국으로 글쓰기 여행을 다닐 때 점심으로 매일 그 지역에 있는 동네 빵집에서 바게뜨를 사 먹었습니다.

그 때 몇 몇 동네 빵집의 갓 만든 따끈 따끈한 바게뜨의 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청송의 허름한 빵집, 제주도 서귀포의 마트 구석의 빵집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김천의 마루 빵집...

이런 곳에서 맛 보았던 껍질 얇고 속이 부드러운 바게뜨를 집에서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아무리 애써도 겉은 타고 두껍게 밖에 만들 수 없었습니다. 속도 부드럽기 보다는 누룩빵 같은 느낌의 빵 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물론 제빵사가 프랑스에서 왔다는 유명 가게의 바게뜨가 오히려 제가 만든 바게뜨가 비슷해서 위안이 되기는 했습니다. 

바게뜨 요리법 대로 만든 것이 결국 프랑스 제빵사가 만든 것과 같다면 제가 틀리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겉은 얇고 속은 부드러운 바게뜨는 베이킹파우더 등 뭔가 사술을 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겉은 얇고 속은 부드러운 바게뜨를 만들어 보고 싶은 로망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십 년 쯤 전에 제가 만들었던 피자입니다.

바게뜨에 비해 피자는 정말 만들기 쉬운 요리였습니다.


밀가루를 이스트로 불린 후, 피자 소스를 바르고, 생 양파를 잘라서 넣은 다음, 햄과 옥수수를 양껏 넣고 그 위에 치즈를 마구 뿌립니다.

기호에 따라 각종 푸른 채소를 얹기도 합니다. 

밀가루 반죽은 대충 바닥에 펼쳐 놓았기 때문에 도우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두께는 들쭉날쭉입니다.

엄마가 된장찌개할 때는 근처도 안 가는 아이들이, 제가 피자 만들 때에는 도와주겠다며 꼭 곁을 지킵니다.

 

오븐에 넣은 피자가 맛있게 잘 구워졌습니다. 


사실 피자는 대충 구워도 맛있고,  잘 구워도, 태워도 다 맛있습니다.

피자는 만들기도 쉽고, 점수 따기도 너무나 쉬운 환상적인 요리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아재들은 이 번 주말에 피자 만들기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완성된 피자는 잘라서 먹으면 됩니다.


어떻게 만들었든, 무슨 재료를 넣었든 피자는 맛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피자는 금방 동이 납니다.

물론 아재인 저는 피자를 먹고 나면 늘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했습니다.

밀가루 음식이라 그런지, 잘 씹지 않고 삼켜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만들든 사 먹든 피자는 언제나 더부룩한 음식이었습니다.


늦은 점심 시간까지 손님들이 피자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서는 이태리 유명 피자 가게입니다.


하지만 이런 더부룩함은 이태리에 가서 해결했습니다.

일 때문에 갔던 로마에 한 달 간 머물러 있는 동안 점심은 매 번 피자를 먹어야 했습니다.

이태리에 가서 알게 된 것은 이태리에는 피자를 사각형으로 만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피자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오른쪽은 밀가루와 토마토와 치즈만 얹은 것 같은 피자입니다. 중간에 있는 것은 이태리를 상징한다는 마르게리따 피자입니다.  

빨간색, 흰색, 초록색이 이태리 국기와 같습니다. 


그 왼쪽에는 이상한 피자들이 있습니다. 피자 위에 새우가 그득 올려져 있습니다. 보기에 이상해서 한 번도 사 먹지 않았습니다.


그 옆에도 의심스러운 재료가 가득 올려져 있는 피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피자는 마르게리따에 비해 별로 잘 팔려 나가지 않는 듯 했습니다.

 이 쪽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패스합니다.


저는 한 달 내내 마르게리따 아니면 도우에 토마토와 치즈만 올라가 있는 플레인 피자를 콜라와 함께 먹었습니다. 


