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85 道 : 글 속으로 가는 길)
道: 글 속으로 가는 길 2012/01/21 08:50도서관을 옮겨 다닌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글을 쓰러 먼 곳까지 와 있다는 긴장감은 도서관에 앉은 지 하루나 이틀만 지나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사흘째가 되면 지금 해야 할 일 무엇인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두 잊어 버리고 다시 웹 서핑이나 책 읽기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저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져 글쓰기란 알맹이는 사라지고 지방에 관광하러 온 사람처럼 나태하게 시간만 죽이게 됩니다. 이성적으로 따지면 너무나 황당한 일이지만 순간 순간의 욕구에 몸과 정신을 내맡기다 보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일상에 불과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게을러져 있음을 운 좋게도 자각 할 수 있을 때마다 가방을 싸서 도서관을 옮겼습니다. 나중엔 이런 자각도 흔치 않게 되는 바람에 어느 날 제 정신이 들었을 때 한 도서관에서 3일이 지나면 무조건 옮기기로 규칙을 정했습니다.
한 지역 안에는 대개 한 개 이상의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찾아보면 일반 도서관, 작은 도서관, 기적의 도서관 또는 대학교 도서관도 많았습니다. 한 지역에 머물면서 그곳들을 차례대로 옮겨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다시 이동할 적당한 도서관을 찾기 위해 지도를 보던 중 문득 도서관은 전국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태까지 변화를 추구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개미처럼 한 지역에 머물면서 그 주위만 열심히 맴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자각한 순간 갑자기 머리 속이 환해지면서 작은 도시에 갇혀 있던 상상력이 전 국토만큼이나 확대되었습니다.
--왜 나는 한 도시 안에서만 머물러 있는 것일까? 지금 다른 지역의 도서관으로 넘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전국에 있는 모든 도서관을 옮겨 다닐 수도 있지 않을까?
저는 지도에서 전국의 도서관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곧 화면에 별처럼 많은 도서관이 나타났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은 30Km 정도 떨어진 다른 도시의 도서관이었습니다. 이 정도 거리라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좁은 도시에서 배회하지 말고 그냥 이대로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눈 앞에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열리며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더 고민할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바게뜨를 씹으며 차를 몰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미 옮겨 다니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잠자기 적당한 곳을 찾는 능력도 생긴 상태였습니다. 믿고 있던 출판사에게서 퇴짜를 맞은 후라 새 글에 전념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했습니다. 도서관 사람들과 익숙해지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최선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들이 저를 한 방향으로 몰고 있었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차에서 자기 시작함으로써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지방 도서관에서 글을 쓰겠다며 집을 떠날 때부터, 아니 재취업을 하기 전에 글을 완성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아니 제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부터 이미 운명처럼 예정되어 있던 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운명을 받아들인 채 어디까지 가게 될지 모를 미지의 길을 떠났습니다. 2월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추웠던 어느 봄날의 일이었습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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