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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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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기2-맥주병을 위하여

0. 수영에 대한 기억

미닉스 김인성 2011.08.25 12:55

 

제 0 장: 수영에 대한 기억

이 글을 쓰는 지금은 7월, 장마철입니다. 비도 많이 내리고 때로는 태풍이 몰려 오기도 합니다. TV에서는 파도가 거세게 치는 무서운 바다를 보여주지요. 물이 불어난 계곡에 고립된 사람을 구조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한 지역이 수몰되어서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자주 등장합니다.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겠지만 수영을 못하는 경우에는 이런 장면들이 더욱 더 공포스럽지요.

 

태풍이 몰고 온 파도에 휩쓸리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이리 저리 쓸려 다니다가 숨이 막혀 죽게 되겠지요. 상상을 해 보면 죽는 것도 두렵지만 죽을 때까지 당해야 할 고통이 더 겁나는 일입니다. 숨 쉬려고 버둥대는데도 물 밖으로 떠오르지 못해 답답해하는 상황은 살아오면서 실제로 겪기도 한 일이지요. 몇 초 되지도 않는 그 순간도 아득하게 길게 느껴졌었는데 죽을 때까지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요? 요동치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려 달라고 외쳐도 아무도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온몸이 오싹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이런 상상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훨씬 더 리얼하게 다가옵니다.

 

휴가철을 앞두고 장마가 계속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수영을 배우고 싶어집니다. 바닷가로 휴가 갔을 때 남들만큼 헤엄을 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물에 빠졌을 때 스스로 헤엄쳐 살아 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위해서도 필요하지요. 물론 건강을 위해서 운동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수영을 못할 때는 그런 용도의 수영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폭풍 속의 바다: 불가항력의 자연 앞에 놓인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런 장면은 우리에게 두려움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만든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살아 남았기를……

이미지 출처: http://www.mcaorals.co.uk/Photos/Disaster%20Images/LK-Purser-with-freak-wave.jpg

 

 

자동차 사고: 왜 차가 물에 빠지면 대부분 익사하게 될까? 차가 물에 빠질 정도면 정신을 잃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깨어 있었어도 수영을 할 수 없다면 죽을 수 밖에 없다. 이 때가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을 가장 후회하게 될 때일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http://www.southlyonpolice.com/assets/images/wreck_water.jpg

 

 

홍수: 계곡에서 놀러 왔다가 홍수를 만난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있던 아버지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 딸을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영도 별로 소용이 없지만 실낱 같은 기대를 하기 위해서 수영을 배워 놓을 필요는 있다. 하류로 떠내려간 딸이 혹시 살아 남았을지도 모르니까.

이미지 출처: http://www.prh.noaa.gov/hnl/pages/events/ManoaFlood20041030/Manoa_Stm9.JPG

 

 

