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 (道 : 글 속으로 가는 길 39)
道: 글 속으로 가는 길 2011/12/09 08:50아내는 타협을 원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는 그녀가 바라는 것은 기약할 수 있는 고생의 끝이었다. 기다림의 끝, 그 희망이라도 있어야 고생을 참아 낼 수 있는 것일까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젊고 활기찬 아가씨였던 아내가 생활에 지친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넉넉하게 두 달만 더 기다려 줘. 그 때까지는 뭔가 결말이 나겠지. 대신 그 동안에는 글만 쓰게 해줘.”
생계도 해결 못하면서 딴 짓을 하려면 집안 일이라도 돌보는 게 도리였지만 저는 뻔뻔스럽게 글만 쓰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절박해 있었습니다. 아내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한참을 앉아 있더니 방안으로 들어가며 한마디 했습니다.
“난 몰라 알아서 해.”
저는 방으로 따라 들어가 누워 있는 아내 곁에 앉아 앞으로 잘 될 거란 희망을 불어 넣어주려 애썼습니다. 지금 쓰려는 글이 얼마나 기막힌 것인지 과장되게 설명했고 출판사 사람과 얼마 전에 했던 의례적인 전화 내용을 부풀려 말했습니다. 모든 문제가 금방 해결될 거란 혼자만의 상상을 기정 사실인 것처럼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진짜야.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꼭 출판 되게 할게. 정말이야. 이번에는 꼭 된다니까.”
저는 스스로를 옥죄는 죄책감 때문에 그냥 아내가 원하는 대로 내일이라도 할 일을 찾아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았습니다.
--열정이 있고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 밀어 붙여야 해. 이 마지막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남은 인생 내내 후회하게 될 거야.
그 때 아내가 혼잣말처럼 물어 왔습니다.
“근데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할 건데?”
저는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안 된다면 정말 글에 대한 갈망을 접을 수 있을까? 취직해서 부양의 의무를 다하는 일에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까? 그런 생활 속에서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 모든 것에 대해 저는 아무런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저 지금의 일만, 오늘 쓸 글만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증폭시킬 뿐이었습니다. 저는 대답 대신 불을 끄고 거대한 현실의 벽을 외면하듯 조용히 방에서 나왔습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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