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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64 道 : 글 속으로 가는 길)

道: 글 속으로 가는 길 2012/01/01 18:00

제 2장: 고(苦) 

미래는 순간 순간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믿더라도 그것이 완전한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인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다.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바둑의 수순처럼 정해진 길로 가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간 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결국 같은 길을 가면서 그것을 운명이라고 믿습니다.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글 쓰러 지방으로 간 후 했던 일들이 그 때는 최선인 듯 보였지만 지나고 보니 예정된 길로 점점 빠져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실 집요한 성격 때문에 거의 외길일 수밖에 없음을 전혀 깨닫지 못했던 탓도 있었습니다.

삼 주 간 여관 생활을 하면서 지방 도서관을 다닌 결과 어느 정도 성과가 있긴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애는 썼지만 하루에 원고지 15매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약속한 기한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그 전에 끝내려면 최소한 하루에40매 정도는 써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인터넷을 강제로 못쓰게 만드는 것 이상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제 생활을 살펴본 결과 가장 큰 실책은 여관 생활인 것 같았습니다. 거기서는 글과 관련한 것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밤새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거나 영화를 봤고 그것도 지치면 무기력하게 누워서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 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늦게 잤기 때문에 늦게 일어났고 낮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찍 잠들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여관에서 게으르게 생활한 것을 반성 했지만 그 다음 주에 비싼 돈을 지불하고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삼 주째를 넘기면서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인 여관에서 나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여관 침대도 그 결정에 한 몫을 했습니다. 침대 시트가 깨끗하지 않아서 벗겼다가 차마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매트리스를 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태껏 그 위에서 뒹굴고 음식까지 사다 먹었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올라와 그 길로 여관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여관을 제외하면 지방에서 며칠 간 잠만 잘 방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 하던 중에 놀랍게도 간단한 해결책을 발견했습니다. 근처에 수 많은 찜질방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관보다 더 좋은 것 같았습니다. 더 넓은 목욕탕과 더 큰 텔레비전이 제공되었고 간식을 사먹기에도 편리했으며 다양한 즐길 거리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들인 여관비를 아까워하며 찜질방에 일찍 오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했습니다.

김인성.

여관 TV: 여관에 설치된 42인치 PDP TV, 여기에 노트북을 연결해 영화를 보곤 했다. 여관 침대에 누우면 이상하게 무기력해진다. 오늘의 팁, PDP를 사지 말 것. 사진에 보이듯이 PDP 특성상 쓰다보면 깨알같은 불량 화소가 전체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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