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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스의 작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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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쟁이로 가는 길/영화이야기

국가대표 완결판 – 중첩된 시간

미닉스 김인성 2009. 9. 17. 20:24

국가대표 완결판 – 중첩된 시간

 

인간 승리 스토리,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우리는 정상에 선다. 찌질한 인생들, 조금도 도움이 안 되는 환경, 잔인한 세상, 서글픈 현실, 그러나 가장 문제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저주하는 주변인들보다도 못한 낙오자들, 쓰레기들, 이 것의 우리의 현실이다.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 그 희망의 시간이 시작될 수 있을까?

 

뻔한 주제, 정해진 이야기 구조, 해야 할 이야기는 명확하지만 그 끝에 감동을 얹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절정으로 달려가는 길이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미 관객은 록키 시절부터 시작해서 감동의 바닥까지 박박 다 긁어 먹었는데…… 신파는 금물. 질질 짜지 마라, 쿨하고 시크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촌스럽고 짜증나니까. 절대로 안볼 테니까…….

 

사기꾼이 짱인 나라에 감동, 실화, 희생, 봉사, 이 따위 용어는 집어치우자. 대신 사기, 거짓, 협잡, 이익, 거래, 불법 뭐 이런 것으로 구성해야 한다. 이런 당의정을 씌워야 그나마 사기꾼에게 표를 준 사람들에게서 최소한의 관심을,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있으니까. 이젠 대한민국도 이젠 쿨한 나라잖아?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다. 99퍼엔트의 확률로 이들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못 딸 것이고, 혹시라도 이들을 밀어 준 공무원이 있다면 좌천될 것이고, 경기 중계해봤자 광고도 붙지 않을 것이다. 문제아들과 어울리는 아들 놈은 다리 몽댕이를 분질러서라도 그 놈들에게서 떼어 놓아야 한다. 그게 진리다. 총 다섯 명뿐인 국가 대표가 금메달을 실제로 따왔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의 애국심과 노력은 보상받지 못한다. 주류가 다 먹는 구조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 따위 영화가 왜 만들어지는가? 판타지로 나가지 못한다면 사기꾼의 땀과 눈물, 기회주의자의 안락함 혹은 가진 자들의 애환을 노래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사기꾼을 뽑은 나라의 영화적 가치는 이런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이 시대, 개인적인 노력을 찬양하는 것이 불온한 것일까? 극우적인 것일까? 사회는 당연히 썩었지만 너희들은 열심히 해라? 썩은 사회의 시스템에 저항하라? 두 메시지가 공존하는 이 영화는 결국 80명의 약한 자, 포기한 자, 패배주의자들 너머에 있는 20명의 선한 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아니 90명, 95명의 패배주의자들 너머에 있는……

 

훈련 준비 오리엔테이션: 관객의 이해를 돕는 완벽한 시퀀스

 

오리엔테이션은 공사판 중간에서 칠판 하나 놓고 진행되지만 그마저도 덤프 트럭에게 방해 받는다. 이 장면 하나면 된다. 구질구질하게 스키 점프의 현실이 어떻고 늘어 놓아 봤자 보는 사람 짜증만 나니까. SKY가 아니라 SKI 임을 알려주며 점프 감독은 스키 점프에 대한 이해가 없음을 보여준다. 점프 감독은 또한 후보까지 포함해서 5명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다. 이를 위해서 급하게 모자란 중학생을 끼워 넣음으로써 그가 포함될 수 밖에 없음을 완벽하게 설명한다. 중학생은 그가 선택되는 순간에 지렁이를 잡고 있었다. 모든 사건은 감독의 개그 멘트 한마디로 완결된다. "야, 지렁이 좀 있다 먹고 일루와"

 

이 철저하게 상업적인 영화의 주제는 철저하게 비 상업적이다. 이 모순이 이 영화의 힘이다. 이 영화의 구성과 나레이션을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된다. 시간이 중첩된다. 순간마다 수 많은 사건과 감정이 교차하며, 영화 진행을 위해 필요한 설명이 바탕에 깔린다. 한 컷도 느슨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시간은 엮여진 레이어에 따라 달리 흘러간다. 관객들은 그 장면의 목적을 단숨에 알아채고 꽉 짜여진 사건의 진행에 감탄하며 개그적 마무리에 즐거워한다.

 

이 매끄럽게 잘 만들어진 영화는 수 많은 집단 지성의 산물로 보인다. 어떻게 스키점프를 알리고, 그들의 현실을 보여주며, 캐릭터를 살리고, 그들의 땀냄새를 맡게 하며, 재미와 즐거움을 주고 감동까지 끌어낼 것 인가. 어떻게 쉽고 즐거운 상황묘사로 변환시킬 것인가. 장면마다 이런 일관된 정책에 부합되도록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시나리오를 수 십 번 고쳐 썼을 것이다. 국가대표의 흥행은 중첩된 시간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 날의 스키 점프의 현실을 알려 주는 마지막 자막은 안타까웠지만 극장 밖에는 여전히 변화 없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깨닫는 것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게 너무 막연했다. 세상이 암울해 있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영화가 너무나 상업적이어서 그랬을까, 클라이막스에 흘렸던 눈물은 이미 다 말라버렸고 계속해서 내 가슴 속에 남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글을 하나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배주의가 만연한 기회주의자들의 시대에 나는 왜 이 따위 쓸데없는 글을 쓰려고 하는가? 그 이유는 앞에서 말했다. 나도 20명의 선한 자들에게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단 한 명, 단 한 명만이라도 귀담아 들어 준다면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포기하지 마라. 인간은 진보할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라.

김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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