수영을 못한다는 이유로 살아가면서 제외시켜 놓는 것들이 많지요. 수영장은 물론이고 가능하면 물과 관련된 것들은 안하고 살게 됩니다. 혹시라도 잘못되어서 물에 빠질 위험이 있는 일을 해야 할 때는 즐기기는커녕 조마조마한 상태로 끝날 때만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지요. 하다 못해 대형 수족관에 가서도 유리가 깨져 물이 넘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무서워했습니다. 살다 보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물에 들어가야 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 때문에 물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물과 관련하여 악몽으로 기억하는 것 중에 하나는 유격의 하강 훈련입니다. 높은 곳에서부터 줄을 타고 내려오다가 물에 뛰어 드는 상당히 어려운 훈련이지요. 이등병 때 하강 기구를 잡았을 때 까마득한 그 높이가 공포스러웠습니다. 조교가 무섭게 다그치며 수영을 못하면 맥주병이라고 외치며 내려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저는 폼 나게 유격대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맥주병이라고 소리 소리 지르며 내려 갈 수 밖에 없었지요. 아래 쪽에 있는 조교들이 물에 빠질 저를 구해달라는 절규였으니까요. 조교가 하강 기구에서 손을 떼고 물로 뛰어 들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저는 신속히 손을 놓고 물 속으로 빠졌는데…… 아아 지금도 깊은 물 밑에서 보았던 까마득히 높은 수면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태어나서 가장 깊이 들어 간 그 물 속에서 갑갑함과 두려움을 느꼈지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빨리 떠오르지 않아서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 후 내무반에 누우면 하강 때의 물 속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많습니다. 천장이 수면이고 저는 지금 물 속에 있는 것이지요. 빨리 떠 올라야 하는데 마음 같지 않아서 갑갑합니다. 꿈 속에서도 똑 같은 상황을 자주 겪었습니다. 깨고 나면 식은 땀이 흥건했지요.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았는데 결국 다음 번 유격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 때는 이미 고참이 되었으므로 훈련에는 참가했지만 텐트를 지키는 병사로 자원해서 훈련을 빠질 수 있었습니다. 쫄따구들 훈련 받을 때 텐트에 누워 탱자 탱자하면서 시간을 보냈지요. 그러나 모든 훈련은 빠져도 마지막 하강만은 반드시 받아야 훈련 참가로 인정한다는 말을 듣고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일 년간 두려워하던 그 훈련을 다시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저는 고참답게 짱구를 굴렸습니다. 손을 놓으라는 신호를 받고 한참 후에 떨어졌습니다. 물 속에 빠지느니 아예 마지막 안전 그물에 떨어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신호를 무시하고 물에 들어가자 마자 바로 그물 잡고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늦게 떨어졌습니다. 조교들은 명령대로 하지 않았다고 머리를 물 속에 처박았다가 한~참 있다가 빼주더군요. 호수 물을 실컷 먹는 물고문을 당하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지요. 물에 대한 두려움만을 가지게 만든 제 인생의 마지막 유격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유격 하강: 인터넷에서 구한 가장 리얼한 유격 장면, 아래 쪽은 강물이다. 얼차려를 받으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올빼미들은 대부분 맥주병을 외치며 내려 온다.

이미지 출처: http://aquamedia.co.kr/bbs/data/photoi7/ranger.jpg

(해병대등 공식적인 훈련 사진을 구하지 못해 이 사진을 씁니다. 저작권 문제가 없도록 얼굴은 가리고 사진 크기도 줄였습니다. 원래 크기의 사진을 보기를 원하시면 링크를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천장: 물에 빠져 본 사람은 안다. 천장이 물 속 깊은 곳에서 바라 본 수면과 흡사하다는 것을. 빨리 저 위까지 올라 가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공포스러운 기억은 언제나 나를 괴롭힌다.

 

 

깊은 물: 물 속에서 바라본 실제 수면. 이 정도 깊이는 수영을 배운 사람들 중에도 들어가 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깊은 곳이다. 스스로 들어가도 무서운 곳을 강제로 들어가게 되면 얼마나 겁나겠는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태어나 살았지만 정작 바다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지요. 어린 시절 바다에는 여름이나 되어야 잠깐 가 볼 수 있었을 뿐입니다. 가더라도 발 담그고 놀거나 가슴 정도 오는 곳까지 들어가는 것이 최대였지요. 삼 십대 후반까지도 저는 수영을 못했습니다. 그 때까지 유격 때 빼고는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들어간 본 적도 없습니다.

 

언젠가 극장에서 재 상영하는 빠삐용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유에 대한 극한의 노력을 보여주는 그 영화에 몰입한 후라 그랬는지 제가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삶의 소중함을 느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이 위태로운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참으로 힘겨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마치 일등 복권 당첨금을 찾으러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여태까지 별로 신경 쓰지 않던 것들이 위협으로 다가오는 그런 느낌, 사람들이 모두 적으로 보이고, 차들이 갑자기 나에게 덤벼들 것처럼 느껴지지요. 빠삐용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 나는 그래도 살아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한강의 다리를 넘는 동안 불현듯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이 버스가 갑자기 강으로 뛰어든다면, 이 다리가 갑자기 끊어진다면, 나는 물에 빠져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다리를 다 지나도록 저는 꼼짝도 못하고 그 상상에 빠져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죽음의 공포도 느꼈습니다. 마치 물 속에 빠진 듯 온 몸에 식은 땀이 났습니다.