이태리에서 먹는 이태리 피자도 처음에는 더부룩했지만 한 달 동안 꾸역꾸역 씹어 먹으니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그 후부터는 별로 더부룩하지 않았습니다.


 한달 내내 단골로 지내며 안 되는 영어와 한 두마디 이태리어로 친해져서 주방 사진까지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태리를 떠나오는 날 저는 특별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바로 이태리에서 만든 피자를 한국으로 배달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태리를 떠나는 날, 비행기 타러 가기 전에 피자집에 가서 커다란 사각 피자를 통째로 샀습니다.


로마 떼르미니역에서 구입한 피자를 열어 보는 모습입니다.


저는 공항에서 피자를 수화물로 부쳤습니다.

피자는 저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배달되었습니다. 

배송 시간은 거의 20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이태리 로마에서 서울로 직배송된 이태리 마르게리따 피자. 


배송 시간이 많이 걸려 식긴 했지만 그래도 정통 이태리 피자라서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게도 아이들은 맛이 없다며 별로 먹지도 않고 대부분 남기고 말았습니다. 

저도 한국에 들어오니 왠지 이태리 피자가 맛이 없어 결국 다 먹지 못했습니다.


역시 한국 사람은 한국식 피자가 그만인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이태리 피자 배달 실패!

몇 년 전에 이마트에서 이태리에서 만든 피자를 냉동 배송해 판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후 조용한 것으로 봐서 그것도 실패한 걸 같습니다.


이태리 본토에서 정통 피자를 경험한 저는 그 후 이태리에서 배운대로 사각 피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태리식 사각 피자라서 그런지 뽀대도 작살입니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뽀대 작살로 만들어도 맛까지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더구나 한국식 피자는 아무리 꼭꼭 씹어 먹어도 더부룩한 것은 그대로였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실력도 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양한 실험도 계속했습니다. 


끝부분에 치즈를 넣은 치즈 크러스트, 으깬 고구마를 넣은 고구마 크러스트까지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왜 피자를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이 마지막 의문이 풀렸기 때문입니다.


이 한장의 사진에 제가 알아 낸 궁극의 피자 요리법이 담겨 있습니다.


좋은 피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밀가루는 (농약 범벅인) 미국산이 아닌 국산 밀가루를 씁니다.

피자 소스는 사서 쓰지 않고, 그냥 생 토마토를 살짝 데친 후 피자 도우 위에 으깨어 뿌리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시중에 파는 햄이나 소세지는 첨가물이 많이 들어가 있으므로 쓰지 않습니다. 대신 대패 삼겹살과 차돌박이를 볶아서 올립니다.

치즈도 치즈 전문점에서 제대로 된 치즈를 구해 씁니다.

양파, 마늘 기타 야채는 싱싱한 것으로 기호에 따라 올리면 됩니다. 

대신 깡통 옥수수는 넣지 않습니다. 가을에 제철 옥수수를 직접 삶아서 넣을 생각입니다.

(자세한 조리 과정은 다음 번 피자 구울 때 사진을 찍어 자세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완성한 피자입니다.


피자 만들기 이십 년, 오랜 방황의 세월을 거쳐 저는 드디어 궁극의 피자 요리법을 완성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함 그 자체였습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구울 것, 그리고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함께 먹을 것.


피자를 가장 맛있게 먹는 비법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 아빠가 피자를 만들 때마다 아이들이 곁을 지킨 것이 이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가장 최근에 만든 피자입니다.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제 지인과 아이들 친구까지 와서 남김 없이 다 먹고 나서도 아쉬워했습니다.


함께 먹기 시작하자 피자 두 판으로도 부족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자를 구울 빵판을 두 개 더 주문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한 번에 15명까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니 빵판을 한 번 더 회전한다면 30명도 문제 없습니다.


하수상한 시절,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반면, 안 되는 것도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이상한 시간을, 좋은 사람들과 피자를 함께 먹으며 견디기로 했습니다.


잘 지내시나요? 

시간 되시면, 저와 함께 피자나 드실까요?

어서 오세요, 당신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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