 

그 때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기 전이었습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후부터는 저의 상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두려움에 더 걱정이 되었지요. 지금도 한강을 건널 때면 구명 도구로 쓸 물건이 주위에 있는지 확인하고는 합니다. 버스 뒤쪽에 작은 망치가 있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수영이란 물에 떠 있을 수 있는 것,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에 빠져도 떠 오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수 대교: 상상이 현실로 바뀐 현장. 다리가 갑자기 무너지는 황당한 사고 앞에서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사고 난 후에 필요 이상으로 튼튼하게 고쳐 놓았다. 겉으로 보기에도 엄청나게 복잡해 보인다. 이제 더 이상 사고가 날 수가 없을 정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빠삐용 포스터: 위대한 영화는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자유를 향한 빠삐용의 집념은 삶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가 고생한 만큼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미지 출처: http://www.stevemcqueen.org.uk/McQueen/24Papillon/UKquad.jpg

 

 

빠삐용: 최후의 도전에 나서는 빠삐용의 모습. 그가 원한 것은 자유로운 삶이었고 내가 원한 것은 물 속에서의 자유였다. 우리는 각자 그것을 얻을 수 있었을까?

이미지 출처: http://www.prisonflicks.com/images/PapPlunge.jpg

 

 

제 나이 삼 십대 후반에 더 이상 수영은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일에 바쁘고 술 한잔 하느라고 바빠서 저녁 시간에 수영을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주말에 수영장을 가는 것은 그 동안 아내가 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남자 혼자 아이들을 챙기는 것은 거의 일입니다. 수영을 하러 간다고 말하기도 힘들지요. 기껏해야 깊이가 얼마 되지 않는 유아풀에서 놀 수 있는 정도지요. 잠깐 짬을 내서 레인에 들어가면 개헤엄도 아닌 어설픈 몸 동작을 해볼 수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제대로 떠 있지도 못하고…... 헤엄치는 동작을 하고 있다가 물 먹을 까봐 금방 일어서 버립니다. 그러고 있으면 자유형으로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방해된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니까 구석에서 이러고 있다가 그 사람들과 자꾸 부딪히는 바람에 지레 미안해져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초보 수영 강습을 받아 보려고 했지만 시간도 맞추기 힘들고 무엇보다도 젊은 사람들에 치여 소외될까 봐 선뜻 신청하기 힘들었습니다. 여태까지 영어회화나 스케이트 같은 이런 강습을 꾸준히 받아 본 적이 없었지요. 비싼 돈 내고 수강을 해도 한 달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처음 며칠 간은 열심히 가지만 바쁜 일이 생겨서 자꾸 빼먹다 보면 어느 새 진도를 놓치게 되지요. 오랜만에 다시 가보지만 진도도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강습 받는 사람들과도 서먹해져 재미도 없습니다. 결국 처음 생각과 달리 흐지부지 그만 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더구나 수영은 팬티만 입고 하는 것인데 이 십대의 한창 때인 젊은 친구들과 부대끼며 같이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종류의 강습이든 남자 강사들이 여자만 우대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습니다. 스케이트 강습 받을 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수시로 넘어지는 저는 나 몰라라 하던 강사가 여자 초보 회원에게는 손잡고 트랙을 여러 바퀴 돌아주는 꼴을 보고 배우기를 그만둔 적도 있습니다. 같은 돈 내고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배울 만큼 아쉬운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스케이트는 옷이라도 입고 하지 수영은 비키니입고 하는데 얼마나 차별이 심할지 안 봐도 눈에 선했습니다.

 

(대부분의 강사 분들은 모든 강습생들에게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제 글에 나온 분들은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아주 개인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또한 배운 적도 없는 수영 강사 분들에 대한 지레 짐작은 전적으로 저의 머리 속에서 일어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도 밝혀 둡니다.)

 

휴가철에 바닷가에 가면 튜브 끼고 모래 사장 근처에서 노는 것이 다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바닷가에서 수영을 배워놓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고 기회가 되면 배우겠다고 생각하지만 물론 그 다음 휴가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지요.

 

이제 누구 하나 제가 수영을 못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저도 수영을 못하는 것에 대해서 큰 불만이 없었습니다. 배울 시기를 놓친 저에게 수영은 그저 남의 일에 불과했지요. 그런 저에게 어느 날 작은 사건이 생겼습니다. 제가 원하지도 않았지만 억지로 일어난 그 일은 수영에 관한 저의 욕망을 부추겼고 제 삶의 또 다른 풍부한 경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일로 인해서 물 속이라는 아름다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아아 제가 왜 이런 아름다운 세계를 모르고 살았을까요? 왜 저의 젊음을 바다와 같이 보내지 못했을까요? 이제 저는 여러분께 또 다른 세계를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그 세계는 너무나 아름다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수영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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